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기념’ 하지 말고 ‘이야기’ 하자
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2008/05/19 10:35
그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현재와 다른 미래를 갖기 위해서다.
(고병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38쪽)
1980년 5월 18일이 어떤 날인지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때인 1991년이었습니다. 1991년은 명지대 1학년이던 강경대 군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을 거둔 4월 26일부터 5월 내내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박창수, 김기설…… 자고 나면 죽음이 이어지던 그런 해였습니다. 대학만 들어가면 교복도 벗고, 머리도 마음대로 기르고, 봉사활동 같은 걸 해봐야지, 하던 스무 살에, 이어지는 죽음들을 마주하는 일은 너무 충격적이었고, 또 힘겨웠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혁명은 왜 추하고 혐오스러운가. 그것은 혁명이 지배자들을 혐오스럽고 추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봉기란 지배자들에 대한 미적 비난이다."
(고병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109쪽)
그리고 80년의 광주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5•18이 가까워지면 대학 내에 5•18을 알리는 대자보와 사진 자료들이 교정에 나붙던 때였습니다.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며 세미나를 하고 다른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대자보 자료를 준비하면서 그 처참한 사진들을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짓이겨 지고, 발가벗겨져 끌려가고, 병원에 시체와 부상자가 즐비하고…….
당시로선 불과 10여 년 전에 이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그 사실에 대해 하나도 몰랐다는 것이 놀라웠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5•18에 대한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그 죽음들과 함께 하고자 자기 삶을 바꾼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저도 모르게 5•18 광주만은 절대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5•18 광주의 죽음과 그 죽음과 함께 하려 이후의 삶을 바친 사람들, 아니 그 행동들을 잊지 않는다면, 최소한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삶은 살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이제는 이름도 사라진) 소련에서 레닌의 동상이 내려지고, 대한민국에서 군인 대통령 각하가 문민 대통령님으로 바뀌면서, 세상은 급격히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갔습니다. ‘맑스’를 말하는 건 ‘불온함’에서 ‘낡음’으로 바뀌었고, 5•18 광주는 ‘광주 사태’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이름이 바뀌고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몇 달 전 한 친구에게 지금 20대인 친구들이 5•18광주항쟁을 ‘역사 속 사건들 중 하나’로 말하는 걸 보고 제가 약간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그건 당연한 게 아니겠냐며, 우리에게 ‘4•19’가 그런 것과 마찬가지인 거라고,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으로 동의하긴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5•18 광주는 아직도 ‘역사’가 아니니까요. 제겐 그것이 여전히 현재인 사건인데, 다른 사람들에겐 어느새 역사가 되어 버렸다니……. 그 순간, 제 머릿속엔 제겐 ‘역사’가 되어 버렸으나, 어떤 이에겐 여전히 ‘현재’인 여러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일제 말기 ‘정신대’는 역사이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그것은 현재입니다. 저에게 베트남전쟁은 역사이지만, 라이따이한과 고엽제로 고통받는 참전 군인에게 그것은 여전히 지금의 사건입니다. 저에게 ‘전태일의 죽음’은 역사이지만, 노동 현장과 조건을 바꾸려는 많은 이들에게 그의 죽음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렇게 현재인 ‘역사’를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은, 그렇게 ‘역사’를 현재로 사는 이들과 “죽은 자들의 유령과 함께 살고 그들과 함께 싸우던”(이진경, 「두 개의 ‘20년’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만나는가?」) 그들, 죽음을 외면할 수 없어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던 그들의 스무 살, 서른 살에 빚진 것입니다.
광주민중항쟁 사진 자료.
그래서 저는 5•18 광주가 ‘기념’(어떤 뜻 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국립국어원 정의)되지 않고, ‘현재적 사건’으로 이야기되길 바랍니다. 1980년 5월 속에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의 원한과 슬픔으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현재를 살고, 어떤 미래를 만들까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만들어 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 편집주간 김현경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