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 편집자 밑줄긋기


저는 ‘문화대혁명’이란 말을 들었을 때, 살짝 멍~했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주제였고, 제가 중국어를 잘 모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관심이 없었던 까닭이죠~. 하지만 그렇게 멍한 상태에서도 교과서 같은 글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권력층의 내분과 당시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돌아갔던 혁명, 사회 모순과 불만이 폭발해서 나타난 혁명, 뭐 이런 깔끔한 설명은 너무 많았으니까요.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엔 왜 그리 주인공은 적은지, 누가 보면 지도자들 몇 명만 움직이고, 다른 애들은 장기판 졸들처럼 움직인 것 같은 그런 설명들. 이런 설명들은 역사를 현재적으로 느끼게 하기보단 지루하고 뭔가 나하고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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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작품
_ 역사는 이긴 자들, 지도자들의 것으로 기록됩니다. 장기판 졸들의 기억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죠.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은 그들의 기억에 언어를 불어 넣은 책입니다.

“문혁 초기 일어난 이번의 결과 없는 숙정운동은 일반 군중들에게 ‘공작대 역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과 ‘당 조직에 비판당한 사람 역시 억울할 수 있다’는 강렬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본문 47쪽)

이 책 초반엔 사회주의교육공작대(이하 사교대)가 반당분자들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의심하고 반당분자로 몰아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반당분자로 몰고 가는 이유가 그렇게 깔끔하진 않더군요. 원래 자본가였으니 공산주의에 반대하겠지, 아니면 자본가 자식이니 마인드 자체가 이상하겠지 뭐 이런 논리였죠. 그런데 이 단순한 논리로 인한 판단이 꽤나 끔찍한 결과를 낳게 합니다. 반당분자로 지목된 이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자아비판을 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안(黨案; 일종의 인사파일로 한 인간에 관한 개인기록이 모두 들어 있는 자료입니다)에 기록되기까지 하죠. 당안에 기록되면 뭐 한국의 연좌제처럼 거의 3대가 괴로운 건 물론이구요. 지은이 천이난(陳益南)은 이들의 이런 상황이 너무 억울해서 사교대의 결정에 조반(造反; 반란, 혁명적이란 의미를 갖는데 여기서는 혁명적이라는 의미를 가리킵니다)을 일으킵니다. 그러면서 문화대혁명의 큰 흐름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다들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첫 시작은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혁은 10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 10년의 기간이 누구 한 사람만의 움직임으로 가능했을까요? 그 10억이 넘는 중국인들을 정확히 한 사람이 통제하고,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요?

당시 ‘리이저’ 대자보(「사회주의 민주와 법제에 관하여 마오 주석과 4기 인민대표회의에 바침」이라는 글로 당시 문화대혁명이 마오쩌둥의 독재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비판했다)로 인해 우리 일부 청년 조반파 핵심분자들은 일정 정도 계몽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이로 인해 우리들은 문혁 이후 일들에 대해 처음으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게 되었고, 더 이상 과거의 ‘파벌’ 관점에 국한되지 않았다.
(본문 7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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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 조반활동
_ 문혁 중 민중의 조반활동은 주로 당시의 두 가지 자유, 즉 대자보를 쓰는 일과 조반단체 조직을 통해 진행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대자보를 쓰고 벽에 붙여 당정관료를 비판할 수 있었는데, 이는 흡사 오늘날 인터넷의 BBS에서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본문 343쪽)

책을 읽어 보면 아시겠지만 문화대혁명의 주요한 투쟁 방식은 문투(文鬪)였습니다. 한문을 보면 아시겠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글로 하는 싸움인 거죠. 글로 하는 싸움이라고 들으면 마치 지식인만 혁명에 참여했나 싶으시겠지만, 또 그렇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문화대혁명의 주요 세력이었던 홍위병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까지 이 문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문화대혁명과 반당분자에 대해 길게 글을 써서 담벼락에 붙여 놓으면, 또 다른 사람이 가서 반대 의견을 붙여 놓죠. 그래서 그 당시 사진을 보면 벽에 종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그래도 문혁은 폭력 혁명이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지적하실 겁니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문화대혁명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시기 노동자들은 문투를 통해서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타인의 의견을 읽으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도 하게 되고, 자신이 모르던 사실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됐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견이 오고 가면서 여론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하죠. 지은이는 그래서 문혁 후반부엔 마오쩌둥이 많이 당황했을 거란 이야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문혁과는 아주 많이 다른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문혁’은 바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밀고 나간 일로 결국 끝이 나고 말았다. 오늘날 ‘문혁’은 종결된 지 30년이 지났고, 이제 사람들이 또렷하게 관찰할 수 잇는 거리를 확보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시각과 입장을 가진 많은 작가들이 ‘문혁’에 대한 서사, 또한 이치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혁’ 중국의 면모를 확장시키고 풍부하게 해주길 바란다. 이렇게 한다면 ‘문혁’ 비판의 난이도를 증가시킬 수 있고, 비판이 더욱 정확하고 힘이 있어야 진정한 비판이 될 수 있다.
(본문 821쪽)

전 이 문장이『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이 가진 성격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내부에서 문혁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환영받는 주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지식인들은 문혁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고, 중국 관방에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폭력 문제들이 있기에, 문혁 관련한 사건들을 마치 없는 일처럼 다룬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런 태도는 오히려 그들 현대사에 분명히 있었던 일을 은폐하여 역사적 공과(功過)를 판단하지 못하게 함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의 입을 막아 버리는 행위이기도 하죠. 이런 일 중국에만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한국에도 엄청 많죠. 한국 현대사 전반을 지배하는 양민 학살 사건들이 제대로 된 이름을 얻은 적 있나요? 다들 모르는 척, 없는 척, 그렇게 안 보이는 척하다 보니 그 당시를 증언해 줄 사람도 없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죠. 억울한 사람도 있었을 테고, 잘못한 사람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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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양민 학살 사건
_ 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있있던 양민 대량학살 사건은 당시 지리산을 근거로 출몰하던 공비에 대한 토벌작전을 진행중이던 군대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그 사건을 저지른 군대는 공비와의 전투로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이후 희생자들이 역사의 기억으로 기록된 것은 1995년 12월이었습니다.

지은이의 입장에 동의를 하든, 안 하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전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한 개인의 입장에서 구성된 역사를 보는 거죠. 지식인들은 모두 노동자 니들이 뭘 모르고 무식해서 그랬던 거야라고 하겠지만, 노동자 입장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죠. 너넨 하방 때문에 신세 망쳤다고 하지만, 실제로 니들이 있던 동네에선 나름 지식청년 대우도 받았고, 당원의 지위가 박탈되지도 않았잖아. 우리는 잠시 좋았다가, 모든 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받게 됐다구. 뭐 이런 이야기들. 현재 한국 사회의 문혁 담론에서 과연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상하게도 기억은 사람들에게 한 방향만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역사적 기억이라 불리는 것들은 교과서에 몇 단어로 아주 깔끔하게 우리의 기억을 정리해 버립니다. 그런 기억들은 그 기억과 반대되는 이야기들이 들려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과서에서 정리된 기억은 우리에게 은연중에 다른 기억은 다 거짓말이라고 하니까요. 이런 것들은 결국 개인들에게 자신의 기억, 자신의 경험에 대해 침묵하게 만듭니다. 한국 현대사를 생각해 보세요. 어느 누가, 내가 그 사건의 피해자라고 내가 그 사건을 안다고 말하기가 쉬웠던가요? 전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경험에서 역사를 말하는 이 책은 그저 시작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역사 속 개인의 경험이 드디어 언어를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좀더 의의를 두고 싶은 거죠. 그래서 말입니다~ 전 이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정된 기억이 뭐라 하든, 우리의 경험이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을 때, 침묵하지 않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편집부 강혜진
2008/11/28 11:18 2008/11/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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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penID Logo 별헤는밤 2008/12/06 15:20

    저 침묵 안좋아하는 종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