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혁명의 무기인가, 유린의 도구인가

곽소현 (연구공간 '수유+너머')


강남 논술 첨삭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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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대치동의 학원가
_ 눈부신 늦가을의 하늘과 햇살, 낙엽을 뒤로 하고 학원가로 달려 가야 하는 노라 신세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이 학원 건물들에 쌓여 늦가을을 느낄 수나 있었을까?

미칠 것 같이 눈부신 늦가을 태양, 그 빛에 수천 개 조각으로 스러지는 은행나무 이파리, 풍성하게 내리는 낙엽비 속을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 그 속에서 함께 걷고 싶다. 하지만 수능이 끝난 요즘 난 지금 버스를 타고, 강남 학원가로 논술첨삭 알바를 뛰기 위해 가는 중. 산책의 여유를 포기한 건 돈이 없어서다. 수능 끝난 애들은 이제 수시 논술을 봐야하는 데 첨삭 샘이 필요하고, 난 돈이 바닥나가니 시절인연이 잘 맞은건가? 암튼 요즘 난 입센의 작품 속 가출한 노라 신세다. 게다가 돈도 떨어져가는. 루쉰은 1923년 12월 북경 여자고등사범학교에서 「노라는 가출하여 어떻게 되었는가?」(『노신문집3』)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루쉰은 여기서 가출한 노라가 갈 수 있는 길을 두 가지로 본다. 타락하거나, 집으로 돌아가거나. 자유를 위해서든 다른 사랑을 위해서든 어쨌든 간에 가출을 성공적으로 감행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고 루쉰은 거듭 강조했다. 집 나온 나로서는 타락하거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루쉰의 말에 절대 공감 중이다. 그런데 막상 수시논술을 대비중인 애들을 만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지식인의 죽음? 저항 정신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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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위기 원인
_ 신자유주의 및 세계화, 현실에 대한 성찰 및 비판 의식 부재...지식인의 죽음을 부른 요인이다.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의 출신 학부 2위(최근 10년간)가 서울대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식인의 죽음』(서울: 후마니타스, 2008)에서는 이미 한국 대학에 비판적 지성은 사라진지 오래라고 말한다. 20년 전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했을 때만 해도,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고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교수직을 버리면서까지 독재 정권에 저항해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시대의 양심들. 그런 지성은 사라진지 오래란다. 그런 지성은 어디 갔는가? 아니 그들은 어떻게 변해 살아가는가? 이 책은 지식인의 죽음을 부른 요인이 ‘신자유주의 및 세계화, 자본 종속과 시장 논리 지배, 서구 학문 중심주의 및 의존’이라고 분석한다.(같은 책, 75쪽) 여기서 서구 학문이란 미국 학문을 말한다. ‘2007년 5월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사회과학대 경제학과 교수 34명중 31명, 정치학과 11명중 10명, 외교학과 11명중 10명, 사회학과 14명중 9명이 미국 박사다. 4개과 교수 70명중 61명, 87%가 미국 박사고 이러한 추세는 다른 주요대학 교수들의 미국 박사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같은 곳)

한국 대학의 지성은 이처럼 거의가 미국식 지성으로 덧입혀져 있다. 그리고 과거 현실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문제적 현실들을 바꿔보려는 비판적 지성의 얼굴은 전문 연구 인력 양성이라는 국가적 기치 하에 기능적 전문가로 변환되고 있다. 자율시장 경제 논리가 대학 가에서도 주도적 흐름이 되면서 대학에서의 학문 연구란 학진 프로젝트비, 연구비 등의 돈 따먹기 경쟁으로 일축되고 있다. 소위 ‘전문가라는 이름의 대학 지식노동자는 지식을 그저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돈이 되는 연구에만 주력하게 된 것이다. 이들에게 자신의 관심사나 대중적 관심사는 떠난 지 오래다.’(같은 책, 78쪽)     

논술, 지배 권력의 욕망을 욕망하라

대학 내 지식인들의 현 자화상이 이렇다면 이들이 제출하는 시험, 그것도 논술이 요구하는 답안은 어떤 걸까? 자유, 저항, 비판 정신을 위한 글일까? 전혀. 논술에서 독창성과 창의력은 주요한 비중을 갖고 점수를 받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일차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제시문을 정확히 이해, 분석하고 그것들 간의 연관관계를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사실 독창성과 창의력은 문제로 나와도 점수를 매기기 힘들다. 지금 대다수 아이들의 일상은 학원과 학교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고, 이들이 보는 책도 참고서와 문제지 위주니 다른 생각의 여지를 키워볼 외부가 부재한 상태다. 깨어있을 때 하루 종일 빡세게 돌아가는 학교, 학원, 과외 시스템에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잠도 부족해 졸기 일쑤인 이들에게 다르게 생각할 여지, 창의력을 길러볼 가능성, 딴 생각을 할 시간이 있을까?

논술 문제들 이면에 잠재된 욕망은 ‘내가 생각하는 걸 알아맞춰 봐’라는 지배 권력의 요구다. 아이들의 대학 당락을 결정할 절대적 주도권을 쥔 대학 내 지성들이 요구하는 것은 ‘내 욕망을 너희들도 욕망하라’는 것이다. 내가 낸 문제들을 꼼꼼히 이해하고, 내가 정확히 요구하는 물음에만 답할 것. 그 외의 헛소리는 당연히 감점 요인. 오늘 학원 교실 입구에 붙어있던 유인물이 떠오른다. ‘오로지 선생님과 책하고만 대화할 것. 친구들과의 잡담은 절대 금물’. 대화나 소통의 시간이 쓸데없는 잡담으로 치부된 채 제거된 상태로 비판적 양심이 상실된 어른들의 요구에 정확히 부응할 수 있는 답안을 쓰기에 고심하는 학생들. 이것이 지금 논술 시장에서 아이들의 정신을 관리하며, 글을 통해 자신들의 비위에 맞는 아이들을 추려 대학에 입학시키는 지식인 권력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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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학원 교실 풍경
_ 미국 지성으로 덧입혀진 지배 권력의 욕망을 욕망하게 하는 논술. 하늘도 햇살도 낙엽도 없는, 벽으로 둘러쌓인 이 좁은 공간 안에서 아이들은 지배 권력의 욕망을 내 것으로 욕망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오늘 논술문제 중 하나는 삶의 보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과 돈과 개인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 중 자신은 어느 쪽인가를 밝히고, 연관된 응용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돈을 위해 일한다는 쪽을 택했다. 보람은 무슨 개뿔! 이미 아이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현실 논리를 인정하고 있었고 이것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보람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한 아이는 돈과 이익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썼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그래야 평가자가 좋아할 것 같아서란다. 자기를 부정해야 좋아할 것이다? 돈과 지배 권력을 욕망하도록 인간을 길러내는 사회 시스템과 교육체제. 그리고 그러한 정신을 길러내는 글, 논술.

바보, 거리에서 뭐하니

2년여 전에도 대학원 등록금 벌려고 논술 선생을 했다. 그때 만났던 고1, 고2 아이들의 일상은 내가 지나왔던 청소년 암흑기의 되풀이였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학교서 공부하고 새벽 두시까지 과외하고, 또 도서관 가고 주말에는 내가 근무하던 학원으로 와서 논술을 받고 또 영수 보충학원으로 돌고 돌고. 그러다 정말 돌아버린 아이. 내가 가르치던 중3학생 하나가 고1로 올라가면서 학원을 몇 주 안 나왔다. 그리고 몇 주 후 내게 와 그동안 학원을 빠져서 미안하다며 울었다. 사연인즉 학교시험 스트레스때문에 정신과치료를 받으러 다녔다고. 시험당일 며칠 전부터 잠을 못자다가 책을 찢고 벽지를 찢고 괴성을 지르고 난리를 쳤단다. 그래서 지금은 통원 치료 중이라고. 미안하다고 우는데 마음이 아팠다.

내가 그녀의 나이였을 때도 비슷한 스트레스로 힘들었다. 하지만 세상이 조금이나마 바뀔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여전히 입시 시스템에 기생해 생계를 유지하는 내 삶이 배반하고 있었다. 애들 앞에 서서 글쓰기의 독창성을 주장하며 자유롭게 살라고 멋진 말로 치장해 외치는 나.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난 사회구조의 부산물일 뿐 현실이 주는 답답함은 뛰어넘을 수 없는 소시민에 불과하다는 자조적 체념과 자괴감.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울고 있는 그 애의 어깨를 마치 다 이해한다는 듯 다독이는 내 손이 부끄러워 학원을 그만뒀다. 이걸 본 친구들은 날 순진한 바보라고 했다. 계속 공부나 하고 현실은 무시하자고, 그런 생각은 해봤자 머리만 아프고, 별 볼일 없는 내가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주제넘는 짓이라고 합리화하며 대학원으로 도피했다. 하지만 대학원 역시 벽이었다. 좀 더 거대한. 또 도피했다. 친구들은 역시 날 바보라고 했다. 지금은 거리에 선 나. 난 여기서 뭘 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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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作 <대화의 기술>
_ 파랗고 말끔한 하늘 아래 거대한 돌벽, 또 그 아래 두 사람은 마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하다. 논술에 지친 아이와 논술을 가르치는 이가 부딪힌 저 거대한 벽
은 굉장히 육중하고 높아 보이지만 사실은 엉성한데다 금방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저 벽에서 꿈("REVER")을 찾을 수도 있다.

벽: 무너질 것인가, 무너뜨릴 것인가?

맑스는 말했다. 지배적 권력이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라면, 혁명이란 그 질서를 거스르고 새로운 길을 가는 거라고. 요즘 루쉰의 글을 읽으며 난 글쓰기가 정말 혁명일 수 있는가를 고민 중이다. 10여년 넘게 대학에서 배운 것은 지배 권력의 욕망을 내 것으로 욕망하는 법이었고 쓰기였다. 일명 논문 형태의 글쓰기. 감정 제거, 논리적 명증성, 명확한 전거 표기, 다양한 리서치 기록서. 울고 웃고 느끼며 살아 움직이는 물컹한 나를 적당히 설득력있는 논리의 성 안에 가둘 것. 어떻게 내 안에 틀지워진 이 성을 깰 수 있을까? 내가 배운 논리학은 지금껏 쓴 이 글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투성이라고 비난한다. 진심이란 오류인가? 내 생각과 쓰기는 현재 내부 균열 중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글을 좀 더 많이 읽도록 하기 위해 진심을 파묻는 짓은 그만 두련다.

루쉰의 글을 읽을수록 그는 참 존경받을만한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들의 자유정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했던, 그리고 솔직했던 그의 삶과 글 때문이다. “늙은 것은 길을 비켜주면서 젊은 것을 재촉하고 격려해서 가게 해야 한다. 도중에 구멍이 있으면 자기가 죽어 그것을 메우면서 그들을 가게 해야 한다. 젊은이는 자기를 가게 하기 위해 구멍을 메워 준 노인에게 감사해야 하며 노인도 역시 자기가 메워 준 구멍 위를 지나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젊은이를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노신문집3』, 23-24쪽) 그는 죽어버린 양심으로 말 잘 듣고 머리 좋으며 제 권력 확장에 도움 될 애들만 인정하는 교활한 노인이 아니라 젊은 자유정신을 제각기 피어나는 그대로 돌보고 지켜주는 참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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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잠산 作 <이탈한 자가 문득>
_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지식인의 죽음을 말하는 시대. 자본과 지배 권력의 욕망으로 정교하게 구조화된 이 체계의 벽이 깨거나 넘을 수 없는 한계로 내 영혼을 잠식해 온다. 무너질 것인가, 무너뜨릴 것인가, 아니면 도피성향 강한 기질에 따라 또 어디론가 도망가야 할까? 최근 한 선배는 내 글을 읽고서 진심이 아니라며 ‘니가 정말로 원하는 걸 써’라고 말했다. 밤늦게 내 방으로 돌아왔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태어난 지 3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 ‘네가 정말 원하는 대로 써, 그래도 되’ 그래도 된단다. 내 글이 날 부인할 때 사랑받을 수 있고 그런 나만을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논리를 이제는 부정해도 되는가? 부정할 수 있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은 그 가능성을 내 안에 열어준 선배에 대한 감사로 부끄럽고 서툴지만 처음 ‘진심’을 담아본 글이다. 내일도 첨삭 알바를 가야 하는데, 한 아이와 30분이 넘게 글을 보고 대화하는 내가 그 시장에서 돈 벌기는 이미 글렀다. 하지만 상관없다. 소개해준 선배에겐 쫌 미안하지만. 내가 만나는 한 아이 한 아이가 글로 진심을 드러내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위안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올 겨울은 좀 더 추워질 각오를 해야겠지.

이탈한 자가 문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
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황금빛 모서리』 (서울: 문학과 지성,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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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penID Logo 별헤는밤 2008/12/06 15:36

    제인 사랑해!

    • 그린비 2008/12/08 13:39

      저..혹시 타잔이신가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