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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가 뭘까요? 가끔 우리들은 어떤 단어가 갖는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그 연원을 따지기보다는 그저 관습적으로 남들이 쓰는 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에게 보수주의는 악이었고,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이었고, 자기 이익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보수주의 정치철학으로 유명한 ‘유학’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주제 폐지 문제에 ‘밭이 아니라 씨가 중요하다’ 뭐 이런 되도 않는 말을 하는 소위 유학자 아저씨들을 보며 역시 유학은 후져~ 이런 생각을 했었더랍니다.

“맹자는 인간이 스스로는 오직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사회적으로는 유용성의 척도만으로 가치를 평가받는 존재라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는 인간이라는 집단은 그보다 훨씬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했다”(p.29)
처음으로 원고를 읽으면서 ‘헉!’ 했던 문장입니다. 지금 우리는 욕망으로 인해 살고 있으며, 우리의 가치는 화폐화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느냐에 따라 판단되지요. 그런데 전국시대 맹자는 인간이 그런 식으로 평가받는다면 짐승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모 정당이 주장하는 보수주의는 소위 ‘있는 사람들’의 가치인데, 제가 보기에 맹자의 사상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익을 우선으로 삼는 사람들을 비판하지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수주의의 의미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맹자를 잘못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맹자의 핵심 개념은 다들 아시겠지만, 측은지심(惻隱之心)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측은지심은 공감의 마음이며,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지요.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일이 측은지심이라고 아주 가볍게 생각했던 제게 측은지심은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사회 도처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할 방법조차 갖지 못한 채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눈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의도적으로 끈질기게 약자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분노를 느끼고 그 억압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사회적 노력을 할 수도 있다”(p.83)

얼마 전,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전쟁이 여성의 신체에 남긴 고통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습니다. 사실 고통은 개인간의 감수성 차이도 있고, 우리가 말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쉽게 드러나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상상을 통해 혹은 그 당시를 겪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하기와 듣기를 통해 고통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고통은 나나 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맹자의 측은지심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아픔을 함께 느낀다는 측은지심은 어쩌면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수많은 통로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측은지심은 공감의 마음에서 시작하여 행동으로 움직이게 하는, 실천을 동반하는 감정이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불쌍해’ 하고 끝나는 건 측은지심이 아니었습니다. 측은지심은 언제나 타인의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개인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오히려 잠깐 느끼는 감정으로만 끝나면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고 맹자는 말합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느낀다면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덜어 줄 수 있는지까지 고민하는 게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의 영역이었죠. 그렇게 쉬워 보이는 그 공감은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아프지 않으면 남이 아픈 것을 알지 못하고 어쩔 때는 느끼면서도 자신에게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하여 단순히 느끼기만 할 뿐, 더 나아가질 못하지요.  

“이 공감의 마음은 장차 인(仁)이라는 덕(德)으로 자라 내 인격이 되면서, 동시에 세상의 연대를 가능하게 할 힘이다. 우리가 일상 도처에서 경험하는 마음이 바로 나를 성인의 경지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바탕이며, 나를 내 몸에 고립시키지 않게 하는 능력이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원동력이다.”(p.71)

맹자의 공감은 차츰차츰 커져 결국 정치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갑니다. 그런 측은지심의 확장은 나를 더 이상 고립된 개인으로 만들지 않죠. 감정으로 인해 움직인 내 행동들은 밖으로 퍼져 나가 세상의 평화를 만들어 갑니다. 보수주의란 뭘까요? 서구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보수주의는 자유·평등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탄생한 사상입니다. 그들은 흩어진 인간들을 묶을 수 있는 교구나 작은 공동체 같은 중간 결사체를 주장했죠. 맹자의 보수주의는 단순히 그런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보수주의자는 여러 타인들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맹자가 말하는 보수주의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익으로 뭉쳐진 무리가 아니라 측은지심으로 연결된 공동체를 말한다는 점에서 그는 우리가 속한 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듭니다. 부의 불평등이 아니라 덕의 불평등을 주장하는 그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평등과 불평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인간을 둘러싼 구조나 환경에 대해선 개의치 않고 오직 인간의 마음만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맹자는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에게서 적극적인 것을 발견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요? 그것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면 맹자는 우리에게 현재적인 인물일 것입니다.

- 편집부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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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1 12:44 2008/05/2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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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맹자 -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Tracked from BlueWeiv 2008/07/07 22:37  삭제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 이혜경 지음/그린비 동양철학과는 다소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서양철학과도 내가 그렇게 가깝께 지내는 사이가 아니다.나는 소위 말하는 공돌이다. 대학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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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카르도 2008/05/21 20:57

    사실 지식인들이 권력에 안정적으로 붙어(?)사는건 중국이 최초였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경유착, 정언유착이란게 있다면, 정학유착이라는게 중국에서
    인류역사상 최초로 만들어 진것같습니다.

    인간이 유일하게 세상을 바라볼수 있는 망원경 역할을 하는 "문자" 라는것이 만들어지고나서
    문자을 지배하는자가 그세상을 점령해왔던 시대가 바로 고대, 중세시대일겁니다.
    서양에선 그권력을 성경과 종교가 잡았다면 중국에선 그러한 권력을 도덕군자들이 잡은셈이죠

    허나 그사람들은 결국 순수 지식인들이라기보단 권력에 빌붙기 위한 일종의 거머리같은
    존재라고 밖에 볼수가 없습니다. 맹자왈 공자왈 다 좋지만, 그들의 학문엔 순수성이
    결여되어있죠. 학문이라기보단 "공자" 라는 개인의 생각이라고 보는게 타당할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쏟아내는 현대에 아직도 공자왈 맹자왈에
    정신못차리고 있는자가 있다면, 정신좀 차려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네요
    공좌왈 맹자왈 글은 좋지만, 그글은 학문이라기보단 그저 친구같이 옆에두고
    한두번쯤 읽어볼만한 책일 뿐이니 말입니다.

    • 행인 2008/05/21 21:04

      '학문의 순수성'이라는게 뭐죠?
      그리고 원래 학문은 처음엔 다들 개인의 생각이었던 것이 현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학문이 되는 것 아닌가요?

    • 리카르도 2008/05/21 21:20

      글쎄요 그렇게 치면 헛소문도 학문으로 취급되어야겠죠^^

    • 행인 2008/05/21 21:40

      아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헛소문이 그렇게되서 학문이 되는거였군요!

  2. 방울 2008/05/26 10:02

    글을 다 읽고 났는데도, 맹자님의 말씀과 보수주의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맹자님의 말씀은 비단 보수주의자에 대한 얘기만은 아닌 듯 하네요.
    단지 맹자님의 사상을 보수주의자에 끼워 맞춘 듯한 느낌입니다.
    즉,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대한 이야기이지, 보수주의자들을 향한 말씀은 아닌 듯 합니다.

  3. 방울 2008/05/26 10:13

    그리고 유학을 보수주의 정치철학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보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봅니다.
    유학은 태동시기에 당시 사상에 반하는 분명 진보적 사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동양 문화권에서는 유학이 보수주의 성향일테지만,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서구 사회에서는 진보로 받아들일테니까요.
    즉 현실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보수이고,
    그것을 깨트리고자 하는 것이 진보라고 보면 되겠지요.
    쉬운 일례로 러시아서의 보수는 사회주의를 관철시키는 것일테고,
    미국에서는 자유와 자본주의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보수겠지요.
    그렇기에 유학 자체를 보수주의 정치철학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 흐음 2008/05/26 15:24

      좋은 의견 잘 읽었습니다~ 글쎄요~ 정치철학이라는 게 뭘까요? 국가와 국민의 관계, 또 그것을 둘러싼 체계에 대해 고민하는 게 정치철학 아닐까요? 유교는 인간과 그들이 사는 나라에 대해 생각했다는 점에서 정치철학에 가깝지 않을까요? 물론 유교는 도덕성을 강조하고 개인의 부단한 수련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보면 정치윤리학에 가까울 수도 있죠.
      그나저나 방울님의 의견을 읽고 있다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진보와 보수는 도대체 뭔지, 진보적 사상 보수적 사상을 나누는 기준은 어떤 건지 갑자기 의문이 드네요. 현 상황을 유지하려는 것이 보수는 아닐 겁니다. 과거에서 공동체의 모델을 찾았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들은 현 상태를 유지하기보다는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했을 겁니다. 버크도 그랬고 맹자도 마찬가지였지요.

  4. 격물치지 2008/05/26 19:24

    사실 진정한 보수주의도 참 중요하지요

  5. 전두표 2008/06/11 09:43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한 문제에 대해 보수와 진보로 나눌 필요가 있을까? 보수든 진보든 두 입장 모두 한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데 따라 발생한 차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둘의 궁극적인 목적은 발전을 이루려는 동일함을 가지고 있는데 괜히 입장을 양극단으로 나눠 서로의 간격이 좁아지지 않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너는 이거 나는 저거라고 못 박아 놓으니 너는 틀린거 나는 맞는거라는 편협함이 생기지 않나 싶어요. 물론 개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 개념이 열린 사고와 마음을 막는 가장 큰 방해물이 아닌가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