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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 : 「도강록」보충 설명

지난 시간까지 고미숙 선생님께서 강의했던 「도강록」은 『열하일기』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열하일기』전체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부분이고, 연암이 청나라에 접어든 후에 느낀 강렬한 감응이 글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도강록」이 얼마나 중요한 텍스트인지는 『열하일기』의 여러 판본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청나라에서 돌아온 연암은 3년에 걸쳐 『열하일기』를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도강록」부터 마지막장까지 정리하는 동안, 한 장이 완성될 때마다, 친구며 지인들이 그 글을 베껴 가며 읽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베껴 간 후 수정된 원고들은 처음 것과 내용에 차이가 있었고,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중요한 판본만 무려 일곱 가지나 되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여러 판본들 모두에 적용되는 공통점은, 다른 글들은 빠지기도 하고, 더 채워지기도 하는데 반해 「도강록」은 꼭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도강록」은 중요하면서도, 재미있기까지 한 아주 드문 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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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캔들>에서『열하일기』를 들고 있는 전도연.


「성경잡지」와 성경에 대하여

오늘 우리가 다루는 부분은 「도강록」에 연이어 나오는 「성경잡지」부분입니다.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에 접어든 연암과 그 일행들은 요동벌판을 거쳐 성경(지금의 심양)에 들어갑니다. 「성경잡지」는 바로, 성경에서 있었던 5일간의 기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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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여정도>_성경의 위치

성경에 관해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은 연암이 처음 만난 청나라의 대도시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큰 규모의 도시를 난생 처음 보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성경엔 청나라의 1,2대 황제의 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곳이 만주족들이 처음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아직 중원 전체를 통일하지 못했던 시기에 처음 나라를 세우고 수도로 삼았던 곳이라는 의미죠. 그래서 그곳을 두고, 만주족의 고향, 청나라의 발원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청나라 동북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죠. 여하튼 그 큰 도시 성경에서 연암은 많은 친구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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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고궁>_자금성을 제외하고 중국에 현존하는 최대의 궁전.
그 중 최고의 건축물로 꼽히는 봉황루
. 200여년 전 연암도 저 고성에 들렀을까요?

그런데, 청나라 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청나라 여행도 처음이었던 연암은 어떤 방법으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을까요? “‘우정’은 말로 하는 게 아니야!”라고 데꾸 할 열혈독자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멀뚱히 보는 것만으로 친구가 되긴 어렵습니다. 연암이 청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했던 방법은 바로 ‘필담’筆談이었습니다. 글로 대화를 하는 것이죠. 철도 들기 전부터 유학교육을 받았던 연암에게 한자漢字를 이용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연암이 아니라, 청나라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도 사대부가 아니면 글을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이는 청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필담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일정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암의 호기심, 왕성한 지식욕 - 우정의 확장

연암이 청나라에서 사귄 친구들 역시 그들 각자가 사는 동네에서 꽤 알아주던 지식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여하튼 성경에서 연암은 마치 질문하기 위해 청나라에 간 사람처럼 온갖 호기심을 마음껏 발산합니다. 여기서 연암의 질문 시리즈를 잠깐 볼까요?

(성경의 객점에서 만난 노파에게) “댁엔 자손이 없으신가요?”
(낙타를 못 본 것을 한탄하며 ) “그 꼴이 어떻게 생겼더냐?”
(낙타가 지나가는 것을 알리지 않은 하인에게) “이 다음부터는 처음 보는 물건이 있거든 졸  때건 식사할 때건 무조건 알려야 한다. 알았느냐?”
(강가에서 만난 노파에게) “저 나귀가 모두 당신 댁에서 기르는 것이오?”
(나팔을 사달라고 조르는 손자를 둔 노인에게) “근데, 이 개는 어디 출신입니까?”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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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지만, 미처 보지 못했던 바로 그 낙타!!

사방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질문하고, 그걸 기록하고..... 이런 점에서 보면 『열하일기』는 요즘 말로 ‘인터뷰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연암의 성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는 말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구체적으로는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통해 그 사물을 기억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온갖 질문으로 어른들을 괴롭힙니다. 그만큼 머리 속에는 왕성하게 지식이 쌓여 가는 것이구요. 연암은 나이 마흔 셋까지 그런 왕성한 지식욕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 등에 억눌려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체면을 생각해서 자신의 모르는 바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겠지만, 연암은 오히려 그것을 확실하게 드러내 말하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 줍니다. 모르는 바를 밖으로 드러낼수록 모르던 것의 크기는 줄고, 활발한 지식의 생산작용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과 지식욕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계속 쏟아내는 연암의 질문이 그의 우정을 확장하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성경잡지」안에 있는 두 편의 글은 그러한 점을 아주 잘 보여 줍니다. <속재필담>과 <상루필담>이 그것입니다. <속재필담>은 '예속재'라는 골동품 가게에서 수재(수재는 과거시험을 볼 자격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섯 사람과 나눈 대화의 기록입니다. <속재필담>에서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당시 유행한 ‘고증학’의 영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상루필담>은 '가상루'라는 비단상점에서의 대화를 엮은 것인데, 주인장 여섯 사람과 술을 마시며 밤새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 대화에서 연암은 사람들 각각의 고향이며, 관심사, 성경에서의 일상 등을 물으며 친분을 쌓아 갑니다.


18세기 청나라, 위조의 시대 풍요의 시대

앞서, 연암이 예속재에서 수재들과 나눈 필다믈 통해 당시 유행했던 고증학의 영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죠? ‘고증학’이 발달했다는 것은 그만큼 ‘위조품’이 많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진품을 간파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전사가 “이거 하나는 반드시 알아 두셔야 합니다. 대개 골동품은 흙에 묻혔던 것들은 청색靑色이 나고, 물속에 잠겼던 것들은 녹색綠色이 나는 법입니다. 그리고 무덤 속에 있던 그릇들은 흔히 수은빛을 내지요.”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상권, 본문 P.181)

한데, 이렇게 위조가 횡횡했다는 이야기는 그 시대가 꽤 풍요로운 시대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다음에 골동품과 같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을 찾기 때문입니다. 흔히 청나라의 태평성대를 이야기할 때 ‘강희·건륭제 시대’를 꼽는데, 연암과 그 일행이 청나라에 간 이유가 바로 그 건륭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온갖 문물이 흘러들어오고 그것이 청나라 특유의 문물과 뒤섞여 문명의 장관을 이루던 시기에 청나라에 갔으니, 위조 골동품이며 하는 사치품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여튼 연암의 여행의 시기도 그렇게 적절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연암의 역사관과 조선 사회 풍자

『열하일기』 곳곳에는 연암의 역사관과 조선 사회에 대한 풍자가 스며 있습니다. 특히 「성경잡지」에는 그의 역사관이 아주 잘 나타나있습니다. 이를테면 요동반도의 움직이는 ‘평양’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움직이는 평양’이란 고대에 수도를 옮기거나 할 때, 지명도 함께 옮기는 풍습에 따라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성이 요동에도 있었고, 지금 한반도의 평양에도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연암은 요동도 과거에는 조선의 땅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 말 속에 ‘팽창주의적’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을 한 맥락 속에는 오히려,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를 사대하고, 청을 깔보며,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돌아볼 줄 모르는 조선 사대부들에 대한 비판이 전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청나라 사람 이귀몽과의 대화에서는 연암의 계급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도 엿보입니다.

연암 “중국의 사민은 제각각 직분이 나뉘었겠지만 귀천의 차별이 없고, 따라서 혼인을 하거나 벼슬을 하는 데도 구애받지 않겠지요?”
이귀몽 “우리나라에서 벼슬아치들은 장사치나 공장이들과는 혼인을 금합니다. ··· 돈이나 쌀을 바치면 겨우 생원 정도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또한 향공을 거쳐 거인에 오르지는 못합니다.”
연암 “한 번 생원이 되기만 하면 선비로 행세하는 건 허용됩니까?”
이귀몽 “그렇습니다. 제생에는 늠생 · 감생 · 공생 등 허다한 명목이 있지요. 이들은 모두 생원 중에서 선발되기 때문에 일단 생원이 되기만 하면 구족을 빛나게 하지만, 대신 사방의 이웃들이 해를 입습니다. 왜냐면 관권을 틀어쥐고 향리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게 생원들의 전문기술이거든요.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상권, 본문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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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作 쌍검대무
"조선후기 양반의 명분과 체면은 이런 것이었을까요?"

위 대화는 청나라에서의 사회구조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저것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벌써 연암이 조선 사회를 바라보는 입장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대화는 연암의 작품 『양반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갖 명분과 체면을 빼고나면 빈 껍데기만 남는 것이 연암이 본 양반의 이미지였던 것입니다.

*  *  *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의 「성경잡지」편을 모두 읽은 후에 동영상을 보시면, 훨씬 생생하고 즐겁게 연암의 여행길을 따라가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 동영상에서 소리내어 함께 읽는 구절은 똑같이 따라 읽어 보세요. 책 읽는 소리가 텍스트의 결을 더욱 풍부하게 만듭니다.

다음 시간은 연암이 청나라 문명이 "기와장과 똥부스러기"에 있다고 말하는 유명한 구절이 실린 「일신수필」입니다. 미리 읽고 강의를 들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
- 정리 마케팅팀 서현아

<열하일기 1강, 2강 동영상은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린비 마케팅팀 신입사원 서현아입니다. 입사한 지 두 달만에 드디어!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 역사적인 날을 맞게 됐네요. 앞으로는 자주 자주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세요 :)

2008/08/21 11:15 2008/08/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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