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선생님은 본인의 입으로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나는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주로 책과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것도 거의 대부분 친구들한테 묻어서다. 예술영화, 철학영화 같은 건 거의 피한다. 사서 고생하고 싶지 않아서다."
바로 『이 영화를 보라』 첫머리에 적혀 있는 말입니다. 아니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면서 영화를 다룬 책을 쓰신 배짱(?)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누구나 다 보는' 영화들이다. 그 중에서도 자막이 필요 없는. 결국 한국형 블록버스터들. 반미주의자-미적인 것에 저항한다는 뜻-답게 영화 보는 안목도 참 '썰렁하다'. 영상감각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미장센과 색깔, 완전 꽝이다. OST?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다 까먹는다. 그럼 대체 뭘 보냐고? 그런 걸 빼도 영화엔 볼 게 무지 많다. 이것이 내가 영화라는 매체를 존경하는(!) 이유다. 영화는 마치 알라딘의 램프 같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판타지를 쏘아 올리는 마법의 램프. 나는 그 속에서 '삶의 서사와 시대의 풍경'을 주로 본다. 특정한 시대적 배치하에서 펼쳐지는 존재와 운명의 궤적들. 쉽게 말해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본다는 뜻.(쩝!)"
"하지만 나는 이 영화들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 말로 토해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다. 영화도 모르고, 영화도 모르고, 영화 보기를 즐겨하지 않으면서도 영화에 대한 책을 쓸 수 있다니. 나 자신도 놀라 자빠질 일이다. 허나, 이 또한 영화가 연출하는 마법이 아닐런지.^^"
어쨌든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책이 바로 『이 영화를 보라』입니다. 이 책에서는 총 여섯 편의 영화가 다루어집니다. <괴물 - 위생권력과 스펙터클의 정치>, <황산벌 - 거시기! 표상을 전복하다>, <음란서생 - 포르노그라피와 멜로, 그 어울림과 맞섬>, <서편제 - '한'과 '예술'의 은밀한 공모>, <밀양 - 가족/고향/신 : 출구없는 욕망의 폐쇄회로>, <라디오스타 - '이주민'들의 접속과 변이>. 이 여섯 편의 영화는 제목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흥행작들입니다. 고미숙 선생님의 영화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고나 할까요? ^^;
"이 책에 나오는 여섯 편의 영화는 한국영화의 최고흥행작이거나 화제작에 속한다. 극장 관객수를 다 합치면 2천만이 넘는다."
책에 등장하는 영화들의 목록을 자세히 보면 눈에 띄는 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준익 감독님의 영화가 두 편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죠. <황산벌>과 <라디오스타>. 비록 초대박 흥행영화인 <왕의 남자>를 다루진 않습니다만, 여섯 편의 영화 중에서 이준익 감독님의 영화를 두 편이나 다루고 있다는 것은 고미숙 선생님께서 이준익 감독님에 대해 뭔가 할 말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러나 두 분께서 아직 서로 만나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신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라』에 나온 <황산벌>과 <라디오스타>의 이야기를 가지고 한 번 넘겨짚어 볼까 합니다.
:: 황산벌 - 거시기! 표상을 전복하다
"여기 두 개의 계보학이 존재한다. 하나는 기원의 은폐를 통해 정통성을 구축하려는 근대적 계보학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을 파헤침으로써 전도의 과정을 보여 주는 탈근대적(니체 식) 계보학이다. 전자는 어떤 가치나 개념의 기원을 가능한 한 멀리 끌어올림으로써 거기에 강력한 권위를 부여하고자 한다. 반면, 후자는 어떤 엄숙한 표상도 고유한 진리가 아니라, 다만 시대적 배치의 산물임을 환기하고자 한다.
영화건 드라마건 대개의 사극은 단연 전자의 입장을 취한다. 민족사의 위대한 순간을 담아내거나 아니면 영웅의 일대기를 서사로 그려 내는 경우, 예컨대 <불멸의 이순신>, <주몽>, <태왕사신기> 등이 바로 그렇다. 한편, 궁중사극이나 역사퓨전극 또한 질감은 다를지언정 기본적으로 전제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리 현대적 감각으로 덧칠한다 해도 일단 역사를 다루는 순간, 그 '시간적 무게'가 내뿜는 아우라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황산벌>은 이런 식의 중력장을 과감하게 배반한다. 이준익 감독의 상상력은 참으로 엉뚱하다.(아니, 무모한가?) 야사도 아니고, 궁중비화도 아닌, 삼국통일의 기념비적 사건에 속하는 황산벌 전투에 감히 탈근대적 계보학의 망치를 들이대다니. '우리 배달민족'의 고매하고도 신성한 표상들을 이렇게 제멋대로 가지고 놀다니. 겁도 없이!"
- 『이 영화를 보라』 59-60쪽.
"이준익 감독 역시 그 점에 착안한다. 그는 절대 개념적 차원에서 대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담론들이 거느리고 있는, 혹은 그 담론들이 으레 환기해 왔던 '정서적 특권'들을 집중포격한다. 그러자, 특권이 사라진 자리에 수많은 정서들의 전투가 벌어진다. 당혹스럽고, 우스꽝스럽고, 혹은 썰렁하고 혹은 토할 것 같고, 니체 식으로 말하면, '정서들의 과잉상태'가 만들어지는 것. 이것이 영화 <황산벌>이 수행하는 계보학적 전투의 전략전술이다."
- 『이 영화를 보라』 63쪽.
"이준익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 역시 아주 극적인 만남의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벼이삭들이 물결치는 푸르른 논두렁이 펼쳐지고 몇몇 여인네들이 나락을 거두고 있다. 저 멀리 거시기가 달려오고 엄니는 멀리서도 '거시기'의 목소리를 바로 알아듣는다. 거시기와 엄니의 뜨거운 포옹!
엄니, 엄니, 저 왔으라!
아이구, 내 거시기, 내 거시기!
살아 왔어라, 엄니.
아이구, 세상에! 반쪽이 디았네, 반쪽이.
엄니, 배고파라우.
밥 묵어야제.
가슴이 저릿하고 코끝이 찡한, 한마디로 '겁나게 거시기한' 장면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 『이 영화를 보라』 94-95쪽.
:: 라디오스타 - '이주민'들의 접속과 변이
"최곤과 박민수, 이스트리버가 하나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코드가 있다. 이미 예고했다시피, 이들 모두 '탈가족화'된 존재라는 것. 최곤은 가족은커녕 아예 여친도 없다. 뿐만 아니라 여친에 대한 욕구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매니저 박민수는 가출한 지 오래다(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 아예 아빠를 뺄 정도다). 이스트리버는? 불문가지! 아마 집에서 포기한 지 오래임에 틀림없다. 가족의 품에 있으면서 그런 짓을 하고 다니기란 불가능할 테니까. 다른 캐릭터들 역시 대체로 비슷하다. 청록다방 김양은 가출했고, 동강순대국집의 꼬마는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중국집 배달부 장씨 역시 모르긴 해도 비슷한 처지이리라."
- 『이 영화를 보라』 221쪽.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영화는 아주 이질적인 존재들이 새로운 코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작은 공간의 재배치부터. 박민수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방송국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잔디를 깎고, 유리창을 닦고, 복도청소를 하고, 기계들을 다시 점검하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범상한 장면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의 접속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중국집 배달부 장씨가 은근슬쩍 이 대열에 합류하고, 아무런 개연성이 없는 박기사와 지국장도 차츰 마음을 열어 간다. 이를테면, 공간의 재배치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이 구축되는 것이다. 이 코뮤니티의 주역은 단연 박민수다. 박민수는 세상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놀라운 친화력의 소유자다. 그는 직접 발로 뛰면서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을 사방팔방에 전파한다. 플래카드를 걸고, 선전물을 뿌리고, 청록다방에 가서 라디오를 틀어 주고 등등. 그는 진정 최곤을 세상에 연결해주는 매니저이자 전령사다."
- 『이 영화를 보라』 226쪽.
"이것 역시 '방송사고'에 해당한다. 방송의 문법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어법 자체도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은 '깊은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방송을 위해 호영이를 내세운 게 아니라, 호영이를 위해 방송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협박(?)에 힘입어 호영의 아빠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호영이는 '비와 당신'을 신청하고, 최곤은 처음 라이브로 '비와 당신'을 부른다. 축제무대 위에선 노래를 부리지 않던 그가 단지 호영이를 위해 노래를 부른 것이다. 이 순간, 노래는 돈과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질적인 타자들과 소통하는 우정의 메신저가 된다. 그의 거침없는 저항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생성으로 이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 『이 영화를 보라』 239-240쪽.
* * *

지난 7월 23일 이준익 감독님의 신작 <님은 먼 곳에>가 개봉했습니다. 이미 이준익 감독님의 영화 두 편에 대해 인문학의 시선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 주신 고미숙 선생님께서는 이번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가 영화의 내용 못지 않게 궁금하신 분들이 설마 저 혼자는 아니겠죠? ^^*
그래서!!!
그린비출판사에서 이준익 감독님과 고미숙 선생님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름하여 "고미숙, 이준익을 말하다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그리고!!!
그 만남의 자리에 블로거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아직' 만나지 못했던 이준익 감독님과 고미숙 선생님 두 분이 만나는 자리에 '이준익의 관객'이자 '고미숙의 독자'이신 바로 여러분들을 모십니다.

<행사 안내>
장소, 시간
장소 : 연구공간 수유+너머 (오시는 길)
시간 : 2008. 7.31(목) 저녁 7시부터
참여방법
- 그린비 블로그의 "고미숙, 이준익을 말하다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포스트에 댓글을 남겨 주세요.
- 이름, 이메일, 블로그 주소를 남겨 주세요.
- 선착순 40분께 초대권을 드립니다.
(실제로 '초대권'이 있는 건 아니고 초대 메일을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주의사항
- 댓글을 남기실 때, 이름, 이메일, 블로그 주소를 '꼭' 남겨 주세요!
- 다 넣으셔야 접수가 됩니다!!
장소 : 연구공간 수유+너머 (오시는 길)
시간 : 2008. 7.31(목) 저녁 7시부터
참여방법
- 그린비 블로그의 "고미숙, 이준익을 말하다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포스트에 댓글을 남겨 주세요.
- 이름, 이메일, 블로그 주소를 남겨 주세요.
- 선착순 40분께 초대권을 드립니다.
(실제로 '초대권'이 있는 건 아니고 초대 메일을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주의사항
- 댓글을 남기실 때, 이름, 이메일, 블로그 주소를 '꼭' 남겨 주세요!
- 다 넣으셔야 접수가 됩니다!!
그럼 이번주 목요일에 인문학과 영화가 만나는 그 곳(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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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청소년들을 .. 선동하지말길 바란다 ,, 머
영화만들기전에 집에잠자코 계속있으면서 생각하며 반성하시는게 어떨까 생각한다 ..
고로 나는!!! 대한민국 국가관이 올바른사람이 영화감독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뎅 !
와아아아아 ㅋㅋㅋㅋㅋㅋㅋ
국가관은 그냥 조용히 챙기고 다니세요...
이건 뭐.. 사상논쟁으로 사상을 죽이려는 논리는 획일화된 공산주의 사회랑 별 다를바 없는데?
역시 극우와 극좌는 그나물에 그밥 ㅋ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네, 가능합니다. ^^
구독으로 이글은 보았는데 트랙백을 남겨주셔서 댓글 남깁니다.
이 책 서평으로는 보았습니다. 고미숙님이 연세가 꽤(?) 있으시군요. <호모쿵푸스>를 보고 서평을 하려다 생각을 차이를 표명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는데 올려야 겠습니다.
이준익감독은 언론플레이(?)를 상당히 잘하는 감독중에 한명이지요, 아니 언론과 대중의 속성을 잘 아는 감독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로 보는 그와 현실의 그는 많이 다름을 느낄때 영화로만 보는 그를 상상하는 것이 더 즐겁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지하고 인문과 대중예술과의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은 좋은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일단 소통을 한 이후에 다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옳다고 보입니다.
한방블르스님 안녕하세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이준익 감독을 본 적이 없어서, 그 부분은 뭐라 답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그린비는 인문학과 대중예술의 소통을 통해 '인문학', '대중예술' 처럼 각각의 분야에서만 만들어지는 컨텐츠를 넘어서는 컨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서 어떻게 작용할런지는 좀더 깊게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