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시대의 사상과 인물들


일본 사상을 왜 연구해야 할까? 좀더 구체적으로, 도쿠가와 시대의 철학사상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용함이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근대 일본이 성립되고 현재까지 일본인의 관념의 맥을 형성하는 데 공헌한 사상들의 어떤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탐구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점은 전수받은 사상을 자기문제화한 사상가들의 특이성을 발굴하고, 생소한 이런 사상들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문제의식으로 다시금 현재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상의 큰 흐름과 그 사이사이 부침했던 담론들을 근대 일본의 동일성을 말하는 방식(일본은 이러이러한 나라이다)으로 규정하기보다 지금 이곳에 필요한 담론으로 재생산하고 삶의 양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변화의 역량으로서 재탄생시키는 방식이 우리에게 더 유용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렇게 따지고 보면 수많은 사상들 중에 굳이 일본사상을 택할 필요는 없을 것도 같다. 도쿠가와 시대는 동아시아 사상 및 문화의 흐름에 있어서 하류지점에 있었고, 사무라이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문장에 있어서는 흥미를 일으킬 만한 것이 별로 없으리라는 선입견이 보태지면 더더구나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 마루야마 마사오의 저작을 비롯한 몇몇 일본사상서들이 번역되면서 그 깊이가 얕지 않음을 알 수 있고, 이 책 『도쿠가와 시대의 철학사상』을 보면 매우 다양한 사상이 공존했음 또한 알 수 있다. 주자학의 수용 과정과 그 인물들, 양명학의 수용 양상, 유학의 일본화 과정으로 얘기되는 고학(古學)과 국학(國學), 사무라이의 도덕 사상과 상인들의 철학 및 경세가, 민중에 이르는 여러 담론들 등 당시 사상의 지대가 결코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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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세이카(좌)와 그의 제자 하야시 라잔(우)
_ 동아시아 사상 및 문화의 흐름에서 하류지점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도쿠가와 시대. 『도쿠가와 시대의 철학사상』은 그 시대에도 매우 다양한 사상이 공존했음을 보여 준다. 그 중 후지와라 세이카와, 그의 제자 하야시 라잔은
유학 수용 과정에 있어서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일본의 유학을 간단히 보면, 조선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주자학의 심성론적인 측면은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약간씩 굴절된 형태로 분화하였다. 임진왜란기(정유재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유학자 강항(姜沆)의 영향을 받은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와 그의 제자 하야시 라잔(林羅山, 1583~1657)이 대표적 인물인데, 세이카가 리(理) 개념이 가진 보편적 성격에 관심을 둔 도학자의 풍모를 보인다면, 라잔은 일본의 신분사회 틀을 강화하는 데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정치가의 풍모를 보인다. 그리고 라잔이 강조한 ‘상하 정분(定分)의 리’가 도쿠가와 사회의 안정적인 기반을 원했던 이에야스 막부와 맞아들면서 주자학은 일본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것이 관학으로 자리매김했는지는 이 책으로는 알기 어렵지만, 어쨌든 다른 많은 사상가들에게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기초적인 학문이었음은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이들 외에도 주자를 너무나 존경해 붉은 색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여름에도 붉은 색 옷을 입고, 심지어 책 표지에도 전부 붉은 색을 사용한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 1618~1682)+가 있다. 그는 퇴계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정(情)이 발동하기 이전[未發]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 즉 심성론의 측면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전통의 신도(神道)와 이기론(理氣論)을 결합시킨 새로운 종류의 스이카(垂加) 신도를 수립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 야마자키 안사이에 대해서는 다지리 유이치로의 『야마자키 안사이』(엄석인 역,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6)를 참조할 만하다

특이하기로 따진다면, 격물치지의 다른 한 방면인, 실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측면으로 나아간 가이바라 엣켄(具原益軒, 1630~1714)을 주목할 만하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해야 한다는 주희의 말을 받아들여 본초학(本草學)상에 일가를 이룬 것은 유학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그는 “민중 속에 살아 숨쉬는 습속과 유교 도덕을 접합하고자 했던, 이름 없는 민중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고귀한 도덕을 보편화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는 점은 인상적인 부분이다.

“사람이 음풍농월, 영가무답(詠歌舞踏)으로써 그 혈맥(血脈)을 기르는 것과 저 초목의 생성, 새들의 노랫소리, 솔개의 비상, 물고기의 파닥거림과 같은 것은 모두가 동일한 천기(天機)이고 자연의 생리이면서 즐거움 아닌 것이 없다.”
(본문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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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진사이
_ "'인'(仁)이란 오직 사랑일 따름이다." 이때 사랑은 충일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삶과 욕망을 긍정하는 유학. 스피노자의 기쁨의 철학을 떠오르게 한다(관련글).

삶에 대한 긍정적 시선으로 주자학을 넘어서는 유학을 제창한 사람이 당시에 여럿 등장한 점은 확실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특히 내가 주목한 부분은 고학, 그 중 문장의 뜻을 중시하는 고의학(古義學)의 선구자로서 알려져 있는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에 관한 부분이다. 이 사상가에 대해서는 마루야마 마사오나 가라타니 고진, 사카이 나오키 등의 저술 속에서 꽤 자세히 다뤄지고 있고, 국내 저술로는 성대출판부에서 출간한 『이또오 진사이』라는 책이 있지만, 이 책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상의 원텍스트를 충분히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인’(仁)이란 오직 사랑[愛]일 따름이다. …… 자애로운 마음은 혼륜통철(混淪通徹)하여 안으로부터 바깥에 미쳐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달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추호도 잔인각박한 마음이 없으니, 바로 그것을 ‘인’이라 한다. 이것에는 베풀고 저것에는 베풀지 않음은 ‘인’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베풀고 열 사람에게 미치지 않음은 ‘인’이 아니다. 한순간의 숨길에도 존재하고 꿈길에도 통하니, 마음이 사랑을 떠나지 않은 채 오로지 사랑의 마음만으로 온전히 되는 것, 바로 이것이 ‘인’이다.”
(본문 76쪽)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이 타인에게 미칠 때 그것을 ‘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때 사랑은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갈망이 아니라 충일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주자학의 편벽된 논리를 깨고 『논어』, 『맹자』의 원천 논리로 나아가 인간 욕망의 긍정(“생명성과 활동성으로 가득 찬 존재”)이라는 내적 충동에서 기인한 ‘사랑의 인간학’을 세운 것을 이토 진사이 사상의 특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이토 진사이에 관한 부분은 이렇게 짧다. 그것은 원제 『德川思想小史』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이 도쿠가와 시대의 여러 사상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한 사상가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할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단순히 요약만 해놓은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근대성이라는 문제틀을 중심으로 사상의 줄기를 논증적으로 일별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들어맞는 독자에게는 큰 도움이 될 듯도 하다. 그러나 사상을 다시 읽고 문제를 현재화하기 위해서는 다만 한 사상가만이라도 그의 문장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 다산 정약용은 중국의 『논어』들인 ‘노론’(魯論)과 ‘제론’(齊論), ‘고문논어’(古文論語)뿐만 아니라 이토 진사이(『논어고의』)와 오규 소라이(『논어징』)의 텍스트까지 섭렵하여 『논어고금주』라는 거대한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런 방대한 작업은 끊임없는 번역의 과정에서야 가능한 일. 앞으로 일본사상의 원텍스트들을 맛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 편집부 주승일
2008/12/11 16:28 2008/12/1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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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ZiRACi 2008/12/11 18:32

    오래 전에 읽었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는 좋은 책입니다.

    논어 고금주에서는 이토 진사이 뿐만 아니라 다자이 준(슌)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습니다. 다산의 논지 가운데 일부는 일본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아쉬운 건 국내에 아직 이들 일본 학자들의 저작이 번역되지 않고 있다는 거죠. 하긴, 주자어류나 이정집도 아직 번역이 안되었는데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 주승일 2008/12/11 18:46

      반가워요, ZZiRACi님. 앞으로는 일본의 저서들도 번역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규 소라이의 저작들도 번역 중인 걸로 알고 있고, 이토 진사이에 대한 관심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니까요. 주자어류는 청계와 소나무판 두 종이 국역되어 있는데, 전 소나무판을 갖고 있답니다. 필요하시다면 제가 언제 빌려드릴게요.(선물 받을 거라 드릴 순 없구..쩝) 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2. 지나가다 2008/12/11 20:44

    보아하니 이토진사이의 사상은 한국인에게 잘 받아들여질 것 같기도 하네요.
    평소 일본이 유학을 법가의 사상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인 데 대해 좀 불만이었는데
    또 다른 면이 있었군요. 많이 배웠네요.

    사실 일본에서 중요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있는데
    언어의 한계로 교류도 적고, 그래서 이미 이루어진 연구를 중복해서 하는 데 대해서
    안타까움도 많습니다.
    좀 더 많은 학술교류가 필요한 시점인 듯.

    한국 학자들은 일본의 전문성을 좀 배우고
    일본 학자들은 한국식 포괄성(?)도 좀 익힌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주승일 2008/12/12 11:50

      지나가다 님, 의견 감사합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일본의 학문 풍토에서 여러 장점들을 배우고, 또 연구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깊이 면에서나 넓이 면에서나 점점 좋아질 거라 기대하고 있고요, 그만큼 교류도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레몬에이드 2008/12/11 20:49

    아... 그러고보니 국내에서 일본쪽 사상이나 철학에 관한 책은 본 기억이 없군요
    그만큼 문화 단절이 심했다는 반증이겠지요?

    • 주승일 2008/12/12 11:54

      예.. 아무래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문학 장르에 비하면 사상 쪽 교류는 잘 눈에 안 띄죠... 어쨌든 레몬에이드 님의 댓글 활동은 정말 경이롭습니다!!

    • 레몬에이드 2008/12/12 13:10

      예전만큼 잘 들어오지도 못하고
      글도 다 읽진 못하는데요 ^^;;

      경이로울 정도는 아니랍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