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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는 인터넷서점에 접속해 ‘문화대혁명’이라는 검색어를 눌러 봤습니다. 제가 다음에 편집할 책이 문혁 관련 책이기 때문에 관련 책을 사서 미리 공부하기 위함이었죠. 생각보다 책이 많지 않더군요. 10권 정도밖에 없고, 그 중 두세 권 정도만 제가 찾는 책에 부합하는 듯했습니다. ‘이렇게 적을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리뷰어들의 글을 따라 가게 되었는데요, 마침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1․2)』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평들도 괜찮고 2권은 제가 찾는 책에 부합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가지 드는 생각이 부제로 ‘문화대혁명과 중국 자본주의의 기원’ 같은 걸 지어서 ‘문화대혁명’을 검색했을 때 같이 뜨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목은 책이 독자와 만나는 제1의 소통 창구입니다. 표지의 느낌과 함께 독자들에게 첫인상을 심어주는 책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온라인서점이든 오프라인서점이든 독자들은 책을 제목부터 보기 시작하며, 해당 책을 제목으로 인지하고 기억합니다. 이러니 제목을 짓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편집자들을 고달프게 합니다.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끌기 위해서 제목 짓기에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출간 직전까지 제목회의를 거듭할 때는 살이 쫙쫙 빠지죠.

제목을 잘 지어서 베스트셀러가 된 예화도 부지기수입니다. “제목이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시대의 분위기를 잘 짚어 냈다”며 판매량의 공을 제목에게 돌리는 일도 많고, 베스트셀러가 된 제목들만 분석해 시대의 흐름과 제목 짓는 경향을 읽어 내기도 합니다. 혹여 독자들의 구매와 직결되는 게 아니다, 라고 할지라도 분명 책을 필요로 하는 독자들의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받게 하는 데 제목보다 더 효율적인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앞의 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독자가 품을 팔지 않고 금방 책을 찾으려 했다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책을 놓칠 수도 있는 일이지요.

그리고 제목을 짓는 일은 편집 작업 전 과정을 보았을 때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책 제목에 따라 하위의 부․장․소제목과 편제에 변화가 일어나며, 본문의 구성과 레이아웃, 각주와 인용출처 처리 방식, 표지 분위기까지 결정짓는 핵심 요소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제목은 늦어도 편집 계획을 세우기 전에 결정해야 합니다. 책의 핵심 내용과 가치를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는 컨셉과 함께 제목은 편집의 흐름을 좌우하는 방향타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책 제목이 가능한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책 내용을 정확히 나타내는 제목

책 제목은 내용을 나타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제목만 가지고서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제목을 짜는 게 중요합니다.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문학적인 제목은 독자들에게 외면받기 십상입니다. 이럴 경우엔 보통 부제나 표지 이미지로 보충하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해당 책을 꼭 사볼 독자들은 인지할 수 있는 제목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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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책의 핵심이 될 만한 키워드들을 뽑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키워드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보고, 몇몇 단어는 상징적인 표현이나 다른 단어로도 바꿔 가면서 최상의 조합을 찾아 나가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음식’을 ‘먹거리’나 ‘식탁’으로 바꿔 보기도 하고, ‘미각’을 ‘맛’이나 ‘혀’로 바꿔 보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기본적이면서도 일반적인 방법이어서 저희 책 중에서도 사례가 많은데, 그 중 지은이가 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여행하면서 기록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가 이런 경우입니다.

2. 인터넷 검색이 잘 되는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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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저희가 펴낸 책 중에 『느린 희망』이란 책이 있습니다. 부제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해 인간의 걸음으로 천.천.히’이구요. 내용을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책이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으니 더없이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자의 반응, 특히 제목과 연관된 반응도 나쁘지 않았구요. 헌데, 제목만 가지고서는 이 책이 ‘쿠바’에 관한 책이라는 걸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표지를 보면 대번에 알 수 있긴 합니다. 이미지상에 영어로 ‘CUBA’가 크게 보이니까요. 하지만 쿠바로 검색을 하면 이 책이 뜨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시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죠. 인터넷에서 책을 사는 독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니만큼 검색어와 연관되어 제목을 상상하는 건 더욱 중요해질 듯합니다.

3. 시대의 요구에 반응하는 문제설정형 제목

사회현상을 날카롭게 짚어 내 이슈화할 수 있는 한마디, 최신 트렌드로 뜰 만한 잠재력을 갖춘 신조어, 대중의 욕망이 현실로 발휘되도록 유도하는 키워드! ‘한 단어’가 줄 수 있는 영향력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신문이나 연예인의 말 못지않습니다. 이런 단어는 책의 판매량을 예상치도 못하게 확 올려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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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들의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88만원 세대』는 작년 사회문제를 이슈화한 대표적인 예이구요,『블루오션 전략』은 하나의 트렌드가 될 만큼 파급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대중의 욕망을 건드리는 제목은 워낙 널려 있긴 한데요, 대표적인 게 ‘재테크’ 관련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문서로 보자면, 인문학에 대한 욕망을 건드려 주는 『희망의 인문학』이나 먹는다는 것의 윤리학(원제가 The Ethics of What We Eat입니다)을 말하고 있는 『죽음의 밥상』도 음식에 관한 독자들의 잠재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4. 독자에게 얻는 아이디어성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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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가 있고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담당 편집자는 간혹 상상력을 더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관련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는 가제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이지요. 또 제목을 정했는데도 뭔가 2% 부족한 경우도 흔합니다. 이런 경우 지인들이나 책을 일차적으로 볼 만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좋은 제목이 재탄생 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요, 일례로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를 들 수 있습니다. ‘쿵푸’가 ‘공부’의 중국어음이기도 하고, (내용의 핵심 중 하나인) ‘몸을 쓰는 행위’라는 의미에 착안해 즉각적으로 제시한 한 지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제목은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5. 언어의 맛을 살린 참신한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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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지을 때는 내용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독자들이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상상력이 요구됩니다. 이에 더해 언어를 맛깔나게 살릴 줄 아는 재주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보면, 다산의 박학함과 경영이라는 트렌드가 동시에 녹아 있는 것과 아울러 네글자-다섯글자의 운율을 살리고 있어 부르기도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책 중 『철학과 굴뚝청소부』도 좋은 예라고 생각하는데요, 연관성 없어 보이는 두 단어가 주는 호기심에, ‘철굴’로 불리며 간략하게 읽힐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제목입니다.

이 밖에 『오래된 미래』『자본을 넘어선 자본』같이 역설형의 제목, 『필로디자인』(philosophy+design)처럼 단어를 결합시켜 만든 신조어,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처럼 의문형의 제목 등도 언어 형식을 통해 책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제목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정리는 해보았는데요, ... 그러나 책 제목에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합의되어 결정된 하나의 안이 최선의 제목일지도 모릅니다. 하여, 오늘도 편집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제목과 씨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제목은 독자와 처음 만나는 얼굴이자 편집의 흐름을 좌우하는 방향타니까요.

- 편집부 주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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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2 10:36 2008/05/0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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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brave trials astuces

    Tracked from brave trials astuces 2014/10/15 03:18  삭제

    그린비출판사 :: 책 제목 짓기, 독자와 만나는 제1의 소통 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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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ㅋ 2008/05/03 10:30

    다 필요없어~!! '수능에 나오는' 이란것만 붙여주면 수험생이랑 수험생 엄마들은 다 사게 되있어 ㅋㅋ

    수험생관련인들만 잡아도 대박이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