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걸 즐기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생각할 때 두렵기 때문이다. 낙천주의의 근거는 절절한 공포감이다.”
100% 위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온전히 ‘자기의 느낌과 판단’으로만 타인을 마음껏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혹은 비판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진짜 나의 모습보다 훠얼씬 더 중요한 시대. 우리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누구를) 좋아하는가보다 우리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사라지고 ‘남’의 눈과 말만이 중요해진 요즘의 우리는 그래서 늘 적당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합니다. 남을 적당히 좋아하(는 척하)고, 남에게 적당히 좋은 사람이 되(는 척하)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거죠. 남의 잘못에 화를 내며 비판할 만큼 가깝지도, 그렇다고 모른 척 눈 돌릴 만큼 멀지도 않은 관계이지만, 굳이 ‘남’일에 끼어들지는 않을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 모호한 거리감을 우리는, ‘쿨’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_ KBS드라마「굿바이 솔로」중에서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싫고, 듣는 것도 싫은 사람들. ‘쿨’의 용법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따라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감동이나 벼락과도 같은 깨달음을 얻기가 힘들어집니다(일찍이 명작 드라마「굿바이 솔로」에서 종옥이 언니는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쿨할 수 있느냐”라는 대사를 치신 바 있거늘). 어쨌거나 이렇게 ‘쿨’이 너무나도 오해되고 있는 이 시점에 필요한 사람이 바로바로 고미숙 선생님입니다. 아, 그러니까 오늘은 지난 주 ‘탈주하는 아이돌’에 이어 ‘탈주하는 인문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은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걸 거의 전문가 급으로 하는 분으로서, 그러니까 남의 눈은 정말 신경도 쓰지 않으시는 데다가, 학적 기반을 가지고 무려 사주를 즐기시는 분이고, 에또, 권력 앞에서도 태연하게 코를 파실 수 있을 정도로 담대하시고, 게다가 나이 대비 최고의 유머를 자랑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 그러니까 지금까지 여러분 마음속에 간직했었던,, 어떤,, 그런,, ‘인문학자’의 상이 있었다면, 죄송하지만 오늘 지우셔도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후후.
공부 빼고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에 별로 욕심이 없으신 고미숙 선생님은 돈이나 사물이나 권력 등등에 집착이 없다는 점에서 ‘쿨’한 분이십니다만,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거리로 나가 광우병 시대에 진짜 문제는 위생권력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길거리 강연을 하실 정도로 ‘열혈’이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강연 요청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곳이 제주도라도, 또 아무리 자그마한 단체라도 흔쾌히 출장강연을 나가시는 선생님의 열혈은, 당신의 쿨함을 절대적으로 압도하지요.

"진정 평화를 소망한다면 자본에 뿌리박은 욕망의 배치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선생님과의 첫만남부터 강한 비판(전문용어로 구박이라고 하지요)을 받은 저는 선생님의 시의적절하고 따끔한 쓴소리에 감화감동을 받은 아해 중의 하나입니다만(이런 저, M인가요ㅜ_ㅜ!), 선생님의 구박스러운 가르침을 듣고서 저는 타인에게 필요한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남의 눈보다는 자신의 직감과 판단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음.. 했을까요? 했겠지요……). 삐뚤어진 마음을 가다듬고 그 비판을 되새기노라면, 선생님의 그 쓴소리에는 대상을 향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제 착각이라고 하지는 않으실 거죠?! 흑).
선생님은 그렇게 세상과, 사물과, 사람들과의 장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분입니다. 컴퓨터 시대에 사는 우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란 것은 필요하면 언제라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에(컴맹인 주제에 겁도 없이 컴퓨터 예를 들다니;ㅁ;), 어떤 대상에 대해 강한 애착이나 증오도 갖기 힘들어져, 세상을 껴안지도, 세상에 분노하지도 못하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의사소통 수단이 너무나도 많아진 첨단의 시대에서 오히려 소통불구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구식(?)이지만 누구보다도 활발하고 건강하게 사회와 사람들과 소통하는 선생님은 모호한 거리감을 훌쩍 넘어, 옳지 않은 것에는 옳지 않다고 비판을 쏟아 부으면서 ‘적당히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대충대충 적당히, 보편적인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님을 설파하고 계시는 것일지도 모르겠고요(물론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그러한 선생님의 관계맺기는 세미나를 통해서, 찰라를 이용한 구박을 통해서, 또 선생님이 쓰신 책이나, 강연을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어쨌거나 선생님은 그 어려운 ‘지행합일’적 태도로 저를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지게 한 장본인이십니다. 생각하는 대로, 믿는 대로 행동하시는 모습은 타의 귀감이 되었기에 이 상을 수여.. 가 아니라 제 마음을 드립니다(선생님! 이젠 제 사랑을 받아주실 때도 됐잖아요. 흑).

_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활동 중인 고미숙 선생님.
2003년, 열하일기에서 (일찍이 아무도 한 적 없는)웃음의 코드를 찾아낸 그 책,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선생님은 당연한 것들을 뒤집어 놓고, 고전의 엄숙함을 뒤집어 놓으신 바 있습니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로는 공부의 무거움과 지겨움을 뒤집어 놓으셨고요. 뭐, 이렇게 보면 뭔가 뒤집어 놓는 것이 선생님의 특기인 것 같네요. 후후. 이런 식으로 보편적인 것의 무가치함을 온몸으로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보면, 내가 당연하게 믿고 있던 것들, 당연하게 행동하던 것들을 얼마나 허물어야 직성이 풀리실까 하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그리고 그 치열한 사유와 비판과 행동의 결과가 바로 ‘책’으로 이어지는 까닭에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사람들은 그렇게도 감동을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마냥 좋은 사람이 되는 걸 거부하고, 정규직으로 교수가 되는 것도 거부하고, 적당히 온건한 학자가 되는 것도 거부하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어하고, 실제로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없는, 도움 안 되는 글쓰기를 거부하며, 행여 돈을 많이 벌더라도 ‘잉여’가 되는 것을 싫어하시는 약간 까칠한 미숙 씨. 더 대단한 건, 고미숙 선생님은 자기를 좋아하는 것도 신경쓰지 않으시지만(그래요, 저 외로운 사랑을 하고 있어요, 흑) 그렇다고, 자기를 싫어하는 것도 별로 신경쓰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쏘쿨..하시죠-_-? (오, 쾌녀!!)
그러한 삶의 일관된 태도는 진정, 어떤 것에 기운을 쏟고, 열정을 쏟아야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거라 생각하면서……! 오늘도 당신에 대한 그 많은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자기를 싫어하거나 말거나, 욕하거나 말거나 다시 뒤돌아서 책을 펼치실 선생님께 존경과 사랑♡을 바칩니다. 선생님은 저의 영원한 ‘호모 쿵푸스’이십니다.
- 편집부 임유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고미숙 씨 특유의 문체가 아주 잼나죠. 호모 쿵푸스. 수유+너머에서 반 정도 읽다가 못 봤는데, 이권우씨의 <호모 부커스>가 나온다죠? 기대됩니다. 이제 <글쓰기의 달인>도 나올 차례군요....
행복한상상님, 안녕하세요.
네~ 이권우 선생님의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가 드디어 나왔답니다. '글쓰기의 달인'도 곧 나오지 않을까요? 행복한상상의 '책읽기-글쓰기-말하기'처럼 항상 붙어다니는 아이들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