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키우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자 그는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명목이나 실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성을 내다가 기뻐했다. (그 원숭이 키우는 사람은 원숭이가) ‘옳다고 한 것을 따랐을’[因是] 뿐이다. ―「제물론」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조삼모사 패러디 열풍. 이 패러디들 속에서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인 ‘저공’은 항상 악역으로 등장한다. 불리한 조건을 들이대고, 그 조건에 반항하는 원숭이들에게 더 불리한 카드를 들이대는 저공. 결국 원숭이들이 억지미소를 지으며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처음 제시된 차악의 조건뿐이다. 이렇듯 조삼모사 패러디들에 등장하는 저공의 모습은 뻔뻔하고 노골적이다. ‘세 개 준다, 네 개 준다’라는 기만전술조차 필요 없다는 듯, 노골적인 위협을 일삼기 때문이다. “이거라도 먹을래, 아님 굶어 죽을래?”
고사 속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저공의 모습 역시 이 패러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사에서 저공은 원숭이들을 기만함으로써 먹이의 양을 성공적으로 줄인 인물로 등장한다. 동시에 원숭이들은 실질적인 차이를 전체적으로 읽어내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에 환호하는 멍청한 존재들로 그려진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조삼모사 고사에서 일반적으로 받는 인상이다. 기만적인 저공, 멍청한 원숭이!
하지만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장자의 독법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져 온 이런 독법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장자는 우선 이 이야기를 ‘이익을 둘러싼 기만’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노력’의 상징으로 읽는다. 장자의 이런 독법 속에서 애당초 저공은 오늘날의 해석과는 매우 다른 위치를 점한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제안, 원숭이들의 반발,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라는 새로운 제안. 여기서 저공의 첫 번째 제안은 온전히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원숭이들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입장만이 반영된 제안인 것이다. 요행이 이 제안이 원숭이들에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겠지만, 원숭이들은 이것을 거부했고, 저공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아야 했다. 만약 두 번째 제안도 원숭이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저공은 계속해서 새로운 제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삼모사 이야기를 소통에 대한 철학적인 비유로 읽을 수 있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즉 저공의 제안을 승인하는 것은 원숭이들의 몫이다. 저공은 원숭이들이 ‘이제 되었다’라고 말하기 전에는 끊임없이 자신의 판단을 지우고 새로운 판단을 시도해야 한다. 장자는 바로 이런 ‘판단중지의 상태’가 소통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보았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자기만의 사고방식을 비워내고 끊임없이 타자를 읽으려고 시도할 때, 타자와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패러디 속의 저공처럼 자신만의 사고방식에 따르도록 타자를 강제하거나, 타자를 속이기 쉬운 멍청한 존재로 인식하고 이용할 마음만 먹는다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런 저공이라면 원숭이들을 굶겨 죽이거나 우리를 찢고 도망가도록 만들 뿐, 결코 원숭이들을 기를 수도, 그들과 교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강신주 지음 / 도서출판 그린비 / 인문(철학), 고전
출간일 : 2007-08-10 | ISBN(13) : 9788976823045
양장본 | 296쪽 | 205*14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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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장자를 계속 읽다보니까, 그 할아버지는 진짜 소통의 달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