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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를 자른 신입사원 서군. 그의 고백이 시작됩니다.

어느 신입사원의 자기 고백입니다.(전 지난 6월에 그린비에 입사했습니다. ^^)
책을 펼치자마자 제 눈을 사로잡은 구절이 있었으니,
“세상의 책들은 네 등급으로 나뉜다. 세계를 변혁하는 책, 세계를 해석하는 책, 세계를 반영하는 책, 세계를 낭비하는 책이다.” (본문 p.12)

그린비 입사 전, 면접을 보면서 아마도 제가 가장 많이 써먹은(하핫)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 그린비에 들어오고 싶은가?’하는 질문에 ‘그린비는 네 등급의 책 중 세계를 변혁하고 해석하는 책을 내는 출판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뭐, 그런 대답을 했던 것 같네요. 출판학교에서 예비 출판마케터로 교육을 받고 있을 때, 사장님+께서 강의 시간에 해주셨던 말씀이었죠. 그린비의 슬로건도 ‘나를 바꾸는 책, 세상을 바꾸는 책’이라는 사실, 다들 알고 계시죠? 그때부터였을까요. ‘그린비’는 세계를 낭비하는 책은 절대 만들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작정 책이 좋아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훨씬 전부터 저에겐 세계를 변혁하고 해석하는 책을 펴내는 출판사에 대한 로망이랄까, 그런 게 있었습니다.

+ 그린비 사장님에 관해서는
'니 꼬리를 물어주마' 시즌2 '인물열전'편(바로가기)을 참조하세요.

그런데, 아뿔사. 막상 세계를 변혁하고 해석하는 책이 어떤 책인지, 내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은 도대체 어떤 책인지,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심지어 그동안 읽어 왔던 책들 대다수가 세계를 낭비하는 책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감히 이 신성한(?) ‘그린비’라는 공간 안에 내가 있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신입사원이라 일 배우며 적응해 나가기에도 빠듯하다는 핑계로 이 책과 함께 그런 질문일랑 잠시 덮어두었죠. 네, 그냥 피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사 한 달차, 일 년 만에 큰맘을 먹고 미용실을 찾았습니다. 한 시간 동안 머리카락을 잘라 내고(남들은 자른 지도 몰랐지만. 허리까지 길었던 생머리였죠. 고개라도 숙일라치면, 마치 사다코 같았달까요.) 세 시간 동안 빠마를 하면서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빈민이었고, 장애인이었으며, 여성이었고, 저학년자였던” 최옥란씨의 외로운 죽음을 이야기한 「최옥란을 기억하며」의 <수만의 이름으로 ‘나 혼자 가겠습니다’>에 이르렀을 때 그만, 미용실 한가운데서 참았던 눈물을 훔치고 말았더랍니다(여자주인공이 불치병으로 죽어 가는 그런 소설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 소설 많이 읽었‘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그런 소설 중에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굶주려 뼈만 남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지고, 새로 나온 마놀로 블라닉을 보면 그게 갖고 싶어서 잠이 안 온다. 이것도 저것도 해야겠고, 이쪽도 저쪽도 놓칠 수 없다. 내겐 이 두 가지 욕망이 모두 다 중요하다.
(백영옥 『스타일』중에서)

최근, 논란이 많았던 소설이죠.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20대 여성의 표본(? 아니라고 하신다면, 그냥 우기지요.)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잡지 가져다 드릴까요?’하고 물어보는 미용실에서 10만 원대의 머리 손질을 받으며,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를 읽고 소수자의 아픔에 가슴이 미어져 울고 마는 것이 바로 ‘저’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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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텐그로스펠드 作 "이디오피아의 굶주림" 과 마놀로 블라닉의 슈즈
저 두 가지 욕망 중 어떤 것이 더 근본적이고, 희망적인 욕망일까요?
반대로 어떤 것이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일까요?

두 달이 지난 지금 저는 어떻냐구요? 아직도 주말이면 종종 백화점을 거닐며 예쁘고 반짝거리는 것들의 유혹을 받기도 하고, 세상을 낭비하는 것들에 여지없이 눈길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 출판사 책들과 블로그의 컨텐츠들을 읽고 보면서 세계를 변혁하고 해석하는 힘을 느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의 저자, 고추장 고병권 선생님께서 이 책의 등급을, 꿈은 첫번째에, 뜻은 두번째에, 현실은 세번째나 네번째가 아닐지 우려 하셨는데, 최소한 뜻은 이루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쓰인 이 책의 글들은 2008년인 지금 읽어도 어느 글 하나 지금 이 순간순간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막 쓰인 글처럼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낭창한 신입사원 한 명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니까요.

- 마케팅팀 서현아

2008/08/22 11:07 2008/08/2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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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밑줄긋기_[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고병권]

    Tracked from ZZiRACi + Palmmy's BLOG 2008/08/23 00:18  삭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 고병권 지음/그린비 우리는 ‘대표’(代表, representative)라는 말을 싫어 한다. 누가 누군가를 대표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표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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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똘씨 2008/08/22 11:24

    아...정말 신입사원 '서군'이 쓴 글 맞는거야? 감탄과 탄식. 잘 읽고 간다.

    • 글쓴이 2008/08/22 11:34

      똘씨님, 반갑습니다~(하핫)
      네.. 정말 신입사원 '서군'이 쓴 글 맞습니다 T^T

      감사해용 :) 그리고, 보고싶어요 똘씨!

  2. 한방블르스 2008/08/22 13:32

    이 글 읽고 벽을 보고 '자아비판'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너무 앞만 보고 살았나 봅니다.
    잘 보았습니다.

    • 그린비 2008/08/22 14:07

      한방블르스님~ 반갑습니다 :)
      이 글을 읽고 저와 같은 변화의 새바람(?)이 분다면 더할나위 없이 기쁘겠사오나, '벽' 말고 '책'과 함께 하심이 어떨까요 ^-^

  3. 밍기뉴 2008/08/22 17:14

    우리 이쁘니가 이렇게 멋져졌다니.
    으흐흑. ㅠㅠ

    • 그린비 2008/08/22 17:24

      꺅! 반가워요, 밍기뉴님! (속으로, 언니 ♡)
      근데 다들 왜 이런 반응일까요 으흑흑, 제가 출판학교 다닐 때 어찌했길래.. 반성모드 들어갑니다.ㅠ

  4. ZZiRACi 2008/08/23 00:19

    ^^ 다행히 다시 블로그가 원상 복구되었네요~
    좋은 글들 많이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