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진중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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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전국을 불태울 기세로 타오르던 때, 그는 "광화문 대통령"으로 불렸습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 '대통령'이 얼마나 우스운지 보았고,
'대표성'은 대중들이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6월, 광화문이 촛불로 밝혀지던 그 거리 어디쯤에서 진보신당 칼라TV 중계를 하고 있는 진중권씨를 보았습니다. 그때 받은 느낌은? 아,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왜소하고 허름하시구나. 아마 스타 지식인이니, 광화문 대통령이니 하는 그의 수식어들이 그의 이미지를 실제보다 더 크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엑스 리브리스
우리말로 옮기면 “……라는 책에서”라는 뜻으로, 과거에 저자가 남의 책을 인용할 때 사용하던 관용구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인용’과 거기에 붙인 코멘트로 이루어져 있다. (p.10쪽)

예전 어느 글에서 그는 자신이 책을 읽는 이유를 감동을 받고자 함이 아니라 어떤 맥락 속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난 책이 바로 이 책이구요. 엑스 리브리스(발터 벤야민에서 비트겐슈타인, 조갑제, 이문열에 이르기까지 온갖 인용들)에서 그는 그야말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문법적 착각으로 비롯된 낡은 대립을 파헤치고(「반대를 위한 문법적 착각」p.157), 잿빛으로 변해버린 인문학적 문장들을 끄집어내 생동하는 우리 삶과 결합시키고 있으니까요. 삶과 결합하는 순간 텍스트는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이 책의 표지를 한가득 장식하고 있는 그의 얼굴보다, 촛불로 밝혀진 광화문에서 열띤 중계를 하던 그의 왜소한 몸집이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폭력과 상스러움

폭력에서 죽음, 자유, 공동체, 처벌, 성, 지식인, 공포, 정체성, 민족, 힘, 프랙털까지 12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묶인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폭력에 대한 상스러움'입니다.

니체는, 가장 커다란 비판은 상대의 이상을 비웃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신적 폭력이라는 말 속의 ‘신’은 조커(농담하는 사람)다. 대중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협박과 위협의 폭력에는 그들을 이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 희롱, 조록, 우롱의 폭력을. 벤야민의 말대로 “가끔은 횡경막의 발작이 그 어떤 논리보다 더 깊은 지혜를 주는 법이다.” (p.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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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하하하'. 사실 애가 어른에게, 무산계급이 유산계급에게,
여성이 남성에게, 온갖 소수자가 다수자에게 대응하는
가장 싸고 효과적인 방법은 위와 같은 재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하하하’ 터져나온 폭소 속에서 얼떨결에 세상에 나왔다는 이 글은 상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더불어 읽고 있는 저까지 웃음에 감염시켜 버립니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상스러움의 실체는 바로 이 웃음과 유머에 있죠. "폭력에는 폭력으로. 권력이 행사하는 신화적 폭력에는 웃음의 폭력으로" 대응하라.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웃음의 대응전략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그 어떤 철학적 글보다 논리적이고 그 어떤 정치적 글보다 설득적입니다. 잦아드는 웃음 뒤로 찾아오는 섬뜩함. 그 '섬뜩함'의 근원은 그가  '웃음'을 날리는 대상들이 가진 끔찍한 보수성과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폭력성에 있습니다. '촛불'로 표현된 대중의 염원을 비웃고, 모든 가치 보다 앞에 놓인 가치로서 '이윤'에 목을 매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그의 상스러운 웃음을 유효하게 만듭니다. 그가 얼마전까지 광화문을 뛰어다닌 이유이기도 하구요.

나는 이 하나는 알고 있다. 가장 철저하게 살해하고자 하는 자는 웃는다는 것을. 언젠가 나는 그것을 그대에게서 배웠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사람들은 분노가 아닌 웃음으로 살해한다.’ 언젠가 그대가 한 말이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나귀제’ 중에서 인용 p.112쪽)
유머는 우리의 공포 중독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해독제이다.
유머는 이렇게 과도한 진지함과 심각함, 소심함과 호들갑 등으로 뒤범벅된 공포의 상태에 갑작스런 충격을 준다.(『코뮨주의 선언-우정과 기쁨의 정치학』p.310쪽)

아무리 세상이 허접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유머를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유머가 우리를 허접하게 만들지 않을테니 말입니다. 그들이 쳐놓은 일상적 폭력과 몰개그의 그물망에 살짝 웃음을 흘리며 떠나는 우리를 기대해 봅니다.

- 마케팅팀 서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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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30 11:05 2008/09/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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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reserve의 생각

    Tracked from reserve's me2DAY 2008/09/30 16:11  삭제

    도서출판 그린비의 출판/편집 이야기-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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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승 2008/09/30 12:31

    저 이 책 있어요. 좋아하는 책이라서 들고 다니며 자주 읽습니다.

    • 그린비 2008/09/30 13:25

      명승님, 반갑습니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이 책을 읽다가 '푸힛'하고 터진 웃음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랍니다. 명승님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해지네요. ^^

    • 명승 2008/09/30 22:09

      어랏, 저도 그런데요^^ 처음엔 소심하게 웃음이 튀어나와 당황했는데 나중엔 그냥 눈치 안보고 '크흐흐' 웃지요. 책에 푹 빠지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 그린비 2008/10/01 09:39

      크흐흐~ 왠지 더 반가운걸요. ^^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게 또 이 책의 매력이잖아요. 그래서 더 빠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