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식구의 독후감
그린비에서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그린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합니다. 이 글은 지난달 입사한 김신회씨가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그린비 블로그에 새로 등장하는 뉴페이스에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어제 오랜만에 대학 후배들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요즘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인문학에 영 관심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대학교에 다니는 어린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 그것은 절망적인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랑은 둘에게 자신의 전부를 걸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부를 건다는 것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상구를 남겨 놓지 않습니다. 그 사랑의 장(場)안에서, 둘은 자신을 완전히 고갈시켜야 합니다. 그 안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녹초로 만들며, 스스로 부활합니다. 드라마 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여러분도 현실 속에서 이런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혹시 이미 만나셨나요?^^;).

철학과 사랑에 빠져 보셨나요? 인생의 ‘진리’에 대해 광신도와도 같은 열정을 품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급 따분해 하지 말시길. 누구나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길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걸 만큼 사랑해 보지 못한 이에게 우리가 헛살았다고 말하듯, 저도 여러분이 삶의 방향에 대해 치열하게 번민해보지 못했다면, 역시 헛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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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일 作 <Flower spring>
"개념어라는 갑주 아래 놓인 철학의 알몸은 그대의 몸 위로 포개지는 연인의 부드러운 살결이라 해도 좋습니다."

삶에 대한 고민에 꼭 철학이 필요하냐고요? 깊은 밤 갈림길 위에서 어디로 갈지 망설일 때 별자리들이 너무 멀리 있듯이, 철학도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는 데카르트도, 변증법의 철학자라는 헤겔도, 노마디즘을 갈파했던 들뢰즈/가타리도, 밥 먹고, 연애하고, 취업 준비하는 일상과는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나요? 철학 용어들과 개념들은 교양 수업 시험 준비할 때나 외우는 것이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이 순간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되나요? 하지만 철학은 문턱이 높은 방 안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연인과 같습니다. 처음 만나면 서먹서먹하고 까칠한 듯해도, 한 번 서로 좋아하게 되면 평생 더불어 함께 갈 수 있는 반려자입니다. 개념어라는 갑주 아래 놓인 철학의 알몸은 그대의 몸 위로 포개지는 연인의 부드러운 살결이라 해도 좋습니다. 철학은 에로틱한 열정의 대상이고, 진실한 사랑의 거주지입니다. 스스로를 그 안에서 완전히 고갈시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사랑을, 여러분은 철학에서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은 '지혜(philo-)에 대한 사랑(-sophie)인 것입니다.

물론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연인도 언젠가 헤어지듯, 모든 사람이 철학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여러분도 학교를 졸업해야 할 테고, 대부분 철학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직업을 갖게 되겠지요. 그리고 하루하루, 말 그대로 ‘생활전선’에서 복무하며, 처세술이라는 ‘실용적인’ 무기를 갈고 닦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도 연인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성장한 몸과 마음이 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하듯, 철학과의 치열한 시간 동안 얻은 성숙은 직장에서의 삶을 더욱 가치로운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단언컨대, 철학적 성숙을 동반하지 않는 처세의 기법들은 우리의 삶을 초라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철학의 고민을 통해 연마해 낸 삶의 기술들은 여러분을 진정한 <인생의 달인>으로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은 장미나무처럼 질투와 집착이라는 벌레들의 공격을 견뎌내야 합니다. 철학적 성숙 없이 이 사랑의 시험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생의 달인>처럼 <사랑의 달인>도 참된 <철학의 달인>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30대 초반인 제가 벌써 그런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얘기는 아닙니다(절레절레~). 저도 그런 <달인>을 꿈꾸며 지금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도 하고 있습니다. 철학과 더불어서, 조금씩 자라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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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철학 공부를 시작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저는 이진경 선생님의 “철학과 굴뚝청소부”라는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하고많은 철학 입문서 가운데, 제가 이 책을 권하는 것은 이 책의 페이지 사이에 숨어 있는 ‘뜨거움’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간에 숨어 있는 선생님의 ‘노련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진경 선생님은, 스스로의 젊은 시절을 광주 시민의 유령과 그리고 전태일의 유령과 함께 지냈던 세월로 묘사합니다. 학생으로서의, 또 운동가로서의 삶을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번민했고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선생님은, 사회주의의 붕괴를 감옥에서 목도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이 고민들은 그 후 많은 책 속에서 아름다운 사유(思惟)의 결정(結晶)을 맺습니다. “미래의 맑스주의”, “노마디즘” 같은 책들이 그들입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이진경 선생님이 이런 책들을 쓰기 전, 스스로의 철학적 사유를 구상하며 근대철학사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놓은 글입니다. 이 책에서 뜨거움과 노련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저는 특히 근대철학의 딜레마(‘데카르트’에 관한 장을 읽어보세요!)를 ‘실천’이라는 개념을 통해 해소하는 (철학자) 맑스에 대한 글을 읽으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러나 헤겔이나 푸코에 관한 장이나,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디즘에 관한 장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 책은 유명한 책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많은 선배들이 이 책을 읽으며 철학에 대한 흥미를 깨쳤고, 이 책을 통해 많은 다른 책들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지닌 푸르른 생명력은 여전하고, 저는 여러분도 이 생명력을 함께 나누며 철학이라는 멋진 신세계로 입문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취업 걱정은 잠시 젖혀놓고요!

- 편집부 김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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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3 10:41 2008/07/2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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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경을 선물한 책_철학과 굴뚝청소부_이진경

    Tracked from 나발소녀와 홍당무 2012/10/10 16:56  삭제

    ■ 두 사람의 굴뚝청소부가 청소를 마치고 내려왔다. 한 사람의 얼굴은 더러웠고, 다른 한사람의 얼굴은 깨끗했다. 그럼 과연 이 두 사람 중 누가 세수를 하게 될까? 정답은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자기도 더러우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위 예화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_뫼비우스의 띠』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 예화는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어울리지 않는 『철학과 굴뚝청소부』라고 지은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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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8/07/23 11:17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08/07/23 14:42

      안녕하세요.
      그린비는 모집공고를 내고(이런 식으로 http://greenbee.co.kr/blog/282)
      면접을 본 후에 채용여부를 결정합니다. 또는 SBI(http://www.sbin.or.kr/main/index.asp)에서 진행하는 출판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신입채용을 하기도 하구요. ^^

  2. Kdf 2008/07/23 12:27

    소위 인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OECD 최고라는 노동 강도를 몸으로 받아내는 일반 사람들의 삶은 인문학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철학이란 고결한 척 어려운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책 좀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오만함을 놓지 않는 이상,
    인문학은 오로지 말의 향연만을 즐기는 그들만의 리그로 점점 멀어질 것입니다.

    • 그린비 2008/07/23 14:30

      kdf님 안녕하세요.
      말씀하신대로 철학은 '치열한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학적인 말들로 철학을 대중으로부터 이탈시키는 것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 치열한 철학, 이론은 '치열한 실천'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철학은 어려운 말, 난해한 개념으로 가득차 있다고 하더라도 '오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이 'OECD 최고라는 노동강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만큼, 척박한 한국 인문학의 환경에서 온몸으로 이론적 사유를 진행하려는 그들의 노력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도양단으로 이론과 실천의 영역을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각자가 최대치의 노력을 자신의 영역에서 정주하고 있는 만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해하려는 쪽에서도 그에 버금가는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철학을 '치열한 삶 속에서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kdf님의 의견도 궁금하네요. ^^

  3. 그냥 2008/07/24 01:35

    잘 읽었습니다. 저의 알라딘 장바구니 속에서 얌전히 결제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라 반갑네요. 생물학적으로는 벌써 이 책을 읽었어야하는 나이임에도, 학창시절이나 졸업 후나 책장을 넘기기보단 술잔을 비우기에 바빴던 터라 ^^ 이제야 발견하게 되어, 신입사원께서 쓰신 감상문의 마지막 단락에 지레 '뜨끔'합니다.
    책을 보면서도 사실 출판사는 무감했었는데, 인터넷 서점에서 그린비 도서 목록을 보니 오프라인에서 물리적인 만남도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좋은 책 감사하구요.
    이제 취업 걱정은 접어두어도 될 '신입사원'께도 '실천'하는 삶 속에서 '실용'적인 직장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 그린비 2008/07/24 13:45

      그냥님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책 읽기의 기술 - 글로 만나는 벗에 관하여」에서 뵙고 또 뵙는군요!^^*
      참 감격스러운 말씀 감사합니다. 책이야 언제 어느 때고, 지금이다 싶을 때 읽으면 그때가 가장 적당한 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불어 그린비 목록을 보시고 오프라인에서도 자주 만나야겠다고 생각해 주시니, 너무 즐겁습니다.
      그린비는 그린비의 책이 한사람에게라도 더 읽히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더 읽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책만을 내길 바랍니다. 정말 감사드리구요. 앞으로도 실망하시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 글쓴이 2008/07/24 09:19

    삼십대 중반 가까이 가는 노총각이 신입사원이라니 조금 쑥쓰럽긴 하군요.^^; 예쁘게 읽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5. 맛있는건데3iitt5646yt554p5447 2019/06/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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