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하되 금욕적이지 않은 삶에 대하여

만세 (연구공간 '수유+너머')

1. 금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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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_ 겸손, 검소, 순수는 이제 아주 풍부하고 넘쳐 흐르는 삶, 능력으로 충만한 삶의 결과들이 되어, 사유를 정복하고 다른 모든 본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질 들뢰즈,『스피노자의 철학』p.9)
질 들뢰즈의 『스피노자의 철학』맨 처음 페이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철학자에게서 검소함은 도덕적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철학 그 자체의 <결과>이다.” 꽤 여러 번 읽었던 이 책을 다시 빼들었을 때, 그리고 첫 장에서 검소함이 목표나 수단이 아니라 결과라는 말을 발견했을 때, 가슴이 먹먹하게 차올랐다. 반드시(!) 검소해야 한다고 매번 다짐하던 내 삶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사람들이 검소한 삶을 살았음을 확인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스피노자가 그러했고, 저자인 들뢰즈가 그러했다. 그들은 많은 돈과 명예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그것에 끄달리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들을 보고 훌륭하다 여기고 존경하는 이들조차 쉽게 하는 착각이 있다. 그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참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검소하고 훌륭한 이들을 보고 우리는 무한한 자제력을 가진 금욕주의자를 상상한다. 그리고 스스로 금욕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얼치기 금욕주의자들에게 세상은 악의 구덩이다. 금욕해야 하는 것들, 싫어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돈이나 지위에 너무 얽매이는 것이 싫다. 맛있는 음식을 자제하지 않은 채 와구와구 먹어 치우는 게걸스러움을 경멸한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친구의 친구가 전해 들었다는 부잣집 아들 딸들의 사치스런 생활에 혀를 찬다. 요컨대 끊임없이 싫어하는 것. 이를 싫어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려 하는 사람들도 싫어하는 것. 나아가 싫어할 것을 계속 새로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금욕주의자들이 자신을 증명하는, 조금이나마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내 욕망을 억압하기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돈 많이 쓰고 싶고, 다들 우러러보는 위치에 서고 싶다. 멋도 부리고 싶고, 맛있는 것 배터지게 먹고 싶다. 이걸 참다 참다 결국에 폭발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다이어트를 거듭하다 결국 참지 못해 폭식하고 요요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처럼, 어느 순간 이제껏 참아 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극단적으로 그것을 탐닉한다. 제국주의를 거부하기 위해 미제/일제는 쳐다보지도 않고 허름한 옷만 골라 입다가, 어리석은 친구들의 삐까번쩍한 모습에 순간 참지 못하고 ‘나이키’를 질러 버렸다는 한 연구실 선배의 대학시절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 않다.

이런 폭발 뒤에는 자신에 대한 깊은 가책이 따른다. 이렇게 무너진 내가, 머리로는 그토록 싫어하는 것을 거꾸로 강렬히 원하는 내 몸이 너무 싫다. 세상 모든 것을 싫어하는 금욕은 결국 자신마저 경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다시 금욕을 시작하고, 또 폭발하고. 이 고난의 원환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 간다. 세상과 나에 대한 증오는 우리를 피로하게 만든다. 웃을 일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래. 그들은 훌륭하다. 인정한다. 이 짓을 해 내다니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나는 못 살겠다. 나는 그냥 잘 먹고 잘살란다. 이걸 모두 함께하자는 건 비현실적이다.’

2. 검소함에 대하여

하지만 우리가 아는 훌륭한 사람들은 이런 금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 스피노자는 금욕주의와 가장 극단에 서 있던 사람이다. 그의 철학은 신체의 욕망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한 경멸로 가득 차 있다. 스피노자에게 목표는 단 하나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에게 이성은 내게 무엇이 좋은지 파악해 내는 능력이며, 덕은 그 좋은 것을 마음껏 추구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들뢰즈가 책에서 지적하듯이 스피노자는 모든 슬픔과 단절한 채 기쁨을 추구한 철학자다. 하지만 그는 금욕주의자가 아닌 만큼 쾌락주의자도 아니었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탓에 적지 않은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동생에게 모두 주고 말았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교수직을 맡아 달라는 제안 역시 거절한다. 덕분에 평생 하숙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말이지 검소한 사람이었다.

금욕과 쾌락을 모두 거부한 검소했던 자. 이런 이율배반적인 삶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말하는 욕망과 기쁨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에게 뭐가 좋은지, 내 신체가 어떻게 생겨 먹었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수동적 인식]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관련글 바로가기) 이때 우리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걸 내게 좋은 것마냥 따른다. 욕망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고 여겨지는 이들조차 그리 행복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너무나 유명한 연예인들도 가슴 한편의 허망함과 괴로움을 토로한다. 돈이 많은 집안이 성하게 유지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쾌락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삶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한다. 요컨대 수동적 상태에서 우리의 욕망은 우리의 기쁨을 보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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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作 <춤>
_ 수동적 상태에서 해방될 때, 우리의 욕망은 기쁨에 닿을 수 있다.
당신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설렘과 기쁨으로 충만해 있는가.

그래서 스피노자는 무엇보다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했다. 맹목적 욕망 대신 기쁨을 보장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싫어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려 했다. 증오의 감정보다는 설렘의 감정을 가지려 했다. 사실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게 뭔지 고민하는 데 서툴다. 앞서 말했듯 무언가를 싫어하는 데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도 싫고 미국도 싫고 가부장제도 싫고 심지어 그걸 제대로 싫어하지 못하는 나도 싫은데,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자본주의적이지 않게 돈을 쓰는 건 뭔지, 가족을 벗어나 대인관계를 꾸리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싫어하는 건 줄줄이 리스트를 뽑지만 좋아하는 걸 대 보라는 말에는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스피노자는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라고, 내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제야 우리의 욕망은 기쁨에 닿을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에야 비로소 수동적 욕망에서 해방될 수 있다. 자신에게 좋은 것은 각자 다르게 마련이다. 하다못해 음식 취향도 각자 다른 법인데, 어떻게 각자 인생에 대한 질문이 ‘돈’ 이나 ‘명예’ 같은 하나의 답으로 귀결될 수 있겠는가? 이런 허황된 욕망을 넘어서는 유일한 방법은 돈이나 명예를 증오하고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바를 찾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명예욕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욕구를 참았기 때문이 아니다. 어중이떠중이들의 존경 대신 진실하고 훌륭하며 자신을 채찍질할 수도 있는 친구를 욕망했기 때문이다. 유산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몸에 적합한 음식과 삶을 고민하여 파악하고 이를 욕망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음식과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정말 많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각보다 별로 돈이 필요하지 않다.

검소가 목표가 아니라 결론이라는 말은 바로 이 같은 삶을 가리키는 것일 테다. 검소함을 ‘목표’로 삼을 때, 우리는 싫어하는 것을 떠올린다. 마구 싫어해서 참고 극복하려 한다. 반면 검소함을 ‘결론’으로 삼는 사람은 참지 않는다. 자기의 욕망을 마음껏 추구한다. 다만 그 욕망이 수동적으로 부여받은 욕망이 아니기에, 그가 더욱 강하게 기쁨을 추구할수록 세속적 욕망으로부터는 결과적으로 멀어진다. 모르긴 해도 스피노자가 교수직을 거절했을 때, 그것은 고뇌 끝에 내린 결단 같은 게 아니었을 것이다. 아예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이 원하는 지식의 형태와 쓰임을 잘 알고 있었고, 이미 그것을 성취하고 기쁨에 차 있는 사람이, 귀찮은 교수직에 관심이 갔을 리가 없다. 이처럼 검소함이란 금욕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기쁨이 수동적 상태에서 벗어나 건강함을 얻을 때 얻어지는 결과이다. 당신은 금욕적인가, 검소한가. 당신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는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설렘과 기쁨으로 충만해 있는가. 스피노자와 들뢰즈의 질문이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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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09:49 2008/12/0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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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금욕이 아닌 검소함??!!

    Tracked from 빼간야리묵 2008/12/03 15:24  삭제

    와후. 이 책 읽어보고 싶지 않냐? 서평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있지만서도. 스피노자, 검소하지만 금욕적이지 않은 삶에 대하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8/12/03 11:25

    오와, 오늘 글 너무 너무 좋습니다.^ㅁ^! 아직까지는 검소함이 목적인 사람으로서...하하-_-;; 들뢰즈와 스피노자,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잘 읽고 갑니당!

    • 그린비 2008/12/03 11:29

      안녕하세요.
      갑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
      들뢰즈와 스피노자도 꼭 읽어 보시길 바랄게요~

  2. 2008/12/03 11:53

    싫어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힘들었는데... 이제 좋은 것들도 좀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그린비 2008/12/03 12:16

      건님, 안녕하세요.
      좋은 것들 많이 찾으시길 바랍니다~^ㅡ^!

  3. starla 2008/12/03 12:00

    정말 그러네요.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겠지만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 살 때와 좋아하는 것을 하려 살 때의 삶은 전혀 다르겠지요. 여담이지만 다이어트도 먹지 말아야 할 것의 목록을 정해서 할 때는 대개 실패하지만 먹어도 되는 것 중에서 먹고 싶은 것의 목록을 정해서 하면 그나마 수월하더라고요. 하하하;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그린비 2008/12/03 12:18

      starla님, 안녕하세요.
      싫은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긴 하지만,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추구할 때,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겠지요. ^^

  4. 잘 배웠습니다. 2008/12/03 13:27

    저도 좀 생각이 모자랐네요. 검소함과 금욕의 차이를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읽고 잘 배웠습니다.

    • 그린비 2008/12/03 14:00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건강한 욕망으로 기쁜 삶을 누렸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5. 노임연실 2008/12/17 12:52

    어맛 제글이 아예 안뜨네요. 말하자면 싹뚝

  6. 노임연실 2008/12/17 12:55

    저들이 금하는 용어가 무엇인지 아주 궁금해지는 데요. 아주 좋다는 뜻으로 뽀뽀대신 쪽!하고 썼는데 설마 쪽?떔시 잘렸나?

  7. 노임연실 2008/12/17 12:56

    우왓 쪽!은 아니군요. 그러담 정조의 문체반정으로 박지원의 문체가 금지되었다는 말 떔시?

  8. 노임연실 2008/12/17 12:58

    그것도 아니고 그럼, 아하 제가 너무 님들이 정중해서 좀 더 발칙했음 하면서 반말로 썼걸랑요

  9. 노임연실 2008/12/17 13:00

    아 이유를 알 순 없군요.
    아 이대목?
    저항하라. 억압하는 민중들의 입에서 나오는 ㅅㅂ을 금하는 개발업자들에 놀아나지 말고

  10. 노임연실 2008/12/17 13:03

    정말 모르겠군요. 제 담당 알바가 있나?

  11. 황수연 2009/06/30 15:24

    좋은 글 감사하는 마음으로 담아가겠습니다. ^0^

    • 그린비 2009/06/30 15:41

      황수연님, 감사합니다. 출처는 밝혀 주세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