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 화폐는 결혼의 결정적 기준?!
이 언니를 만나다
2008/08/11 15:33
결혼적령기의 한 남녀가 있습니다. 낭만적인 연애를 거치고, 결혼을 약속합니다. 둘 다 결혼을 하고 나면 더 행복한 삶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지요. 서로의 결혼관은 잘 묻지 않은 채, 신데렐라 이야기의 후반부를 마치 자신들이 쓸 것처럼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죠. 뭐 즐거운 일은 여기까지.. 어디에 살 것인지, 거주 방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것들에 따르는 비용은 얼마인지, 여기서 끝나면 고맙죠~. 더 잔인한 것은 결혼 당사자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화폐가치에 따라 추가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겁니다. 상대의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남성이든 여성이든 결혼 전에 미래의 화폐 가치를 가지고 오는 비용을 그 가족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거죠. 따지고 보면 결혼은 낭만과 달콤함이 아니라 돈 이야기로 시작해서 돈 문제로 끝나는 가혹한 현실이죠.

돈 이야기는 모두가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돈을 마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구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나와 함께할 상대방이 이런 문제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기를 바라죠. 결혼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화폐가 결혼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대학 시절 읽었던 옐리네크 언니는 저를 아주 불편하게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뭔지, 가부장제가 유지되는 데에는 여성들도 한몫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프로이트가 말한 아버지-아들의 관계만큼 어머니-딸의 관계도 문제 많다라는 언니의 주장은 저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전하는 말이 어쨌든 전 싫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들을 만한 가치가 있지만, 잘못 사용될 경우 여성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그런 계기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연인들』, 작가의 잔혹한 시선이 불편해 얼마 읽지 못하고 덮어 버린 그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왜 읽었냐구요? 전 제가 결혼적령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가끔 친구들 홈피에 방문했을 때 무방비 상태로 만나게 되는 그녀들의 결혼사진들은 제게 나이를 환기시키더군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결혼은 뭘까요? 아주 소모적인 돈 잔치에 불과한 결혼식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입으면 화장실도 못 간다는데 웨딩드레스는 왜 입는지?(몇 분 입지도 않는데 기백만원을 주고 빌려야 하구요) 연애 역시도 시간이 지날수록 무한한 감정 노동을 투입해야 하는데, 결혼이라고 오죽하겠습니까. 이건 뭐 대책 없이 평생 감정 노동해야 하는데, 뭐 좋다고 결혼은 하는 걸까요?
옐리네크 언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이 굉장히 추악하다는 걸 이 책 안에서 보여 줍니다. 또한 결혼이 삶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키(key)가 아니라는 걸 말해 주지요. 이 책 안에는 두 여자가 나옵니다 브리기테와 파울라. 아마 읽고 있으면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어 싶겠지만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브리기테와 파울라의 행동에서 나는 얼마나 그들과 다른가 반추하게 됩니다.
브리기테는 한마디로 결혼에 목숨 건 여자입니다. 왜 결혼하고 싶어 하냐구요? 우리는 쉽게 상대를 사랑해서라고 상상할 겁니다. 우리는 그걸 당연한 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절대 아닙니다~ 브리기테는 화폐로 가득한 미래를 사랑합니다. 자신이 그것을 구현할 수 없기에 대신 해줄 남자(하인츠)를 사랑하는 것이죠. 그녀에게 삶과 남자는 동일한 말입니다. 그와 결혼하기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성적으로 봉사하고, 심지어는 하인츠의 가족이 그녀를 심하게 모욕해도 그녀의 자존심을 세우거나 증오를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미래. 하인츠가 성공해서 그녀에게 가져다줄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고생은 고생도 아니죠~. 또 한 여자 파울라, 첨엔 브리기테와 뭔가 다른 듯하지만,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재단사 일을 배우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그녀도 결국엔 브리기테와 똑같은 수렁으로 빠져듭니다. 결혼을 위해서 배우던 재단사 일도 때려치고, 오직 그녀가 사랑한다고 믿는 남자 에리히만을 쫓아다니죠.
둘 다 어쨌든 결혼엔 성공합니다. 브리기테와 파울라 둘 다 임신을 매개로 하여 남성들과의 결혼을 성사시키죠. 브리기테는 책이 끝날 때까지 인간적으로 대우받지 못하지만 그녀가 원하던 미래를 얻고, 파울라는 성매매를 하다가 이혼하고, 맨 처음 브리기테가 일하던 공장에 취직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부르주아지는 ··· 가족 관계를 순전한 화폐 관계로 돌려 놓았다." (맑스-엥겔스, 『공산주의 선언』)
전 사실 결혼은 거대한 자본주의 체계로 들어가는 가장 작은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시작부터 예물과 함, 몇 평짜리 아파트와 그에 따르는 혼수. 소비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결혼식 비용으로 날아가는 돈은 얼마구요~. 결혼 생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 가는 대신에 몇 년 후 얼마를 모으고, 그 다음엔 집을 사고, 이런 경제적 플랜이 결혼 생활의 핵심 내용이 됩니다. 결혼은 끊임없이 닥치지 않은 미래를 위해 소비하고 저축하게 하며, 안정이라는 환상을 매개로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책 안의 브리기테와 파울라도 현재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녀들은 스스로가 애정에 기초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녀들의 착각입니다. 그녀들이 원하는 건 좋은 가전제품과 다달이 늘어가는 통장 잔고로 증명되는 경제 공동체입니다. 모든 일들은 화폐화의 가능성 안에서만 판단되고, 아이를 낳는 일마저 모성의 영역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확고하게 하는 수단일 뿐이죠.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리기테와 파울라는 우리 시대 남성과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얼굴이라구요. 우리는 우리보다 좀더 나은 상대를 만나기를 원합니다. 왜 그런가를 묻기 전에 ‘좀더 낫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한번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결혼이 가진 자본주의적 속성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무엇인지 재점검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자본주의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기에 우리의 결혼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탈각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알게 되면 성찰은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든 사람들이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화폐라면 무척 기분이 나쁠 테니까요~.
- 편집부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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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 적령기에 이르기 전에는 결혼에 대한 환상과 이상, 바람이 매우 큽니다. 드라마나 영화 아니면 소설 같은데서 봐오던 아름다운 면만 생각하며,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길 꿈꿉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이 현실로 닥치면 그동안 갖고 있던 생각에 대한 회의를 품습니다.
저도 아직 그 때에 이르지 못하여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야 겠다는 바람이 듭니다. 아니,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 앞서의 생각은 물리칩니다. ^^
20년 넘게 살아온 가정, 문화 환경과 그에 따른 사고와 생활 방식 등이 다른데 마음이 원하는 만큼 잘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없죠. 혹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도 한계는 있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형제조차도 그런데 남남은 오죽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만나든 나와 다름을 기꺼이 인정하고, 상대와 맞는 사람이 되도록 서로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어느 정도의 공통 분모가 있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옵션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서로에게 맞추기 위해서는 충분하면서도 속깊은, 진솔한 대화를 통하여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겠지요. ^^ 그것이 조화롭게 이뤄진다면 자신과 극과 극의 사람을 만나도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때론 뼈를 깎는 고통을 겪겠죠. 그러니 서로 부단하고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죠. ^^ 너무 이상적인가요? ^^
안녕하세요. 전두표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는 결혼이라면 꼭 해야하나 싶기도 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