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뢰즈, 유동의 철학』 연재 3부
이제, 『들뢰즈, 유동의 철학』 연재를 끝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언제 시작했다고 끝낸다는 것이냐!"라는 항의가 예상되지만 요 링크를 따라가 보시면 그 시작을 보실 수 있습니다.
『들뢰즈, 유동의 철학』을 읽으면서, 대학교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들뢰즈에 관해 '무지의 호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때는 정말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을 보면서 감탄했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감탄'을 한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하는 그들의 끈기가 놀랍기도 했었고, 이해는 안 되지만 뭔가 지금까지 봐온 책들과는 다른 '기운', 그야말로 영빨이 느껴지는 그 기운이 놀라웠습니다. 철학과에서 주로 읽고 배우는 칸트나 헤겔에서는 느끼지 못한 분방함 같은 걸 느꼈달까요. 원인 모를(사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은) 패배의식에 몸서리치던 그때에 들뢰즈의 책들을 만난 것은 정말 축복이었습니다.

『들뢰즈, 유동의 철학』을 그때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아마 지금처럼 『천의 고원』을 느끼지는 못했을 겁니다. 대신에 좀더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고원을 오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때는 고원의 언저리에서 오르지 못할 것 같은 거대한 고원을 바라보며 감탄만 했었으니까요. 『들뢰즈, 유동의 철학』은 그 고원의 밑그림을 세심하게 그려줍니다. 어떤 길로 어떻게 오르는 것이 좋은지, 그 고원은 어떻게 생겼는지 하는 것들을 말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유로 들어가는 하나의 특정한 경로일 뿐 '유일한' 경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노 구니이치가 그려주는 길을 따라서 한번 올라가보고 나면, 각자의 길을 찾는 것이 보다 수월할 것입니다.
15개의 장은 주요한 개념을 제출하고 전개하여 대동맥을 형성하는 '메이저'인 장과, 그것들을 응용하고 여러 가지 구체적인 예를 제출하면서 개념에 세밀한 뉘앙스를 부여하고 있는 비교적 짧은 '마이너'인 장으로 나누어진다. '마이너'인 장이 중요함에 있어서 결코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메이저'인 장에서 제출된 추상도가 높은 개념을 구체적인 차원으로 옮겨 살을 붙이고 채색하고, 작동시키고 테스트한다는 느낌이다.(『들뢰즈, 유동의 철학』196~197쪽)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
_ 잭슨 폴록의 붓질에 따라 다양한 강도와 방향의 선들이 "어느 부분에서는 강렬하게, 어느 부분에서는 느슨하게, 흐름"의 향연을 이루고 있습니다.
_ 잭슨 폴록의 붓질에 따라 다양한 강도와 방향의 선들이 "어느 부분에서는 강렬하게, 어느 부분에서는 느슨하게, 흐름"의 향연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쩐지, 제가 밑줄을 그어놓은 저 단락을 읽고 있으면, 친절한 가이드를 받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보통의 철학책들은 서론, 본론, 결론이 꽉 짜여져 있고, 그 안에 또 부분마다 논리적인 전개가 쉴틈없이 전개되는 '건물'과도 같은 구조를 지니는 데 비해서 『천의 고원』은 하나의 '흐름'으로 사유가 전개됩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강렬하게, 어느 부분에서는 약간 느슨하게 말입니다. 그러한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는 것과 기존의 철학책에 익숙한 상태에서, 그런 책들을 읽는 습관대로 『천의 고원』을 읽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책을 비난하거나, 자신의 이해력을 비난하거나 할 공산이 큽니다. 그런 점에서 『들뢰즈, 유동의 철학』은 아주 유용한 책입니다.
사실 <리좀 총서>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들뢰즈의 사유에 접근하는 데 좋은 포인트들을 제시해줍니다. 『들뢰즈 이해하기』 앞부분에 실린 들뢰즈의 주요 개념 설명 부분이나, 들뢰즈 사상의 출발부터 도달점까지 각 층위를 보여주는 『들뢰즈 사상의 분화』 같은 책들도 아주 유용하죠. 뿐만 아니라, 어렵기로 유명한 『차이와 반복』의 2장, '시간'을 주제로 '반복' 개념을 통해 풀어가는 그 부분에 대해 꼼꼼한 연구와 세심한 설명을 자랑하는 『들뢰즈와 시간의 세가지 종합』 같은 책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쌓여가는 그린비 '리좀 총서' 목록을 보면서, 향후 계획하고 있는 들뢰즈 공부에 자신감을 얻습니다.

그린비 <리좀 총서> (책 소개 보기)
_ 삶의 '배치'를 바꾸는 공부의 토대가 되어주는 들뢰즈의 책들.
_ 삶의 '배치'를 바꾸는 공부의 토대가 되어주는 들뢰즈의 책들.
그 모든 책들이 공부의 토대를 마련해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부가 삶으로 흘러들어오는 기분을 느낄 때, 삶과 공부는 다른 차원으로 이행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질서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전과는 다른 행동으로 삶을 구성하죠. 언젠가 들뢰즈가 『천의 고원』에서 단 한가지 개념만을 꼽자면 '배치'를 꼽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배치'는 사실 관계들의 구성태 전체를 이르는 말이죠. 망치가 사람 머리와 만났을 땐 흉기가 되고, 못과 만났을 때 연장이 되는 것처럼 사물들의 '배치'에 따라 '의미'가 생겨납니다. 공부를 통해 다른 삶을 만난다는 것은 내 삶의 배치를 바꾼다는 의미이고, 그런 점에서 공부는 삶의 배치를 바꾸는 작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들뢰즈의 책들이 '패배의식'의 배치에서 다른 배치로 저를 이동시킨 것처럼, 수많은 유용한 책들을 통해 삶의 다른 배치를 만드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무수한 생성의 질서들 속에서 『들뢰즈, 유동의 철학』과 그린비 <리좀 총서>가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 웹기획팀 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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