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로 2등을 하는 애들은 늘 2등을 합니다. 이상하죠? 그렇게 열심히 해도 1등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그리고 1등은 2등만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늘 2등보다 잘하는 것이(심지어 밤마다 연속극을 챙겨 보고 와선 줄거리를 얘기해 주는 여유까지…). 『피아노의 숲』의 슈우헤이를 보면, 죽어라 해도 안 되는 인간은 정말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죽어라 해서 2등이라도 하는 게 어디냐, 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암튼 어려서부터 유명 피아니스트인 아버지를 보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운 슈우헤이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법칙대로 피아노 연습을 합니다. 당연하게도, 실력이란 것은 연습한 시간에 비례하여 느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여러분의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쉬는 시간에도 엉덩이 한 번 안 떼고 공부하는 애들, 그러나 성적은 17등 내지는 18등 하는 애들을 어렴풋이나마 떠올려 보건대 투입이 있으면 산출이 있다는 법칙이 모든 곳에 적용되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연습시간과 정비례하지 않는 연주실력..흠..당장 저만 하더라도 제가 수학에 쏟은 시간과 점수가 비례하지 않았던 걸 보면..(아.. 또 다시 공통수학의 상처가.. 흑)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스스로가 기쁨의 동력이 될 수 없는 이들의 비애죠.

슈우헤이의 배경이 곧은 직선인데 반해 카이의 배경은 샤르륵 떨어지는 빛의 입자들이군요. -_-;
피아노 연주로 남을 감동시키는 능력은 없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남의 재능을 간파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던 슈우헤이는 비범한 천재 카이의 연주를 들은 후, 그의 피아노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강한 질투심(경쟁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콩쿠르에서 카이를 만날 때마다 깊은 절망감과 함께 자신의 평범함을 확인하죠. 테크닉은 좋으나 울림이 없는 슈우헤이의 피아노. 슈우헤이는 자신과 달리 카이가 연주 듣는 모두를 카이의 세상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보며 감동과 함께 절망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카이의 타고난 재능과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오겠습니다만, 슈우헤이의 노력에 대해서는 참으로 근면한 청년이야, 하고 감탄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슈우헤이의 연주에 비록 전율이나 감동을 느낄 순 없을지라도 그의 연주 속엔 매일매일 그가 흘린 땀과 시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모든 연주동작엔 시간의 결들이 배어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카이를 넘을 수 없는 슈우헤이는 그 성실함, 열정과 상관없이 늘 불행합니다. 저는 그걸 보며 2등의 비애란 것은 1등이 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고요. 암튼,
자기 전 존재를 던지는 어떤 ‘일’이 있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지만, 거기서 의미와 기쁨을 찾지 못하는 2등 슈우헤이는 어떤 면에서 참 안쓰럽기 짝이 없는 인물입니다. 이에 반해, 박민규 소설에 등장하는 꼴등을 하면서도 그랬거나 말거나 정신으로 무장한 ‘하잘것없는 인생’들은 언제나 태평하고 재밌고 경쾌합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바로 그 하잘것없는, 그러나 자기의 삶을 즐길 줄 아는, 경쟁력은 없으나 사실 그 경쟁력 자체가 필요 없어서 경쟁력이란 말이 의미가 없어지는, 그런 꼴지들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펼치면,
1할 2푼 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그래서, 친구들에게
+ 2008년 8월 4일 현재, 프로야구 1위팀 SK 와이번스의 승률이 6할 4푼 8리,
8위(꼴찌) LG 트윈스의 승률이 3할 3푼 7리임을 감안했을 때,
당시 삼미슈퍼스타즈의 성적은 참담한 수준이었습니다.
8위(꼴찌) LG 트윈스의 승률이 3할 3푼 7리임을 감안했을 때,
당시 삼미슈퍼스타즈의 성적은 참담한 수준이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명심해라.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아부지의 당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아이로서, 큰 머리통 때문에 머리가 좋을 것이라는 타인의 괜한 추측을 촉발한 아이로서, 그리고 또 누구보다도 평범한 아버지를 둔(그래서 일류대학에 가야만 하는 짐을 진) 아이로서, 본인의 머리만큼이나 거대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선,
언뜻,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또 누군가는 콧구멍에 파를 끼우며 졸음을 쫓고 있겠지, 도무지 야망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못살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1할 2푼 5리의 승률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즘같은 세상에서 보이즈 비 앰비셔스하지 않고선 도무지 불안해서 살기가 힘든 법이지요. ‘일류’ 내지는 ‘프로’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불안하게 마련입니다만, 사실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건 간단합니다. 바로 기존의 관습과 룰에서 빠져 나오는 겁니다(너 말 쉽게 한다, 막 그러면서 이갈고 계신 건 아니죠-_-?).
‘어쩌면 저건 축구일지 몰라.’

소설 속 주인공은 한때 이보다 더 꼴지일 순 없는 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연속되는 패배에 가슴 깊은 상처를 입고 마침내 현실에서 도피하며 자기를 위로하는 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야구를 보면서 축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죠. 흐음.. 제가 너무 갔나요-_-? 껄껄, 그치만 말이 그렇단 겁니다. 아..아시죠?
어쨌거나 이처럼 관습에서 탈주하면 일은 꽤 쉬워집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면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어떻게 이길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죠.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을 창단한 이들이, 어떻게 삼미의 야구에 다다를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가 “그냥 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전지훈련에서는 50미터 달리기를 진지한 얼굴로 19초만에 완주하고,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 삼미 야구의 철학에 부합하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은 진실로 ‘다른’ 사고를 하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남과 같은 룰의 적용을 받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미터를 58초에 뛰는 저로서는 이 기록에 아주 깊은 공감을 하면서…(흐음)… 만약 슈우헤이가 오로지 카이만을 신경 쓰며, 콩쿠르 1등, 세계 최고만을 노리는 것을 그만뒀더라면, 슈우헤이 역시 카이가 ‘숲의 피아노’를 쳤던 것처럼, 온전히 자신만의 피아노를 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늘 그 만화를 보면서 인생의 놀라운 비밀인 “안 되면 말고”와 “그랬거나 말거나”를 알지 못하는 슈우헤이에게 안타까움이 앞섰던 바, 오늘은 마지막으로 슈우헤이에게, 아니 세상의 모든 즐겁지 못한 2등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해라.”
- 편집부 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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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제 가슴속에도 남아있는 소설 중 한 권입니다.
저도 저 책을 보고나서 인생의 진로를 바꿨습니다. 즐길 수 없는 건 최대한 피하는 쪽으로 말이죠.(..)
네, 좀 짱인 소설이죠^^* 흐흣. 즐길 수 없으면 피하고, 잡을 수 없는 공은 안 잡고, 뭐 그런..ㅎㅎ 제가 이 책을 읽은 게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지침서가 되어 주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나... 절 위한 글이네요.... 님쫌짱인듯 ^.~
드릴 것은 이것....♡밖에...=_=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