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_혁명 앞에서의 머뭇거림 : 2008년 촛불시위의 발발과 전개(고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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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소개 :

ESSAY_혁명 앞에서의 머뭇거림 : 2008년 촛불시위의 발발과 전개


이 글의 제1부와 제3부는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으로, 제1부는 6월 19일, 제3부는 7월 29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제2부는 두 글에서 다루지 않았던 6월 말과 7월 초의 상황을 다룬 것으로 9월 20일에 작성되었습니다. 각각 서로 다른 상황에서 작성된 글들로서 저마다 고유한 쟁점을 가지고 있지만, 촛불시위의 전개 순서에 따라 전체 3부로 구성해서 함께 게재했습니다. 아래는 제2부의 본문 내용입니다.

<제2부 사제와 폭력>의 첫 장에서는 1987년과 2008년의 ‘6월 10일’의 비교를 통해 촛불시위를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1987년의 ‘6월 10일’은 항쟁으로 발전하는 기점으로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2008년의 ‘6월 10일’은 정점을 찍은 채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는 애당초 이번 촛불시위가 축제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히려 축제와 놀이는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운동이 발명해 낸 새로운 형식이었다. 5월의 촛불시위는 그 막강한 힘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그러나 6월 10일을 향해 가면서 혹은 ‘6월 10일’로 상징된 시위가 시작되면서, 5월 시위는 급속히 그 정점을 향해 갔고 어떤 변질을 예고하고 있었다. 요컨대 ‘축제 형태의 시위’는 점차 ‘시위 형태의 축제’가 되어 갔다."

"언제부턴가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검열이 아주 심해졌다. 처음에는 경찰의 폭력에 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희화하고 조롱할 줄 알았던 대중들이 점차 경찰의 폭력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폭력성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5월의 시위대는 하나였지만 7월의 시위대는 둘이었다. ‘5월의 대중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6월과 7월을 거치면서 용기를 포기한 대가로 웃음을 얻거나, 웃음을 포기하며 만용을 부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벽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뭇거렸다. 묘한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로마 황제의 옷을 빌려 입었던 나폴레옹처럼 2008년 6월 10일은 1987년 6월 10일의 옷을 빌려 입었다. 그러나 역사의 옷장에서 걸린 옷들을 축제의 가장의상이나 패러디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진지하게 입으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모든 시대는 자기 옷을 직접 지어 입어야 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장에서는 2008년 6월 28일, 대충돌의 밤과 그날 이후 사제들의 등장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촛불시위와 관련하여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요.

"솔직히 나는 사제들의 숭고한 행동이 촛불시위의 출구를 열어 주었는지 닫아 버렸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일반적 견해와는 달리 나는 후자 쪽에 좀더 무게를 두는 편이다. 확실히 사제들은 어떤 시위대도, 적어도 그 첫날에는 불가능했을 일, 바로 경찰의 원천봉쇄를 와해시켰다. 하지만 또한 사제들은 어떤 폭압적인 경찰력으로도 불가능했던 일, 바로 시위대의 분노와 공격성을 잠재우는 데도 성공했다."

"현실적 승리와 정신적 승리가 교환되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어떻든 7월 5일 저녁에 열린 집회 제목이 ‘국민승리 선언을 위한 촛불 문화제’ 였던 것은 참 의미심장하다. 승리를 위해 뭔가를 시작해야 할 시점에, 승리를 선언해 버린 것은 그 다음 날 새로운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다시금 막연한, 너무도 막연한 상황으로 내던진 일이었다."

"이번 시위에서 강한 힘을 발휘했던 것은 폭력에 굴하지 않는, 비타협적인 비폭력 직접행동이었다. 물대포를 그대로 맞으며 깃대를 붙잡고 있는 이들, 경찰의 곤봉이나 방패에 그대로 자기 몸을 노출시킨 이들, 험악한 진압 경찰 앞에 유모차를 들이민 이들,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연행이 시작되자 오히려 자발적으로 연행된 이들. 이들의 행동은 여러 곳으로 송신되며 자기를 닮은 이들을 더 많이 만들었다. 그것이 지난 ‘5월 대중’ 의 무서움이었다."

"그들은 결코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것을 기꺼이 맞이했다."

"그런데 사제들이 대중들을 진정시켰을 때 그들은 물리적 폭력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그 전에 가졌던 공격적인 직접행동도 포기해 버렸다. 사제들과 비폭력 행동단이 외친 ‘비폭력에 대한 호소’는 ‘물리적 폭력’에 대한 반대를 넘어, 시위대의 공격적인 ‘직접행동’을 차단해 버렸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의미는 이상하게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미 잊혀져가고 있는 촛불시위가 지금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부커진 R2의 에세이 <혁명 앞에서의 머뭇거림>은 2008년 촛불시위의 발발과 전개를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리고 지금의 시간에서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게 합니다.
2008/10/31 10:06 2008/10/3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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