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비 블로그에서도 몇차레 다룬바 있는 이주노동자 관련 문제를 보다 잘 말해줄 수 있는 분을 찾았습니다. 이 글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분께서 쓰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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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적인’ 그들이 ‘합법적인’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 ‘불법체류자’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

언젠가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근무하는 공단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때마침 그날 저녁에 이주노동자들의 작은 야외 행사가 있었고, 운 좋게도 나는 그들의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다. 술 마시고 분위기가 한창 올랐을 때 쯤, 한 네팔 이주노동자가 빈 생수통을 하나 들어 다리 사이에 거꾸로 끼우더니 두드리기 시작했다. 흥겨운 리듬에 모두들 힘겨운 하루 일과를 잊은 채, 춤추고 웃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빈 생수통 하나로 모두를 춤추게 만든 멋진 손의 주인공은 매일 그 10시간 동안 거대한 기계 앞에 서서 철판을 자르는 일을 하는 ‘불법체류자’였다. 70, 80년대에 수많은 한국 노동자들의 손을 앗아갔고, 90년대에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앗아간 바로 그 기계에, 그는 매일같이 손을 넣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 멋진 연주를 하는 손이, 한 순간에 잘려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온 몸이 다 저렸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가장 강렬한 경험이다. 그때부터 나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좀더 귀와 눈 그리고 몸을 열어 두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는 동안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전체 이주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위 ‘불법체류자’라고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1) 문제였다. 비단 나만 괴로웠겠는가. 계속해서 텔레비전과 신문에 등장하는 그들의 소식을 보는 사람들도, 정부도 괴로웠으리라. 90년대 후반부터 언론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 및 사업주의 폭력에 시달리고 임금을 떼먹히기 십상인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불법체류자 단속 추방 과정에서 숨지고 다친 수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소식’을 쏟아냈다. 그리고 한편으론 틈틈이 ‘불법체류자’인 이주노동자들의 범죄 소식도 들려왔다. 어느새 텔레비전 속 이주노동자는 동정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부도 사람들도 자신이 안심하고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주노동자를 정의내리고 싶어 했다. 불법 혹은 합법으로.

‘불법체류자’ 내보내는 게 왕도?!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불쌍한 건 알겠는데, 불법체류자는 일단 내보내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들이 불법으로 체류하기 때문에 문제들이 발생하는 거 아냐?”
 맞는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가 되는 순간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사업주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을 노동자로서 대우하지 않는다.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단속․추방 한다.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한층 더 위험한 것이 된다. 그런 ‘불법체류자’가 전체 이주노동자의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다. 법무부가 작년 8월에 ‘불법체류자’ 집중합동단속을 선포한 후, 올해 1월에는 조선족 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하다 사망했고 지난달에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가 중상을 입었다. 정부가 이토록 열심히 단속․추방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의 수는 특별히 감소하지 않고 있다.

사실 ‘불법체류자’ 단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주노동자의 사망․사고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심지어 2003년에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시행되었던 대대적인 단속을 앞두고 8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죽음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렇듯 이주노동자들이 느끼는 단속의 공포와 두려움은 상상 그 이상이다. 아무 때고 들이닥치는 폭력적인 단속 방식 역시 공포의 대상이지만, 벌어 놓은 돈은커녕 빚만 안은 채 자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이다. 공포와 두려움을 안은 채,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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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미등록 이주노동자 추이. (단위 천명)
출처: 이선옥, 2005,「한국 이주노동자운동의 형성과 성격변화」, p42. 이규용, 2007, 「불법체류 외국인력문제의 현실」, 국제노동브리프. 두 논문에 제시된 표와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2003년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시행한 집중 단속과 합법화 조치 때문에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그러나 그 후 고용허가제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다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증가하기 시작했다.
 
찬찬히 근원을 따져 보면, 사실 문제는 ‘한국’이 ‘불법’인 그들을 만들고 있고 또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불법체류자’ 인간으로, 노동자로 사는 유일한 길

고용허가제2)는 국제사회로부터 ‘현대판 노예제’라는 칭호를 얻은 산업연수제를 대체하기 위해 2003년에 마련된 외국인 인력 고용제도다. 3년 동안 이주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이 제도는, 사실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용이하게 하기보다는 사업주의 고용을 용이하게 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등록 이주노동자’는 1년마다 재계약을 할 때도, 다른 사업장으로의 이동하고 싶을 때도 사업주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3) 가령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도, 임금이 밀리거나 떼여도, 농업 노동자로 입국했는데 농한기라 돈을 벌 수 없어도, 제도 상 그들은 마음대로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다. 사업장을 이동하는 순간, 등록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산업연수제때도 그랬듯이, 결국 이주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선택지는 ‘불법체류자’다. 불법체류자일 때 비로소,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자유가 시작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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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원하는 누구나 ‘등록 이주노동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등록 이주노동자로서 합법적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이주노동자들은 만만치 않은 브로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역시도 고용허가제가 보완하지 못한 산업연수제의 폐해이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기 전,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돈으로 적게는 300만 원 많게는 700만 원 정도의 브로커 비용을 지불해야 ‘등록 이주노동자’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거액의 브로커 비용은 고스란히 이주노동자들의 빚으로 남았다. ‘송출비리’로 일컬어지는 이러한 브로커 비용은 고용허가제가 도입 후에도,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5) 운이 좋다면 고용허가제 3년 동안 인심 좋은 사업주를 만나 별 탈 없이 일하고, 빚도 갚고, 돈도 벌어 귀국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임금 체불과 저임금, 그리고 크고 작은 산업 재해에 시달리다가, 빚을 갚기는커녕 상처 입은 몸과 마음으로 자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을 맞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이주노동자들은 그제야 비로소 한국어와 한국 실정에 익숙해진다. 또한 아니나 다를까 사업장에서도 한국에 갓 들어온 등록 이주노동자보다 한국어가 능숙하고 기술을 익힌 ‘불법체류자’를 더 선호한다. 빚과 상처가 남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또 다시 주어지는 유일한 선택지는 당연히 ‘불법체류자’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하게 상기해야 할 사실이 있다. 브로커 비용을 빌릴 여력이 없는 사람들 역시 자국에서 내몰려 ‘불법체류자’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들은 소위 ‘밀입국’을 선택하는 이들이 불법체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쓸데없이 들어와 한국인이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이들이 힘든 외지 생활과 단속․추방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에 들어오게 되는 과정은 자유로운 선택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 3D업종과 농수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자국에서 ‘내몰리듯’ 이주해 온다. 과거 영국에서 산업이 태동할 때, 땅의 용도가 바뀌면서 지주에 의해 그 땅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아가던 농도들이 쫓겨났던 것처럼 말이다. 초국적 기업이 들어와 순식간에 삶이 재편되고, 태풍과 홍수 같은 온갖 자연 재해들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죽거나 혹은 이주하기’이다.

이렇게 ‘불법체류자’들은 ‘들어오거나 남는다.’ 그리고 그들은 경제 위기가 닥쳐 국내에 엄청난 실업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도 인력난에 시달렸던 3D업종과 농수산업 노동시장을 채웠다. 한국인들이 취업하기 꺼려하는 노동시장에서는 합법, 불법을 막론하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항상 존재해왔다. 정부의 무지막지한 단속․추방도 고용허가제의 허점과 노동시장의 필요 앞에서는 무력하다.

‘불법체류자’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

따라서 나는 앞선 누군가의 질문에 ‘불법체류자’를 단속․추방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불법체류자’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는, ‘그들이 합법인가 불법인가’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들이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자국, 그들을 필요로 하는 한국의 노동 시장과 그것을 눈감아 버리는 고용허가제,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야만 굴러가는 ‘한국 사회’가 바로 우리가 직면한 문제이다.”

조목조목 설명하고 근거를 들이대다가 문득, 빈 생수통을 연주하던 네팔 이주노동자가 떠올랐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확신은 의외의 순간에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한다. 그의 연주와 삶이 나에게 그것을 선사했었다. 그 전에 나는 ‘불법체류자’, 그들은 나와 매우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멋진 연주를 하는 손을 매일 철판 자르는 기계에 넣어야 하는 그의 삶과 고향으로 돌아가 안정된 삶을 꾸리는 것이 꿈인 그를 통해 내가 본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의 삶은 그보다 결코 우월하지도 떳떳하지도 않았다. 나 역시도,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이, 학교가, 국가가 내모는 경쟁의 한복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소위 남부럽지 않은 안정된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은 들여다보지 않은 채, 입으로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불법체류자’가 드러내는 문제에 직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현실에 분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삶을 소중하게 생각할 때, 내 삶을 충실히 살고자 할 때 그들의 힘겨운 삶이 던지는 메시지를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어진 모든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합법적 국민’의 위치에서는 ‘불법’이라는 표면적 문제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래서는 그들이 ‘합법적인’ 우리에게 들춰내 보여주는 법과 국가, 시장 그리고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실상을 직면할 수 없다. 그 속에 우리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불법적인’ 그들과 ‘합법적인’ 우리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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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9 12:13 2008/05/2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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