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이었습니다. 각 당마다 선거홍보는 하고 있지 않았지만, 대충 누가 어디서 나오겠지 하고 있었죠. 하지만 워낙 모 후보가 지지율이나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다른 후보나 정당 이야기를 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그 때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꽤나 저를 당혹스럽게 만들어서 아직도 기억합니다.

“전 보수주의잡니다.” 뜬금없이 보수주의를 말하는 상대를 보면서 “아~ 네 그러셔요”라고 대충 대답함과 동시에 이 ‘좌슥 골수 Grand National Party지지자네. 젠장 잘못 걸렸다. 보나마나 집안에 돈 좀 쌓아 두고 살겠구만, 아 놔 어쩌다 이런 인간을 만났냐..’하며 온갖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화의 긴장도는 급! 떨어지고, 저는 다시 심드렁해졌습니다. 그런데 또 한마디 하더군요. “혹시 이xx 지지하세요?” 기다렸다는 듯이 ‘절대 아니’라고 말해 줬습니다. 사실 저의 그런 단호한 태도는 대충 파악했으면 이제 집에 가자 뭐 이런 모드였지요. 하지만 그는 이xx를 지지하지도 않았고, 그의 집안 분위기는 민노당 지지에 가까웠습니다. 그 역시도 현재로서는 민노당을 제외하고는 대안이 없다고 하더군요.(크게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보수주의자가 이xx를 지지하지 않고 민노당 후보를 지지한다구요?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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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출처 네이버 이미지

보수주의자들은 조중동 읽는 거 아니었어요? 보수주의자들은 빨갱이 처단하라 외치는 사람들 아니에요? 전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금방 잊어버린 이유도 있긴 했고, 우리가 그렇게 반대했던 후보는 이제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제가 맡은 책은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이었습니다. 이 책을 진행하면서 전에 묻다가 말았던 보수주의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전에도 블로그를 통해 말씀드렸습니다만, 보수주의를 판단하는 요건들은 인간․중간결사체․전통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보수주의의 요건이 저 세 가지를 기준으로 한다고 해서 보수주의의 형태가 단 하나라는 법은 없습니다. 자유주의도 ‘New-Liberalism’이니 ‘Neo-Liberalism'이니 하는 마당에 자유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비판하기 위해 탄생한 보수주의가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하기는 힘들죠. (미국의 네오콘들을 보셔요~) 한국 사회에서 보수주의는 거칠게 말하면 경제적 자유주의, 시장주의 섬세하게 말하면 이기주의에 가깝죠. 다른 면에선 친미와 반공을 통칭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들은 우리가 보수주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는 걸 막아 버립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가치들은 자기들이 가진 기득권 지키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거든요. (어쩔 땐 얘네들한테 가치라는 게 있을까 싶기도 하죠~)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자칭하는 몇몇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니들이 생각하는 보수주의는 뭐냐? ‘친미․반공’이냐 아니면 ‘세금 즐~’ 이런 태도냐 아니면 광개토대왕에서 시작하는 민족혼 어쩌고 요런 거냐. 이들도 정확하게 그들이 지향하는 보수주의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에게 보수주의는 무언가를 지향하는 뾰족한 이념이라기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이 위주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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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80의 법칙을 처음 이야기한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
80%의 못가진 사람들이 편히 살 수 있는 사회, 어쩌면 맹자가 꿈꾼 왕도정치의 이상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근대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 자유와 평등은 동시에 가기 힘들지요. 자유의 문을 열어 주는 만큼 평등의 문은 좁아집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자유도 평등도 중요한 가치가 아닙니다. 기회 균등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보기에 지금 사회는 기회 균등조차 제공하지 않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친구는 사립고를 만드는 것은 찬성하지만, 사교육의 확대는 반대라고 하더군요. 돈이 철철 넘치는 집이 비싼 학비 감수하면서 사립고 보낸다면 그걸 터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동네 애들이 모두 그 사립고 가겠다고 하면 그 사회는 미친 거라고 말하는데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사립고나 특목고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한 사회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분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특목고나 사립고에 가지 않고서는 엘리트가 되기 힘들고, 또 거기서 특목고나 사립고를 ‘안’ 가는 것은 곧 ‘못’ 가는 것으로 바뀌고 그게 무능력이라는 의미로 다시 환원되기 때문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 왜 모두 엘리트가 되려고 하는 걸까라고 제가 물었더니 그건 평등 감수성의 문제가 아니라 엘리트가 아니면 삶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사회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20대 80의 사회라는 걸 부정하진 않지만, 그 80이 20이 되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는 80으로 살아가는 삶이 그만큼 비참하다는 걸 방증한다고 하더군요. 제 친구의 결론은 20의 삶을 살기 위해 모두가 손해 보는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80의 삶을 살면서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필요하다였습니다.

제 다른 친구는 보수주의에 대한 요건을 설명해 줬더니, 그럼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냐고 반문하더군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기술 발전이 아니라 이 상태에서 시계 바늘을 되돌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중간공동체를 만들고, 발전이 아니라 지체 아니 후퇴를 생각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보수주의자냐라고 묻는 친구를 보며 당황스러웠습니다. 목적점이 분명해 보였는데 점점 거기서 벗어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책을 읽어갈수록 보수주의는 Grand National Party나 조중동과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누군가는 이념이 뭐가 중요하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누가 지금 이념 따지면서 사냐구요. 맞는 말 같았습니다. 사람들 수만큼이나 많은 정치적 입장들이 존재할 뿐 ~ism으로 사람들을 엮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죠. 순수한 보수주의가 있다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 언론이나 우리 안에서 통용되고 있는 보수는 다시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보수주의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다양한데 우리는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보수주의자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싶은 사람들은 말하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들만 보수주의자라는 말을 끌어다 쓰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구요. 제가 아직 제대로 물어본 적은 없지만 보수주의자라고 당당히 말하던 그 누군가도 아마 보수주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말 ‘무지로 인한 편견’은 제가 갖고 있었던 거죠.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이 말하는 보수주의는 어떤 이들에겐 혁신적인 주장일 겁니다. 오히려 보수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잘 안다’혹은 ‘안 봐도 뻔하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꼭 읽어 봐야 할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보수가 사실은 허위, 날조, 전유의 생산물임을 살짝 느끼게도 해줍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성을 있다는 데 공감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조중동을 보수신문으로 칭하거나, GNP당을 보수당으로 부르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요? 안 그러면 우리는 그 말들이 지칭하는 것들을 고민해 보지 않고 여전히 보수주의자들이 원하지 않는 가치들을 보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P.S: 여담이지만 맹자가 이번 촛불문화제를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요? 아마 ‘배후가 누구냐?’ 이런 소리는 안 했을 것 같습니다. 정치인이라면 이미 측은지심을 확장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을 테고, 시민이라면 벌써 세종로 사거리로 나가서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과 촛불을 밝히고 있지 않을까요? 전 그렇다는 쪽에 걸겠습니다~(뭘 걸지는 비밀!)

- 편집부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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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3 12:49 2008/06/0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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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전통에 대한 무관심 -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Tracked from 언제나 공사중! 2008/06/10 14:41  삭제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 이혜경 지음/그린비 우리가 알고 있는 맹자와 관련된 단어들은 유교, 성선설, 측은지심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단어들은 중고등학교때 주관식 시험문제..

  2. Subject: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Tracked from 격물치지 [格物致知] 2008/06/22 22:49  삭제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 이혜경 지음/그린비 그린비 그린비는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출판사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포스팅이 많아 가끔 들어가 보고, 실험적인 책들을 눈에 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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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 2008/06/03 13:25

    글 잘 쓰시고 잘 올리셨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그린비 2008/06/04 12:11

      오....님 반갑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좋은 글은 계속 올라갑니다. ^^ (-_-;)
      자주 찾아와서 좋은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2. 격물치지 2008/06/22 22:51

    책, 엽서 잘 받았습니다. 특히 엽서가 인상적입니다. 이제야 서평을 올렸습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 하시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 자주 놀러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