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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5일 포스트로 막을 내린 <유재현 온더로드_미국편>에 이어, 매주 주말마다 8회에 걸쳐 <유재현 온더로드_"아시아의 오늘">을 연재합니다. 책으로 만나려면 긴긴 시간이 남아있는 글과 사진들을, 블로그를 통해 연재할 수 있도록 보내주신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포스트 보러가기)

아시아란 무엇일까. 인도네시아 반둥의 아시아-아프리카로(路)에 있는 ‘반둥회의(아시아-아프리카 회의)’ 박물관의 전시장에서 점심시간임에도 기꺼이 안내를 자처한 직원이 1955년 반둥회의의 역사적 의미와 전시물들에 대해 청산유수의 설명을 토해내는 동안 나는 미안하게도 그걸 귓전으로 흘리는 대신 내내 그 물음에 골몰했다. 알려진 것처럼 반둥회의는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제국주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줄지어 독립을 쟁취하기 시작한 제3세계 국가들이 식민주의의 청산을 천명한 회의였으며 냉전시대 미소블록에 가담하기를 거부한 비동맹회의(NAM)의 산실이었다. 전시장의 확대된 흑백사진들 속에 등장하는 이란, 이라크, 레바논과 터키 대표의 얼굴이 얼핏 낯설어 보이지만 그것이 아시아인 것이며 아프리카인 것이고 또 라틴아메리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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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회의 박물관 전시장에 전시된, 흑백사진들>

캄보디아 대표로 참석한 30대의 젊은 노로돔 시하누크의 사진을 지나친 후 반둥회의에 초대된 29개 나라의 국기들을 모아놓은 전시물에서 붉은 일장기가 눈에 띠었다. 대표로 참석한 당시 하토야마 내각의 무임소 장관인 타츠노스케 타카사키(高碕達之助)의 사진 앞에 멈추어 섰다. 일본은 반둥회의가 정식으로 초청한 국가였다. 이건 상식적이지 않은데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미명 아래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을 군사적으로 참략 한 후 3년 이상 식민지로 지배한 제국주의국가였다. 패전이 제국주의의 원죄를 사면한 것일까. 일본은 반둥회의 이후 한때 식민지였던 아시아와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고 60년대 이후 경제적 대동아공영권의 구축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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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회의 회의장을 재현한 전시물>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한반도에서는 남한도 북한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1차 인도차이나전쟁이 끝나고 분단된 상태로 남아 있던 베트남은 남(베트남국)과 북(베트남민주공화국) 양측이 참석했다. 베트남국은 반둥회의에 참석한 29개 나라 중 현존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반둥회의의 적자였던 비동맹회의는 냉전시대 내내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국 사이에서 비틀거렸다. 비동맹회의를 이끌었던 지도자 중의 하나인 유고의 티토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1979년 아바나 비동맹회의 정상회담에서는 카스트로와 티토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을 두고 대립했다.53년 전 반둥회의가 열렸던 바로 그 장소는 ‘아시아’라는 이름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2008/07/11 14:52 2008/07/1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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