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에서 80년대를 살아가는 이주노동자
-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 현실과 쟁점


- 연구공간 '수유+너머' 권은영

 “다문화주의의 초점은 문화라기보다는 생존에 맞춰져야 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단속, 추방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화적 공존이라는 슬로건은 공허할 따름이다.”
(오경석,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 中)
1. 아름다운 다문화 사회?

텔레비전에서는 이주민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와 ‘러브 인 아시아’가 한창 방영 중이다. 브라운관 속 이주 여성들은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살면서 겪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혹은 잔잔하게 털어놓는다. 길거리에는 ‘다문화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날리고, 인터넷에는 ‘다문화 축제’를 소개하는 소식들이 올라온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다문화 축제’가 이제는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다문화 공연, 음식 등을 즐기는 다문화 행사는 지역 축제의 단골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리고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한 모퉁이에는 시설이 잘 갖추어진 외국인근로자센터와 이주여성 상담소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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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들의 수다'와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문화 축제.
전체 인구에서 이주민들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이런 프로그램과 행사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다문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이주민 100만 시대, 다문화 사회를 외치는 한국의 풍경이다. 이주민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공영방송을 통해 방영되고, 이주민들과 국민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는 다문화 축제가 열리고, 이주민들이 고민을 상담하고 한국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센터가 있는 반듯한 풍경. 하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2004년 8월 정부는 고용허가제 시행으로 불법체류가 근절될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이것은 공허한 선언이었다. 2008년 6월 현재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50만 명의 이주노동자 중에서 절반, 약 20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실시를 압두고 한때 13만 명까지 줄어들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숫자는 다시 늘어 20만 명 수준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현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풍경이다. 그들 앞에선 한국이 이주민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다.


2. 80년대를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


지난 8월 24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 전 직무대행 샤킬(방글라데시, 45)의 환송회가 있었다.

“제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던 16년 전이랑 현재 상황 거의 비슷해요. (산업)연수제에서 고용허가제로 바뀌었지만, 사실 내용은 비슷하고, 사업장에서 받는 대우도 달라진 것이 없어요.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람들 아직도 있어요. 그런 상담을 많이 받았어요.”

강제출국과 다름없는 자진출국을 앞두고 샤킬이 한 말이었다. 그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이주노동자들의 고충을 상담하고 이주노조 조합원을 모집하는 활동을 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한 변호사와 함께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외면하는 정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추진하기도 했다. 장기체류하며 이주노조 활동을 했던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그랬듯 강제추방이 예고되어있었던 그는,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8월 26일 자진해서 한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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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 노동자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용납되어선 안 된다”
필요에 따라 불러들이고, 단속을 통해 쉽게 착취하는 억압의 이중구조 속에 놓여있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지난 5월에서 7월, 3달 동안 약 8000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단속․추방되었다.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이 법무부와 노동부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용납되어선 안 된다”고 지시한 이후 나타난 놀라운 성과였다. 서울 600명, 부산 250명…. 지역출입국관리소별로 매월 단속․추방 ‘목표할당인원’이 배정됐었다. (경향신문, 8월 13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이러한 눈부신 성과는 부상과 사망을 부르는 마구잡이식의 ‘체포’ 덕분에 가능했다. 부상 소식이 속출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여러 번 시정 조치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단속은 계속되었고 그 방식 역시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좀 나아지는가 싶었던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역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 문제 해결을 위해 고안된 체불임금 보증보험의 사업장 가입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발행하는 다국어 뉴스레터인 'MigrantOK' 8월호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발생은 감소하는 한편,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발생은 오히려 점점 늘어나고 있다.(연합뉴스, 8월 25일) 또한 산업연수제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였던 송출 브로커 비용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정부와 인력송출 양해각서(MOU)를 맺은 국가의 이주노동자들은 송출 브로커에게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지급해야 무사히 입국할 수 있다. (아시아투데이, 7월 23일)

최근 한국사회에서 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문화 사회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은 80년대에 멈춰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3. 다문화주의에 대한 망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계와 정부에서는 ‘다문화 정책’의 등장과 함께 정부와 이주민 지원 단체가 기존에 유지해왔던 ‘대립’관계는 ‘협력’관계로 변하고 있으며 정부의 정책은 이주민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주민 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길거리에 걸린 다문화 행사 현수막을 보면서 이주민 100만 시대에 발맞춰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를 향해가고 있다고 상상한다.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는 우리의 이러한 망상에 일침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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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양한 사람들도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가진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들에겐 왜그리 배타적인지 아이러니 하다.
그런 점에서 '다문화 사회'란 그야말로 망상이 아닐까?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국내 이주민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범주적으로 배제하고 있으며, 가부장적 순혈주의에 근거한 동화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김희정, 66~69쪽)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결혼이민자 정책을 한국사회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하나로 검토해야한다’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법무부, 여성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가 앞 다투어 다문화 정책을 시행했다. 정책의 바탕에는 한국사회의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깔려 있었다. 결혼이주여성은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노동력 부족과 출산율 감소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존재였다. ‘출산 여성 이주민’, 이들은 다문화 정책의 적극적인 포함 대상이었다. 반면 출산을 하지 않았거나, 피부가 까무잡잡한 남성 결혼 이주민은 대부분의 정책에서 제외되었다. 이것이 다문화 정책의 본질이었다.

이선옥은 더 나아가 정부의 ‘관주도형 다문화주의’가 문화를 표방하고는 있으나 결국 이주민의 관리․동원․통합․배제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반문화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관주도형 다문화 정책이 등장한 이후, 미등록 이주민의 문제는 그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지원 단체로부터 점점 소외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및 이주민의 생존권 문제에 주력했던 지원 단체들이 재정확보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인 결혼 이주 여성문제와 이주아동 교육 문제, 다문화행사 쪽으로 활동을 선회했기 때문이었다. (이선옥, 100쪽)  

오경석은 이런 통치 전략으로써의 다문화주의를 넘어, 이주민들의 삶과 밀착해 있는 다문화주의를 구성해야함을 주장한다. 이주민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자유와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는 삶의 권력을 보장했을 때 비로소 문화적 공존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문화에 앞서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삶의 지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체류 자격’이고, 자신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 확보를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노동의 권리’이다.(오경석, 53)
 

4. 단속 추방 반대! 노동 비자 쟁취!
 
정부와 학계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들은 ‘단속 추방 반대, 노동 비자 쟁취’라는 구호는 비현실적이며 해결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로부터 받아들여질 수 없는 주장이라고 말한다. 반면 다문화 정책은 사회가 이주민을 포용하기 시작한 좋은 징조라고 말한다. 비록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배제되기는 했지만, 이주민 정책의 긍정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정말 이주민들의 현실이 개선되기를 원한다면, 다문화 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기 전에, 구호의 실현 가능성을 묻기 전에, 현실에서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가장 첨예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서 절실한 것을 묻는다면, 우리는 ‘단속 추방 반대, 노동 비자 쟁취’를 외칠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제때에 임금을 달라는 요구보다, 사업장을 이동할 권리를 달라는 요구보다, 때리지 말고 욕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보다, 적어도 불시에 단속이 들이닥치게는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보다 더 현실적이고 절실한 요구가 있을 수 있을까. 변화가 필요한 곳은 바로 여기다.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뿐, 정작 이주노동자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맺고 있지 않은 다문화 정책이 아니라!
 

 
2008/10/01 10:35 2008/10/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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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한번 외국인은 영원한 외국인이 되고있다.

    Tracked from speak the truth 2008/10/01 11:23  삭제

    한국을 알리는것도 중요하지만 외국인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는 마음도 중요하다. (사진-취재인코리아) 대학교 3학년으로 복학을 했을 때 같은 과에 유학을 온 외국인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와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지만 학교 전공과목 과제에서 팀으로 함께 하게 된 경우가 있었다. 아직은 서투른 한국말을 노력하면서 들으며 함께 과제를 진행해 나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외국인 친구의 본국 생활과 한국에서의 느낌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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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몬에이드 2008/10/01 11:24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나쁜건 사실이긴 해요
    다른 외모의 사람들에 대한 베타성도 있고
    이주 노동자를 전부 불법체류자인 마냥 취급하는 것도 있고
    외국인 범죄 증가도 있고...

    이 정권은 과연 그 문제를 풀수 있을까요?
    저 책속엔 그 해법에 대한 실마리가 있을까요?

    궁금해지네요 ^^

    • 그린비 2008/10/01 11:59

      레몬에이드님 안녕하세요. ^^
      저는 웹기획팀 정군입니다 ㅋㅋ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왜곡된데에는 주류매체들과 정책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실상 그들이 필요하면서도, 보다 유연하게 관리하려면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불안정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말입니다.
      더불어 아마도 저 책에서도 '해법'이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법'은 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고민 속에, 그 고민들이 모인 가운데 있으니까 말입니다.

      좋은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 그린비 2008/10/01 17:05

      ㅋㅋㅋ 역시 레몬에이드님!!

    • 레몬에이드 2008/10/02 08:59

      매체는 왜곡되어 있고 정책은 표류하는 가운데
      우리의 인식은 편협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이겠죠 ^^

      아마 책 속엔 현재 상황에 대한 내용들이 적혀 있겠죠
      그리고 해법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거겠죠~☆

      역시 정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