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 그 새빨간 거짓말
- 인권은 어디에 있는가


권은영 (연구공간 '수유+너머')

세계인권선언은 지금으로부터 딱 60년 전인 1948년 12월 20일 유엔 총회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올여름에는 그것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하얏트 호텔에 모여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 파티를 열기도 했다. 예부터 한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60년을 무탈하게 살았다는 것은 환갑잔치를 벌일 경사로 여겨졌으나,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은 그리 반길 일은 아닌 듯싶다. 아직도 우리가 인권을 요청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인권이라는 말이 무색한 현장이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세계인권선언을 ‘추억’하며 파티를 즐기는 순간에, 누군가는 반인권적인 ‘현장’ 속에서 살아간다. 인권을 말하고 기념할 수 있는 자와 인권을 갖지 못한 자. 이 이분법 속에서 우리는 인권, 즉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이 말하는 인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 아닐까. 

1. 인권,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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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 '세계인권선언 60만 읽기 캠페인'

올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벌인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 캠페인은 ‘세계인권선언 60만 읽기’ 이다. 60주년을 기념해 60만 명이라는 상징적인 숫자의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인권선언을 직접 읽게 하겠다는 야심찬 캠페인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의 권리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게 가지는 것이라면서, 왜 굳이 그것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가. 지금이 소위 군사 독재 정권 시대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대답은 간단하다. 여전히 인권이 외면당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캠페인 기간 동안 6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세계인권선언을 직접 읽음으로써 사회 곳곳에 인권의 향기가 듬뿍 배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는 다양한 문화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세계인권선언의 숭고한 전통과 빛나는 정신을 전파할 것입니다.
소수자들의 쓰린 상처가 아물 때까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해소될 때까지, 소외계층과 이주민의 삶에도 희망과 자유의 함성이 울려 퍼질 때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 60만 읽기 캠페인 소개 중에서)

그런데 가만히 ‘세계인권선언 60만 읽기’ 소개를 읽고 있자니 문득,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유린당하고 있는 인권을 바로 잡겠다는 인권위원회의 노력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불현듯,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인권’이 무슨 정답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이야기하는 현실이 어색해졌다. "세계인권선언의 숭고한 전통과 빛나는 정신"이라니, 인권이 세계인권선언 속에 있다는 말인가. 세계인권선언이 제창되고 어언 60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권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세계인권선언의 이 "숭고한 전통과 빛나는 정신"을 지켜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실현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니, 인권이 국가인권위원회나 정치인들이 주거나 인정해 줘야하는 종류의 것이란 말인가.

정작 인권이 필요한 곳에는 왜 인권이 없는 것일까. 왜 인권은 항상 당연한 듯 인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인권을 갖지 않은 자를 배려해 주는 형식으로만 전달되는 것일까.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왜 인권은 부유한 국가에서 버려진 낡은 의복이 가난한 국가로 보내지듯이 취급되는 것일까. 여기서 다시 질문을 던져 보자. 인권을 추억하는 자들이 말하는 인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2. 인권은 ‘쓸모 있는 국민의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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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IGFM 인권단체 공익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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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인권을 갖지 않은 자를 배려해 주는 형식으로 전달된다. 인권은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것도,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인권을 주려는 자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는 ‘인권’은 국민의 권리에 다름 아니다. “사실상 ‘인권’은 양도할 수 없다고 추정되지만, 주권국가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 나타날 때면 항상 - 심지어 인권에 기초한 헌법을 보유한 국가에서조차 - 강요할 수 없는 것”(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528쪽)이다. 인권이 국민이 가지는 시민권과 구별되는 보편적인 상위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실에서 국제 협약으로 명시되어 있는 인권에 대한 조약이, 바로 보편적인 법적 구속력을 가지거나 국내법적 효력을 가지는 경우는 없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이주노동자들이 지금과 같이 단속/구금/추방되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라면,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을 불법으로 체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영장 없이 단속하거나, 수갑을 채우고, 다치게 할 수 없다. 미등록 이주민은 출입국관리법상 체류기간을 초과하거나 허가 없이 체류하고 있는 사람이지, 형법상 범법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12일 15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석가구공단에서 국가가 ‘경찰력’을 동원해 120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업자에게 고용되어 가구 만드는 일을 하던 노동자 120명이 하루아침에 범죄자처럼 경찰 손에 끌려간 것이다. 인간인 그들이, 노동자인 그들이 그렇게 손쉽게 범죄자 취급을 당했던 이유는 그들이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국민이 아닐 경우, 인권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한편 국민이라고 다 인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달 황당한 기사를 하나 접했다. 장애인 관련 국가 정책이 하나같이 개념 없기는 매한가지이나, 장애인 콜택시와 관련해 서울시설공단이 내놓은 안내문은 정말 기가 막혔다. 그것은 서울시가 장애인 콜택시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요금 인하 사업을 추진해 무한정 길어진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공지한 안내문이었다. 대략의 내용은 장애인 콜택시를 ‘1, 2급 장애인도 휠체어 안 타면 이용 불가’, ‘음주 후 탑승 불가’, ‘여가 목적 이용 불가’ 하겠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거나 재활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면, 장애인이 택시를 이용할 필요가 뭐가 있냐는 논리이다. 갑자기 매주 금요일 새벽이면 강남역 가득 택시를 잡는 술 취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택시를 여가의 목적으로, 음주 후에 이용하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소위 자기가 번 돈으로 택시 요금을 내는 사람과 국가가 택시 요금을 보태줘야 하는 사람이 차이가 아닐까. 국가에게 장애인은 쓸모없는 국민이다. 외면할 수는 없지만, 딱히 도움도 되지 않는. 그들이 국가에게 그리고 자본에게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순간, 인권 역시 사라진다.

3. 인권은 어디에 있는가.    
 
이렇듯 인권은 ‘국민,’ 그것도 ‘쓸모 있는 국민’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웃긴 사실은 ‘쓸모 있는 국민’은 구태여 인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단지 텔레비전에서 굶어 죽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 잠깐 인권을 떠올릴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권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이다. 인권은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것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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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결의대회(출처 : 매일노동뉴스)
_ 11월 30일 서울역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모인
이주노동자와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 인권은 인권이 자취를 감춘 곳, 반인권적 현장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인권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인권을 적극적으로 외치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이들은 끊임없이 인권을 보장하라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친다. 11월 30일 서울역에 모여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외친 사람들이, 그리고 12월 2일 ‘세계장애인의 날’ 행진을 하면서 "경찰들 중에서 인권 교육 제대로 받은 인간 없지! 있으면 나와봐!"를 외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세계인권선언을 읽은 사람도 아니고, 국가가 허용하는 인권에 만족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인권’이라는 이름을 점유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이로써 그들은 기존의 인권 경계를 흐리고, 자신들이 가지지 않은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바로 이곳이 인권의 장소이며, 바로 이들이 인권의 주체이다.

인권은 세계인권선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권은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줄 수 있는, 그 자체로 완성된 물체가 아니다. 왜 미등록 이주민과 장애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냐고 소리칠 때, 쓸모 있는 국민과 쓸모없는 국민을 가르는 경계를 의심할 때, 인권은 거기서 생겨난다. 그래서 나는 인권을 지켜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쓸모 있는 국민의 권리’인 지금의 인권은 ‘인류의 소중한 약속’이 아니라 새빨간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권을 선언 안에 가두지 말자. 인권은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권리를 의심하고, 그것과 싸울 때 비로소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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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번역본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는 절판되었습니다.

2008/12/10 11:47 2008/12/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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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32살 생일 미역국과 60년 맞은 세계인권선언

    Tracked from Save the Earth! Fire Blog! 2008/12/10 15:57  삭제

    32살 생일 미역국과 60년 맞은 세계인권선언 청소년.학생 인권과 표현.양심.언론의 자유 위해...나는 어떤 선택 해야하나? 오늘(10일)은 제 32번째 생일입니다. 요즘 두통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는 어제 병원에 다녀오시면서 쇠고기를 사와서는, 잠들기 전에 묵은 미역을 불려놓았고 아침에 쇠고기 미역국을 끓여내셨습니다. 제가 태어나 처음 맛본 어머니의 젖을 닮은 바다의 젖을 품은 미역국을 말입니다. 헌데 완도산 미역의 유통기한이 2006년 4월까지였습..

  2. Subject: 세계인권선언일,감옥에 있는 양심수들이 보고 싶다.

    Tracked from Welcome to 615world!! 2008/12/10 22:36  삭제

    오늘(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는 세계인권선언의 날이다.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선언에는 민주적인 헌법이 인정하는 인간의 주요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몇 개의 소위 경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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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ZiRACi 2008/12/10 19:35

    올블로그에 탑으로 올랐네요~ ㅡㅡ; 꽤 노출이 많이 되었을 텐데 댓글하나 없이 썰렁하군여.

    • 그린비 2008/12/11 09:36

      ZZiRACi님, 반갑습니다.
      좋은 소식 함께 전해 주시고 댓글까지 감사해욤~^^

  2. MYoung 2008/12/15 12:09

    좋은글이며 관심많은 부분에서 같은 생각의 글을 읽으니 반갑군요...

    모순된 사회문제 해결에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어려움또한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네요...어찌해야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