[ 우화로 읽는 장자 : 두 번째 - 송나라 상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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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사람이 ‘장보’라는 모자를 밑천 삼아 월나라로 장사를 갔다. 그런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그런 모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북극에 가서 냉장고를 팔고, 열대지방에 가서 털옷을 판다.’ 물건을 파는데 귀재인 사람들을 두고 흔히들 하는 말이다. 그런데, ‘도전정신’이 ‘투철’한 어떤 젊은이가 이 말대로 해보이겠다며 나섰다는 상상을 해보자. 두터운 털옷을 잔뜩 짊어지고 열대의 어느 나라에 내려선 젊은이! 그가 느낄 난감함이 느껴지는가?
장자에 등장하는 송나라 상인 역시 비슷한 난감함을 느낀다. 한때 중원을 호령했던 주나라의 문화를 가장 잘 계승하고 발전시켜 온 송나라. 그 예법과 격식의 나라에서 모자는 신분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물건 중 하나였다. 한몫 보려는 생각에 그 모자를 잔뜩 짊어지고 월나라로 온 송나라 상인. 짧은 머리에 문신을 한 이들이 오가는 월나라 저잣거리 한가운데에서 어찌 난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애당초 길을 떠날 때 월나라 사람들이 그럴 줄 몰랐다는 점에서 송나라 상인의 난감함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는 월나라 사람들도 옷과 모자로 신분을 증명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자를 팔기 위해 그 먼 길을 오지는 않았을 터. 그렇다면 이제 송나라 상인은 어찌해야 하는가?
두 가지 길이 있다. ‘뭐 이런 요상한 나라가 다 있나’라고 혀를 차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과 월나라에 남아 풍속을 익히고 새로운 장사의 방법을 찾는 길. 이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준 장자는 우리에게 거기에 남을 것을 권한다. 월나라에서 송나라 상인이 맞닥뜨린 것은 바로 거리를 두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차이와 낯섦이다. 이 차이와 낯섦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곧바로 자신만의 가치관과 선입견 속으로 복귀해서는 결코 삶을 확장할 수도 더 풍성한 삶을 만끽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장자가 들려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자.

송나라에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약을 손에 바르고 무명을 빨아서 탈색하는 일을 대대로 하였다네. 어떤 이방인[客]이 그 말을 듣고, 금 백 냥을 줄 터이니 약 만드는 비법을 팔라고 했지. 그러자 그 사람은 가족을 다 모아 놓고 의논하면서 “우리가 대대로 무명을 빨아 탈색시키는 일을 했지만 기껏해야 금 몇 냥밖에 만져 보지 못했는데, 이제 이 약을 만드는 비법을 금 백 냥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팝시다”라고 말하였다네.
그 이방인은 오나라 임금에게 가서 그 비법을 가지고 유세를 했다네. 마침 월나라 임금이 싸움을 걸어오자, 오나라 임금은 그 이방인을 수군의 대장으로 삼았다네. (왜냐하면 그 이방인에게는 물에서도 손이 트지 않게 하는 비법이 있었기 때문이지.) 결국 겨울에 수전을 벌여 그 이방인은 월나라 군대를 대패시켰다네. 오나라 임금은 그 사람에게 땅을 떼어 주고 영주로 삼았다네. 손 트는 것을 막는 약은 마찬가지였는데, 한 쪽은 그것으로 영주가 되었고 다른 쪽은 그것으로 무명 빠는 일밖에 못했다네. 사용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지.―「소요유」

이 이야기에도 송나라 사람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손이 트지 않게 하는 비법을 가진 이로, 그 비법 덕분에 남들보다 더 많은 무명을 빨아 탈색시키며 넉넉하게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금 백 냥에 이 비법을 산 ‘이방인’은 그것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영주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방인이 영주의 자리에 올라 많은 부를 획득했다는 것이 아니라, 송나라 사람이 자신의 일과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있을 때 이방인은 그 비법을 가지고 경계를 횡단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월나라 저잣거리에서 ‘월나라에서도 모자를 팔 수 있겠지’라는 선입견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던 송나라 상인처럼, 이방인도 송나라와 오나라 사이의 차이를 마주하고 비법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이방인은 자신의 삶을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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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004
강신주 지음 / 도서출판 그린비 / 인문(철학), 고전

출간일 : 2007-08-10 | ISBN(13) : 9788976823045
양장본 | 296쪽 | 205*140mm


2007/08/17 14:43 2007/08/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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