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책읽기로 한국 지식사회의 쟁점을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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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발견』
-한국지식인들의문제적담론읽기
 고명섭 지음 | 도서출판 그린비 | 갈래 : 인문, 책읽기
발행일 : 2005년 6월 7일 | ISBN : 9788976829511
양장본 (222×160)|376페이지

고명섭의 이 책은 이런 19권의 책에 대한 충실히 리뷰이며, 현재 한국 지식인들의 고민이 드러나고 부딪히는 장(場)이고, 서구의 틀과 개념을 넘어서 우리 개념과 언어로 이 땅의 구체적 현실을 분석하려 노력한 한국 지식인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무엇보다 고명섭은 지식과 학문의 영역에서 ‘변방에 지저귀는 새’에 지나지 않은 우리나라, 자신을 설명할 개념이 없어 서구 중심부의 언어와 개념을 빌려 와야 하는 우리의 지식과 학문 영역에서 서구중심주의를 넘어 주체적 학문하기의 지평을 열어 가는 지식인들의 문제의식을 발견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 지은이

고명섭
|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한겨레' 영화, 연극, 미디어 담당, 출판 담당 기자등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담론의 발견-상상력과 마주보는 150편의 책읽기>, 시집 <황혼녘 햇살에 빛나는 구렁이 알을 삼키다>가 있다.



∎ 목 차

제1부_민족주의, 국가주의, 그리고 친일
찢겨진 '네이션' 혹은 민족 대 국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친일문학, 논리와 신념의 내면풍경
한 문단권력자의 초상
보론_ 고명섭의 '민족주의론'에 질문한다(박노자)

제2부_근대성/계몽의 이해와 넘어서기
계몽 안에서 계몽과 싸우기
파우스트의 욕망, 파우스트의 비극
니체, 망치를 든 철학자
근래의 도대, 연애의 발견
오리엔타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을 넘어서
'서양 콤플렉스' 이겨내기의 한 방법
'근대를 폭파하라!'
오래된 미래, 새로운 출발

제3부_정치.사회.지식
한나 아렌트와 한국의 아이히만
그리스 비극,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예술
마키아벨리즘과 마키아벨리스트 사이에서
똘레랑스 - 투쟁의 무기, 화해의 손길
상징자본과 사징폭력
'전위'가 사라진 시대

에필로그_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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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 '진리'와 현실적 '힘'에 대하여
니체에 따르면 지배 도덕이 어떤 욕망의 표현이듯이, 진리라는 것도 어떤 힘의 표현일 뿐이다. 사람들이 진리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맹목적인 믿음,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왜 보편적인 진리가 되는가? '진리'는 그 자체로 스스로를 진리로 선포하고 사람들을 자신을 발아래 무릎 꿇릴 수 없다. '진리'는 진리 바깥의 어떤 힘에 의해 진리가 되지 않는다. "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거나 힘의 편이 되었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본문 44~45쪽)
- '평등'은 똘레랑스의전제조건
그런데 이성적인 토론에는 전제가 있다. 토론을 하되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공정한 토론을 하려면 두 당사자가 동등한 지위에 있어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불평등한 사회조건에서는 공정한 토론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똘레랑스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공정한 토론을 위해 현재의 불평등한 조건을 바로잡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이자 권리가 된다. (본문 305쪽)


∎ 책 소개


비판적 책읽기로 한국 지식사회의 쟁점을 그려내다!!

출판 담당 기자를 지냈던 지은이 고명섭이 특유의 예민하고 꼼꼼한 시선으로,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들이 쓴 19권의 책에 대한 서평들을 모아 『지식의 발견 ― 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를 펴냈다.

고명섭이 『지식의 발견』에서 언급하고 있는 책들은 모두 시각과 논의의 밀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학자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현실을 진단하고 바꿔보려 한 노력의 산물들이다. 예컨대 근래에 너도나도 공격하는 ‘민족주의’의 의미와 역할을 조선 말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는 서중석의 『배반당한 한국민족주의』, 단순히 창씨개명 여부와 작품을 일본어로 썼는지 한국어로 썼는지 여부로 ‘친일’문인을 가려온 기존의 친일범주화에 문제제기하는 김재용의 『협력과 저항』, 근대인의 전형인 파우스트 정신에 대한 찬양으로 읽혔던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비판적 독해로 근대 정신의 맹점을 드러낸 김수용의 『괴테, 파우스트, 휴머니즘』, 서구식 근대와는 전혀 다른 보편적 근대를 주장하는 김용옥의 『독기학설』, 학문은 사회적 투쟁의 도구임을 역설했던 부르디외 사상 속에서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실마리를 찾아낸 홍성민의 『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등이 고명섭이 다루는 책들이다.

고명섭의 이 책은 이런 19권의 책에 대한 충실히 리뷰이며, 현재 한국 지식인들의 고민이 드러나고 부딪히는 장(場)이고, 서구의 틀과 개념을 넘어서 우리 개념과 언어로 이 땅의 구체적 현실을 분석하려 노력한 한국 지식인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무엇보다 고명섭은 지식과 학문의 영역에서 ‘변방에 지저귀는 새’에 지나지 않은 우리나라, 자신을 설명할 개념이 없어 서구 중심부의 언어와 개념을 빌려 와야 하는 우리의 지식과 학문 영역에서 서구중심주의를 넘어 주체적 학문하기의 지평을 열어 가는 지식인들의 문제의식을 발견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다시, 민족주의를 논한다 ―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다르다

이 책 『지식의 발견』은 크게 세 가지 주제들을 다룬다. 민족주의·국가주의·친일의 문제(제1부), 근대성과 계몽의 문제(제2부),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새로운 정치와 사회·지식의 문제(제3부)가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민족주의 논의는 우리나라의 지식과 학문의 영역에 똬리 튼 ‘서구의 개념으로 우리의 현실을 해석해야 하는 딜레마’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분명 민족주의는 서구 제국주의의 침범과 함께 우리나라에 전해진 이념이지만, “제국주의의 압도적 힘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된” 이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구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배어든 이념으로 서구 제국주의에 저항하게 된 역설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한쪽에서는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또 한쪽에서는 민족주의를 긍정하는 식으로 민족주의를 둘러싼 혼란이 빚어지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고명섭은 서중석의 『배반당한 한국민족주의』에 대한 서평에서 ‘민족주의’ 개념을 둘러싼 이런 혼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민족주의’를 둘러싼 혼란은 앞서 말한 대로 그 용어 자체가 서구에서 전해진 개념인 데에서 비롯된다. 민족주의로 흔히 번역되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에서의 네이션(nation)은 맥락에 따라 민족으로도, 국민으로도, 국가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내셔널리즘도 어떤 때는 민족주의로, 어떤 때는 국가주의로, 또 어떤 때는 국민주의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렇게 번역된 말은 “서로 같은 말에서 나왔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의미의 편차가 크다”. 가령 민족주의가 식민지 해방운동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와 연결된다면 국가주의는 부정적인 이미지(파시즘 같은 극우 전체주의)와, 그리고 국민주의는 중립적인 이미지와 연결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고명섭은 해방 후 한국의 역사를 민족주의 대 국가주의의 대결구도로 이해하는 서중석의 견해에 지지를 표하며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구분하자고 제안한다. 비록 똑같은 어원을 갖고 있을지언정 우리나라에서 식민지 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동력이 되어 왔던 민족주의를, 수사학적으로 민족을 내세웠지만 정작 민족주의 세력을 압살해 왔던 국가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친일 논리를 ‘민족주의’로 가장하는 세력들(친일파)에게 속거나, 친일적 부르주아지를 ‘민족주의자’로 잘못 불러 진정한 민족주의자들을 적대시했던 지난 과거의 오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민족주의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민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민족주의는 선하고, 민중의 이익에 반하는 민족주의는 악할 뿐이다.” (본문 34쪽)

이런 고명섭의 서평은 다분히 지난 1990년대 말부터 한국 지식계에 휘몰아친 ‘탈(脫)/반(反)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그가 보기에 ‘민족주의’는 ‘아직은’ ‘반역’이 아닌 것이다. 이런 고명섭의 서평에 대해 성실한 학자 박노자 교수가 「고명섭의 ‘민족주의론’에 질문한다」는 글로 문제제기를 던져왔고(박노자의 이 글은 이 책 『지식의 발견』 1부 말미에 보론으로 실려 있다), 이에 대해 고명섭은 다시 김동춘의 『근대의 그늘:한국의 근대성과 민족주의』에 대한 서평으로 답했다.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자’는 아닌 두 사람이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나타난 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느끼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독자들은 현재 한국 지식계에서 ‘민족주의’가 문제되는 이유를 이해하고, 그 논쟁의 핵심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민족주의/국가주의를 구분하는 연장선상에서 고명섭은 친일문제에까지 예민한 촉수를 들이댄다. 김재용의 책 『협력과 저항: 일제 말 사회와 문학』과 김명인의 책 『조연현, 비극적 세계관과 파시즘 사이』에 대한 서평이 바로 그것인데, 이 두 서평은 ‘친일’범주에 대한 고민과 ‘친일 지식인’의 자기 기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동시에 안겨줄 것이다.


다시, 근대를 돌아본다 ― 서구식 근대에서 벗어나는 일은 가능한가?


고명섭이 근대성과 계몽의 문제를 다루면서 드러내는 한국 지식계의 쟁점은 두 가지다. 그 한 가지가 서구에서 등장한 근대성/계몽의 의미와 한계를 다룬 것이라면, 나머지 한 가지는 우리의 학문적 지반에서 서구의 근대성/계몽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를 다룬 것이라 하겠다. 그가 전자의 탐색을 위해 살펴보는 책은 권용선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과 김수용의 『괴테, 파우스트, 휴머니즘』, 고병권의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이다.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그는 서구의 근대 계몽이성이 갖는 폭력성, 근대인 혹은 근대정신의 한계, 그 한계를 깨뜨리려 한 서양철학 내부의 노력을 드려다 본 후, 서구의 근대성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시기를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를 통해 살펴본다. 그리고 이런 서구의 근대성/계몽의 한계를 우리의 학문적 지반에서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보이기 위해 뒤이어 김용옥의 『독기학설』과 『도올심득 동경대전』, 신용복의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검토한다.

고명섭은 서구 근대성의 의미와 한계를 에두르지 않고 명확히 드러내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둘러 근대성/계몽의 파산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서구식 근대성과 계몽이성이 갖는 힘을 인정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근대성/계몽이성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고명섭이 발견하는 것이 ‘합정리적 존재’(김용옥)와 ‘관계론의 세계관’(신영복)이다.

김용옥이 말하는 합정리적 존재는 “이성과 감정의 조화, 사실과 당위의 융합 등, 인간의 모든 가능한 성정의 밸런스(균형)”를 지향하는 존재이다. 정(情)과 이(理)가 합쳐진 존재, 즉 정서와 이성이 공동으로 기능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차가운 수학적 이성에 근거한 데카르트적 근대인과는 달리 이(理)를 생각할 때에 도덕이라는 문제를 분리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신영복은 서구적 근대성의 기반인 ‘존재론의 세계관’ 대신 관계론의 세계관을 내세운다. 존재론의 세계관은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단위로 인식”하여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끊임없이 자기를 강화해 가는 운동 원리를 지닌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이런 존재론적 운동 속에서는 필연적으로 대립과 정복, 차별과 패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존재가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고 보는 관계론의 세계관, 개별 인간이 아니라 그 관계에 초점을 둔 관계론의 세계관에서는 이런 대립과 정복, 차별과 패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고명섭은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김용옥과 신영복의 이런 탐색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그 시도에 지지를 보낸다(이들의 시도가 뒤집힌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감추지는 않지만). 그간의 서구중심적 사고에 대한 어찌 보면 역편향적이기도 한 이들의 주장이 우리 시대에 만연한 ‘서양 중독’ 상태에서 우리 정신을 깨어나게 하고 새로운 중심을 잡는 데 충분히 거점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지식인’의 책무를 묻는다 ―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이 책 『지식의 발견』의 3부 ‘정치·사회·지식’과 에필로그(「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통해 고명섭은 한국 지식인들의 책무가 시대의 물음에 답하는 것, 즉 이 땅의 현실문제를 고민하고 분석하여 그에 대해 발언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3부와 에필로그에서 그가 살펴보는 책들의 주인공은 한나 아렌트, 홍세화, 부르디외, 리영희 등 누구보다 소수자의 편에서 현실 사회와 정치에 대해 망설임 없이 발언해 왔던 지식인들이다.

고명섭의 말에 따르면 지식과 권력은 필연적으로 결부될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우선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게 되지만,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긍정적인 함의를 띨 수 있다. “권력과 결부된 지식, 곧 지식권력은 기존의 체제와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어용적 권력 노릇도 하지만, 그 체제와 질서를 변화시키거나 깨부수는 데 기여하는 변혁적 권력 노릇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명섭에게 지식인이란 이런 지식권력을 긍정적인 의미로 활용하는 이들, 즉 낡은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렇지만 지식권력을 무기로 삼아 시대의 난제와 맞붙어 싸우려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지식권력을 되돌아봐야 한다. 비판받기를 거부하고도 타락하지 않은 권력은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 지식인에게는 그런 비판과 감시와 견제의 일차적 주체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지식인은 스스로를 감시와 비판과 견제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타락의 위기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그래서 고명섭은 지식인이란 “자기 자신에게 개입해 자기 자신을 들볶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명섭의 『지식의 발견』은 자기 자신을 들볶은 사람들의 노력을 충실히 소개한 책이기도 하다.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 우선 자기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뿌리박힌 서구중심주의를 떨쳐내려 사유하는 사람들,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언어와 개념으로 사유하는 사람들, 그렇게 해서 나온 성과로 우리 현실을 진단하고 바꿔보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따라서 그의 ‘발견’은 이중적이다. 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를 통해서 한국 지식계의 쟁점과 그 지형도를 ‘발견’하고, 그 지식인들과의 간접적인 대화를 통해서 우리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의 발견 속에서 고명섭은 그 자신은 물론, 독자들 역시 자기 자신을 들볶음으로써 사회 공동체 문제에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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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12:01 2008/08/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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