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의 지층 파괴, 자본주의로부터의 탈주
『모더니티의 지층들』을 통해서


                                                                     - 연구공간 '수유+너머' 곽소현


 1 자살 시장, 한국의 현재

요즘 한국은 연일 터지는 자살사건으로 인해 심하게 앓고 있다. 안재환에 이어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최진실의 죽음, 김영철 전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의 자살, 최근 떨어진 주가 폭락으로 인해 자살한 증권사 직원에 이르기까지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이러한 소식은 내가 사는 세상이 정말 살 만한 곳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이들을 자살로 몰고 간 주요 원인은 자본과 권력에의 욕구로 집약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의 이면에는 돈을 많이 벌고, 타인에게 좀더 인정받으려는 욕구, 그와 동시에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얻을수록 행복할 거라는 믿음이 자리한다. 이들의 자살은 자본증식 욕구와 권력 욕구의 좌절이 야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한경쟁을 미덕으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에서 경쟁 논리의 최선봉은 역시 자본 증식욕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욕구들을 받아들였을 때 정말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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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경제가 무너진 지금. 저 돈다발들이 여전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좌절된 자본 증식욕은 '죽음'의 선을 탄다.

끊임없이 욕망하도록 자극되는 돈, 명예, 권력추구 등의 사회적 코드들이 너무나 날 피곤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잠시 멈춰서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들이 정말 나에게 행복일 수 있는지, 혹은 그것들이 강요된 욕구들은 아닌지 말이다. 장자(莊子)의 말 중에는 ‘내가 사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는 구절이 있다. 돈을 많이 벌면, 혹은 권력을 쥐거나 유명해지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이 혹시 헛된 환상이나 망상, 혹은 잘못된 꿈은 아닌지 돌이켜 생각해 봐야 한다. 그 망상들이 너무 커져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달리 생각해 보자. 유명세를 타고 얼굴이 팔릴수록 남의 시선은 내 삶을 감시하는 감옥이 되지 않는가? 김영철의 자살처럼 권력의 정점에 올라설수록 그것이 주는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과 부담감은 내 삶을 더욱 더 옭죄는 것이 아닌가? 또는 돈에 대한 욕망이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을 영원히 막아 버리는 것은 아닌가를 말이다.

남들이 하니까 참고 해보자는 생각은 참을 수 있을 만큼의 부담일 때는 어떻게든 지속되겠지만, 결국 그 한계를 넘어서서 주어지는 부담이 될 때 자살 충동을 야기할 뿐이다. 약한 자들이 그들 스스로가 약해서 자살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병으로 나타났을 때야 그 사람이 얼마나 병들었는가를 진단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삶을 견딜 수 없어 자살하는 이들을 통해서 한국 사회가 얼마나 많은 부담을 우리에게 부과하고 있는가를 진단해 보아야 한다. 동시에 우리가 강요된 부담들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하는 것이 옳다는 망상도 버려야 한다. 원치 않는 욕망들은 버리는 것이 낫다. 자살을 생산하는 시장이 되고 있는 한국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기치 아래서 경쟁 논리를 점점 더 강화시켜갈수록 그 흐름을 파괴하고, 넘어가려는 욕망을 동시에 부추기게 될 것이다. 한국적 자본주의가 자살을 꿈꾸게 한다면, 우리는 그 논리를 거부하고 넘어설 수 있는 다른 삶의 기준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 그것이 없다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모더니티의 지층들』, 이진경 편저(서울: 그린비, 2007)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외부를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들을 탐색하고 있다.

2 자본주의 공리의 핵심, 가족주의


자본주의의 내부에서 자본주의의 외부를 꿈꾸기. 『모더니티의 지층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공리계들을 자본, 노동, 화폐, 가족, 경찰 권력 등으로 나누어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외부를 꿈꾸기 원한다면 일단 자본주의의 내부적 공리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사는 현실적 지반에 대한 냉철한 분석의 칼날이 전제될 때만 그것의 한계를 발견하고 넘어서려는 욕망이 헛된 망상으로 귀착될 위험성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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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를 통해 확인한 것처럼, 이미 지식과 정보는 누군가에게 쥐어진 칼자루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모더니티의 지층들』에서의 실험은 이미 실험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새로운 실험이다. 첫째 지식―권력의 독점적 생산 양식의 파괴. 이 책은 교수나 박사나 어떤 형태의 자격증을 가진 자만이 옳은 말을 하고, 책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을 깨고 있다. 그러한 생각은 지식―권력―자본의 영합을 통해 유지되는 한국의 지배적 권력층을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뿐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쯩'을 가졌든 그러지 않았든 간에 공부하고 생각하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던질 수 있는 다양한 개인들이 함께 구성한 목소리다. 우리가 다양한 삶의 양식을 펼쳐 가길 원한다면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상아탑 속에서 제 구미에 맞는 진리를 만들어 합리화시키는 교수나 지식인의 목소리를 진리라고 간주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그들의 가치로 우리의 삶을 재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한 노예적 비굴함으로 점철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살아가는 다양한 지성들과의 연합이다.

둘째, 하나의 목소리를 복수적 개인들의 조화로운 하모니를 통해 들려주는 합창.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근대성의 지층들은 크게 과학주의, 계산 가능성, 공리주의의 작동원리로 운용된다. 이것에 대한 공유된 의식을 바탕으로 저자들은 각기 자본주의와 노동, 화폐, 근대적 주거공간, 어린이, 경찰 권력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한 가지씩 붙들고, 그 개념과 공리들이 형성된 역사적 과정들을 추적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논리가 사실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셋째, 자본주의의 일반 공리들을 푸코 식의 계보학적 탐구를 통해 내적으로 분열시키기. 푸코 식의 계보학 탐구를 분석틀로 사용하고 있는 이 책은 자본주의 공리계들이 형성되어 온 역사적 변천사를 보여 줌으로써 현재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신념의 체계를 내부에서 분열시킨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적 공리는 가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7강 「근대적 주거공간의 계보학」에서는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가족주의라는 공리가 어떻게 사회 체제를 유지하는 주요 요소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이 논리에 따르면 근대적 부르주아 계층을 대변하는 박애주의자들은 가족주의라는 욕망의 배치를 노동자들이 스스로 욕구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노동자 자신이 집을 소유하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그들을 가정적인 안락함에 안주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집이라는 소유물에 묶어두는 것이다. 그것도 노동자 자신의 근면한 노동과, 금욕적 검약, 개미 같은 저축으로. 즉 자신의 힘으로 집을 사게 하는 것이다.’(『모더니티의 지층들』 226쪽)

집을 사고, 그 안에서 한 가족을 이루어 살면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자본주의 사회가 그 틀을 지속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서 길러 내고 있는 핵심적 욕구다. 가족주의가 행복을 준다는 일차적 믿음과 욕구를 바탕으로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일터에 가서 매일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며 돈을 벌고, 배우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을 이룬다. 자발적 복종. 그리고 가족주의의 공리계를 내면화한 여성은 남편의 욕구가 끊임없이 가정 내부에 머물도록 관리하고 그의 욕망이 가족과 자식에게 향해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한다. 어머니의 관리 하에 어린아이는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교육기관에 가서 같은 논리의 배치를 욕망하도록 길러진다. 한 가정을 갖는 것이 행복의 토대라는 믿음은 근면한 노동에 대한 가치 부여, 사회적 규칙 따르기가 옳은 것이라는 믿음의 공리들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킨다. 이러한 가족주의 공리계는 학교, 일터, 군대, 경찰, 국가에 이르기까지 현재 작동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한 체계들을 정당화시켜 주는 논리의 핵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그것 아닌 외부적 사유를 잘못된 것으로 차단하는 금지의 논리를 강화시킨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이러한 공리계 안에서 정말로 행복한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경쟁 심리를 부추김으로써 안정 지향 욕구, 가족주의의 근거한 행복 추구욕을 길러 내는 자본주의적 공리계들은 종교와 각종 보험 등을 심리적 안정을 위한 상품으로 팔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품들은 다시금 자본주의적 공리를 유지, 강화시켜 주는 주요 기제로 작동한다.     


3 코드화된 욕망의 파괴, 외부 열기


 「모더니티의 지층들」은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갖게 되는 돈에 대한 환상, 가족을 이루면 행복할 거라는 믿음, 경찰력에 대한 과대망상증 등을 폭로함으로써 우리의 믿음들이 정말 옳은 것인가라는 반문을 제기하도록 한다. 이러한 믿음의 체계들 역시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고 길러 내는 코드들일 뿐이다. 그것들을 진리로 믿고 따르게 되는 순간 우리는 성공한 기업가를 이 시대의 영웅으로 간주하며 벤치마킹하는 또 하나의 성공 신화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신화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비난과 끊임없는 비교, 열등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자본의 공리들을 내면화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한국식 자본주의적 토양에서 길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들이 정말 내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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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는 어떻게 열리는가? 그것은 공간적인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뇌들의 접속, 유사한 신체들의 연대 속에서 생성되는, 지금과는 다른 '차이'들 속에서 열린다.

그러나 어떻게? 혼자서 자본주의의 외부를 꿈꾸는 건 힘들다. ‘이런 삶은 정말 싫다’라고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도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면 쉽게 사그러질 뿐이다. 자본의 증식이 최고의 가치인 양 생각되는 삶의 바탕에서 ‘난 돈 없어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어’라는 말은 헛된 망상처럼 보일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 꿈을 현실로 사는 벗들을 하나둘씩 만난다면 자본 증식을 목표로 하는 삶이 아니더라도 행복한 삶을, 돈과 권력이 행복의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의 외부를 꿈꾸고 싶다면 우선 자기가 믿어 왔던 기존의 가치관을 깨는 작업이 필요하다. 『데미안』의 한 구절처럼 새가 새로운 세상을 보길 원한다면, 알을 깨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 세계가 깨어지는 고통 없이 다른 세상이 열리지는 않는다. 내가 옳다고 믿고 원해 왔던 것들이 사실은 옳지 아닐 수도 있다는 자각, 믿음의 지반이 되어 준 기존의 자기 신념이 붕괴되는 고통을 기꺼이 즐길 수 없다면 외부적 욕망을 키워낼 수 없다. 그렇다면 외부의 목소리를 내 안에서 지속적으로 키워 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실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벗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다.

외부를 꿈꾼다면 외부를 걷고 있는 벗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수유의 실험적 삶이나, 변산공동체를 일구며 사는 사람들, 풀무학교 등의 사례들은 자본주의의 외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나의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부산의 ‘인디고 서원’이나 김영민의 ‘장미와 주판’도 새로운 인문학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실험장들이라 볼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어진 사회적 요구들에 나를 맞추며 살아가는 삶이라기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 내가 꿈꾸는 행복이 정말로 어떤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그 물음을 따라 새로운 자신의 행복을 구성해 가는 현실적 노력일 것이다. 그냥 솔직해지자. 내게 맞지 않는 권위나 가치는 그냥 싫다고 말하자. 그냥 혼자만의 내면으로 숨어 버리거나 도망치지 말자. 필요한 것은 기존의 가치를 거부했을 때, 열리는 수많은 다른 삶을 내 안에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을 외부에 열어 두는 개방성과 그 삶들과의 현실적인 만남과 소통을 즐기자. 그들과의 대화가 내 삶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박노해의 말처럼, 꿈을 혼자서 꾸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 꿈을 모두 함께 나누어 꾸면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에 따르는 일관된 실천과 노력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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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5 12:19 2008/10/1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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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몬에이드 2008/10/20 12:38

    글 진짜 잘 쓰신다 ㅠㅠ
    언제 저렇게 쓸수 있을까...

    이 책은 좀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곽소현님 글을 읽고 섣불리 의견을 제시하기가 좀 그렇네요 ^^;;
    만약에 읽게 된다면 기간이 참 오래 걸릴것 같은... ㅋ

    • 그린비 2008/10/20 13:34

      안녕하세요. 레몬에이드님!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잘 읽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그린비 블로그에서 곽소현님의 글을 만나실 수 있어요! ^^

    • 레몬에이드 2008/10/20 13:43

      기대되네요. 읽으면서 열심히 해야지 +ㅁ+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아직 못읽고 있어요 ㅎ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들부터 정리하고 읽겠습니다 ㄳㄳ

    • 그린비 2008/10/20 13:49

      ㅋㅋㅋ 블로그에서도 실시간 댓글이!
      '철굴' 서평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 거루 2008/10/28 20:27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가치 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법정

    그린비에서 출판한 책들과 이 코너로 인해서
    우리가 책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읽고, 우리 세상을 읽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게 되겠죠?

    이 코너를 기획하신 분, 그리고 글을 써주시는 연구원 분들
    멋지십니다. 응원하고 있을께요. 다음 서평도 기대됩니다.

    • 그린비 2008/10/29 12:04

      거루님, 응원 감사드립니다~
      <책으로 세상 읽기> 코너의 수유+너머 칼럼은 매주 한 편씩 포스팅하고 있으니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