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미래, 미래의 서점


서점은 죽었다

한국서점조합연합 통계에 따르면 1997년에 5,170개였던 서점 수는 2007년에 2,042개로 줄어들었다. 10년 만에 반토막도 더 잘려나갔다. 서점은 이대로 죽는 것일까. ‘우서충정(憂書衷情)’ 넘치는 독자들 내세워 구서운동(救書運動)이라도 벌여야 하는가.

많은 중소서점 사장들은 말한다. 불완전한 도서정가제하에서 온라인 서점이 가격할인을 일삼았기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이 문을 닫았다고. 자유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보면 맞는 말 같다. 그럼, 완전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의 서점 수가 줄어드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점 수가 줄어드는 건 전지구적인 현상이다. 자본주의 경제 패러다임이 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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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본주의 경제의 생산-유통 패러다임은 스톡(stock)이 아니라 플로(flow)다. 스톡은 정지된 개념이고, 플로는 흐르는 개념이다. 물리학으로 치면 스톡은 단지 힘의 크기만 보여주는 스칼라(scalar)이고, 플로는 힘과 방향을 함께 보여주는 벡터(vector)다. 힘은 어떤 배치에서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산출한다. 산업사회에선 재화가 곧 자산이었고 쌓아놓은 양(stock)이 곧 부의 크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사회다. 정지된 상태에서 지식과 정보의 가치는 제로다. 지식의 가치는 활용(flow)하는 순간 비로소 만들어진다. 회전력과 유통속도를 높일수록 힘이 증폭되고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지식사회에서 이제 사람들은 플로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제품이나 서비스 그 자체가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가 담고 있는 시대정신과 스토리와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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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인터넷으로, 그곳에는 스톡이 없다. 인터넷 서점이 오프라인 서점에 비해 강점을 갖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싸게 팔아서라기보다는 스톡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은 지식의 흐름을 연결시켜주는 인터페이스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책이 서점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반면 오프라인 중소서점은 책을 쌓아놓고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서점이 책을 ‘쌓아놓고(stock)’ 파는 곳이었다면, 앞으로의 서점은 지식과 문화가 ‘흐르고 활용되는(flow)’ 곳이어야 한다. ‘위기의 서점’ 혹은 ‘서점의 위기’ 근저에는 정확히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깔려 있다.

아고라(Agora)가 실마리다 

독자 수가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 서점업과 출판업의 존립을 뒤흔드는 최대 위기 요인이다. 왜 늘지 않을까. 출판사와 서점이 독자들을 스톡(stock)의 구조에 가둬놓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 유통되는 경로를 보면 금세 이해된다. 책을 둘러싼 미디어 기능을 주로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이 담당하면서 이들 서점이 프로모션하는 책들 중심으로 책에 대한 정보가 생산 유통된다. 프로모션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여력이 없는 중소서점은 대형서점이 만들어 놓은 책 정보를 중심으로 책을 진열․판매한다. 이런 구조에서 독자들은 책 정보에 대한 충분한 서비스를 받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연히 특정 베스트셀러에만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법칙은 하나다. 누가 더 싸게 파느냐. 플로 경제 시대에 독자의 기호는 경계를 흘러넘치면서 극도로 다양해져 가는데, 서점은 소수의 품종이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폐쇄적이고 스톡적인 구조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서점 사장들은 말할 것이다. 이 좁은 매장에 그나마 독자들이 찾는 책을 갖다놓아야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이래서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지지 않는 게임을 하는 사람과 이기는 게임을 하는 사람은 태도부터가 다르다. 특히 지금처럼 ‘위기의 시대’엔 반드시 ‘이기려는 게임’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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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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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팔고, 문화를 팔고, 이야기를 파는 곳, '아고라'가 미래 서점의 원형이 되어야 한다.

서점이 사는 길은 혁신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서점 업태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어떻게? 아고라(Agora)가 실마리다. 아고라는 장터와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 형성된 광장으로, 원래 ‘시장’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시장이던 아고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시민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을 뜻하게 된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사교활동을 하기도 하고, 문화 예술 활동을 하기도 하고, 정치 문제를 토론하며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학술행사의 용어로 쓰는 ‘포럼(forum)’도 아고라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로 이 아고라가 미래 서점의 원형이 되어야 한다. 아고라형 서점은 더 이상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지식을 팔고, 문화를 팔고, 이야기를 파는 곳이다.

아고라에 모인 독자는 서점이 권하는 책을 수동적으로 구매하길 거부한다. 그들은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기를 원한다. 한 예로 신간과 중고책을 함께 취급하는 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고책은 이윤율과 회전율도 높을 뿐 아니라 독자의 능동성을 부추기기도 한다. 독자는 신간을 사러 오기도 하고, 내 책을 팔러 오기도 한다. 자연스레 팔고 사는 공간 즉 장터가 만들어지면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진다. 바로 지식과 문화가 흐르는(flow) ‘아고라형 서점’이다.

미래는 만드는 자의 것

서점이 경쟁력을 갖는 길은 두 가지다. 대형화와 전문화다. 대형화는 논외로 하자. 어차피 기득권자들의 영역이고 자본 싸움의 영역이므로. 전문서점이라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테마가 살아있고, 반복해서 찾고 싶은 서점이면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점은 가기 전에 상당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곳이다. 서점은 놀러가는 기분으로 가야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시간을 보내는 곳이 곧 돈을 쓰는 곳이다. 놀이터 감각의 컨셉으로 어린이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어린이 전문서점, 잡지 과월호를 전문적으로 파는 서점, 갤러리를 겸하는 서점, 식당과 서점을 결합시킨 서점, 웹사이트를 통해 여행지와 여행상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관련 책을 함께 소개하는 여행 전문서점, 역사소설 전문서점, 철도 관련 분야를 특화한 서점, 농업관련 책을 주로 파는 서점, 재즈감상과 시낭송이 1년 내내 이뤄지는 카페형 서점 등등 발상을 바꾸면 얼마든지 다양한 전문서점을 할 수 있다. 지금 예로 든  서점들은 유럽이나 일본에서 이미 자기 사업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전문서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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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북데일리 "독서광 사로잡는 런던 이색서점"(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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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마 북스(좌)'는 디자인전문서점으로 디자인 관련 서적 외에도 패션, 필름, 전시 카탈로그, DVD, 디자인 문구와 같은 관련 상품을 함께 구비하고 있다. '북스 포 쿡스(우)'는 요리전문서점으로 부엌을 갖추고 있고 매일 한 권의 요리책을 골라 책에 나온 요리법대로 조리한 '오늘의 요리'를 판다.

일전에 출판연구소의 백원근 책임연구원에게 해외 서점 동향에 대해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서점이 두 곳이었다. 먼저 일본의 공룡전문서점. 출판사가 운영하는 이 서점은 단순히 공룡을 좋아하는 일반독자부터 공룡학자까지 그 독자층이 매우 넓고 두텁다. 구간과 신간, 대중서부터 전문 학술서까지, 구색도 다양하다. 학자나 그림책 작가가 독자들과 공룡을 주제로 다양한 이벤트를 하기도 하고, 공룡과 관련된 게임, 애니메이션, 프라모델은 물론 공룡이 인쇄된 티셔츠까지 판다. 한마디로 ‘공룡을 사건화’하고, ‘공룡의 모든 것’을 파는 곳이다. 공룡 관련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이 출판사는 지금 독자들의 마일리지를 모아 공룡박물관 건립기금을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서점은 ‘건축의 모든 것’을 표방하는 뉴욕의 건축전문서점. 뉴욕이 어딘가. 현대 대중문화예술의 메카 아닌가. 이 서점은 건축 이론 교육과 함께 뉴욕 시내 주요 건축물 투어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이런 발상이라면 영화 전문서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중들은 영화에 관심이 많다. 이 서점에서는 영화보기와 책보기를 결합한 독특한 문화체험을 일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명 배우나 감독을 “오늘의 명예점장”으로 위촉할 수도 있다. 영화계 발전을 위해 기꺼이 ‘일일 점장’ 역할을 맡아줄 것이다. 이 공간에서 영화를 둘러싼 온갖 이야기와 이벤트를 만들어낸다면 독자들이 왜 서점을 찾지 않겠는가. 또 우리 사회가 본격적인 노령사회로 접어드는 만큼 노인전문서점은 어떤가. 이곳에서 노인들은 친구도 사귀고 글도 쓰고 문화교양강좌도 듣게 될 것이다.

미래에 살아남는 서점은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온라인을 같이 구사하는 아고라형 전문서점이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냄새 나는 공간을 창출할 능력이 있다면 온라인으로의 변용은 식은 죽 먹기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점의 운명, 어떻게 될 것인가? 현대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의 말을 빌려 말하면 이렇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미래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 대표 유재건

2009/01/09 12:01 2009/01/0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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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온라인서점의 미래는?

    Tracked from 시간으로부터의 사색 2009/01/10 04:10  삭제

    웹서핑을 하다가 <서점의 미래, 미래의 서점>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가운데, 내가 생각해왔던 미래의 서점..특히 온라인도서쇼핑몰에 개인적인 생각을 첨언코자 한다^^ 난 단지 가격이 쌌을 뿐이야.. 초창기 온라인서점은 단순히 오프라인서점의 상품채널 확장차원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났을 뿐, 상품을 진열하고 도서를 유통하는 기존의 형태를 단지 웹상으로 확장했다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괘도에..

  2. Subject: 내가 바라는 미래의 작은 책방

    Tracked from 오선지위의 딱정벌레 2009/01/13 23:03  삭제

    서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린비출판사의 유재건 대표의 서점의 미래, 미래의 서점를 보았다. 보랏빛 미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암울한 미래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이 독주하고 있는 지금 작은 책방(서점보다는 어감이 좋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글을 읽다 보니 톰 행커스와 맥 라이언의 영화 <You've Got Mail>이 떠오른다. 98년 영화이니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맥 라이언이 운영하는 작은 아동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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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몬에이드 2009/01/09 18:5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서점을 좋아해서
    어떠한 형태로라도 꼭 남아줬음 좋겠네요

    • 그린비 2009/01/12 09:22

      레몬에이드님, 감사합니다. ^^

  2. 이종범 2009/01/09 22:31

    저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매우 공감이 갑니다. 서점의 위기가 아니라 서점의 기회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식 사회에 정보가 중요시 되는 지금의 시대에 서점은 가장 강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네요.

    • 그린비 2009/01/12 09:25

      이종범님, 안녕하세요.
      네, 구구절절 맞는 말씀입니다. 지식을 어떻게 조직하고 활용할 것인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겠지요. ^^

  3. 한방블르스 2009/01/13 23:03

    글 잘보았습니다. 유대표님의 글은 늘 제게 자극을 줍니다.

    • 그린비 2009/01/14 09:42

      한방블르스님, 안녕하세요.
      트랙백 감사합니다. 「You've got mail」의 맥 라이언이 운영하는 작은 아동전문서점^^ 잘 보았습니다.
      한방블르스님도 저희에게 언제나 자극을 주시는 분이죠~.

  4. 전두표 2009/01/16 11:48

    서점에 대한 추억이 있는데... 이젠 추억으로 간직해야 하나 봅니다. 대형 서점을 제외하고, 주변에 서점이 하나도 없네요. 그 만던 동네 서점들이 말이죠... 시대를 앞서가지 못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가 봅니다. ^^

    • 그린비 2009/01/16 16:02

      네.. 예전 집 주변에 작은 서점이 두 세개씩 있곤 했는데 다 사라져 버렸죠.
      하지만, 미래의 서점들을 현실로 만들면 또 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5. Prozac 2009/01/23 00:31

    "~~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를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라는 문장-의견-기획-주장에서 제가 읽는 것은, 짱똥몽달형 자의식의 뒤집혀진 키와, 아울러 소위 [과잉오른쪽]들이 주장하는 통제-질서-균형의 미학입니다.

    절대는 다 웃기는 얘기다, 혹은 "신은 죽었다," 고 언명할만한 gut가 있는 사람에게는 일상다반사일 것이나, 오늘도 야근중인 구보씨는, 야식비로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으려나 고민 중입니다.

    인생 역정이, 생활로 환원되지 않기를...
    생활이 생존으로 정의되지 않기를...

  6. t 2009/03/03 17:43

    그린비의 출판 편집 이야기, 마우스로 줄그어가면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끊이지 않고 계속 포스팅 해주세요 :)

    • 그린비 2009/03/03 18:24

      네! 감사합니다. 마우스로 줄그어가며 읽으실 수 있도록 계속 포스팅하겠습니다~.

  7. yemundang 2010/02/20 21:04

    한방블루스님 글 타고 들어왔어요. ^^
    일본에 정말 공룡전문서점이 있군요. 저도 공룡전문서점 내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신기하네요. 이유는.. 저희 아들이 공룡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미사모 모임에서 유재건 대표님 뵈었습니다. 흐흐..
    머.. 개인적으로 인사는 못드렸지만요, 담에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고 내려왔는데.. 진짜 인사 드리고 싶었지만.. 이히히..
    또 뵙겠습니다. ^^

    • 그린비 2010/02/22 00:00

      아, 안녕하세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

      저도 언젠가 서점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강사 분께서 아들이 공룡을 좋아하는데 공룡서점이 있으면 어떨까-하시면서 얘기를 하셨었거든요. 신기하네요. 예문당에서 꼭 공룡서점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