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 때 - 사랑의 유통기한
니 꼬리를 물어주마!/시즌2 인물열전
2008/11/03 10:47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 때 : 사랑의 유통기한
철조망을 가득 메운 사랑의 자물쇠_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자물쇠에 새겨 넣고 잠그면 사랑이 변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다가오는 사랑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죽어 가는 사랑은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갈등에 자연적인 수명이 있는 것처럼, 사랑에도 자연적인 수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언 매큐언은 주인공 ‘조’를 통해 완벽할 것 같은 관계가 어떻게 그 수명을 다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에게 때마침 닥친 사건과 그 사건으로 인해 만나게 된 스토커는 장차 그에게 고통스러운 이별을 데리고 옵니다. 주인공은 그 스토커 때문에 신경증 비슷한 것에 걸리게 되고 그러면서 연인 클라리사와 자연스럽게 틈이 생기고, 늘 격정적이던 그들의 밤은 이제 등을 맞대고 차갑게 식어가는 연인관계가 되지요. 그에게 찾아온 이별의 원인이 그 ‘스토커’ 때문인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그냥 그렇게 될 때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조는 스토커 때문에 마침 할 말이 많았는데, 그의 연인은 마침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너무나도 완벽하게 운 없고 피곤한 하루를 보내서 그 이야기를 들어줄 기력이 없었고, 그렇게 둘 사이의 균열이 시작되거든요. 우연이면서도 필연적으로. 그렇게 『이런 사랑』속 주인공은 관계의 끝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관계가 끝나려면 이것 참, 방귀 한 번에도 끝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보통 우리가 말하는 이별의 정의로는 ‘사랑이 식어서 마음이 변하여 관계가 끝난다’는 말보다는 그냥 ‘사랑 자체가 나이를 먹고, 때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죽는 것’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제가 요즘 맡고 있는 책,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의 저자 고미숙 선생님은 이것을 두고 “사랑도 ‘생로병사’를 겪는다”고 하셨지요).
내 앞에서 나를 향해 이야기하는 저 사람이 지금, ‘한국어’를 쓰고 있는 게 맞는지 놀랍고 의아하고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이해도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말소리가 차라리, ‘외국어’로 들립니다. 저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혹은 내가 그동안 저 사람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 내 앞에 마주한 사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낯선 타인이 됩니다. 많이 사랑했던 사이일수록(친구이건, 연인이건) 그 낯선 감정은 더 날이 서서 다가오고요. 그렇게도 즐겁고 유쾌하던 둘 사이의 공기는 북풍의 매서운 바람이 되고,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을 것 같던 둘 사이의 밀도 높던 공간엔 어느새 높고 두꺼운 벽이 들어서 있습니다. 관계가 끝나갈 때쯤 둘 사이의 ‘끈’이 끊기면서 그와 함께 ‘벽’이 생기는데요, 그 벽을 허물거나 뛰어넘을 용기나 의욕이 소진된 상태를 그 관계의 ‘사망’이라 불러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끝은 어떤 대단한 이유나 사건으로 비롯된다기보다는 그냥 그럴 때가 되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_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에는 정말 유통기한이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한때는 너무나 친밀했던) 상대를 앞에 두고 우리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인지 되짚어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사소한 몸짓, 표정, 혹은 착각에서 시작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관계의 끝도 사소한 말과 행동, 오해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러니 그 지점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언 매큐언은 책의 시작부터 “시작점을 짚어 내는 건 쉽다”며 그 파국의 시작이 어디였는지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고, 알랭 드 보통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책의 초반부터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것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확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에 빠질 확률 따위를 분석하는 일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별의 시작점을 찾는 일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뭐, 아님 말고요.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파니핑크」의 감독 도리스 되리가 만들었습니다)만 보더라도 서로 열렬히 사랑하던 커플이 별거 아닌 일에도 투닥투닥 싸우고, 온순하던 사람들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고 그렇게 사랑의 감정이 닳아 없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걸 보면 어쩐지 이별이란 것이 어떤 ‘사건’이 아니라 꽃이 피고 지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손끝만 닿아도 살갗에 나란히 솟아오르던 소름은 손가락 할아버지가 닿더라도 올라오지 않게 되는 그런 때, 예전엔 애인이 밥 많이 먹는 게 그렇게도 예뻐 보이더니 이제는 물만 마셔도 보기 싫게 되는 그런 때가 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건, 사랑에도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수명이 있는 탓일 겁니다.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그냥, 엄습해 올 때가 있습니다. 네, 자연의 순환처럼, 그냥 ‘시절’이 오는 거죠. 그리고 그 시절이 얼마나 빨리 찾아오느냐는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온전히 관계에 뛰어들려 하지 않기 때문에(왜냐하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상대보다는 여전히 내 감정이 더 중요하고,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하니까) 관계에 책임을 지는 성숙함도, 관계에서 충분히 아파하는 통증도 우리의 몫이 아닌 게 됩니다. 사랑을 하면서 좋았던 감정, 나를 전율하게 했던 환희, 그런 것만 갖고 싶어 합니다. 모든 사랑은 이별로 정의되는 까닭에 이별로 인한 아픔까지도 모두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되는데 말입니다. 사랑은, 슬프고 나쁘고 싫은 끔찍한 감정까지 모두 포함한 관계를 말하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황주리 作 <식물학>
'사랑의 생로병사'_사랑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 이별까지 끌어 안을 수 있을 때, 진짜 제대로 된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 사이에는(혹은 사람과 사물 사이, 사람과 동물 사이에는) 강요하지도 않고 강요받지도 않지만 그래도 서로 통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사랑’이 될 수도, 사랑의 ‘반대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냥 문득 알게 되는 그 마음은 내가 왜 배가 고픈지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조’의 말마따나 “죽어 가도록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것이 관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미숙 선생님의 말씀처럼 ‘시절인연’이라는 게 있으니, 그 인연에 충실하고, 끝나면 미련을 갖지 않고 끝내는 게 진짜 제대로 관계를 맺는 일일 겁니다. 삶도, 사랑도, 관계도 어쨌거나 변하고, 함께 ‘나’도 변하고… 그렇게 우리는 늘 지나가는 흐름 속에 생성되는 변화 속에 펼쳐지고 있는 거니까 말이죠.
“대중심리학에서는 만사를 대화로 푸는 것을 중시하고 거기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갈등이라는 것에도 자연적인 수명이 있다. 죽어 가도록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것이 관건이다. 때를 잘못 판단해서 뱉은 말은 전기충격처럼 작용할 수 있다.”
(이언 매큐언, 『이런 사랑』)

우리는 다가오는 사랑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죽어 가는 사랑은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갈등에 자연적인 수명이 있는 것처럼, 사랑에도 자연적인 수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언 매큐언은 주인공 ‘조’를 통해 완벽할 것 같은 관계가 어떻게 그 수명을 다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에게 때마침 닥친 사건과 그 사건으로 인해 만나게 된 스토커는 장차 그에게 고통스러운 이별을 데리고 옵니다. 주인공은 그 스토커 때문에 신경증 비슷한 것에 걸리게 되고 그러면서 연인 클라리사와 자연스럽게 틈이 생기고, 늘 격정적이던 그들의 밤은 이제 등을 맞대고 차갑게 식어가는 연인관계가 되지요. 그에게 찾아온 이별의 원인이 그 ‘스토커’ 때문인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그냥 그렇게 될 때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조는 스토커 때문에 마침 할 말이 많았는데, 그의 연인은 마침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너무나도 완벽하게 운 없고 피곤한 하루를 보내서 그 이야기를 들어줄 기력이 없었고, 그렇게 둘 사이의 균열이 시작되거든요. 우연이면서도 필연적으로. 그렇게 『이런 사랑』속 주인공은 관계의 끝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관계가 끝나려면 이것 참, 방귀 한 번에도 끝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보통 우리가 말하는 이별의 정의로는 ‘사랑이 식어서 마음이 변하여 관계가 끝난다’는 말보다는 그냥 ‘사랑 자체가 나이를 먹고, 때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죽는 것’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제가 요즘 맡고 있는 책,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의 저자 고미숙 선생님은 이것을 두고 “사랑도 ‘생로병사’를 겪는다”고 하셨지요).
내 앞에서 나를 향해 이야기하는 저 사람이 지금, ‘한국어’를 쓰고 있는 게 맞는지 놀랍고 의아하고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이해도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말소리가 차라리, ‘외국어’로 들립니다. 저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혹은 내가 그동안 저 사람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 내 앞에 마주한 사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낯선 타인이 됩니다. 많이 사랑했던 사이일수록(친구이건, 연인이건) 그 낯선 감정은 더 날이 서서 다가오고요. 그렇게도 즐겁고 유쾌하던 둘 사이의 공기는 북풍의 매서운 바람이 되고,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을 것 같던 둘 사이의 밀도 높던 공간엔 어느새 높고 두꺼운 벽이 들어서 있습니다. 관계가 끝나갈 때쯤 둘 사이의 ‘끈’이 끊기면서 그와 함께 ‘벽’이 생기는데요, 그 벽을 허물거나 뛰어넘을 용기나 의욕이 소진된 상태를 그 관계의 ‘사망’이라 불러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끝은 어떤 대단한 이유나 사건으로 비롯된다기보다는 그냥 그럴 때가 되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그는 깨달았겠죠. 마치 계절처럼 사랑도 변한다는 것을.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파니핑크」의 감독 도리스 되리가 만들었습니다)만 보더라도 서로 열렬히 사랑하던 커플이 별거 아닌 일에도 투닥투닥 싸우고, 온순하던 사람들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고 그렇게 사랑의 감정이 닳아 없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걸 보면 어쩐지 이별이란 것이 어떤 ‘사건’이 아니라 꽃이 피고 지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손끝만 닿아도 살갗에 나란히 솟아오르던 소름은 손가락 할아버지가 닿더라도 올라오지 않게 되는 그런 때, 예전엔 애인이 밥 많이 먹는 게 그렇게도 예뻐 보이더니 이제는 물만 마셔도 보기 싫게 되는 그런 때가 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건, 사랑에도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수명이 있는 탓일 겁니다.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그냥, 엄습해 올 때가 있습니다. 네, 자연의 순환처럼, 그냥 ‘시절’이 오는 거죠. 그리고 그 시절이 얼마나 빨리 찾아오느냐는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온전히 관계에 뛰어들려 하지 않기 때문에(왜냐하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상대보다는 여전히 내 감정이 더 중요하고,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하니까) 관계에 책임을 지는 성숙함도, 관계에서 충분히 아파하는 통증도 우리의 몫이 아닌 게 됩니다. 사랑을 하면서 좋았던 감정, 나를 전율하게 했던 환희, 그런 것만 갖고 싶어 합니다. 모든 사랑은 이별로 정의되는 까닭에 이별로 인한 아픔까지도 모두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되는데 말입니다. 사랑은, 슬프고 나쁘고 싫은 끔찍한 감정까지 모두 포함한 관계를 말하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사랑의 생로병사'_사랑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 이별까지 끌어 안을 수 있을 때, 진짜 제대로 된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 사이에는(혹은 사람과 사물 사이, 사람과 동물 사이에는) 강요하지도 않고 강요받지도 않지만 그래도 서로 통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사랑’이 될 수도, 사랑의 ‘반대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냥 문득 알게 되는 그 마음은 내가 왜 배가 고픈지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조’의 말마따나 “죽어 가도록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것이 관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미숙 선생님의 말씀처럼 ‘시절인연’이라는 게 있으니, 그 인연에 충실하고, 끝나면 미련을 갖지 않고 끝내는 게 진짜 제대로 관계를 맺는 일일 겁니다. 삶도, 사랑도, 관계도 어쨌거나 변하고, 함께 ‘나’도 변하고… 그렇게 우리는 늘 지나가는 흐름 속에 생성되는 변화 속에 펼쳐지고 있는 거니까 말이죠.
- 편집부 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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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사랑이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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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감정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저 기막힌 표현은 누가 처음 시작했을까요 ^^
오랫만에 돌아온 레몬입니다 ㅎ (바쁜 생업에 허덕이다 요통을 얻어 병가중입니다 ㅋ)
사실 사랑만큼 변덕스러운 녀석도 없지요.
내 살다살다 저렇게 변덕스러운 녀석은 처음 봤다니깐요
저는 아내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통기한은 벌써 끝났나 봅니다.
더 깊은 사랑으로 발전해 버렸으니 말이죠 ㅎㅎ
(죄송해요 막 1주년 문턱을 넘은 팔팔한 20대 부부의 염장이었어요)
레몬에이드님!
요즘 도통 보이지도 않으시고 블로그에도 소식이 뜸해 궁금해하던 차였는데, 레몬에이드님 이름을 보고 반가운 맘에 댓글을 읽다..흐음..뭐 그렇습니다..-_-;;ㅋㅋ
레몬에이드님, 행복한 결혼생활 영위하시구요(급 딱딱모드랄까요ㅎ), 사랑도 사람도 변하는 건 막을 수 없는 이치이니 지금처럼 계속 사랑의 흐름을 만들어나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