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열망한 미래파 예술가들의 정치적 선언!!
선언 100주년에 되돌아보는 '미래주의' 선언의 역사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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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

이택광 지음 | 도서출판 그린비 | 인문학 사회과학 사상사 일반
출간일 : 2008년 4월 30일 | ISBN(13) : 9788976825049
신국판 변형 (140X205mm)| 192 쪽

역사에 길이 남은 선언문을 엄선한 “세계를 뒤흔든 선언”의 일곱번째 책.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고자 했던 미래주의 예술가들의 희망과 실패, 후대에 미친 영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예술운동의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 전 부분에서 변화를 선도하고자 했던 미래주의 운동의 사회적·정치적·미학적 배경으로부터, 회화·조각·음악·건축 등의 작품들과 선언문 내용을 직접 살펴봄으로써, 미래주의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성격과 예술가들의 정치적 열망이 현실 속에서 어떤 효과를 낳았는지 살펴보고 있다.

∎ 지은이 소개

지은이_이택광 | 부산에서 자랐다. 부산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문화연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갔다. 영국 워릭대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셰필드 대학 대학원 영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이다. 지금은 경희대 영미어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썼고, 지은책으로 『민족, 한국 문화의 숭고 대상』(2007), 『근대, 그림 속으로 거닐다』(2007),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2002), 『들뢰즈의 극장에서 그것을 보다』(2002)가 있다.


∎ 목 차

책머리에 4

등장배경과 지은이 15
미래주의의 사회적 배경 34│미래주의의 미학적 배경 38│
미래주의의 정치적 배경 47

「미래주의 선언」의 내용 59
미래주의의 기초와 미래주의 선언 61│미래주의 화가 선언 89

당대에 미친 영향 119
이탈리아 모더니즘 운동과 미래주의 120│소용돌이파의 반격 127│
러시아 미래주의 132│벤야민의 미래주의 비판 139

「미래주의 선언」의 유산 143

여파 159

부록 183
「미래주의 선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184│찾아보기 188



∎ 책 소개

“우리는 키케로 풍 고전주의와 골동품 수집가들로부터 이 땅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미래주의를 창립한다. …… 우리는 공격적 행동, 경주자의 활보, 목숨을 건 도약을 찬양하고자 한다. …… 우리는 새로운 아름다움, 다시 말해 속도의 아름다움 때문에 세상이 더욱 멋지게 변했다고 확언한다.”―「미래주의의 기초와 미래주의 선언」 중에서

1909년 2월 20일 이탈리아의 F. T. 마리네티(Marinetti)는 「미래주의의 기초와 미래주의 선언」(본문 61~69쪽)을 발표하며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예술운동을 시작했다. 마리네티는 미래주의 운동을 통해 낙후된 이탈리아 사회와 정치를 재건하려고 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늦게 국민국가를 이루었기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발전이 더딘 상태였다. 마리네티를 비롯한 젊은 엘리트들은 이탈리아의 낙후된 사회기반을 예술운동으로 뚫고 나가고자 했다. 미래주의 운동은 속도와 역동성, 기계와 같은 산업사회의 특징들, 즉 미래를 향한 혁명적 움직임을 자신들의 미학 소재로 삼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도전을 선포한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은 선언문을 엄선한 이 시리즈(세계를 뒤흔든 선언)의 일곱번째 책인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은 이와 같이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고자 했던 미래주의 예술가들의 희망과 실패, 후대에 미친 영향을 담고 있다. 예술운동의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 전 부분에서 변화를 선도하고자 했던 미래주의 운동의 사회적·정치적·미학적 배경으로부터, 회화·조각·음악·건축 등의 작품들과 선언문 내용을 직접 살펴봄으로써, 미래주의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성격과 예술가들의 정치적 열망이 현실 속에서 어떤 효과를 낳았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당대 사회에 대한 미래주의자들의 진지한 고민은 예술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준다. 즉 미래주의를 통해 우리는 예술은 삶과 괴리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삶의 요구에 답을 찾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치현실에 대한 미래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은 유럽 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와 영국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 흔적이 아직도 서구의 문화에 남아 있는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SF영화나, 팝아트를 비롯한 현대 예술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근·현대 예술 작품과 문화이론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다양한 발언을 하고 있는 지은이 이택광은, 미래주의 운동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당시 유럽 사회와 예술 경향이 어떤 흐름으로 흘러갔는지, 그리고 미래주의와 이탈리아 파시즘이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삶을 위한 예술’이라는 문제의식 하에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고 있다.

역동적 운동과 속도에 대한 찬양 ―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다!

마리네티가 선언을 발표한 지 1년 후, 보초니(Umberto Boccioni)를 위시한 일군의 화가들이 「미래주의 화가 선언」(본문 89~93쪽)을 발표하고 운동에 동참한다. 이들은 “과거에 대한 숭배”와 “현학적이고 학구적인 형식주의”를 파괴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다른 예술운동과 달리 ‘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 미래주의 운동은, 과학기술이 가져온 변화를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19세기부터 시작된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사람들의 삶의 기반을 변화시켰다. 기차와 자동차, 비행기와 자본주의의 대량생산체제는 인간이 그동안 사고하지 못했던 영역까지 활동의 폭을 넓혀 주었다. 미래주의자들은 새로운 시대를 표현하는 미술 형식으로 ‘속도’와 ‘역동성’을 제시한다.

실제로 미래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자동차와 기차의 속도감이나, 군중들의 역동성을 강조해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미래주의 화가들이 묘사한 속도와 역동성은 근대 산업자본주의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다. 산업자본주의는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으로 유지되는 체제다. 대량생산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이를 통해 미래주의자들은 산업자본주의에서 속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미래주의는 이런 속도를 긍정함으로써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따라잡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냈다.

미래주의자들이 강조한 역동성은 새롭게 등장한 군중과 도시 공간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미래주의 건축가인 산텔리아(Antonio Sant?lia)는 미래 도시를 설계하면서 승강기를 건물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배치한다(본문 148~149쪽).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이런 배치를 통해 산텔리아는 공간의 이동에 따른 역동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즉 승강기가 상승함에 따라 승객들이 서로 다른 공간감을 역동적으로 느낄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미래주의는 산업발전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도시 공간이 인간의 사고에 미친 영향을 공간에 대한 역동성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속도와 역동성, 기계에 대한 긍정은 미래주의자들의 사회 변혁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아직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이탈리아를 깨우기 위해 미래주의자들은 강한 ‘문화적 충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고전주의 회화의 틀을 극단적으로 파괴하는 미래주의 예술에서 ‘속도’와 ‘역동성’은 아직도 낡은 체제 속에서 잠자고 있는 이탈리아 국민들을 깨울 방법이었던 것이다.

예술로 표현된 기계문명 ―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허물다!

미래주의 운동은 이탈리아의 경계 내에 머물지 않았다. 마리네티와 미래주의자들은 전 유럽을 돌며 미래주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래주의가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노력 덕분이다. 이탈리아 미래주의 운동은 1914~15년 공식적으로 종언을 고하지만, 미래주의 운동이 서구 문화에 가한 충격은 아직도 다양한 분야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미래주의 운동이 기존의 예술사조와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미학적 성취는 기계문명에 대한 접근방식이었다. 미래주의자들은 근대 기계문명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미래주의 이전의 고전주의 예술과 비교하면 이런 차이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고전주의 예술가들에게 공장의 기계는 생명이 없는 쇳덩이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미래주의 운동은 근대 산업사회의 가장 중요한 엔진이었던 기계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미래주의자들에게 기계는 새로운 시대를 열 동력이었고, 이탈리아의 미래를 새롭게 창조할 기반이었다.

미래주의자들은 기계가 이미 인간생활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했다. 미래주의자들이 짚어 낸 것처럼 근대 초에 등장한 새로운 기계는 인간의 사고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가령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 가거나 말을 타고 가는 사람과, 기차와 자동차, 비행기로 이동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주의 운동은 이런 사실을 예리하게 포착해 냄으로써 기계문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있게 탐구한 최초의 예술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래주의가 시작한 ‘인간과 기계의 경계 허물기’는 지금 대중문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가고 있다.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인간의 신체를 기계화하고자 하는 미래주의적 상상력을 보여 준다. 「공각기동대」의 영화 속 세계는 인간의 두뇌까지도 전자화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를 통해 ‘인간답다’고 규정할 수 있는 마지막 경계까지 허물어, 미래주의자들의 상상력을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또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는 산텔리아의 미래 도시 설계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영화 속 건물들을 디자인했다. 기계문명에 대한 미래주의적 상상력은 이와 같이 시대를 뛰어넘어 대중문화의 영역에 창조적 영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파시즘과 결합한 예술운동 ― 독재사회의 징후를 읽다!

미래주의 운동의 중요성은 예술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리네티를 비롯한 미래주의자들은 무솔리니와 파시즘을 지지한 정치활동으로 악명 높다.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은 미래주의가 파시즘을 지지하게 된 배경을 통해, 파시즘과 예술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사실 약간만 생각해 보면 이탈리아 산업화에 대한 열망을 예술로 표현한 미래주의자들이 무솔리니를 지지한 것은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미래주의자들은 무솔리니의 강력한 통치가 이탈리아의 공업화와 발전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성장에 대한 욕구가 내재해 있는 정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등장한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구도에서, 저만큼 앞서가는 경쟁자를 따라잡기 위한 후발 주자의 일종의 ‘편법’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후진국 국민들의 열망이, 파시즘과 같은 체제를 용인하고 수용한 것이다. 미래주의의 문제점은 이런 파시즘을 지지함으로써, 파시즘에 미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독일의 문예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미래주의를 ‘예술지상주의’의 폐해가 극단에 이른 징후로 보았다. 미래주의가 예술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정치적인 삶’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군중의 표현을 파시즘에 묶어 둔다는 것이다. 미래주의가 정치적 대안으로 선택한 파시즘은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스스로도 파멸한다.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을 지지한 미래주의는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조하지 못한 예술가 집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파시즘과 미래주의 운동의 연관성에 대한 비판은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파시즘은 일종의 정치현상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 대중은 위기를 바로잡아 줄 강력한 지도자를 열망하게 된다. 과도한 정치적 열망만 표현되고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는 예술의 등장은 사회가 독재정치로 향하고 있다는 징후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미래주의와 같은 예술지상주의가 파시즘과 접속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 이 책은 파시즘의 재출현을 경고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예술지상주의를 넘어, 삶을 위한 예술로!

미래주의자들은 시대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시대와 호흡하고 변화를 선도하려고 했으나, 앞서 보았듯 그들의 활동은 결국 파시즘이라는 형태와 결합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옳았지만 그들이 찾은 답은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인간의 삶’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된다. 훌륭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것은 그들의 작품 속에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다양한 형태로 삶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나름의 해답을 찾기 위해 기난긴 고투의 시간을 보내며 예술로 승화시켰다.

미래주의자들 역시 삶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답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삶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이 없는 단순한 ‘속도’와 ‘역동성’은 공허하고 위험할 수 있다. 미래주의자들이 낡은 시대를 부수는 수단으로 전쟁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도, 전쟁으로 희생되는 인간들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습과 구체적인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는 자본주의가 위험한 것도 그 체제 속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이론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는 미래주의와 같은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반(反)인간주의(또는 속도와 전쟁의 찬양)를 지속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비릴리오에 의하면 속도는 사물을 바꿔 버리는 요소인데, 현대사회는 언제나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지배하는 현상이 지배적이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속도를 중심으로 통합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런 분석에 따르면 미래주의처럼 속도에 집착하는 것은 국가장치에 귀속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비릴리오의 이런 비판은 미래주의 예술가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은 미래파 예술가들이 낡은 사회를 바꾸고자 한 미학적 투쟁과 영향력뿐 아니라 이 운동이 지닐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보여 줌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예술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준다. 즉, ‘예술이 인간의 삶과 유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를 알려 준다. 결국 미래주의자들이 100년 전에 던진 질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 미래주의자들이 낡은 세상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열망할 때 던졌던 그 질문으로부터, 삶에 기여하는 예술, 삶과 일치하는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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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2 14:34 2008/05/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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