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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흑인 남자가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모자에, 양복에, 목소리까지 걸쭉한 그 남자는 아이쿠야,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워,워, 흥분하지 마시구요-_-;)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며 훌렁훌렁 옷을 벗던 이 아저씨는 마침내 결정적인, 속옷만을 남겨두었고, 그 속옷 앞에 사람들은 다들 태연한 척, 내심 기대(?)되는 마음을 애써 감춘 채 그 아저씨를 지켜보았더랬습니다. 꼴깍, 한쪽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즈음, 아저씨는 팬티 속에서 페니스로 열연중이던 사과를 꺼내어 한 입 시원하게 깨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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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남자보다 더 남자 같았던 그 아저씨(드레드 게레스탄트)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사람이었습니다. 가브리엘 바우어 감독의 영화 「비너스 보이즈」(Venus Boyz)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드레드는, 페니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원하면 그냥 달면 되는 거죠,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저는 자리에서 뛰어 올라 공중 2회전을 한 다음에 사뿐히 착지를 한 후 흐트러진 머릿결을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정리하고 싶었지만 객석이 비좁았던 관계로 그냥 박수만 열심히 쳐댔습니다. 때는 2003년 4월, 여성영화제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대학 2학년생의 갑갑함을 한방에 날려준 ‘사건’이었습니다.

젠더gender. 여성학 책에서 읽어 오던, 의무적으로 학습하던 ‘젠더’가 바로 제 눈앞에서 깨지던 순간이었습니다. 여성영화제에서 만난 드랙킹drag king, 그러니까 젠더매트릭스의 바깥에 있는 그 사람들은 저에겐 원효대사의 해골물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 저런 게 정말 젠더이분법에 콧방귀를 날리는 것이로군!’ 하고 말이죠.

그래서였습니다(드디어 본론시작!). 지금의 다큐멘터리 북 『3×FTM: 세 성전환 남성의 이야기』기획서를 들고 찾아온 다큐멘터리 「3×FTM」의 제작자분들의 제안에, “저요!”하고 손을 번쩍 들어 제가 하고 싶다고 나섰던 것은. 기존의 성담론에서 탈주하여 자유롭게, 혹은 억압적으로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숨 막히는 젠더이분법에서 조금은 비켜설 것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하나 더 보탠다면, 주어진 성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성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약하나마 편집으로라도 지지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랄까요. 소수자들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연대하는 것이 대학시절의 액세서리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때마침 저의 시간과 노력으로 연대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기도 하구요. 아무튼 그렇게 저는 이 ‘다큐멘터리 북’의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두둥~)

음…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1여 년 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책으로 엮는 작업에서 저는 때때로 펜을 손에서 내려놓고 먹먹해진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가슴을 도려내고 싶었고, 내가 남잔가, 여잔가, 도대체 뭔가, 자신에 대해서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FTM(Female to Male)들의 고백은 마치 그들의 육성을 듣는 듯 저의 눈과 귀를 후벼 팠고, 심장을 후벼 팠습니다(이제 와서 얘기지만, 이따금씩 텍스트와의 높은 싱크로율 때문에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게 했던 것 사과드려요! 흑ㅠㅅㅠ). 물론! 혹시 다큐멘터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들의 고백은 무겁고 슬프다기보다는 차라리 유머러스합니다만 그래도 세 주인공이 들려주는 덤덤한 고백은 뭐랄까, 읽는(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화장실에 가고 싶어 몸둘 바를 모르겠는 사람처럼 굴게 만듭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조차 “더럽다” 혹은 “시집가면 나아질 거야”라는 얘기를 들으며 그들이 참아내야 했을 눈물과 슬픔을 생각하면 말이죠.

저는, 「퀴어 애즈 포크」나 「L워드」같은 본격 퀴어드라마가 하도 인기가 많기에 사람들의 마음도 많이 열린 줄 알았습니다. 「헤드윅」이 인기도 많고 심지어 존 카메론 미첼이 우리나라에서 헤드윅 콘서트까지 한다고 하기에 이제는 퀴어만세를 외칠 수 있는 시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궁금증과 가십성 호기심으로 트랜스젠더를 대합니다.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과도한 여성성 또는 남성성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이고, 섹스는 어떻게 하고, 가슴과 성기수술은 어떻게 했을까 물어보고 싶은 존재입니다. 2006년에 법적으로 성별변경을 마친 주인공 중 한 명은 그 잔인한 호기심에 대한 요구로, 징병검사에 가서 의사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자신의 수술 전 성기를 확인시켜 줘야 했습니다. 으으으으… 정말이지, 소름끼치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어려서부터 어둠의 경로를 통해 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 性이란 것은 사실 성 그 자체가 아니라 ‘행위’에만 집중되어 있던 것이죠. 무엇이 女性이고, 무엇이 男性인지 제대로 질문해 본 적 없는 우리는 성교육이 필요한 사람들, 맞습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저 역시 젠더이분법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성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모두가 남자라고 생각하는 한 성전환 남성은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도 커피를 타는 모습이 여자로 보일까 봐 꾹 참았다고 했습니다. 아, 도당체 여자란 무엇이고 남자란 무엇이란 말입니까.

세 명의 성전환 남성들은 여자속옷을 입기가 부대껴서 안 입고 가면 학교에서 “저는 선생님을 유혹하려고 속옷을 안 입고 왔습니다”라는, 심히 구토유발적 문구를 들고 벌을 섰다는 이야기, 화장실에서 여자인 자기 몸이 보기 싫어 불도 못 켜고 샤워했다는 이야기, 서른 살까지도 자신을 뭐라 정체화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이야기, 트랜스젠더인 사실을 속이고 ‘간성’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차라리 이해해 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자기 몸이 드러날까 봐 팔짱을 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타인의 차이를 지독히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저는 가슴 깊은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차이’는 개성인데 말입니다.

편집을 하면서 저는 여러 번 현실에 분노하고, 개탄했습니다. 그리고 튀고 싶어 난리가 난 아이들이 가득한 홍대거리를 걸으면서 튀고 싶지 않아도 튀는 그들을 떠올리며 또 한번 슬펐습니다. 저는 그래서, ‘다른’ 분들이 그 ‘다름’과 ‘차이’의 에너지로 날아올랐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인터뷰이 한 분의 말씀처럼, 다음에는 다큐멘터리 말고 액션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좋구요. ^^;

저에게 출판은 아직, ‘운동’movement이고, 책은 세상을 바꾸고 움직이게 하는 매개체입니다. 언제까지고 적은 목소리, 작은 목소리들에게 제 힘을 빌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3×FTM: 세 성전환 남성의 이야기』. 많이 읽고, 많이 느껴주세요.

- 편집부 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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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 2008/05/15 10:54

    여성영화제 때 이 영화보고 먹먹했었는데...
    좋은 책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편집부 임유진 2008/05/15 13:12

      아, 여성영화제 때 오셨었군요! 어쩜 우린 같은 공간 안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고요, 다큐멘터리 보면서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은 부분들, 감독&주인공들과의 대화로 충분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책 속에 담겨 있으니 읽어 보시면 좋을 겁니다! 암요:)

  2. 김명진 2008/05/19 02:45

    책 잘 받아보았습니다! 저에 마음이 글을 읽는 일반 사람들의 마음에 가슴에서 가슴으로 다가 섰으면 좋겠습니다... ^^ 좋은 책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편집부 임유진 2008/05/19 09:53

      저희가 이렇게 좋은 책 낼 수 있도록 용기내어 주셔서 오히려 감사하지요:-) 저는,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사람들이 가슴으로 느끼게 될 것도 믿고요. 블로그 방문해 주셔서 감사해요. 종종 들러주셔요^^

  3. noeta 2008/05/19 14:58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타인의 차이를 지독히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종종 실망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나 자신도, 타인에게 그런 폭력을 행할 때도 있었겠지요. 다시 한 번 반성하고 갑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임유진님의 진심이 통하기를 바라며...^^

    • 편집부 임유진 2008/05/19 15:40

      맞아요. 흑. 저의 큰 목소리와 과장된 액션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종종 타인에게 '폭력'이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달은 다음부터..-_-; 저도 나름 조심하고 반성하게 된답니다. 이제 실망은 좀 그만하는 세상이 되면 참 좋을 텐데요(-ㅁ-)/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또 놀러오셔요^^*

  4. 조혜영 2008/05/19 17:49

    유진 씨... 좋은 책 낼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고, 또 이렇게 좋은 글로 진한 감동을 주시니 함께 일했다는 것이 다시 한번 너무 고마워지네요. 유진씨가 보탠 힘들이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같이, 더 많이 노력할께요. :-)

    • 편집부 임유진 2008/05/19 22:30

      어맛! 혜영 씨까지 저희 블로그에 와주셨네요^^반가워요!! 담번엔 더욱더 전복적인 작당모의(?)로 만났으면 좋겠고요ㅎㅎ 앞으로 남은 상영일정 동안 수고하시어요. 화이팅입니다^ㅁ^!

  5. 한무지 2008/05/29 03:22

    트랙백을 너무 늦게 보고 달려왔네요.
    수고로운 작업에, 좋은 글까지 감사해 하며 읽고갑니다.
    모두가 함께 해나가고 있는 이런 소중한 움직임들이, 다채로운 소통을 위한 발걸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날씨가 들쑥날쑥하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종종 들러서 흔적들 훔쳐보고 갈께요 :)

    • 편집부 임유진 2008/05/29 11:24

      늦게라도 달려와 주셨군요^ㅁ^! (캄사~)
      책의 주인공분과는 책으로, 화면으로만 접하다가.. 이렇게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저로서는 마냥 기쁩니다. 이 책은 편집자에게 정말 멋진 책이 되어 주었네요! 자주 들러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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