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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5일 포스트로 막을 내린 <유재현 온더로드_미국편>에 이어, 이번 주 일요일(6/22)부터 매주 주말마다 8회에 걸쳐 "유재현의 온더로드_아시아의 오늘"을 연재합니다. 책으로 만나려면 긴긴 시간이 남아있는 글과 사진들을, 블로그를 통해 연재할 수 있도록 보내주신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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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왼쪽이 수하르토

공교롭게도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은 죽어가고 있는 수하르토에 대한 이야기로 넘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를 32년 동안 철권으로 통치했던 독재자 수하르토는 누구의 눈에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는 86세였고 내일 숨을 거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수명을 다한 수하르토의 흐린 숨을 억지로 연장시키고 있는 것은 인도네시아 최고의 페르타미나 병원의 의료진일 뿐이었다.

싱가포르 전수상인 리콴유가 수하르토의 병실을 찾았고 뒤이어 역시 말레이시아의 전수상인 마하티르, 브루나이의 술탄인 하사난이 죽어가는 그를 찾았다. 4억4천만 달러로 추정되는 횡령혐의로 1999년 최초로 법정에 출두한 이후 수하르토는 필요한 때마다 병원출입을 거듭해 왔고 그때마다 주치의는 그의 건강에 대해 빈번한 공갈성 경고를 일삼았지만 10년 만에 그는 정말 죽어가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리곤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 수하르토의 가족들을 대신해 변호사가 현 대통령인 유도요노에게 재판중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고 유도요노는 검찰총장에게 ‘법정 밖 화해’를 지시했다. 유도요노와 수하르토 모두 상처를 입지 않는 ‘윈윈(win-win) 해결책’이었다. 사실상 수하르토에 대한 사면이었다. 그러나 이 재판은 고작 민사소송이었고 검찰이 반환을 요청한 금액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유엔과 세계은행은 수하르토가 집권기간 동안 횡령한 금액을 최소 150억 달러에서 최대 350억 달러로 추정했으며 국제투명성기구는 2007년 가장 파렴치한 세계 횡령범 명단을 발표하면서 기꺼이 수하르토의 이름을 첫 번째에 올렸다. 수하르토는 또 죽은 직후 유엔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정치인이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수하르토가 집권 내내 인도네시아 도처에 뿌렸던 피는 횡령과 비교할 수 없는 반인간적 범죄이다. 공산당의 쿠데타를 빌미로 초대대통령인 수카르노를 축출하고 쿠테타로 집권한 그는 동시에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지금까지도 확인도지 않는 수의 인도네시아인들을 학살했으며 33년의 철권통치 기간 동안 아체와 파푸아, 탄중피낭 등에서 지울 수 없는 학살의 피로 손을 적셨다. 고문과 불법적 체포와 투옥, 장기감금 등은 인도네시아인들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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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두번째 인물이 수하르토. 군복에 선글라스, 우리가 잘아는 누구와 닮았다.>

그런 수하르토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기에 인도네시아의 주요언론들은 노골적으로 온정적인 여론을 조장하고 있었다. 1998년 폭발적인 민주화 시위로 마침내 권좌에서 내쫒긴 수하르토는 10년 만에 ‘과보다 공이 컸던’ 인물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건 또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수하르토 패밀리가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신문과 방송들이었다. 게임을 벌이고 있는 건 페르타미나 병원에 호흡기를 매달고 누워있는 수하르토가 아니라 여전히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수하르토 족벌이었다. 그들은 수하르토를 사면시킴으로써 차제에 자신들 또한 사면받기 위해 총력을 질주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건 살아있는 자들이 죽어가는 수하르토와 여론을 볼모로 벌이는 게임이었다. 내 눈에는 인도네시아가 지난 10년 동안 이룬 성취를 평가하는 게임으로 보였는데 결과는 경악스럽게도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

“지금 정권과 수하르토를 비교한다면?”
“수하르토 때가 조금 나았지요.”
“왜 그렇지요?”
“수하르토 때에는 휘발유 값이 200-300루피였는데 지금은 4500루피잖아요.”
“현 정권의 부패 정도는?”
“80%”
“수하르토 정권은?”
“100%”

수하르토가 묻힌 아스타나 기리방운(Astana Giribangun)으로 가는 길에 함께했던 50대 초반의 렌트카 운전사와의 대화를 옮기자면 이랬다. 80%의 부패가 100%의 완벽한(?) 절대부패보다는 얼마간 나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에게는 그게 그거였다. 그럴 바에는 휘발유 값을 따지는 편이 나은 것이다. 한 농민은 비료와 종자를 얻기에 수하르토 시대가 더 수월했다는 이유로 지금보다 수하르토 시대가 좋았다는 말을 전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의 퇴진 이후 지난 10년 동안 인도네시아가 얻는 성취는 그게 그거였다.

족자에서 솔로를 거쳐 기리방운 언덕으로 향하는 길의 끄트머리는 한적한 농촌이었다. 논들이 이어지고 두쿠(두리안)와 망고 나무들 사탕수수 밭을 지나 언덕의 언저리 즈음부터는 계단식 논들 너머로 밀림이 보였다.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 도착한 아스타나 기리방운은 마치 작은 관광지와 같았다. 주차장에서는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손에손에 음료수와 군것질거리를 들고 내밀었으며 한편에는 상점으로 보이는 벽돌건물이 공사중이었다. 한 아이는 수하르토 티셔츠를 내밀었고 또 다른 아이는 수하르토의 사진이 인쇄된 엽서들을 내밀었으며 그 중 한 아이는 기리방운을 배경으로 수하르토와 아내의 얼굴이 삽입된 대형 브로마이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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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 출신임을 늘 강조했던 처의 가족묘지에 함께 묻힌 수하르토>
“여기서 장사하려면 얼마나 주어야 하니?”

현역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지나 들어선 기리방운의 뜰에서 수하르토의 사진을 필고 있던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 대신 주변에 있던 젊은이가 손을 내저으며 절대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대신 말해주었다. 물론 그게 수하르토의 체면을 살리는 일이지만 기리방운의 안과 밖의 차이를 설명해줄 수는 없었다.

솔로의 술탄 왕릉들이 들어선 곳에서 불과 300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아스타나 기리방운의 건물 안에서 수하르토는 굵직한 기업거래마다 끼어들어 10퍼센트의 수수료를 뜯어내 ‘미세스 10퍼센트’로 불리던 부인 시티 하르티니의 석관 옆에 누워있었다. 수하르토 스스로 생전에 묻히기를 유언으로 남겼던 기리방운은 국가와는 무관한 가족묘지이다. 시티는 자신이 왕족 출신임을 늘 주장했는데 족자카르타 출신인 수하르토는 기리방운의 처가 묘지에 묻혀 스스로 왕족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습한 수하르토의 묘 앞에서 나는 이 사내가 평생 근대적 국가와 국민, 민주의 의미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 채 인도네시아란 거대한 국가를 통치해 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단지 왕관을 쓰고 옆구리에 큼직한 자바 스타일의 칼을 찬 냉혹한 절대군주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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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를 32년 동안 철권으로 통치했던 독재자 수하르토"의 죽음

아시아의 역사에서 굵은 일획을 남긴 독재자 수하르토는 이제 막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다른 어떤 굵은 독재자들, 예컨대 남한의 박정희나, 필리핀의 마르코스, 남베트남의 응웬딘지엠 등에 비해 행복한 독재자였다. 천수를 다했고 천금의 죄과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숨을 거두었으며 사후에 조차 그에게 정의를 묻는 물음은 거대한 장벽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심지어 국가영웅 칭호를 부여하자는 주장도 거리낌 없이 제출되고 있었다. 그럼으로 수하르토 시대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다 똑같은 작자들이에요.”

2004년의 선거에서 메가와티를 찍었다는 람팡의 초등학교 선생은 내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슬람정당 중의 하나에 속한 후보를 찍겠다고 말했고 만약 그에게 투표할 수 없다면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의 변화가 있다면 이슬람을 표방하는 종교적 색채의 정당이 그만큼 대안세력으로 약진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수하르토의 당이었던 골카(Golkar)가 여전히 무시 못할 정당으로 버티고 있고 메가와티의 투쟁민주당(PDI-P)도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 중론인 바에야 대중의 시선은 옮겨질 수밖에 없다. 그게 무엇이라도.

1998년 인도네시아인들은 32년의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할 한 번의 기회를 가졌다. 32년 만의 기회였다. 그 뒤 10년이 지났지만 무엇이 청산되었는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수하르토의 족벌은 여전히 천문학적인 부를 움켜쥐고 있고 수하르토 시대에 권력을 향유했던 정치, 관료세력들은 같은 이름이거나 다른 이름으로 여전히 거기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모든 인도네시아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부정과 부패 또한 크게는 별 일 없이 유지되고 있다. 말하자면 수하르토의 신질서(Orde Baru)는 여전히 살아 있고 인도네시아인들과 함께 숨 쉬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결코 용서할 수 없다네. 지금도 그래, 수하르토가 죽었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야.”

수하르토 집권 시기에 재판도 받지 못하고 20년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던 올해 76세의 짐만 카로카로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한다면 1998년에 인도네시아인들은 수하르토를 단죄하지 못하고 유산을 청산하지 못함으로써 이미 수하르토를 용서했다. 젊은 인도네시아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오래된 중국 속담 하나가 등장했다.

“미친개가 물에 빠지면 건져주는 대신 몽둥이를 휘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주인을 물어뜯을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죽은 개에게조차 물어뜯기고 있다. 그런데 이게 인도네시아에서만 벌어졌고, 벌어지는 일일까?

2008/06/22 02:40 2008/06/22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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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학생 2008/08/08 15:30

    부산에 사는 학생입니다.
    유재현 작가님 항상 존경합니다.
    선생님 책들을 읽으며, 아시아의 역사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번 7월 한 달 인도네시아에 다녀왔습니다.
    수하르토의 32년 철권통치 기간 동안 축재된 온갖 금은보화들이
    오물처럼 널려있는 자카르타의 전시관과,
    쓰나미의 상흔이 아직 아물지 않은 아쩨에서 만난 GAM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는 인도네시아의 현재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항상 좋은 글,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써내려가시는 책들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그린비 2008/08/08 14:57

      학생님 안녕하세요! 다음에 유재현 선생님이 회사에 찾아오시면, 꼭 말씀 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