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구적 금융위기 시대를 분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부커진 R 2호,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를 분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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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진R 2호『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 다시 사회구성체론으로?』

편집인 이진경│편집위원 고병권, 박정수, 오하나, 이진경, 조원광, 최진호
도서출판 그린비 | 사회과학
출간일 : 2008년 10월 20일 | ISBN(13) : 99788976827135
46배판 변형|272페이지

단행본(book)의 깊이와 잡지(magazine)의 넓이를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매체인 부커진bookagine 2호.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를  '사회구성체론'의 입장에서 다룬다. 자본주의와 축적체제, 계급적 문제와 대중운동의 문제를 실천적 관심 속에서 이론적으로 분석하려는 점에서 '사회구성체론'의 입장을 가진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주의의 증권화 양상에 대한 분석, 불안의 정치체제, 비정규직과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이해 등을 다룬 특집글들과 2008년 촛불시위의 전개과정에 대한 고병권의 탁월한 분석 및 김경욱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 인터뷰는 지금의 한국사회가 어느 지점에 서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작동해 갈지를 보여 준다.

∎ 편집인, 편집위원 소개

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연구자 대중’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추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덕에 ‘고추장’으로 통한다. 그 동안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화폐, 마법의 사중주』,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등을 썼다. 2006년, 연구실 동료들과 한미FTA와 평택 미군기지 건설,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는 대행진을 한 이래, ‘무엇을 쓸 것인지’와 ‘어떻게 싸울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수렴해 감을 느낀다. 새로운 대중운동을 표현할 새로운 말들을 낳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정수│‘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작년 말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리와 운동방향을 그려 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막막했다. 프로이트, 라이히, 지젝, 가타리 등의 ‘욕망이론’을 공부해 왔다지만 정작 어떤 욕망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장고 끝에 하나의 수(단어)가 떠올랐다. ‘안보’(security). 안보야말로 우리 시대의 통치자와 경영자와 대중들이 공통적으로 욕망하는 대상이 아닌가? 논문이 진행될수록 현실은 내 사유보다 더 큰 폭으로 요동쳤다. 촛불집회와 금융공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욕망을 창안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커졌지만 상상력은 커지지 않았다. 불안에 잠식되지 않는 안보욕망의 기술을 위해 암중모색 중이다.

오하나│‘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연구실에서는 주로 통역·번역 기계이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듯,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 나를 매개로 ‘미끄덩’ 말을 주고받을 때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기쁨은 ‘내 생각’을 ‘나의 글’로 옮기는 것이다. 생각을 글로 옮길 때 비로소 주변의 많은 이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더 많이 공부하고, 글 쓰며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다. 현재 사카이 다카시(酒井隆史)의 『자유론』을 번역하고 있다.

이진경│20년 전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책소개 바로가기)이란 책으로 ‘데뷔’했고, 그 뒤 직업적 혁명가를 꿈꾸며 활동하다가, 감옥 안에서 사회주의 붕괴를 겪었다. 그 뒤 사회주의 사회 역시 근대 사회였다는 생각에서 근대에 대한 다양한 공부를 하고 책을 썼다. 지금은 자본주의와 근대를 넘어선 관계로서 코뮨주의를 화두로 공부하고 있으며,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활동하는 한편, 서울산업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원광│‘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어떻게 잘 먹고 잘 살아 볼 것인가?”라고 묻다가 동료들을 따라 프롤레타리아트나 혁명 같은 단어를 붙들게 되었다. 그 단어를 자연스레 입에 올릴 만큼 능동적이지 못한 것 같아 늘 부끄럽지만, ‘하다 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혁명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운동이라면, 비정규직이야말로 그 운동을 만들기 위해 주목해야 하는 이들이라 생각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니체, 맑스, 스피노자 푸코, 들뢰즈 등의 눈을 동경하며, 그들의 눈을 빌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게 꿈이다. 최근에는 푸코에게 비-주권적 권력 파악 방식을 배우고 이를 실험하느라 즐겁게 지내고 있다.

최진호│‘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박사를 수료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대중매체를 공부했으나 최근의 매체보다는 먼지와 곰팡내 나는 100여 년 전 신문이나 잡지에 더 관심을 가졌다. 과거는 지나 버린 순간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이며, 이 속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낯선 것들이 마주치고 서로 흐르는 ‘현장’ 속에서 즐거움과 활력을 느낀다. 최근에는 니체와 루쉰을 통해 ‘소통과 흐름’[通流]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편집진 책소개

직관적 판단과 아직 명시화 되지 못했던 의문들 속에서 우리는 한국사회에 대해서, 혹은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현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 다시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흔히 '사회구성체론'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문제설정 속으로 밀고 갔던 셈이다. 물론 이는 이전의 사회구성체론을 현재의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해서 어떤 결론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론적 검토는 이론 자체의 변환을 수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사회를 자본주의와 축적체제 계급적 관계와 대중운동의 문제라는 실천적 관심 속에서 이론적으로 분석하려는 문제설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전의 '사회구성체론'과 연속성을 갖는다고 믿는다. 이미 때 지난 것 같은 이론적 주제를 동시대적 관심 속에 만들어져야 할 이론적 잡지의 특집 주제로 잡을 생각을 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부커진R 2호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 다시 사회구성체론으로?』책날개에서)



∎ 목 차


PHOTO ESSAY
2008년 촛불시위와 대중의 흐름(오하나)

EDITORIAL

편집자 서문 (이진경)

ISSUE  
01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과잉-제국주의(이진경)
02 유연성의 축적체제와 시뮬라크르 자본주의 (이진경)
03 불안시대의 삶과 정치(고병권)
04 신자유주의와 욕망의 안보체제(박정수)
05 유연화체제의 프롤레타리아트, 비정규직(조원광)
06 흐름의 공간과 분자적 미디어(최진호)

INTER-VIEW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 생존의 연대 : 김경욱(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 + 고병권(연구공간 수유 + 너머 추장)

ESSAY  
혁명 앞에서의 머뭇거림 : 2008 촛불시위의 발발과 전개(고병권)



∎ 책소개

전지구적 금융위기 시대를 분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부커진 R 2호,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를 분석하다!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하다는 금융위기와 경자유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농지만 소유한 고위 공무원들의 쌀 직불금 신청 사태와 정규직에 비해 60.5%에 불과한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이 900만 명에 달하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보며 우리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해 보면 어떨까?(어찌 보면 지난 대선은 지난 10년간 아무것도 잃어버린 것이 없는 자들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자들을 ‘상실의 동료’로서 호명한 독특한 사건이었다.--고병권, 122쪽)

이 잃어버린 10년을 분석한다는 것, 즉 1998년의 외환위기 후 10년을 분석한다는 것은 오늘의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것이고, 이것은 곧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대중이 움직여야 할 방향을 미리 보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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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부커진R 1호, 1.5호, 2호의 표지
"단행본(book)의 깊이와 잡지(magazine)의 넓이를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매체인 부커진bookagine"

2007년 한국사회에서 추방된 자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처음 선보였던 『부커진 R』이 이번 2호에서 다루는 것은 바로, 지난 10년이자 미래의 10년이 될 오늘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이다. 『R』 2호는 이것을 낱낱의 분과 별로 쪼개진 분석이나 진단에서 벗어나 사회를 전체 변화의 양상 속에서 읽어 내는 ‘사회구성체론’이라는 사회과학 방법론의 문제의식 아래 분석해 낸다.(지금 사회구성체론이 방법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질적인 것이 뒤섞여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변화의 경향성을 읽고 새로이 미래의 시제를 획득한 것을 찾아내며, 그러한 변화 안에서 현재 존재하는 요소들의 역사적 위상을 구별하기 위해서다.--이진경, 35쪽)


변화의 시기를 분석해낼 하나의 방법론, 사회구성체론

지금 새삼스레 ‘사회구성체론’이라는 오래된 명칭을 상기시키면서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성격’에 대해 다시 묻는 것은 …… 지난 10여 년, 아니 20여 년 동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묻는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 자신의 삶이, 그리고 그 삶을 직조하고 추동하는 우리 자신의 욕망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20년 전 우리가 갖고 있던 이론적 틀에 지금의 사회를 다시 집어넣는 식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 터이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묻는 것이고, 우리가 지금 대면하고 있는 세계를 통해 우리가 보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 이진경, 76쪽

혹자는 낡았다고 느끼고, 혹자는 생소하게 느낄 ‘사회구성체’라는 방법론으로 한국사회를 살펴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사회구성체(social formation)란 사회가 동적인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형태로 구성되어 간다는 뜻으로, 사회를 하나의 형성물, 구성물로 보는 입장을 말한다. 한 사회에서 진행되는 변화의 경향성을 포착하고, 그 경향성 속에서 상이한 영역(경제, 정치, 법, 문화 등)과 이질적 요소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사회 분석의 방법론이자,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사회구성체론을 다시 제기하는 것은 기존의 계급론이나 진보/보수의 패러다임으로는 현재의 변화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보를 자처했던 노무현 정권이 왜 한미FTA안을 밀어붙이며 보수세력의 찬사를 받게 되었을까? 지난 10월 17일 현대자동자 노조가 비정규직 가입을 다시 한번 부결한 데서도 드러나듯 ‘노동자’계급의 권익을 대표한다는 노동조합이 왜 같은 노동자인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계속 배제시키는 걸까? 전체 노동자의 50퍼센트가 넘는 비정규직이 왜 항상 예외적인 상태, 비정상의 상태로 이야기되는 걸까? 쇠고기 문제로 촉발되어 100일 넘게 지속되었던 촛불시위는 중산층 주도의 소비자운동이었던 걸까? 또 유모차 부대나 중고생 참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이렇게 기존의 계급이론이나 자본주의 분석으로는 담기 힘든 양상을 보이고 있는 오늘의 사회관계 및 문제는 현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다시 사유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 사유가 그저 현상의 분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맥락 속에서의 분석이 되기 위해서는 전체 사회를 하나의 형성 과정으로 파악하고 실천적으로 분석하려 했던 ‘사회구성체론’의 문제의식이 유효하다고 보았다. 거기에다 ‘한국사회’에 대한 분석에만 머무를 수 없었던 것은 이미 우리가, 브라운 영국 총리의 말마따나 “세계적인 자본 이동과 국제적 경쟁을 수반하는 세계 경제”의 시대, 즉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흐름의 형태로 국경을 넘나들며 전세계인들을 상대로 유연성의 축적체제를 구축한 오늘의 자본주의는, 기존의 제국주의론으로도, 또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는 ‘제국’ 개념으로도 해명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고, 따라서 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축적체제를 새롭게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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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묶어주는 공통기반은 무엇인가?
우리의 길이 꼭 이 두가지만은 아니다.

이런 문제의식하에서 『부커진 R』 2호는 앞으로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지을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인 자본 축적의 변화 양상을 분석함과 동시에 흔히 보수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다시 보수정권으로 넘어간 정권의 변화를 하나로 묶어 주는 공통의 지반을 찾아내 분석하고, 이 방향성 속에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어떤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말하고자 했다.


신자유주의가 탄생시킨 시뮬라크르 자본주의

10월 16일,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하고 환율은 11년 만에 최대로 폭등했다. 세계 각국의 공격적 조치 덕분에 주가 급등, 환율 하락의 희소식을 들은 지 불과 이틀 만의 일이다. 때맞춰 유럽연합의 순회의장인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EU정상회담을 마치면서 “우리는 21세기의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재구축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기존의 브레턴우즈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금융체제를 미국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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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증권거래소의 트래이너들.
현시기 금융위기의 원인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자본의 증권화 경향에서 찾을 수 있다.

「유연성의 축적체제와 시뮬라크르 자본주의」(이진경)와 「신자유주의와 욕망의 안보체제」(박정수)는, 이러한 오늘의 전세계적 금융위기가 단순히 미국의 부동산 버블과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 자본이 경제의 증권화 양상을 취하면서 필연적으로 노정할 수밖에 없었던 길이었음을 분석하고, 자본의 금융화가 대중의 욕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보여 준다. 

박정수는 증권을 뜻하는 ‘security’의 사전적 의미가 ‘안보’라는 데 착안하여 증권이 무엇의 안전을 보장하는지를 묻는다. 물론 답은 자본 축적의 안보와 안전이다. 자본이 산업적 축적에 내재하는 리스크(노동자 저항과 이윤율의 저하)를 헤지(hedge)하기 위한 전략으로 증권화를 채택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본은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개별 노동자와 관계를 맺지 않고 노동력만을 사용하여 노동자 저항이라는 리스크를 피하고, 노동자의 소득 일부는 증권과 펀드 회사의 투자자금으로 유인하여 증권의 운명에 몸을 맡기게 만들었다(오늘날 노동자 대중은 산업자본가의 임금 노예로서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의 투기노동자로서 증권의 운명에 내기를 거는 자본의 이중적 노예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박정수, 143쪽).

한편, 이진경은 「유연성의 축적체제와 시뮬라크르 자본주의」에서 지금의 경제를 ‘흐름의 경제’(노동자 없는 노동으로 고용 없는 생산이 가능하고, 생산 자체가 탈국가적으로 이루어지며, 특정한 공간 밖에서 흘러가는 활동능력의 포획이 중요해지는)로 개념화하고, 가속화된 생산과 소비의 흐름이 가져오는 예측불가능성의 확장을 막기 위해 자본이 유연성의 축적체제를 만들어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본의 이동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함을 보여 준다.

이동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하는 자본은 물질적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 자체로부터 이탈하려는 경향을 갖는데, 이 경향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금융화 조치(공채 시장의 자유화, 각종 규제의 철폐 및 완화, 금융상품에 주어진 규제의 철폐)와 맞물리면서 투기적 자본으로의 전화가 쉬워진다. 본격적으로 자본의 증권화가 진행될 조건들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제 금융 상품을 통한 이윤 획득이 자본의 일반적인 욕망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제조업처럼 실물적인 자본조차 자신의 증권적 가치를 위해 투자형태를 바꾸게 된다. 주가가 그 기업의 실질가치로 평가되는 양상이 진행되는 것이다(시장에서 주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를 쌓기 위한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데 몰두하게 된다). 거기에 파생상품의 끊임없는 증식은 실제 가치에서, 즉 실제 경제에서 분리되어 증폭된 자기만의 세계를 구성하게 된다. 이렇게 증권화된 자본이 실물적인 자본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증식하는 시뮬라크르가 되어 실제 자본 이상으로 양도되고 거래되는 자본주의를 이진경은 ‘시뮬라크르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갖가지 파생상품과, 실제 가치와 분리되어 증권화된 가치가 역으로 실제 자본을 움직이고 바꾸어 놓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에서는 시뮬라크르만의 해방된 세계는 불가능한데, 바로 ‘지불’이라는 최종심급이 있기 때문이다. 지불할 수 없는 순간, 그 시뮬라크르들은 무효화되어 버린다. 대우의 사례를 보라. 분식회계를 통해 기업의 증권가치를 엄청나게 키워서 한때 국내 5대기업의 하나로 꼽혔지만, 지불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 그 가치는 무효화되어 버렸다. 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영국의 베어링 은행이 한 딜러의 선물옵션 상품으로 4천억 원의 손실을 내며 파산한 예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금융위기 상황도 마찬가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던 그린스펀마저 ‘이상과열’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대하게 증식되었던 시뮬라크르들(단적인 예로 서브프라임모기지에서 파생된 엄청난 수의 금융상품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연쇄적인 붕괴를 맞이하고 있다. 그 동안 일반 서민들마저 증권의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거대한 부가 하루아침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때 치명적 손해를 입는 것은 자본가가 아니라 유인된 노동자와 일반 서민들이다. 게다가 정부가 구제금융이라는 이름으로 기업가들을 위해 쏟아 붓고 있는 돈의 출처는 세금이다. 도박판에서 잃는 돈은 도박에 참여한 사람으로 끝나지만 기업가들이 도박판에서 잃은 돈은 전체 대중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를 밀어붙이면서 미국으로부터 ‘선진금융기법’을 배워서 각종 금융상품을 개발·관리하고 파생상품을 활용한 헤지 등을 배워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금융권을 포함한 ‘시장 전면 개방’과 금산분리법 완화 등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고수하거나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런 ‘선진기법’과 ‘전면개방’이 가져올 결과를 지금의 금융위기는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국민 만들기, 배제의 정치

공동체 안에 있지만 사실상 바깥의 삶을 살고 있고(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고), 바깥에 있지만 내부의 어느 곳보다 척도의 명령이 강한 곳, 내부와 외부가 섞여 있는 ‘주변’으로부터 한국사회의 성격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세계의 주변을 다루는 일은 세계를 다루는 일이다.
―고병권, 「불안시대의 삶과 정치」, 120쪽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강한 국가를 지지할지라도 원칙적으로 국민을 선호하는 것” 같지 않은 신자유주의는, 경쟁력을 이야기하면서 ‘국민’에서 배제시키는 집단을 낳는다. 국가경쟁력을 위한 한미FTA 체결을 위해 농업 부문의 양보를 말할 때, 기업경쟁력을 위한 구조조정의 희생자로 노동자가 지목될 때, 빈곤층에 대한 복지가 비효율적인 퍼주기로 비판받을 때, 교육경쟁력을 위해 전국의 학교에 순위를 매겨 세울 때, 우리는 국민이지만 국민이 아닌 대중을 만난다. 그리고 이들은 목소리가 있으되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자들, 말할 권리조차 갖고 있지 않은 자들로 취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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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노동자들의 홈에버 월드컵점 매장점거 장면.
목소리를 잃은 대중이 온갖 소비의 소리들로 허우적거리는 배제의 정치 공간으로 난입하는 장면이다.

고병권은 한국에서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통치 양식의 매우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로 배제의 정치를 꼽는다. 대중의 의견에 상관없이 위로부터 정책을 설계하고 관철시키는 유형인 배제의 정치는 역설적이게도 ‘합의의 정치’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이를 고병권은 ‘합의를 통한 배제’, ‘합의로부터의 배제’라고 부른다.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들은 교육감 선거에 투표권이 없고, 비정규직 법안을 논의하는 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가 들어갈 자리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배제당한 사람들은 그 합의에서 내려진 결정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배제당한 비-국민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비-국민’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비-국민들로부터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며, 비-국민들은 자기혐오와 ‘국민’에 대한 선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이런 불안에 대해, 사람들은 ‘경쟁력 강화’라는 신자유주의적인 어법으로 자구책을 마련한다. 영어 점수를 좀더 올리고, 자격증 개수를 늘리고, 재테크를 배우고, ‘돈’이 된다는 곳을 기웃거리면서 불안을 잠재우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 좀 만지고, 경쟁력이 강화되면, 우리의 불안은 해소될 수 있을까?


잃어버린 자들의 연대와 새로운 실험을 위하여

신자유주의 정책하의 지난 10년은 부자들을 더욱 부자로 만들고, 빈곤층을 확대시키며, 증권 투기판에 대중을 끌어들여 파산시켜 온 시간이었다. 국가의 국민이자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들도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당해 온 시간. 이제 이 시간을 미래의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비정규직을 확산하려는 시도에 대해,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공동으로 누려야 할 것들을 사적 소유로 만들려는 시도에 대해 직접적으로 싸워가는 것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이진경의 제안을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가 걷은 세금을 자본가들의 투기판에서 날아간 판돈을 메우는 데 사용하는 것은 쉽게 용인하면서, 고용 없이 착취하려는 자본의 욕망으로 인해 양산되는 비정규직이나 실업자가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보장소득’(basic income)에 대해서는 비생산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하는 경제학적 통념과 대결해야 한다. 대중이 고용 없이도 살 수 있는 최소조건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이진경, 116쪽)

우리는 ‘경쟁력’을 갖추는 삶이 얼마나 피곤한지 날마다 느끼면서도 우리의 이 경쟁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식이나 펀드에 들어가서 이윤을 냈던 나의 돈이 사실은 누군가의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지금 당장 나는 실업자가 아니니까, 비정규직이 아니니까, 내가 낸 세금이 거대기업의 투기를 보존해 주는 것은 내 삶을 안정으로 이끄는 현실적인 것이어도, 실업자의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데 쓰이는 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이 모든 의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신상’을 구비하려 달려가지 않아도, 경쟁력을 위해 학원에 등록하지 않아도, 더 큰 아파트로 옮겨 가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풍요로운 다른 삶은 가능해질 것이다.
『부커진 R』 2호가 함께 나아가자고 요청하는 방향은 바로 이곳이다. 

그린비와 여러 사회과학 출판사, 알라딘이 힘을 모아 '사회과학 연속특강'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2008년 지금 여기의 우리사회와 우리의 삶을 돌아볼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커진R 2호의 편집위원인 고병권 선생님의 강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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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1 11:03 2008/10/2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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