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이 위기랍니다     


 “단군도 포기한 불황”      
                                      

우울하고 서늘한 이 말이 지금 출판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10년의 각종 출판통계 수치는 그 유령이 더 이상 유령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 출판계가 어려운 것은 현상적으론 책이 잘 안 팔리기 때문이지만, 본질적으론 미디어 지형이 변했기 때문이다. 미디어 지형이 변했다는 건 지금까지 해오던 출판의 문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사태를 의미한다. 지금의 출판 환경은 우리에게 출판사업 자체를 재규정하고 재구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출발은 미디어가 뭔지, 콘텐츠가 뭔지, 책이 뭔지를 다시 묻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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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는 여러 미디어를 한몸에 결합하고, 그러한 결합을 통해 새로운 컨텐츠를 재생산 한다.

미디어는 표현수단임과 동시에 전송수단을 가리킨다. 방송이 등장하기 전까지 매스미디어는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전송수단 ․ 표현수단으로서 미디어는 신문, 잡지, 책이 주류였다. 그 후 방송이라는 전송수단이 등장함으로써 표현수단은 라디오, 텔레비전으로까지 확대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새로운 미디어는 미디어 지형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출판과 방송으로 대표되는 올드미디어 시절에는 전송수단과 표현수단의 상호교차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책과 신문은 출판이라는 전송수단을 통해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방송이라는 전송수단을 통해서만 메시지 전달이 가능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은 전송수단과 표현수단의 폐쇄적인 구분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서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이라는 다양한 표현수단은 하나로 연결이 가능해졌다. 미디어 간의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구조가 깨진 것이다. 이제 출판은 책이라는 전송수단을 넘어, 보다 확장된 전송수단을 획득하게 되었다. 과거라면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사업영역이던 오디오 콘텐츠와 동영상 콘텐츠가 디지털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출판사업의 영역이 된 것이다. 이건 위기가 아니라 분명 기회다. 그런데도 왜 출판인들은 왜 책의 입지가 줄어들었다면서 지금 시기를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콘텐츠는 다양한 매체에 의해 전달되는 텍스트 즉 내용물을 가리킨다. 출판콘텐츠는 독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솔루션으로, 지식의 형태를 취한다. 여기서 독자의 문제란 독자가 살면서 대면하는 고통, 불만, 욕구, 욕망 등을 말한다. 지금까지 출판사는 이 솔루션을 책이라는 미디어에만 담아서 표현해 왔다. 책-미디어는 출판사업의 출발점이었으며, 출판이 가진 표현수단 ․ 전송수단의 전부였다. 출판인에게 책은 곧 출판이었고, 출판은 곧 책이었다. 과거와 같이 공간적으로 분절된 폐쇄적 미디어 환경에서는 이는 적합한 인식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이라고 하는 강력한 전송수단이 발명된 지금은 표현수단과 전송수단이 경계를 넘나들며 뒤섞이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미디어와 텍스트의 형식과 내용이 갖는 상관관계가 무너지거나 현저히 약화된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는 아날로그 시대의 콘텐트와 달리 그 형식과 전달 방식을 무한히 다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콘텐트와 콘텐츠, 그 차이에 주목하자. 방통융합으로 다매체 시대가 도래하면서 콘텐트content에 복수형어미가 붙은 콘텐츠contents란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책이 출판인 건 맞지만, 출판이 곧 책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사회학자 이진경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책이라는 공간에 한정된 지금까지의 출판방식을 ‘공간의 출판’, 다른 미디어와 자유자재로 분리 ․ 결합하는 앞으로의 출판방식을 ‘흐름의 출판’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공간의 출판’이란 공간적 구획을 통해 내부와 외부를 확고하게 가르며 작동하는 폐쇄적인 출판시스템이다. 지금까지 우리 출판은 출판 외부와 단절한 채, 즉 다른 미디어와 접속하지 못한 채 미디어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폐쇄성은 출판 내부에서도 그대로 보여진다. 글을 쓰는 저자, 책을 만드는 출판사, 책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독자가 분업화의 정형화된 틀 속에서 일방향 소통의 위계적인 방식으로 출판 프로세스를 구성해 왔다. 그러나 이제 출판의 내외를 구획하는 경계가 약화되고, 다시 출판 안에서조차 내외를 구획하는 경계가 약화되는 ‘흐름의 출판’으로 출판환경이 변해가고 있다. 이렇게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탈영토화된 흐름의 출판이 가능하게 된 것은, 잘 알다시피 정보혁명으로 지식이나 정보 등이 흘러다니며 다양한 지점에서 결합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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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책들 사이에서 뻗어나온 손이 잡고 있는 것은?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2007년 발표한 이북리더기 Kindle. 월정액으로 신문을 구독할 수도 있고,
10달러를 내면 책을 볼 수도 있다. 미디어는 '비트'와 결합하면서 무한히 확장된다.

이제 출판인들은 출판사업의 출발점이었던 책을 의문에 부칠 필요가 있다. 과연 책이란 뭘까? ‘흐름의 출판’에서 책은 더 이상 표현수단과 전송수단이 하나로 합체된 단일한 화합물이 아니다. 콘텐트와 미디어의 결합물일 뿐이다. 결합물은 화합물과는 달리 자유자재로 띄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콘텐트는 책이라는 미디어를 떠나 다른 미디어와 얼마든지 결합해 새로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태가 이런데도 출판인들은 책을 여전히 단일한 ‘화합물’로 인식해 모든 콘텐츠를 책이라고 하는 ‘공간’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만 사고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사소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지금의 출판 불황을 야기한 주범이다. 이제 인식을 전환할 때가 되었다. 책-미디어에서 출판-미디어로 사고의 관점을 이동해야 한다. 책을 떠올리면서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전송수단으로서 책을 포함해 다양한 미디어를 함께 고민하는 쪽으로 출판의 무게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이라구?

지난 10년 동안 출판계는 잃어도 너무 많이 잃었다. 서점 수는 반토막 났고, 출판사와 출판물의 양극화는 극심해졌다. 그러나 출판 불황과 출판 전망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갈수록 책이 덜 팔리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출판콘텐츠에 대한 소비자들의 사그라든 욕구를 반영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콘텐츠 욕구는 사회 변화와 함께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금의 출판 불황은 결코 독자 탓이 아니다.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책이라고 하는 미디어에만 집착해서 우리의 출판행위를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출판계의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행기’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의 출판’에서 ‘흐름의 출판’으로 출판 패러다임이 이행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행기란 미래의 것이 존재하는 현재를 말한다. 이행기에는 현재의 것들과 미래의 것들이 섞여 있다. 그러나 섞여 있는 것들 중에서 어느 것이 미래의 것인지를 꿰뚫어보는 것은 쉽지 않다. 도래할 것이 우리 눈앞에 확연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현재의 주류적인 것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도래할 것이 지금의 모습 속에 있지 않다면 미래의 것은 결코 오지 않는다. 출판사들이 흐름의 출판 방식, 즉 미래의 콘텐츠 생산방식을 지금-여기에서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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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 인간 매체 소비시간
10~30대까지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인터넷 사용시간이 40대에서 급격하게 꺾인다.
불과 10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이다.
따라서 아직도 '이행'은 진행중이다. 이 '이행'의 시기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사실 우리가 뉴미디어라고 부르는 것들은 기존 미디어에 새로움의 요소가 가미된 것이기 때문이다. 맥루언의 말처럼 올드미디어는 뉴미디어의 원천이며, 하나의 미디어는 다른 미디어를 완전히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기 때문이다. 모든 미디어는 고유의 ‘뉴미디어성’과 ‘올드미디어성’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새로운 미디어는 기존의 미디어를 인정한 위에서 경쟁 혹은 개조를 통해 자신의 문화적 의미를 획득해 나간다. 흐름의 출판은 공간의 출판이 갖는 공간적 성격을 완화하기는 하지만 결코 제거하지는 못한다. 흐름의 출판은 공간의 출판을 파괴하는 것을 통해 성립하지만, 공간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는 이를 리-미디에이션(재매개, remediation)이라 하는데, 리-미디에이션(re-mediation)을 레미디-에이션(remedi-ation)  즉 교정이나 치료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할 때, 책이라고 하는 올드미디어 영역에서 쌓은 출판의 노하우는 뉴미디어 환경에서도 강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IT혁명으로 도래한 웹세상은 출판콘텐츠의 생산 ․ 유통 ․ 소비 패러다임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바꾸어 놓았다. 그 변화는 크게 쌍방향성, 다양성, 장기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으며, 이는 출판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바로 롱테일법칙이다. 비록 단위상품의 매출은 적더라도 많은 가짓수의 상품이 시장에 오래 남아 팔린다면 전체 매출은 커질 수밖에 없다. 롱테일법칙은 앞으로 우리 출판인들이 어떤 관점에서 출판콘텐츠를 생산해 나가야 할지 그 방향을 제시해 준다. 무수하게 세분화된 소비자의 욕구는 무수한 틈새를 만들어내고, 이 무수한 틈새는 다시 무수히 많은 전문적이고 독창적인 출판콘텐츠를 요구한다. 따라서 롱테일법칙의 시대에 중요한 건 1등 대박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존재할 가치가 있는 독창적이고 전문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멀티미디어 시대에 출판은 책이라는 단일한 매체에 종속되지 않고 형식과 전달 방식을 무한히 변용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휘젓고 다닐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게 되었다. 앞으로 출판 사업의 성패는 양질의 변용 가능한 콘텐츠 재고를 얼마만큼 갖고 있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다.

이제 출판인들은 책에만 고민을 한정시키지 말고 책은 책대로 느리고 긴 호흡으로 진행해 나가면서, 한편에선 순발력 있게 다른 미디어에 우리의 콘텐츠를 생산 ․ 유통시켜야 한다. 무거움과 가벼움, 느리고 빠름이 어우러진 강력한 콘텐츠 생산방식을 일상 리듬으로 만들어야 한다. 책으로 단련된 출판의 깊이는 그 어떤 문화콘텐츠보다 경쟁우위에 있다. 다시 문제는 콘텐츠를 늘 종이라는 미디어에 실어 날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출판인의 낡은 인식 습관에 있다. 출판은 더 이상 종이 미디어에 한정된 사업이 아니다. 이제는 책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콘텐츠인 시대다. 저자, 독자가 사유하고 발언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출판의 기회는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불황에 가위눌린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도래할 가능성을 ‘새롭게 찾은 10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앞으로 10년. 우리 출판은 흐름의 출판이 대세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제 출판은 웹 이전 시기의 출판과 웹 이후 시기의 출판으로 나뉜다. 지금의 10대 초중반 세대는 전통적인 미디어보다는 웹에 더 익숙한 세대다. 이들이 사회의 주류로 부상하는 앞으로의 10년이 그래서 출판계에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이제 출판사는 웹시대에 맞게 콘텐츠 생산을 분절적인 공간의 방식이 아니라 흐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으며, 콘텐츠 생산의 포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해오던 책 출판 외에 e북, 오디오 콘텐츠, 동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생산해내야 한다. 이 말은 결코 책에 들어갈 콘텐츠를 만든 다음, 그것을 다른 미디어 방식에 맞게 변환하는 선형적인 방식의 콘텐츠 생산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처음 기획 단계부터 각각의 미디어에 맞는 콘텐츠를 동시에 생산해내야 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멀티미디어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에도 쌍방향성이 아니라 일방향성의 전략을 구사했다. 늘 책이 먼저였고 책이 중심이었으며, 나중에 부가적 활용전략 차원에서 다른 미디어를 고민했던 것이다. 이제 이런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심과 주변이 따로 없는, 상황에 따라 책이 중심이 되기도 하고 주변이 되기도 하는, 그런 유연한 미디어 마인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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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의 작품
여기에서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이 존재자들은 '흐름'에 따라 역할을 달리 한다.
중심과 바깥의 구분이 없는 곳에서, 흐름에 따라 역할이 규정되는 곳에서 '유연한 전략'이 태어난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보다 흐름의 출판에서 지식은 저비용으로 빠르게 흘러다녀야 한다. 그러려면 지식콘텐츠가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말고 독자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형태로 값싸게 제공될 필요가 있다. 다매체 시대인 지금, 출판의 실행전략은 크게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우선 크게는 프린트(print) 영역과 비-프린트(non-print)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프린트 영역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출판 영역으로, 다시 책을 만드는 영역과 이를 유통시키는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비-프린트 영역은 아직은 활성화되지 않은 영역으로, 다른 미디어의 원천(resources)이 되는 영역, 다른 미디어와의 협력생산(co-operation) 영역, 그리고 멀티미디어시대에 새로 출현할 신사업(new format)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영역에서 우리는 우리의 콘텐츠를 가장 최적화된 형태로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며, 출판 자원의 배분도 그런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오로지 책을 중심으로 서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만 과잉으로 몰려 있는 출판 자원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출판의 재생산 토대를 근저에서 뒤흔드는 요인이다. 우리의 목표는 책읽는 사회를 통해 보다 많은 콘텐츠가 생산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독자들이 모든 책을 사서 볼 필요도 없다. 적당한 비용만 지불된다면 출판사가 주도하는 라이브러리 사업도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다. 출판사가 직영하는 서점이나 북카페 등도 신중하게 고려해 볼만한 사업영역이다. 콘텐츠 생산과 유통은 사실 분리될 수 없는 성질의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서점 유통방식을 제외하고는 콘텐츠 유통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콘텐츠의 활발한 유통이 콘텐츠 생산을 다시 자극하는 선순환 구조의 정착을 위해서 다양한 유통채널 개발이 시급하다.

전송수단으로서의 인쇄방식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시급하다. 출판인들은 채용하고 있는 복제방식은 대부분이 옵셋인쇄 방식이다. 이 방식은 대량생산체제에 맞는 복제방식으로, 대다수의 출판사가 이 방식으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아직도 다품종소량생산을 자기 문제의식으로 끌어안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안이 없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에겐 POD가 있잖은가. POD는 ‘퍼블리싱 온 디멘드’ 혹은 ‘프린트 온 디멘드’를 의미한다. 이 기술은 출판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을 만한 기술인데도, 아직은 우리 출판인들의 관심 밖에 있다. ‘퍼블리싱 온 디멘드’를 하게 되면 1부든, 10부든 독자가 실제로 원하는 만큼만 찍어낼 수 있다. 출판사를 괴롭히는 악성 재고를 획기적으로 없앨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POD방식을 쓰면 실시간으로 개정판을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시간 리뉴얼은 콘텐츠의 생명력을 획기적으로 연장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은 옵셋에 비해 퀄리티가 약간 떨어지고 제작단가가 비싼 것이 흠이지만, POD 이용이 일반화되면 퀄리티나 제작단가 문제는 빠른 시간 안에 개선될 것이다. ‘프린트 온 디멘드’는 또 어떤가. 이 방식은 출판사가 콘텐츠를 디지털화해서 웹상에 올려놓으면 독자가 해당 책에서 필요한 부분만 다운로드 받아 프린트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출판사는 제작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아 좋고, 독자는 필요한 콘텐츠를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 좋다.

비-프린트 영역도 마찬가지다. ‘흐름의 출판’에서는 동영상도 출판의 일상적인 생산 영역이 된다. 어떤 책을 만든다고 할 때, 예전과 같은 ‘공간의 출판’ 방식이라면 이 기획에 맞는 필자를 섭외해 원고청탁을 한 다음, 책으로 만들어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흐름의 출판’에서는 저자 ․ 독자 ․ 출판사가 함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즉 저자와 독자가 직접적으로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서로의 욕구에 충실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필자를 섭외하는 데까진 과거와 똑같지만, 원고 청탁을 하면서 동시에 오프라인 강의를 조직하는 것이 다르다. 이 방식은 독자 네크워크의 구성과 원고 모니터링이 동시에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다. 함께 제작하고 함께 소비하는 웹시대 감각에 맞는 출판방식인 것이다. 출판사는 인터넷을 통해 이 강의를 실시간 동영상으로 보여줄 수도 있고, 편집과정을 거쳐 동영상 콘텐츠로 만든 다음 제공할 수도 있다. 이때 동영상 파일에서 음성만을 따로 따내 오디오 파일 형태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런 작업을 하는 한쪽에서는 강의 현장의 독자 피드백을 토대로 책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다.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을 콘텐츠 다 만들어 놓고 사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전적으로 함으로써 그 시너지 효과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동영상과 관련해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 우리는 동영상 하면 세련된 이미지 영상을 떠올리면서 움츠러들기부터 한다. 방송이나 영화 미디어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출판미디어가 주로 다루는 영역은 스펙터클한 이미지콘텐츠가 아니라 언어콘텐츠다. 언어콘텐츠를 영상화하는 것은 저렴한 비용으로도 가능하다. 이게 출판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에 대해서 갖는 절대 강점이다. 굳이 다른 미디어를 흉내낼 필요가 없다. 텔레비전 시사 토론프로그램이 화려한 영상 이미지 때문에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건 아니지 않은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출판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필자들이 누군가. 그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토론하거나 강의한 것을 동영상으로 담으면 그것 자체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된다. 동영상에 들어갈 자막을 감각적으로 뽑아내고,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은 출판 편집자들이 그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다. 이렇게 만든 동영상 파일을 자사 홈페이지나 IPTV 등의 채널을 통해 소화시키면 된다. 문학, 역사, 철학, 정치, 경제, 건강, 어학, 스포츠 등등, 도대체 출판이 손대지 못할 분야가 뭔가. 출판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출판의 사업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지금까지의 출판사는 책만 잘 만들어내면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출판사는 콘텐츠를 생산 ․ 유통 ․ 소비하는 중심거점이 되어야만 한다. 쉽게 말하면 출판사는 책을 펴내는 곳이기도 하고, 서점이기도 하며, 도서관이기도 하고, 미디어이기도 하고, 커뮤니티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출판사를 중심으로 지식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낼 때만 출판계를 떠도는 유령은 사라질 것이다.

- 대표 유재건
 
2008/10/24 11:26 2008/10/2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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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8/10/24 12:37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08/10/24 13:37

      안녕하세요. ^^
      익숙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분이시군요. 블로그는 구독해서 잘 보고 있습니다.
      관심가지고 봐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요청하신 건에 대해서는
      담당자분과 상의 후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2008/10/24 14:20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바빠서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링크 걸어놓고 다시와서 꼼꼼히 보겠습니다. ^- ^

    • 그린비 2008/10/24 17:53

      솔님, 안녕하세요.
      꼭 저희 사장님이 쓰신 글이라서가 아니라..(..*)
      좋은 말씀이지요. 꼭 다시 오셔서 한번 읽어보시어요. ^-^

  3. 2008/10/24 19:00

    시험보고 달려와서 다시 찬찬히 읽었답니다. ^- ^
    제가 미디어 학과 전공이거든요 ^^(분야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 전 디지털미디어)

    e북이나 오디오북, 동영상 북 등 해외에서는 이미 활성화 된걸로 알고 있어요~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한다면 살아남겠죠.

    위기는 기회니까요. ^^

    • 그린비 2008/10/27 09:34

      솔님, 오셨네요~ 반갑습니닷. ^^
      위기를 기회삼아 출판계에 떠돌고 있는 유령을 물리쳐 보이겠어요. !

  4. 비밀방문자 2008/10/26 00:42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08/10/27 10:27

      에구, 저희야말로... 고맙습니다. ^^*

  5. 행복한상상 2008/10/26 10:22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해 볼께요. 화이팅!!

    • 그린비 2008/10/27 09:35

      행복한상상님,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지금처럼 지켜봐주세요. ^^

  6. 드림코치 노지희 2008/10/26 14:22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옮겨갑니다^^

    • 그린비 2008/10/27 09:40

      드림코치 노지희님, 감사합니다. ^^

  7. mariner 2008/10/26 19:22

    사실 독자가 책을 구입하려는 이유는 책장에 꼽아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솔루션과 경험을 구입하기 위해서 고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깊이 공감합니다.^^
    또 호모부커스의 강연회와 책을 동시에 읽고 이렇게 블로그에서 소통을 하니 확실히 솔루션을 제공받은 기분이 납니다.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경험도 따라왔구요.
    그린비 파이팅입니다.^^

    • 그린비 2008/10/27 09:48

      mariner님, 안녕하세요.
      그렇게 느껴주셨다니 더없이 기쁘네요. ^-^
      mariner님과 같이 이렇게 함께 소통할 수 있어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겠지요. 앞으로도 지속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

  8. 띠보 2008/10/27 23:52

    오늘 저녁에 사무실에 들렀던 학생인데요.
    자주 올게요.

    • 그린비 2008/10/28 09:31

      띠보님, 그러고보니 이름도 성도 모르는군요. 이런 실례가 ^-^;;
      아마도 위의 글을 육성으로 들으실 날이 오실겝니다.ㅎㅎ
      종종 뵙도록 하여요. ^^

    • 띠보 2008/10/29 22:53

      실명은 다시 만나뵙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앞으로 목표는 그린비 매출 올려서
      자리 하나 만드는 일인데요
      그거야말로 일자리 창출이 아니겠습니까.
      도서관에 주문한 로퀜스랑,루덴스가 오늘 도착했습니다
      앞으로 더 분발하겠습니당당당

    • 그린비 2008/10/30 12:55

      하하; 띠보님, 화이팅!입니당당당 ^-^;

  9. 비밀방문자 2008/11/04 17:59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0. 꿈쟁이 2008/12/04 01:12

    유재건사장님과 정군 덕분에 한국의 출판계가 지각변동을 할 것 같습니다. 출판편집장과정이랍시고 무게잡고 다들 앉아있다가 마지막 쫑파티에서 회포를 풀었네요 귀한 시간을 후학들 양성과 출판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인문학 멸종의 시대에 지성의 근간이 되는 인문서적을 출판해주시니 귀하게 여겨집니다. 정승연(?)군과 같은 실력파열성파 직원을 두셨으니 그린비의 앞날에 시온의 대로가 열릴 것입니다. 제 16기편집장과정 쫑강 후기...

    • 정군 2008/12/04 09:50

      안녕하세요. ^^ 정군입니다. 어제 쫑파티에서는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던 것 같습니다. 제가 봐도 제가 열성은 좀 있는 것 같은데, 실력은 아직 멀었습니다. 더 노력해서 정말 '지각변동' 함 일으켜 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