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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라틴아메리카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축구입니다. 매년 월드컵 때만 되면 브라질,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신들린 개인기에 열광하게 됩니다. 두번째로 떠올리게 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삼바 축제? 잉카유적? 체 게바라? 룰라 대통령? 차베스? 등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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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라틴아메리카하면 대학교 1학년 때 읽은 『니카라구아 혁명사』(정명기 지음, 한마당, 1986)가 떠오릅니다. 1970년대 니카라과 혁명 역사를 정리해 놓은 책인데, 당시 도서관 구석 책장에 꽂혀 있던 것을 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미 10년도 더 지나 버려 내용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당시 「칠레전투」(The Battle of Chile;The Struggle of a People Without Arms)라는 영화와 함께 알 만한 사람들은 찾아 읽는 ‘혁명사’ 책 중 한 권이었습니다.

책과 영화로 접한 라틴아메리카사(史)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당시 읽었던 책 내용을 ‘일반화’ 시킨다면 아마 이렇겠죠. ‘매판자본가(아.. 오랜만에 써 보는 표현이군요^^)와 독재정권에 대항해 민중들이 일으킨 혁명의 성공. 그러나 혁명의 기쁨도 잠시뿐, 미국을 등에 입은 군부와 자본가 세력의 반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신입생 때여서 그런지 이런 내용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번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 원고를 처음 받았을 때 니카라과 혁명 실패 이후 라틴아메리카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었습니다. 그동안 무려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가 버렸으니까요. 네.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칠레에는 군부 세력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이양했고, 브라질에서는 룰라, 베네수엘라에서는 차베스, 볼리비아에서는 모랄레스가 각각 정부 수반이 되었습니다. 차베스가 주도해 소위 ‘남미좌파블록’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라틴아메리카는 ‘종속이론’과 ‘해방신학’으로 기억되던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곳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에서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를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 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서구의 편견을 비판하고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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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룰라, 차베스, 모랄레스.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의 대통령들.

제가 이 책을 편집하면서 느낀 것은 유럽과 미국이 아닌 제3세계 학문의 가능성이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비서구-비백인 계열에 속한 사회의 주류 학문은 대부분 서구에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서구의 이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은 달랐습니다. 사실 라틴아메리카야말로 가장 서구적일 수밖에 없는 지역입니다. 400여 년 동안 유럽의 식민지였고,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들이니까요.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할 필요성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서구의 지식을 통해 서구중심적인 사고를 비판합니다.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제3세계에서 ‘근대’라는 개념은 서구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 역시 근대의 시기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변수는 ‘서구와의 접촉’ 즉 ‘개항’의 충격입니다.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은 근대가 서구에 의해 이식되었다는 기존의 해석에 의문을 던집니다. 서구의 잣대에 의해 ‘근대적’ 또는 ‘비근대적’이라고 나눌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거지요. 심지어는 도리어 유럽이 라틴아메리카에 의해 ‘근대’화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근대라는 개념 자체가 타자를 상정할 때 가능하니, 라틴아메리카라는 타자의 발견이야말로 서구를 근대로 규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서구의 개념을 전복시키는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의 시도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학문의 주체성은 바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구의 개념을 이용하되, 주체적으로 변용해 활용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은 이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의 고민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역시 서구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힘차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의 작업은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적어도 저에게 『라틴아메리카 근대를 말하다』는 살아 꿈틀대는 라틴아메리카를 보여 준 ‘의미 있는’ 책이었습니다. 앞으로 한국 역시 라틴아메리카처럼 살아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책도 편집해 보고 싶습니다.

- 편집부 진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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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8 10:52 2008/08/2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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