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시간을 찾아서 - 모모의 시간과 하이데거의 시간


- 연구공간 '수유+너머' 오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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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중에서, 아이들의 시위장면.
플래카드의 오자들이, 촛불시위대를 '무식한 대중'으로 취급했던 것과 묘하게 겹칩니다.

‘시간절약’, 이 얼마나 닳고 닳은 말인지. ‘빨리빨리’는 또 어떤가. 본인의 행동이 느려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암!). 시간표와 시험으로 기억되는 학교를 떠나도 시간을 재단하고 재촉하는 곳은 너무도 많다. 식사 시간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죄스러웠던 아르바이트의 기억, 출근시간 지하철 문이 열리며 밀려오던 한 무리 속도감의 기억, 1분 단위로 퇴근 시간을 체크하던 기억, 귀가해 한시라도 빨리 눈을 붙여 수면 시간을 연장하려했던 나 혹은 어떤 이들의 기억. 조각조각 시간을 절약할 때마다 위안이 되어주던 것은, 언젠가 반드시 보상처럼 돌아올 그동안의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시간 절약. 나날이 윤택해지는 삶! 시간을 아끼면 미래가 보인다!
더욱 보람찬 인생을 사는 법ㅡ시간을 아끼라! (『모모』 본문 중에서)

그런데 여기,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리의 시간은 도둑맞고 있다 소리치며, 한술 더 떠 ‘시간저략’ 자체에 의구심을 품는 수천의 어린이들. 이 행렬은 도시 한복판을 지나가지만 끝내 여느 어른들의 눈에도 띄지 못한다. 단 한사람, 시간의 영역 밖에 사는 세쿤투스 미누티누스 호라 박사(초·분·시 박사?!)를 제외하고.

1. 회색신사들의 시간
-‘10억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족의 라이프 플래너입니다(푸르덴셜 생명)’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 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 미하엘 엔데의 장편 동화 『모모』의 부제이다. 등장인물도 어딘지 이상한,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닮은 이들이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홈리스 소녀 모모, 할아버지 거리 청소부 베포, 수다쟁이 프레카리아트(불완전고용노동자) 기기와 그 밖에 생김새도 다양하고 성격도 유별난 모모의 친구들, 여기에 시간을 둘러싸며 커다란 대척점을 보이는 호라 박사와 회색신사들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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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투자를 권하는 미래에셋의 광고.
현대의 시간은 늘 '관리'의 대상이 되고, 관리되지 않는 시간은 녹아서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관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누군가의 자유로운 '시간'이 아니다. '화폐로 환원된 시간'일 뿐.

위의 가두시위를 보지 못하게 어른들의 눈을 가린 이들은 회색신사들이다. 중절모에 서류가방, 손에는 생명과도 같은 시가를 물고 있는 잿빛 얼굴의 이 신사들은, 누군가 문득 쳇바퀴 같은 삶을 산다고 느끼는 순간 그들 곁으로 찾아든다. 어느 실버보험 카피처럼 무진단, 무고지, 무심사(라이나 생명)로 찾아드는 회색신사는 전략적 시간 설계사로, 일상을 초단위로 분석하고 즉시 생활지침을 내려준다. “시간은 금이다” 동질의 시간, 이윤을 위한 시간. 이들에게 누구의 시간인가란 질적 차이는 애초에 없다. 시간기록계의 점들처럼 평균화된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게으른 이들은 도태되거나 주변에 폐를 끼친다. 허나 생활설계대로 삶을 충실히 따르는 이에게는 두 배의 시간 이자가 따른다. 잘 쓰면 두 배의 시간-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은 곧 화폐다. 부단히 쪼개어 시간은행에 비축해야 하는 시간-화폐.

이것을 오늘날 한두 시간의 점심시간이 아까워 ‘꺾기’로 알바생들을 내보냈다 부르는 레스토랑의 업주의 태도,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부인의 얼굴이 바뀐다’는 어느 고등학교 1학년 반의 급훈과 결코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을 쪼개 공부할수록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그에 따른 신부감이 바뀐다는 말이나, 1초의 노동시간도 아낌없이 쓰고 절약해 노동자들의 생활을 통제하려드는 업자들의 시간 강박증은, 쪼개도 쪼개도 모자라는 오늘날의 시간의 빈곤을 보는 듯하다. 이런 이들에게 미래는 불안하기만한 미지의 영역이요, 도리어 이 불안이 현재의 추동력이 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보험을 안 들어놔서 식당에서 접시 닦고 있어요’, ‘1억 없죠? 그럼 보험 들어야겠네요’
티비에서 흐르는 보험 카피와 회색신사의 논리가 갈수록 묘하게 겹치는 것은 단지 기우일 뿐일까?

2. 모모의 시간 그리고 하이데거의 시간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사는 내가 구성해내는 것


『모모』에서 시간은 죽은 시간과 산 시간으로 나뉜다.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 때만 살아있는 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살아있는 시간 동안에는 과거 또는 훗날을 걱정꺼리로 삼지 않는다. 아니 삼을 수가 없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곧 과거와 미래를 지금 여기서부터 펼쳐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잡아당기고, 가능한 삶을 현재로 가져온다는 점에서 이는 하이데거의 시간 개념과 닮아 있다.『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본래적 시간을 이러한 시간성을 통해 이해한다. 그가 볼 때 고정불변의 시간은 없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이란 ‘넘들’ 곧 세인들의 시간이며, 대개 회색신사들의 꾐처럼 세인들의 시간에 빠져있는 시간이다. 안타까운 것은 대개 내가 세인들의 세계에 빠져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본래의 시간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와 도약이 필요한데 그것을 통해 하이데거는 매순간 구성되는 나(현존재)의 실천을 부각시켰다. 하이데거가 보는 시간의 ‘시간성’은 온전히 나에게서 펼쳐지는 시간이란 점에서 언뜻 모모의 방향과 닮았다. 모모 또한 회색신사들의 시간, 동질적 시간이자 이윤을 위한 시간에 포섭되지 않았기에 시간에 대한 강박도, 초조도 없었다. 그래서 시간 강박에 빠지고 만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갈 수 있었다. 시간 강박, 그것은 시간에 쫓기는 삶의 징표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보았던 ‘나’의 시간성은, 죽음이라는 단호한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비장한 전사(戰士)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반면 모모는 비장한 전사보다는 유쾌한 탈주자의 이미지를 닮아있다. 모모는 시공간을 샅샅이 뒤지며 좁혀드는 회색신사들을 피해 아예 ‘시간의 영역 바깥’으로 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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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근원지, 호라박사가 사는 '언제나 없는 거리' '아무 데도 없는 집'에 들어선 모모.
"재깍재깍, 똑딱똑딱, 땡땡땡, 여러 소리가 이루는 아름다운 음악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어쨌든 결국 회색신사들의 논리는 통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위협으로 작용했다. 회색신사는 사람들이 저축(사실은 헌납)하는 시간을 먹고 증식하는 ‘곰팡이’였다. 이런 그들의 정체를 알린 이가 다름 아닌 모모였고 결국 그의 친구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던 것이다.
 
3. 시간, 결코 개인의 결단으로 얻지 못할

 회색신사들은 모모를 어떻게 제거할지를 두고 궁리했다. 처음에 그들은 황금 같은 시간으로 타협해 모모를 매수하려 했다. 하지만 모모가 살아있는 한 그리고 친구들과 삶을 공유하는 한 모모에게 시간은 끝없이 샘솟았다. 그 때 어떤 회색신사가 일어나 말한다. 더 이상 친구들이 찾아오지 않았을 때 모모는 필시 자신의 시간을 짐으로 느낄 것이라고. 실제로 친구들이 한 사람씩 포섭되자 모모는 외로움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끝내 모모가 시간의 영역 밖으로 나가 호라 박사와 함께 시간 자체를 멈춰버리자, 회색신사들은 도리어 그들의 논리대로 나=담배=생명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홉스) 상태에 빠져 혼비백산하며 저마다 들고 있는 담배를 빼앗으려 아귀다툼을 벌인다.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동료들이 차츰 위협적인 존재로 변해갔던 것이다. 시가가 타 타버린 자들은 절망한 나머지 다른 동료의 입에서 시가를 낚아챘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수는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줄었다.”
(『모모』중에서)

그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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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作 「기억의 고집」
"시간은 우리에게 다만 비판적인 까망베르 치즈일 뿐이다." (달리의 메모)

시간이 녹아 내리는 달리의 그림에서 우리는 각자에게 서로 다른 비균질적인 시간을 발견할 수 있다.

돌이켜보건대 시간은 시간계획표의 영역처럼 균일하게 흐르는 것 같지 않다. 서두르며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간은 재촉하는 마음을 나무라듯 둔중하게 흐르고, 한밤중 연인과의 통화는 요금명세서의 후환도 잊을 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여기서 나는 결코 ‘서두름’이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자유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라던 누군가의 말처럼 시간 또한 다만 자기 리듬, 자기 속도를 만들어냄으로써 속도의 강제와 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절약으로 표상되는 ‘시간의 경제학’이 아니라 삶에 대한 사유로서 ‘시간의 철학’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시침도 분침도 없는 손목시계. 두 선이 엇갈릴 때 빛을 내는 운명의 시계를 팔에 찬 세쿤두스 미누티우스 호라박사의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를 통해 시간을 다시금 곱씹어보고싶다.

"세 형제가 한집에 살고 있어.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서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이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왜냐하면 셋째를 보려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그래서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하나만 놓고 보면 다른 둘이 똑같아 보이지.

세 형제는 하나일까? 둘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일까?
세 형제가 함께 다스리는 왕국은? 세 형제 자체이기도 한 이 왕국은? "
(『모모』중에서, '호라박사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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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0 11:32 2008/09/1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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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리네 2008/09/10 23:44

    이 책 내이름은 김삼순에도 나왔던 책인데...
    거기서는 이 책 내용이 잘 안살아 아쉬웠었습니다.
    갠적으로 저도 이 책을 무척 좋아했는데...
    이 글을 보며 다시 모모가 생각났네여...
    저도 책장을 뒤져 함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 그린비 2008/09/11 10:42

      미리네님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입니다. 다시 읽는 『모모』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