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에 저항하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퇴근 시간의 서울 도심의 버스가 늘 그렇듯 얼마 전에 서울시청 앞에서 제가 탄 버스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무리 만원이라고 해도 버스 뒤편에는 공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법. 한 아저씨가 용감하게도 주변 사람들을 마구 밀치며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그 옆에 서 있다가 ‘밀침’을 당한 한 여자 분이 몸을 가누면서 말했습니다. “에구, 아저씨. 왜 안으로 밀고 들어가요?” 그랬더니 아저씨 왈. “아저씨가 아니라 형제님입니다.” “네?” “형제님이라고요.”

뭔가 완벽해 보이지 않습니까? 자신을 향한 항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은근히 그 ‘항의’에 대해 딴죽을 거는 모습이. 그리고 최근에 벌어지는 일들과 비슷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위의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요즘 용산 화재 참사에 대한 정부의 반응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철거민과 경찰을 포함해 6명이나 되는 인명을 앗아 간 참사가 벌어졌음에도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정부의 재개발 정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또 반인권적인 철거를 진행하지 않겠다, 경비용역 업체 운영에 관련된 법안을 수정하겠다는 등의 의견도 한 마디도 내놓지 않은 채 시너통에 불이 붙어 6명의 사람이 사망한 사건의 현상적인 원인만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고, 그 원인을 오로지 철거민에게 돌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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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형제님, 삽질은 이제 그만.

뭐, 어제(2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통해,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거민 문제를 포함해 재개발 사업 전반에 걸쳐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개발에 대해 한마디 언급을 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누구입니까. ‘삽질’(건설회사 경력 and 청계천)로 그 자리에 오른 대통령이니만큼, 또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아니 대통령 인수위까지 포함하면 그 이전부터 온갖 ‘삽질’(헛된 일)을 해온 만큼 ‘삽질’(재개발 and 헛된 일)을 그리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마저 대통령의 뒤를 이어 ‘삽질’에 앞장서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이번 참사를 지켜보면서 ‘내가 만약 그 철거민이었다면?’이라고 저에게 질문을 던져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사는 부모님 집은 이미 10여 년 전에 논밭을 밀어 버리고 재개발을 이미 한 신도시라서 여기에 계속 산다면 당분간은 재개발의 마수를 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다면 모아둔 돈이야 뻔하니 아직 재개발의 광풍이 닥치지 않은, 그래서 언제라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될 수도 있을 곳에 집을 장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주위에서 그런 경우를 보기도 했고요. 이번 참사로 말미암아 사망한 철거민들을 보더라도, 말 그대로 주위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동네 아저씨 같은 분들입니다. 재개발이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우리 전부를 향해 있다고도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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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지역의 철거 현장
_ 철거민은 어느 특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우리 전부를 향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 재개발 지역이 된다면? 내가 철거민이 된다면?

그렇다면 만약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실제로 재개발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히 내 소유의 집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면?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서점에 가서 책장에 꽂힌 책을 찾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일 것 같습니다. 현재 시중에 출간된 재개발 관련된 서적 중에서 이런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는 책은 없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재개발로 검색되는 책 대부분이 ‘재건축 재개발로 빨리 집사기’라든가 ‘재개발 뉴타운 - MB시대 부동산 투자 핵, 금액대별 투자 비법. 알짜 투자지역 전격 공개’라는 식의 제목을 달고 있는데, 굳이 책을 사서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 뻔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이 주거 공간의 의미보다는 재산 불리기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재개발 역시도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 구성원의 많은 수가 여전히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시점에 위와 같은 책들은 세입자의 처지에서 서서 자기가 사는 집이 재개발 지역으로 결정되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 없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주거권운동네트워크에서 가판과 인터넷으로 판매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그 많던 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 개발에 저항하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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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 개발에 저항하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_ 이 책에는 재개발에 대처하는 법,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 주변으로 밀려난 자들의 법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재개발을 로또처럼 일확천금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삶의 질이 변화될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재개발을 둘러싼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도 ‘보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거환경, 즉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게 재개발 사업의 본래 취지일 텐데, 그것을 보장받는 게 세입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철거민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마치 이익집단인 것처럼, 그리고 좀 더 많은 돈을 뜯어내고자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글쎄, 그게 전부일까요? 세입자는 재개발 사업이나 주거환경개선사업에 한해서 공공임대주택 입주 자격이 보장되지만, 입주 자격이 입주 가능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들어선 은평 뉴타운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율이 20%에도 못 미쳐서 일반 분양으로 전환되었다고 합니다. 보증금과 임대료, 관리비 등이 개발 이전에 살던 주택에 비해 과도하게 높아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넘고, 가구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지어지는 주택 규모의 문제 등으로 입주를 못하거나 입주했다가도 퇴거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 책은 친절하게 각종 재개발 관련 법안들과 재개발 진행 절차들을 정리하고, 세입자로서의 권리 및 그 권리를 찾으려는 방안을 말해 줍니다. 자신의 권리를 아는 만큼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법이니만큼 재개발과 관련된 법안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게 필수적일 것입니다. 만약 이번 용산 참사의 철거민들처럼 만약 충분한 보상과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순순히 집을 내어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권리, 예를 들어 충분한 보상금과 임대주택입주권 등을 받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 멀리 나아가서는 재개발의 주체가 정부나 영리를 노린 건설회사가 아닌 주민들이 되려면 지역공동체, 즉 마을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이 책은 주장합니다.

재개발뿐만 아니라 정부가 여기저기에서 하고 있는 ‘삽질’이 하나씩 곪아서 터지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삽질’을 슬기롭게 피하려면, 또 저항하려면 이런 안내서가 한두 권이 아닌 수십 권이 필요할 것만 같습니다.

- 편집부 박광수

ps. 저는 이 책을 작년에 가판 판매할 때 샀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이 책을 발행한 주거권운동네트워크 housing@jinbo.net로 연락하시거나 이 단체에서 운영하는 웹진 진보복덕방을 방문해 보세요.


2009/02/10 10:40 2009/02/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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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경찰국가 깡패국가 선언한 타락한 대한민국 공권력

    Tracked from 심지를 굳게 하고 2009/02/11 09:48  삭제

    악마들의 면죄부 다들 아시는 것처럼 최근에 이번 견찰들의 용산 살인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접신이라도 했는지 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고, 불길한 예측은 정확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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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럼 2009/02/11 02:59

    그렇다면 네티즌들은 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직 경찰 씹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까요? 저는 그게 참 의문입니다. 경찰이 그렇게 무리한 강경진압을 벌이지 않았다면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그럼 철거민(과연 이 단어를 고인이 되신 그 분들께 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하여튼 시위하던 쪽에서 그렇게 많은 신나를 준비해 놓고 바닥에 뿌려대지 않았다면 이런 참사가 벌어지진 않았겠지요. 그렇게 치면 정부 정책이 제대로 되어있어서 철거민들이 시위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면 역시 이런 참사는 일어날 일이 없었겠지요. 그런데 지금 정부의 재개발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사, 언론, 네티즌, 누가 얼마나 있습니까? 저에게 현재 네티즌들은 평소에 대통령에게 쌓여있던 불만을 더해서 신나게 경찰 까대기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네요. 이미 재개발될 거라는 걸 알고서도 입주하여 그렇게 시간을 끌던 사람들에 전철연이 더해져 순수한 철거민으로는 보이지가 않는데 왜 분위기를 철거민이니까 늘 사회적 약자이고 경찰은 이름부타가 '특공'대인 강자이고 강자가 약자를 탄압하다 참사가 벌어진 것으로 그렇게 몰고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박광수님도 그런 인식 하에 글을 쓰신 것 같은데, 사망자 중에서 사실 제일 불쌍한 사람은 경찰 아닌가요? 그 사람은 무슨 죕니까? 물론 저는 현 대통령을 정말 미치도록 증오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지만, 이렇게 경찰과 검찰을 씹어대기만 하는 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경찰에게는 화염병 좀 던져도 그건 그럴 수 밖에 없는 거라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경찰이 위에서 시키니까 들어가지 무슨 억화심정이 있어서 그랬겠냐는 말에 일제시대 순사도 그런 소리했다고 하는 이 논리에는 과연 무슨 이득이 있나요? 글을 쓰신 정확한 주제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지만, 글에서 앞의 논리와 비슷한 뉘앙스가 느껴져 한번 얘기꺼내 봤습니다.

    • 에휴 2009/02/11 06:44

      쓸데없는 글을 쓸데없이 길게 쓰셨네요.
      지금 경찰을 일제순사에 빗대 나무란다고해서, 무슨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요, 사실관계가 그러합니다.

    • 그럼 2009/02/11 13:19

      쓸데없는 글을 쓸데없이 길게 썼고 경제적인 이득이 없다라... 저는 차라리 지금의 이 댓글에서 '아저씨가 아니라 형제님입니다'라는 모습이 보입니다만, 여기가 사실 정치사회 토론방은 아니어서 이만 자제하렵니다. 평소에 이곳에서 책에 대한 글을 많이 보는 편인데 마침 이런 글이 떴길래 제 생각을 말해본 것 뿐입니다. 사실 저만의 교만과 아집인지는 모르겠으나 네티즌들의 주장하는 바를 볼 때 답답한 부분이 참 많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