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완숙하고, 덜 추하며, 더 정의로운 21세기를 꿈꾸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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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고지』
- 30주년 기념판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사회과학, 교육문제
출간일 : 2002년 5월 1일 | ISBN(13) : 9788976829252
양장본 신국판 변형 (140X223mm)| 262 쪽

『페다고지』는 이미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니 어느 한때 금서 목록의 한 칸을 차지했을 만큼 잘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암울했던 군사 독재 시기 금서 목록에 올라 비합법적으로 유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지식인, 노동자, 학생 들에게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책이자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는 책으로 널리 읽혀진 바 있다. 이 책에서 프레이리는 진정으로 '불순'한 교육은 가치를 개입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가치를 배제하면서 현존하는 억압을 은폐하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세상을 배우는 것, 즉 교육은 세상을 바꾸는 것과 같은 문제였던 것이다.


∎ 지은이와 옮긴이 소개

지은이_파울로 프레이리 (Paulo Freire) | 1921년 브라질 레시페에서 출생한 프레이리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인간해방으로 보고 이를 실천한 20세기의 대표적 교육사상가이다. 저개발국인 브라질에서 성장하면서 일찍이 굶주림과 투쟁하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고 문맹퇴치 교육에 힘썼다.

1950년대에는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독자적인 교육방법을 개발했고, 1963년에는 브라질 국립 문맹퇴치 프로그램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 1964년 군사쿠데타 때 체제 전복 혐의로 투옥되었고, 석방된 뒤 국외로 추방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문맹퇴치 프로그램의 입안을 돕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1979년부터 상파울로 시 교육비서관을 지내다가 몇 해 뒤 사임하고 교육분야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20여 편의 책을 썼다.

옮긴이_남경태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인문학 분야의 책들을 쓰고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개념어 사전』『철학: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남경태의 스토리 철학 18』『종횡무진 한국사』『종횡무진 동양사』『종횡무진 서양사』『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엘리자베스 1세』『글쓰기 로드맵 101』『바이블 키워드』『페다고지』『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명화의 비밀』『문학과 예술의 문화사』『비잔티움 연대기』 등이 있다.



∎ 목 차

30주년 기념판 발간에 부쳐
파울루 프레이리와 페다고지
머리말
저자 서문

제1장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의 정당성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모순 및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억압과 억압자
억압과 피억압자
해방 : 선물이나 자기성취가 아닌 상호 과정

제2장
억압의 도구로 이용되는 '은행 저금식' 교육 개념, 그 전제와 비판
해방의 도구로 이용되는 문제제기식 교육 개념, 그 전제
'은행 저금식' 교육 개념과 교사-학생 모순
문제제기식 교육 개념과 교사-학생 모순의 해소
세계를 매개로 하는 상호 과정
미완성의 존재로서의 인간, 미완성의 의식, 완성에 이르려는 노력

제3장
대화 : 자유를 실천하는 교육의 본질
대화와 토론
대화와 교육 내용의 모색
인간-세계의 관계, '생성적 주제', 자유를 실천하는 교육 내용
'생성적 주제'의 탐구와 그 방법론
'생성적 주제'의 탐구를 통한 비판적 의식의 자각
탐구의 여러 단계

제4장
반(反)대화와 대화 : 대립하는 문화 행동 이론의 두 가지 토대, 억압 도구로서의 반대화와 해방 도구로서의 대화
반대화적 행동 이론과 그 특징 : 정복, 분할 통치, 조작, 문화 침략
대화적 행동 이론과 그 특징 : 협동, 단결, 조직, 문화 통합

해제 / 왜 지금『페다고지』를 다시 읽어야 하는가?


∎ 책 소개

더 완숙하고, 덜 추하며, 더 정의로운 21세기를 꿈꾸는 책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말하는 것
배운다는 것은 성실을 가슴에 새기는 것
― 루이 아라공(L. Aragon ; 1897~1970, 프랑스의 민중 시인)

왜 지금 다시 『페다고지』인가?

이 책은 2000년 미국에서 발간된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 피억압자의 교육학) 30주년 기념판의 국역본이다. 『페다고지』는 이미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니 어느 한때 금서 목록의 한 칸을 차지했을 만큼 잘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암울했던 군사 독재 시기 금서 목록에 올라 비합법적으로 유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지식인, 노동자, 학생 들에게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책이자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는 책으로 널리 읽혀진 바 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페다고지』가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시기가 오자, 이 책은 사람들의 손에서 멀어져 갔다. 파울루 프레이리가 "피억압자의 교육학"이라 명명한 이 책이 더 이상은 아무런 효용도 갖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가 말하는 의식화, 대화와 반(反)대화 교육의 차이, 프락시스(praxis) 등의 개념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유효하지 않게 된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아직 "자유의 실천"이 되지 못한 교육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중립을 이야기한다. 전교조가 처음 결성될 때도 사람들은 "학생들이 중립적인 사고를 하도록 인도해야지 의식화하는 것은 편향된 교육"이라 말하며 "인간화 교육"을 외치는 많은 선생님들을 강단에서 몰아냈다. 그러나 1970년에 발간된 『페다고지』 초판의 서문을 쓴 리처드 숄의 말을 빌리면 "교육에서 중립적인 것이란 없다. 교육은 젊은 세대를 기존 체계의 논리에 통합시키고 따르도록 만드는 도구로 기능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유의 실천'으로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응하고 세계의 변혁에 참여하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이다".

교육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수의 아이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소수의 아이들이 더 나은 계층으로 편입하도록 도와주는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 하나하나가 진정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명확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 답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최근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가 발표한 서울대학생의 50% 이상이 강남 8학군 출신이라는 조사 결과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 강남으로 이주하는 부모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서울대 입학이 이후의 삶을 중요하게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서울대와 비서울대, 명문대와 비명문대, 대졸자와 비대졸자가 끊임없이 구분되는 사회에서 행해지는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그리고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화 교육"(인간화는 프레이리 교육 철학의 주요 개념이기도 하다)을 외치는 선생님들은 교장에 의해 'C'라는 점수 평가를 받고 무능력한 선생님으로 간주되고 있다(실제 작년 전교조가 주관한 교사 대회 때 걸린 플래카드의 표어 속에는 'C받이 교사들'이란 말이 등장했다)

프레이리는 『페다고지』에서 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바깥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되어 사물로 전락하는 반면, 피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속에서 세계와 더불어 한 인격체가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학생들과 교사들이 세계 속에서 주체와 주체로 만날 때 교육은 비로소 '자유의 실천'이 된다고 역설한다.


여전히 존재하는 억압과 피억압

프레이리는 말년에(그는 1997년 생을 마감했다) 무한 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사상이 팽배하고 있는 것을 우려했다. 그가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에 서문을 쓴 도나우두 마세두  매사추세츠 대학 교수와 함께 작업한 책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금세기 말(20세기 말)에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숙명론, 즉 다수의 삶을 희생시키면서 소수가 대부분의 이득을 취하는 시장 윤리에 대해 결단코 반대해야만 한다. 이것은 바꿔 말해서 경쟁할 수 없는 자는 죽는다는 윤리다. 그것은 잘못된 윤리며, 사실상 윤리가 부재한 윤리다. 나는 계속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을 주장한다"
(Paulo Freire & Donaldo Macedo, 「Ideology Matters」)

이명박 집권이래, 아니 그보다 오래전부터 우리사회에서는 기회의 평등 속에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원리가 만고불변의 진리로 굳어진 듯 하다. 하지만, 서울대 사회대학 입학생 중 고소득층 자녀와 비고소득층 자녀의 비율이 16.8:1인 상황에서 기회의 균등과 자유경쟁이 의미있는 구호일까? 애시당초 교육에 쏟아붓는 돈이 다른 것이다.

물론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잔치는 끝났고" 눈에 보이는 억압은 사라졌다. 그러나 프레이리는 계급이 없어졌다고 이제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브라질 북동부의 어느 가족이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거리를 찾고, 잘려진 사람의 가슴 살덩이를 일요일 점심으로 먹을 만큼 끔찍한 생활조건에 대해서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프레이리가 이 책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다음과 같은 신화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한 누구도 이제 억압은 사라졌다고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일하며, 따라서 직장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직장을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신화, 근면하기만 하면 누구나 기업가가 될 수 있다는 신화, 노점상도 대규모 공장주에 못지 않은 기업가라는 신화, 모든 초등학생 중에 대학까지 진학하는 학생은 극히 일부인데도 교육의 보편적 권리가 보장되고 있다는 신화,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는 식의 말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개인이 평등하다는 신화, …… 억압자는 근면하며 피억압자는 게으르고 부정직하다는 신화, 피억압자는 본성적으로 열등하며 억압자는 우월하다는 신화 …… ".

위에서 언급한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페다고지』의 사상을 필요로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움을 회복하여 보다 사랑하기 쉬운 세상을 다 함께 만들어가길 바랐던 프레이리의 염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페다고지』에 나오는 세 가지 주요 개념

은행저금식 교육을 지양하는 문제제기식 교육 | 프레이리는 교육 방식에 있어 은행 저금식 모델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 민주적인 문제제기식 교육을 그 대안으로 제기한다. 은행에 예금을 하듯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지식을 '맡기기만' 하는 은행 저금식 교육은 학생을 교사의 명령에 따르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만들 뿐이다. 따라서 은행 저금식 교육은 다음과 같은 습관과 태도를 낳는다. 1.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들은 배운다. / 2. 교사는 모든 것을 알고 학생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 3. 교사는 생각의 주체이고 학생들은 생각의 대상이다. / 4. 교사는 말하고 학생들은 얌전히 듣는다. / 5. 교사는 훈련을 시키고 학생들은 훈련을 받는다. / 6. 교사는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고 실행하며 학생들은 그에 순응한다. / 7. 교사는 행동하고 학생들은 교사의 행동을 통해 행동한다는 환상을 갖는다. / 8. 교사는 교육 내용을 선택하고 학생들은 (상담도 받지 못한 채) 거기에 따른다. / 9. 교사는 지식의 권위를 자신의 직업상의 권위와 혼동하면서 학생들의 자유에 대해 대립적인 위치에 있고자 한다. 10. 교사는 학습 과정의 주체이고 학생들은 단지 객체일 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앎이란 학생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통해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프레이리는 학생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교육 방법으로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기한다. 은행 저금식 교육과 달리 문제제기식 교육은 교사와 학생을 이분화하지 않는다. 교사는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공동 탐구자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지식을 재형성하기도 한다. 문제제기식 교육에서 교육자의 역할은 학생들과 함께 독사(doxa;낮은 차원의 주관적 지식) 수준의 지식에서 벗어나 로고스(logos;사색의 결과로 얻어지는 지식) 수준의 참된 지식으로 바뀌는 과정을 창출하는 데 있다.

대화와 반(反)대화 | 프레이리가 말한 문제제기식 교육을 실행하는 데 있어 대화적 방법은 빠질 수 없다. 프레이리는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민중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가 제안한 이 '대화법'은 여러 곳에서 차용되었는데, 아쉽게도 그가 말한 대화의 본질적인 요소 즉 진정한 인간 해방을 향한 의식화 과정을 사상한 채 피상적인 방법론의 차용에만 그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 발간과 더불어 새롭게 부친 서문에서 도나우두 교수는 프레이리가 말한 대화 과정이 관료화되고 기계적으로 적용됨으로써 프레이리의 혁명적이고 변혁적인 제안을 위축시키고 알맹이 없는 정책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프레이리는 희망이 없으면 대화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희망은 인간의 불완전함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간은 희망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모색에 뛰어든다. 이 모색은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 속에서만 가능하다. 침묵에는 희망이 없다. 그것은 세계를 부정하고 세계로부터 도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불의의 질서에서 비롯되는 비인간화는 좌절이 아니라 희망을 낳으며, 불의가 거부한 인간성을 줄기차게 추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희망은 단지 팔짱을 끼고 기다리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싸움을 계속하는 한 희망을 유지할 수 있으며, 희망을 가지고 싸우는 한 기다릴 수 있다. 사람들의 만남은 더 완전한 인간성을 추구하므로 희망이 없는 분위기에서는 대화가 있을 수 없다".(본문 p. 117) 희망 외에도 프레이리가 진정한 대화의 요소로 들고 있는 것은 인류에 대한 깊은 신념과 대화자의 겸손한 태도, 그리고 세계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이런 사랑의 대화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로 체 게바라를 들고 있다.
 
프락시스praxis │ 변혁으로 나아가게 하는 프락시스(praxis)는 실천으로 번역할 수 있는 practice와 동일한 어원을 갖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실천이 이론 없는 행위로 협의화하는 것을 막고, 성찰과 이론이 부재한 행위(action)와 차별화하기 위해 '이론적 실천'의 의미를 갖는 '프락시스'라는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말과 실천이 일치되는 사고와 행동의 총합인 프락시스를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의 포기는 무조건적인 행동만 있는 행동주의(activism)적 경향을 보이고, 행동의 포기는 말만이 난무하는 탁상공론(verbalism)적 경향을 보인다. 이론은 보편적이고 맥락에서 자유로운 경향이 있고, 실천은 구체적 맥락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에, 이론은 추상적 이념을 주로 다루고, 실천은 구체적 현실을 주로 다룬다. 단순히 행동하는 것은 노예의 기능이나 다름없다. 프레이리는 '실천적 성찰'과 '성찰적 실천'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찰은 행동에 대해 반응하고, 수정된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이론과 실천은 프레이리에게 있어 대립된 양 극단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양 측면으로 이해된다.


희망을 주는 교육학, 『페다고지』

우리는 무한경쟁의 시장 속에 내던져져 있고, 우리의 아이들은 여전히 입시지옥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대화적인 교육을 실천하기엔 아직도 교사 대 학생의 비율은 턱없이 높고, 문제제기식 교육을 실천하기엔 교사들을 억압하는 환경이 너무나 공고하며, 프레이리가 말한 대로 세계를 이름짓는 주체로 학생들을 거듭나게 하는 의식화 교육은 아직도 빨간 색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페다고지』를 '희망의 교육학'으로 부를 수 있다.

한 사회의 미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무한경쟁 속에서 친구를 누르고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버린 아이들, 돈만을 인생에서 쟁취해야 할 가장 큰 가치로 아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에게 인간과 세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기대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자란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끔찍한 폭력과 이기심에 혀를 차지만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은 분명 어른들에게 있다. 의식화되지 못한 채, 즉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깨닫지 못한 채 은행 저금식 교육만 받은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프레이리가 제기하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문제제기식 교육이 우리에게 희망의 교육학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끝으로 프레이리가 『페다고지』를 통해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를 그의 목소리로 전한다.

이 책 전체를 통해 나는 적어도 다음의 요소들이 확인되기를 바란다. 민중에 대한 신뢰, 사람들에 대한 믿음, 보다 사랑하기 쉬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확신이 그것이다.
― 「저자 서문」 중에서

2008/05/20 11:06 2008/05/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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