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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현 온더로드 <"아시아의 오늘"-필리핀 편>을 포스팅합니다. 책으로 만나려면 긴긴 시간이 남아있는 글과 사진들을, 블로그를 통해 연재할 수 있도록 보내주신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지난 글들은 블로그 우측 배너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마닐라의 엣사(EDSA) 거리에서 잡아탄 택시 안에서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우스꽝스러운 노래에 대해서였는데 GAM이 반복적으로 들렸다. 타갈로그어였기 때문에 내용은 알 수 없었다. GAM은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를 지칭하는 약자이다.

“이것 아로요에 관한 노래지요? 무슨 내용입니까?”

뤽베송의 택시와 능히 맞수를 둘만한 솜씨로 택시를 몰고 있던 운전사는 잠깐의 침묵 끝에 마치 내뱉듯이 말했다.

“이곳(필리핀)에서 아로요에 대해 좋은 소리는 기대하지 마시오.”

운전은 더욱 거칠어졌고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필리핀 대통령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이 작은 체구의 곱상한 여성이 마르코스에 버금가는 필리핀 역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대통령 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 걸 이해하기란 감성적으로는 쉽지 않다. 2004년 선거에서 간발의 차이로 에스트라에게 물려받은 정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아로요는 군과 경찰, 공무원을 동원한 대대적인 부정선거 의혹으로 끝임 없이 광범위한 퇴진요구를 받아오고 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로요가 선택한 방법은 미국과 군부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2006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편승해 민다나오에 미군을 끌어들인 것은 물론 필리핀군의 이슬람 무장세력에 대한 잔혹한 군사적 탄압 일변도의 정책을 펼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암살과 납치, 불법체포, 고문 등 전형적인 군사독재 스타일의 테러정치를 펴고 있다. 2006년 2월 아로요는 야당과 우익, 공산주의 반역자, 좌파 그룹, 전현직 군 인사들이 전략적 연합으로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2002년에서 5년 동안 계속되었던 반타이 라야(Bantay Laya, 자유 감시) 작전은 2007년부터 반타이 라야 2로 이어졌는데 이 군사작전은 5년 내 모든 혁명운동의 섬멸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타이 라야가 일컫는 혁명운동이란 사실상 모든 반정부운동을 대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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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톤도 바세코 빈민촌 입구의 아로요 선전포스터>
“아로요 정권이 들어선 후 중부루손(Central Luzon)에서만 162명이 살해당했고 67명이 실종되었어요.”

필리핀의 대표적인 반정부 시민단체 중 하나인 바얀(Bayan)의 중부루손 의장인 라몬(Ramon, 55)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어쩔 수 없이 얼굴에 그늘이 깔렸다. ‘민도로의 백정’으로 불리는 호비토 팔파란(Jovito Palparan)이 필리핀군 중부루손 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긴 후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 사정은 필리핀 전역을 대상으로 해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지난 18시간 동안 필리핀 전역에서 5명이 살해당했어요.”

2008년 1월 현재 필리핀 전역에서 정치테러로 목숨을 잃은 필리핀인은 900여 명에 달하고 있다. 오죽하면 아로요에게 ‘킬링머신’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일을 치르는 정보부 산하의 암살단(Dead Squad)은 무엇보다 합법공간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이나 노동자, 농민, 시민들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오토바이 암살단이 출몰할 가능성이 있는 장소에는 나가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익명의 살해협박을 받은 사람들은 그걸 단순한 협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적인 항의와 국제적인 비난 속에 2006년에 209명에 이르던 수가 2007년에는 78명으로 줄었고 실종자의 수도 78명에서 29명으로 준 것이다.

같은 날 중부루손 팜팡가(Pampanga)의 한 학교의 강당에서는 ‘진실을 위한 여정(A Journey for Truth)’라는 이름의 옥내집회가 열렸다. 50여 명의 시위대들이 정문을 가로막고 있어 집회 참석자들은 후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정문 주변에는 무장한 군인들과 경찰들이 시위대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집회는 지난 연말 불거진 광역통신망 구축을 둘러싸고 필리핀 정부와 중국의 이동통신 업체인 ZTE사이에 체결된 3억2천9백만 달러의 계약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이 오가기로 한 이른바 ZTE스캔들에서 양심선언 후 납치까지 당했던 로돌포 로사다(Rodolfo Lozada)의 순회강연이 핵심이었다. 이 냄새나는 거래에는 아로요의 남편도 관련되어 있다. 계속되는 살해협박으로부터 로사다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신부와 수녀들이다. 집회는 2백여 명 쯤이 참석했다.

“예전 같지 않아요. 예전 같으면 천 명 쯤 모였겠지요.”

한 농민단체에서 참석한 활동가는 그런 푸념을 늘어놓았다. 다음날 팜팡가 지역신문에는 이 집회에 30명이 참석했고 500명의 주민들이 학교정문에서 집회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팜팡가의 주도격인 샌 페르난도시(市)의 대로변 어느 건물에는 ‘아로요를 반대하는 것은 팜팡가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글이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아로요는 팜팡가 출신이다. 그러나 아로요의 출신지라고 해서 유독 분위기가 살벌한 것은 아니다. 라몬은 이렇게 말했다.

“마닐라에서도 집회 참석인원이 많이 줄었어요. 수만 명이 모이던 집회도 지금은 천명에 불과합니다.”

메트로 마닐라의 대표적인 도시빈민 거주지 중의 하나인 케손시의 파야타(Payatas)는 쓰레기 하치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빈민촌이다. 루팡 팡가코(Lupang Pangako) 2단지는 쓰레기가 산처럼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하치장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마을이다. 안내를 맡은 20대 초반의 젊은이 두 명은 도시빈민운동 활동가인데 내내 긴장을 풀지 않았다.

“어용조직인 협회를 제외하고는 지난해에 모두 초토화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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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빈민촌 톤도 바랑가123의 아이들>

지금은 군정보부의 요원들이 마을에 상주하고 있다며 둘은 골목마다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다. 루팡 팡가코의 하치장은 현재 매립 중에 있다. 하치장에의 쓰레기 운송업체인 IPM은 인근 무허가 주택들을 철거하고 매립지를 불하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철거대상 주민들은 이미 계고장을 받은 상태이고 통보시한을 넘기고 있었다.
“1만9천 페소를 주겠다는데 그 돈으로는 어디도 갈 수가 없어요.”

1997년 하치장이 생길 무렵 그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로드리고(Rodrigo, 42)는 농토를 빼앗기고 하치장에서 넝마를 모으는 일로 전업을 해야 했다.

“협회? 난 그 작자들은 믿지 않아. 회사 편이란 말이지.”

로드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동행했던 활동가에게서 카다만(KADAMAN, KMU산하의 도시빈민협회)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들은 믿을 수 있지.”

그러나 카다만은 루팡 팡가코에서 뿌리가 뽑혔고 두 젊은이는 조직을 재건하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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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팜팡가 앙헬레스의 우정의 거리

작열하는 태양 아래 테러의 기운이 음습하게 뒤덮고 있는 필리핀에서 팜팡가의 두 개 도시 중 하나인 앙헬레스(Angeles)는 어떤 종류의 테러로부터도 자유로운 것으로 보였다. 한때 미군 공군기지였던 클라크를 옆에 둔 우정의 거리(Friendship Street)는 미군이 철수한 후 1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클라크공군기지 시절의 바로 그 우정의 거리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클럽과 바, 가라오케, 마사지 업소가 늘어서 있는 그 거리는 여전히 붉은 네온으로 물들어 있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젊은 미군 대신 늙은 서양 관광객이 젊은 필리핀 여성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 것과 그 거리의 끝쯤에 한글 간판들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우정의 거리는 그렇게 외국인들과의 우정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

“1991년에 클라크와 수빅에서 미군은 철수했지요. 아직도 그 때를 잊지 못합니다. 우리가 승리했던 거지요.”

우정의 거리를 빠져나와 어둠에 묻혀 있는 한 때의 클라크 공군기지 옆 하이웨이를 달릴 때에 팜팡가 출신의 존스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4만5천 헥타르의 클라크 공군기지와 2만5천 헥타르의 수빅 해군기지에서 미군이 물러났을 때 팜팡가의 필리핀인들이 꿈꾸었던 것은 그 땅이 자신들의 땅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미군 철수 후 기지를 산업단지로 만든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자원봉사 노동력을 모집했을 때 팜팡가의 주민들이 봉사를 자청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헛된 꿈에 불과했다.

“미군이 물러간 후에 땅은 국유지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손에 들어갔어요. 그리곤 여전히 외국인들의 손에 머물러 있어요. 외국인들이 공장을 세우고 외국인들이 주택단지를 짓고, 면세점과 카지노가 생기고 리조트가 생겼지요. 필리핀인들은 그곳에 출입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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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팡가 샌페르난도시 - 정부미 판매소의 줄>

팜팡가 농민의 75%가 땅이 없는 소작농인 것을 고려한다면 존스의 이 말이 단지 푸념이 아니라 고통이 배어든 신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날 마닐라로 가기 위해 지프니들이 모이는 거리에 트라이시클을 타고 도착했을 때는 마침 모퉁이의 보데가(Bodega)에서는 정부미를 배급하고 있었다. 킬로그램 당 18페소는 시장가격인 35페소의 절반에 해당했다. 줄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쌀 수입국 중 수위를 차지하는 필리핀은 정부미 비축분이 바닥이 났다는 소문에 폭풍전야의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더불어 정부미를 빼돌려 시장으로 방출하고 있다는 소문은 더 이상 소문도 아니었다.

“팜팡가엔 지주들이 둘러놓은 담장 너머에 빈 땅이 천지에요. 모두 농민들이 손을 대지 못하는 휴경지들이지요.”

존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건 또 사실이었다. 전 날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눈에 띤 도로 주변의 토지들은 농사를 짓고 있거나 지은 흔적이 있는 땅보다 휴경지가 많았다.

450년 동안의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 치하에서 해방되어 독립을 손에 넣은 지 60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필리핀의 최대현안은 지금도 토지개혁이다. 필리핀공산당과 신인민군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RJ(Rejectionist)로 불리는 분파가 떨어져 나갔지만 여전히 반봉건반식민지론이 주도하고 있는 것은 농민과 땅의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는 필리핀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지주를 중심으로 한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계급이 외세에 의존해 여전히 상층계급을 이루고 있으면서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 무력과 공포가 지배하고 있는 현실은 필리핀의 현재와 미래를 불안과 분노 안에 가두고 있다. 필리핀공산당과 신인민군이 여하튼 40년 동안 입지를 상실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다.

2008/07/27 01:03 2008/07/2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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