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에 올렸던,「고미숙, 이준익을 말하다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2008. 7.28) 포스트를 기억하시나요? 그 포스트 맨 아래, “고미숙-이준익 대담” 깜짝 이벤트 소식을 전한 바 있습니다. 비록 여러분의 참여는 저조했지만(ㅜ.ㅜ), 세상에 라이브만 재미있으란 법 있습니까. 꼭 오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못 오셨던 분, 소심한 성격 때문에 낯선 공간에 발 들이는 것이 꺼려지셨던 분들을 위해 대담 현장을 동영상으로 담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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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고미숙 지음, 『이 영화를 보라
이번 대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씀드리자면, 얼마 전 그린비에서 출간된 고미숙 선생님의 책 『이 영화를 보라』가 큰 역할을 했더랬지요. 고미숙 선생님은 책에서 이준익 감독님의 작품 두 편을 (<황산벌>, <라디오스타>) 다뤘습니다. 이 책을 읽은 최석환 시나리오 작가님(이준익 감독의 모든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신 분)이 영화사에 "만든 사람보다 영화를 더 잘 읽은 사람이 있다"고 전했고, 이후에 <님은 먼곳에> 시사회에 연구실 식구들을 초대하면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준익 감독님과 영화사 분들의 연구실 방문은 시사회 초대에 대한 답례로 이루어졌습니다.  

인문학과 영화, 그 멀고도 가까운!
"영화는 있는 것들을 재구성해서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있는 세상을 다른 다양한 면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준익, 고미숙-이준익 대담:「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중에서)

'있는 세상’은 아마도 우리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경로만이 '있는' 것이라는 착각에 자주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있는 것'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서 본다면, '가능한 것'까지를 포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준익 감독님의 영화들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가능한 것’, 그러니까 단선적인 삶의 경로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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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현장 : 연구공간 '수유+너머' 공간플러스>

대담 내내 두 분은 서로의 이야기에 어울리고, 때로는 맞서면서 인문학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그런 '어울림과 맞섬' 가운데 흐르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위와 같은 이준익 감독님의 영화관 속에 녹아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이 영화를 통해 보여 주고 싶은 '가능한 세계', 늘 보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본 '관계'들을, 고미숙 선생님은 인문학적 개념과 문장들 속에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 가족, 법 등 근대성이 만들어 낸 허구적인 표상체계 외부를 어떻게 실재하는 삶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연구실('수유+너머')은 그것을 구현하는 곳이다."
(고미숙, 고미숙-이준익 대담:「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중에서)

고미숙 선생님의 지난 작업들 역시 저런 표상체계를 어떻게 전복하고 다른 삶을 창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저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은 "인문학자들이 온갖 개념을 동원해서 하는 이야기"를 이준익 감독은 영화의 장면 속에서 쉽게 풀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준익 감독님이 영화에서 보여 주는 장면들, 고미숙 선생님이 책에서 말하는 개념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사람들이 실제 살고 있는 모습들은 바로 그런 점에서 겹쳐집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렇게 '멀리' 있었더라도, 금방 가까워 질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평소 고미숙 선생님은 '자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십니다. '자의식'을 버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의식의 성(城)에 갇혀서 타인과 감응하지도 못하고, 더불어 정작 자신의 '능력'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내가 이렇게 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며 망설이는 우리의 모습이 '자의식'의 폐해를 아주 잘 드러내 보여 주는데요,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에 이미 상황은 모두 지나가고, 어느새 우리는 패배감을 내면화 시키곤 합니다.

이준익 감독님 역시 인문학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학문"이라고 정의 하면서, 중요한 것은 고립된 개인의 '자의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자의식'이 조금이라도 쌓이려고 하면 바로바로 비워 내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영화 <라디오스타>의 동강다리 장면은 이준익 감독님이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영화 속에서 박민수(안성기)와 최곤(박중훈)은 각자에게 서로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관계'입니다. 그들은 그 '아무것도' 없는 자리를 '우정'으로 채우고, 또 비워 냅니다. 이 영화 속 대화의 흐름이 바로 "우정의 연대"를 말하는 고미숙 선생님의 지론과 동일한 선을 그리는 것이고요.

<님은 먼곳에>와 남성적인 이준익

이준익 감독님의 신작 <님은 먼곳에>는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립니다. 한쪽에서는 '이게 무슨 여성성이냐, 남성의 시선으로 본 여성성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준익 감독의 어떤 작품보다 좋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고미숙 선생님은 "<님은 먼곳에>는 오히려 여성성의 과잉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남성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준익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도, 전쟁을 명분 없는 자들의 개 싸움(<황산벌>)으로 본다는 점에서, 가족이라는 표상 밖에서 우정의 연대를 만들어 낸다는 점(<라디오스타>)에서 '소수적 시선'을 끝까지 유지한 작품들로 본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이준익에 대한 비판은 남성-여성의 이분법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지배적 척도(다수성)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문합니다.


<님은 먼곳에> 중에서

이준익 감독은 <님은 먼곳에>의 주인공 '순이'가 당대의 규범들과 끊임없이 맞서고 있고, 자신의 삶의 지속적으로 개척해 간다는 점에서, 이것은 절대로 반여성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중이 그렇게 읽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닌 것이라고 합니다. 소통은 늘 관계 맺는 양쪽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들은 후에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위에 이야기한 ‘자의식 버리기’와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부여잡고 있는 ‘자의식’에 갇히는 순간, 그래서 타인의 이야기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고립 속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인문학과 영화는 어떻게 만나는가?

인문학은 개체들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요? 영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 죽이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영화들도 있겠지만, 모든 영화가 특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세상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인문학과 영화가 어떻게 만날 수 있으까라는 질문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그것은 이미 낡은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텍스트가 발휘하는 영향력이 엄청나게 작아졌고, 영상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세대가 출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고미숙 선생님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상 문화 전반에 흐르는 ‘내용’을 문제 삼습니다. 그 ‘내용’을 지탱하는 것은 인문학적 사유에서 나오는 ‘서사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미숙 선생님이 이준익 감독님의 영화를 보며 한 권의 책(『이 영화를 보라』)을 쓴 것처럼 ‘감응’을 통해 영화도, 순수인문학도 아닌 다른 컨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텍스트의 자리를 영상이 대체한다’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준익 감독님의 이야기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대중 각자의 창작력, 표현력이 높아지고 있음을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찍고-편집해서-업로드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컨텐츠들이 큰 파장을 불러 오는 경우가 점점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요컨대 이준익 감독님의 표현에 따르면, “6mm 카메라가 세상을 바꾼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인문학’이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영화적인 ‘감각’과 조응하는 인문학적 ‘깊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극대화된 ‘감각’이 ‘깊이’를 만날 때, 끝을 알 수 없는 ‘깊이’가 ‘감각’을 만날 때 양자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여담

고미숙 선생님도 한 말씀 길고 산만하게 하시기로 유명한 분인데, 이준익 감독님 역시 고미숙 선생님과 견주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산만함과 말씀의 길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대화를 지켜보는 내내 대담 주제 그대로 ‘어울림과 맞섬’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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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에 열중하고 있는 두분_이미지 출처 "연구공간 '수유+너머'" 웹진(바로가기)>

그리고 대담 시작 전에 고미숙 선생님이 이준익 감독님의 사주를 봐드렸는데, “치밀하다”, “마음 속에 든 것은 크지 않은데, 밖으로 나오는 것은 엄청나게 많다”, “성격이 모난 곳이 없고, 관운이 있어 리더기질이 있다” 등등의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더 놀라웠던 점은 역시 영화를 만드시는 분이라 그런지, 고미숙 선생님의 말씀을 그때그때 바로 ‘서사화’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짜 여담을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주말 내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온몸을 던지며 놀고, 휴식을 위해 월요일(7월28일)에 휴가를 냈던 저는, 갑작스레 대담 일정이 잡혔던 관계로 휴식을 뒤로하고 출근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흑)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담내용이 워낙 재미있어서 피로가 확~ 날아갔다는 그런 이야기입죠. ^^ 이후에도 이런 급! 깜짝! 이벤트가 있을 텐데, 요번처럼 외면치 마시고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정리 웹기획팀 정군

2008/08/08 12:23 2008/08/0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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