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들뢰즈는 '사실'과 '의미'를 구분한다. 날아가는 공은 그 앞뒤 이웃에 무엇이 오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공의 앞뒤에 한국인 선수들이 있다면 그 공의 의미는 '패스'가 되지만, 한국 선수+공+일본 선수가 되면 공의 의미는 패스미스가 된다...이처럼 하나로 연결되는(계열화되는) 이웃관계가 그 공의 의미다.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book+ing 책과 만나다』
「사건의 철학과 의미의 논리」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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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의미의 논리』의 저자, 질 들뢰즈. '배치'의 문제를 다루면서, 어떤 것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그것과 이웃한 항들 사이의 관계라는 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미 들뢰즈의 책들도 '고전'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의 사유들 역시 우리가 어떤 이웃항을 만들어 주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글 제목은 "고전을 어떻게 읽을까?"로 지어 놓고, 뜬금없이 '사실'과 '의미'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굳이 말하자면, 고전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의 '의미'를 어떻게 만드는가는 그것과 마주하는 우리의 몫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전에 관한 저런 식의 이야기는 너무 평범해서 말을 더 보태는 것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가장 못하는 것들은 대부분 '평범한' 것들입니다. 주변에 읽어 주길 기다리는 고전은 넘쳐나지만, 정작 읽히는 고전은 별로 없습니다. 아니, 고전은 읽는 사람은 보기 드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처세, 경제, 경영 등 흔히 '실용'이라는 코드로 묶일 수 있는 책들은 전철 한 칸에 한두 사람씩은 꼭 읽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책들이 그렇게 자주 읽힐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현재'라고 하는 각자의 '삶'에 (행복한 방향인지 어떤지 하는 것을 떠나)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전은 그런 의미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에 읽히지 않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문제들이 중첩되어 있겠지만, 아무래도 관심의 방향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잘 읽히는 책들은 화폐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믿어지는' 세상에서 '화폐'를 잘 모을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대체로 고전은 그것과는 무관한 듯 보이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 듯 보이는' 것이 꼭 사실인 것 만은 아닙니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이웃항에 접속하느냐에 따라 전혀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사실', 여기서는 '고전'의 특징이니까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고전'은 과거에만 속할 수 없는 책들이 어느 시대에건 읽히길 바라며 붙여진 이름이지만, 어느새 그 이름은 내용을 떠나 너무 낡은 냄새를 피우게 되었다. 우리는 '고전'이라는 말에 묻어 있는 옛 냄새를 지우고 그것에 현재를 담고 싶었다. '지금–여기의 삶'을 위한 사상을 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전' 자체가 완전히 해체, 재구성되어야 했다.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 소개」중에서

그렇습니다. 대체로 오래도록 각 시대의 풍파를 견뎌 온 고전에는 저마다의 의미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낡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고전'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접속되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기본적인 습관들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싸고, 자고. 그리고 각각의 순간마다 행복해지길 원하는 그런 습관과 정서들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합니다. '잘 읽히는' 책들이 '잘 읽히는' 이유 역시 행복하길 원하는 그런 마음들 때문이구요. 그럼 고전은 그런 행복을 전혀 주지 못하기 때문에 잘 읽히지 않는 책이 된 것일까요? 저는 차라리 다른 방식의 행복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금고 속의 '화폐'가 넉넉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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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여름철 밤하늘의 별자리입니다. 각각의 별들은 어떤 별과 이웃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작은곰', '쌍둥이' 같은 이름을 얻게 됩니다. 고전이 우리와 어떻게 이웃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의 의미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맑은 밤하늘을 보아도 유독 별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개개의 별들을 보기 때문이다. 별자리를 보려면 별에서 눈을 떼어야 한다.
고병권,『화폐 마법의 사중주』머리말 중에서

살짝 우리가 몰두하는 그것에서 눈을 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으려면, 그것 말고 다른 것들도 봐야 하니까 말입니다. 고전이 빛나는 이유는 바로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통해 행복했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전을 읽을 때, 이를테면 맹자를 읽는다고 했을 때, 맹자를 눈 앞에 불러세워 놓고 읽습니다. 그리고 책에 적혀 있는 문장들을 말로 하게끔 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하기 시작하죠. "당신 이건 좀 잘못 생각하는 것 같은데?", "쪼잔한 녀석 그건 니가 호연지기를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야!" 이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 그럼 어느샌가 친구가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책을 내려 놓으면 전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시간 맞춰(잘 안되긴 합니다만) 출근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쇼핑을 하기도 하구요. 그런 일상에서 다시금 친구의 충고, 적의 비웃음들을 떠올립니다. 그런 기억들이 저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것은 과거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현재의 것을 '고아'로 만드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늘 현재 속에 접혀 있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펼치는가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고전古典의 '고'자는 "옛날"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저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제약하기도 하는 고전은 저의 현재에 접혀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미래를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끔 하는 절친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몰두하고 있는 것에서 살짝 눈을 돌리면 '고전'을 읽는 것이 훨씬 쉬워질지도 모릅니다. 호감가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의 취향이나, 성격 등에 맞춰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고전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 고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좀더 행복하게 재구성하기 위해서 '고전'과 접속하는 이웃관계로서의 '우리'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좋은 대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너무 노골적인가요)
++『book+ing 책과 만나다』는 매우 다양한 고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책을 '문'(door)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각각의 책들로 이어지는 온갖 '문'들의 집합이랄까요?
+++『화폐 마법의 사중주』는 우리가 몰두하고 있는 '화폐'가 어떤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혀 주는 책입니다. 고작 종이쪼가리를 내밀면 어째서 진귀한 세상의 명품을 내어놓는 것이 되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 웹 기획팀 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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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고전을 대하는 자세

    Tracked from 세상 사는 이야기 2008/07/18 12:57  삭제

     고전이라는 어감은 사실 그리 좋게 인식되지 않는다. 나부터도 그 말을 들으면 '낡은 것', '어려운 것'이 연상되니 말이다. 많은 분들이 이에 동감하는 눈치다.  그 말은 고전이란 우리가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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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두표 2008/07/18 12:40

    고전이라는 어감은 사실 그리 좋게 인식되지 않아요. ^^;;
    저부터도 그 말을 들으면 '낡은 것', '어려운 것'이 연상되니
    까요. 많은 분들이 이에 동감하더라고요. ^^

    그 말은 고전이란 우리가 멀리해야 할 것이라는 의식을 갖
    고 있다는 뜻이죠. 우리나라만 생각한다면 주입식 교육의
    병폐라고 해도 크게 어긋남이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고전은 원석인데 말이죠. 누가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원석 말이죠.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 원석을 가공 할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냥 맨 돌맹이로 보는 것 같아요. 잔뜩
    부푼 기대를 가지고, 남이 멋드러지게 가공한 보석을 보고
    자신도 그것을 상상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손을 댓다가 얼
    마 해보지도 않고 '어라? 달라진 게 없네? 이게 그거 맞아?'
    라면서 이내 내팽개쳐 버리는 원석 말이죠.

    원석은 가공 할 능력이 없으면 결코 보석으로 만들 수 없
    잖아요. ^^
    가공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고 생각해요. 원석을 가공할 때 사용하는 도구의 사용법을
    먼저 익히는, 배경지식 습득. 그리고 원하는 보석이 나오든
    안 나오든, 비록 작은 보석이 얻어질지라도, 도구의 사용법
    을 몰라도 끝까지 다듬는, 완독 말이죠. ^^

    • 그린비 2008/07/18 23:26

      '고전'이 낡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낡은 것은 늘 새로와지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우리의 고착된 마음이 아닌가 생각하구요.

      그리고 '고전'은 원석이라기 보다, 잘 정련된 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우리 삶에 값진 재료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물려받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하구요.

      늘 이렇게 장문의 댓글을 남겨주시니, 참 볼 때마다 감동적입니다.ㅠㅜ

      언제 한번 그린비에 놀러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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