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용 명품도시를 넘어서 '삶에 대한 약속'을 담은 도시정체성 찾기!
- 공공디자인 열풍 속에 되묻는 도시디자인의 사회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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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 광역시의 정체성을 찾아서』

김민수 지음|도서출판 그린비|갈래 : 예술·대중문화
발행일 : 2009년 1월 10일 | ISBN : 9788976826008
사륙배판 변형(248*176mm)|560쪽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에서 김민수 교수는 안정되고 쾌적하게 삶의 질을 높이기보다 부동산 투기판과 스펙터클한 전시행정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는 한국의 도시들을 6대 광역시부터 조명한다. 부산·대구·대전·광주·울산·인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축으로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정체성을 짚어 보았다. 또한 도시디자인 차원에서 도시경관, 건축, 공공디자인, 상징디자인 등의 빛과 그림자를 종합적으로 탐사했다. 이를 위해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 근대화 시기를 가리지 않고 각종 문헌과 지도 역시 샅샅이 조사했다. 여기에 여러 차례에 걸친 탐방에 근거한 현장성 있는 설명이 어우러져 도시계획에 왜 역사적 맥락과 사회철학이 필요한지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공동체를 위한 삶의 약속이 담긴’, 함께 치유하고 가꿔 나가야 할 삶의 터전으로서 도시에 관해 성찰하고 소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행복추구권이기 때문이다.

∎ 지은이 소개

지은이_김민수 |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산업디자인학 석사(MID), 뉴욕 대학(NYU) 대학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국민대 공업디자인학과 교수를 거쳐 1994년부터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중, 서울 미대 초창기 원로교수들의 친일행적을 거론하고 선배 교수의 작품과 교과 과정을 학문적 입장에서 비평했다는 이유로 1998년 교수 재임용에 탈락했다. 이후 6년 반 동안 복직 투쟁과 소송을 벌이는 가운데 유배자의 심정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 삶의 질을 가꿔 나가는 도시문화와 도시디자인’을 탐사했다. 2005년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로 원직 복직해 현재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21세기 디자인 문화 탐사』(1997, 「월간 디자인」 선정 올해의 디자인상 저술 부문 수상작),『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1999),『김민수의 문화디자인: 삶과 철학이 있는 디자인 이야기』(2002), 『필로디자인: 삶과 철학으로 시대를 디자인한 22인의 이야기』(2007)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한국 현대디자인과 추상성의 발현, 1930년대~1960년대」(1995),「시각예술의 관점에서 본 이상시의 혁명성」(199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공예 교육 50년사: 1946~1996」(1996), 「Mapping a Graphic Genome: A Cross-Cultural Comparison between Korean and Japanese Designers」(Visible Language vol. 37/2, 2003),「광기의 추억: 친일미술의 개념과 범주」(2004),「한국화폐의 초상과 기억의 죽음」(2006) 등이 있다.


∎ 목 차

머리말 | 도시의 영혼
프롤로그 | 도시는 오늘도 성형수술 중

1부 멀티플렉스 부산
I. 부정형의 다핵 구조
II. ‘가마 부산’은 어디에
III. 근대 부산의 기억
IV. 장소의 기억을 찾아서

2부 혼합형 미인 대구
I. 대구의 미학적 정체성
II. 건조한 분지 지형
III. 대구읍성의 식민도시화
IV. 컬러풀 대구

3부 진국의 맛을 위하여, 대전
I. 떠나가는 나그네 도시
II. 대를 이어 살 만한 곳
III. 빼앗긴 ‘소제호의 봄’
IV. 대전만의 장점을 가꿔 나가길

4부 무등정신, 광주
I. 무등정신의 치열한 삶터
II. 안개처럼 사라진 광주읍성
III. 광주의 식민도시화
IV. 광주, 진실을 디자인하라

5부 선사와 현대 사이, 울산
I. 태화강변의 근대화
II. 표백된 도시, 남은 건 ‘역사의 부스러기’ 뿐
III. ‘울산을 위한’ 도시디자인
IV. 회색도시에 지역색 살리기

6부 21세기 개항장, 인천
I. 다핵형 광역도시의 도약
II. 주몽의 축복이 두루 약속된 땅
III. 개항 그리고 식민도시화
IV. 신개항장 IFEZ와 구도시 재생

에필로그 | 영혼이 숨쉬는 도시
I. 도시정체성과 상징 디자인
II. 장소성과 도심 재생
III. 삶에 대해 겸허한 도시디자인

참고문헌
찾아보기


∎ 책 속에서

도시디자인과 공공디자인이 세련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가꿔 나가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잘 가꿔진 도시문화는 두터운 ‘시간의 복층구조’, 즉 시간의 켜를 재생시켜 구축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눈에 보이는 매혹적인 오브제로서 건축과 도시 이미지만 보지 말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자세’를 봐야 한다. 성공한 도심 재개발 사례를 보면, 과거의 시간이 쌓여 현재와 함께 살아 숨쉬는 역동적 구조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오로지 현재성만으로 이루어진 얄팍한 도시와 달리 깊이 있는 도시문화가 약속되는 법이다. 디자인은 ‘삶을 약속하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의 몸과 같이 살아 있는 조직들의 섬세한 생태계로서 도시공간을 지속가능하게 가꿔 나가는 지혜와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마음이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한국의 도시와 디자인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제대로 된 도시디자인은 단지 현혹하는 멋진 이미지 만들기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본성, 즉 ‘도시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공동체의 ‘삶을 원활하고 활기차게’ 약속하는 것이다.
(‘머리말’에서)


∎ 책 소개

과시용 명품도시를 넘어서 ‘삶에 대한 약속’을 담은 도시정체성 찾기!
- 공공디자인 열풍 속에 되묻는 도시디자인의 사회철학


서울시가 청계천을 복원하고, 이어 공공디자인 사업을 시작하며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지명된 이후 지자체마다 디자인 열풍이 불고 있다. 디자인이 도시 경쟁력이 된다는 경제적 판단 덕분이다. 정부에선 도시공간, 건축물, 가로시설물 등에 대해 총괄 조정체계를 도입하는 ‘디자인 코리아’를 발표하고, 지자체들은 각각 공공디자인 관련 부서를 신설하는 등 디자인 경쟁에 몰입했다. 과연 이 현상이 환영하기만 할 일일까. 공공디자인은 세계화라는 화두 속에 국가 이미지 전략의 최전위로 확실히 자리 잡은 듯싶다. 그러나 디자인에는 삶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함을 전작『필로디자인』(그린비, 2007)에서 되새겨 준 김민수 교수는 공공디자인 열풍과 뒤섞여 불어오는 개발주의 광풍 속에 참된 도시정체성은 실종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새 책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에서 김민수 교수는 안정되고 쾌적하게 삶의 질을 높이기보다 부동산 투기판과 스펙터클한 전시행정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는 한국의 도시들을 6대 광역시부터 조명한다. 부산·대구·대전·광주·울산·인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축으로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정체성을 짚어 보았다. 또한 도시디자인 차원에서 도시경관, 건축, 공공디자인, 상징디자인 등의 빛과 그림자를 종합적으로 탐사했다. 이를 위해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 근대화 시기를 가리지 않고 각종 문헌과 지도 역시 샅샅이 조사했다. 여기에 여러 차례에 걸친 탐방에 근거한 현장성 있는 설명이 어우러져 도시계획에 왜 역사적 맥락과 사회철학이 필요한지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공동체를 위한 삶의 약속이 담긴’, 함께 치유하고 가꿔 나가야 할 삶의 터전으로서 도시에 관해 성찰하고 소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행복추구권이기 때문이다.


깊은 내공으로 울리는 도시디자인 현장 가이드

▶몸으로 파 내려간 도시의 지층
얼마 전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김민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 적이 있다. “김민수는 매우 명민한 사유와 감성의 소유자다. 디자인의 역사성을 그것에 깃든 철학과 박치기시켜, 그것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읽어 내는 작업에 능통하다. 김민수의 유머러스한 화법과 논리적인 언어 사이에서, 선과 색과 형태들은 의미의 맥락 안에 부드럽게 배치된다.”(이명원, 『말과 사람』, 이매진, 2008)

기존에 나와 있는 공공디자인 연구서는 주로 외국의 성공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소개에 그쳤다. 국내 도시에 대한 독해는 거의 없었다. 김민수 교수는 한국이라는 현실에 유학 시절 익힌 서구의 학문 체계와 방법론을 접속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 연구를 했다. 서울대 해직 기간에도 신문사의 객원기자로 지방 도시를 직접 취재하며 글을 썼고, YTN에서 1년간 “김민수의 도시문화 탐사”라는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몸으로 한반도를 이해하고 사유와 실천을 결합시키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대한 위치와 생각이 훨씬 더 명징해졌다. 그 경험이 오롯이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에 담겼다.

책 제목에 포함된 탐사는 이중적 의미를 띤다. 探査와 探史. 미지의 대상을 샅샅이 탐험하는 탐사(探査)일뿐더러 각 도시가 지닌 시간의 켜를 역사서, 고지도,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도시계획, 각 지자체가 발행한 시사(市史)와 홍보자료집까지 문헌이란 문헌은 죄다 연구한, 도시디자인의 탐사(探史)다. 해당 도시를 잠시 방문하고 간단한 역사와 함께 적은 인상비평과는 격이 다른,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도시디자인 안내서
이 책은 지자체 도시디자인과 정체성의 현안을 둘러싸고 고심하고 논의해야 할 도시정책가, 행정가, 디자이너들뿐 아니라 도시에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해 쓰였다. 다양한 독자를 위해 여행기에 가까운 형식을 취했다. 마치 독자들이 저자 김민수 교수와 함께 해당 도시를 방문해 현장에서 도시디자인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이 느끼게 하려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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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도시별로 글은 현재 도시 모습을 조감(鳥瞰)하는 큰 사진들과 함께 시작한다. 공항, 기차역, 고속도로의 나들목 등 도시의 입구에서 시작해서 역 플랫폼의 인파, 역 앞 광장의 ‘노래비’  등 이방인의 첫 눈길에 다가오는 이미지다. 도판뿐 아니라 일반적인 도시이미지가 무엇인지 제시하고, 그것이 적절한지 검증한다. 이를 위해 겉으로만 보이는 이미지 이면의 장소성을 고문헌과 고지도 등을 꺼내 현재 모습과 겹쳐 놓고 X레이라도 찍듯이 투사한다. 국지적인 장소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키워드로 형상화하면서 글과 이미지의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

구석구석 살피면 볼 게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 도서관처럼 잘 정리된 디자인이 되도록 배려했다. 책의 왼편에 도판을, 오른쪽에는 텍스트를 배치해 때로는 사진만, 때로는 텍스트만, 때로는 두 가지를 함께 따라가면서 읽을 수 있게 했다. 그저 멋지기만 한 건축사진보다는 거칠고 어지럽더라도 우리 도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는 사진을 선택했다. 세월 속에 손상되었더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사진들을 삽입했다. 듣기에만 그럴 듯한 말이 아니라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대로. 여기에다 전문 분과 영역(역사, 건축, 디자인 등)에만 머물러 있던 자료들이 가세해서 이 이미지들을 읽는 법을 알려준다. 바로 도시이미지를 읽는 방법이다. 도시공간에 축적된 역사에 관심 있는 인문학자에게도, DSLR 카메라를 들고 낯선 골목길을 헤맬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에게도 이 책은 특별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역사·문화의식이 담긴 광역시 정체성 찾기

▶타자의 시선과 과거에 사로잡힌 삶
한강의 기적 이후 30년,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OECD 가입국이 된 한국 사회는 비주체성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설정 속에서 살아가려는 의식이 강해졌다. 요즘 아파트 광고를 보면,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매일 밤 와인 파티만 벌이는 사교 클럽 같다. 거기에 삶은 없다. 오직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불안감을 럭셔리로 감싼 명품아파트만이 있을 뿐. 이런 과시적인 럭셔리가 우리의 삶을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비주체적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그럴수록 겉모습에 집착하게 되고, 심한 경우 성형수술 중독에 빠진다. 비주체적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잘살던 장소가 갑자기 허름하게만 보인다. 모두 재개발 대상이다. 청계천 일원의 황학동이 그러했고 지금은 동대문운동장과 피맛골, 낙원상가가 그러하다. 이런 강박 속에 도시의 문맥은 사라지고, 도시디자인은 ‘외관’이 지배하는 이벤트로 전락해 버린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의 근대에서, 과학기술과 디자인은 일제 식민지배를 가시화하는 볼거리, 즉 스펙터클로 이식되었다. 오래된 읍성은 일본 거류민들의 이익을 위해 파괴되었고, 식민화를 가속화하는 현대적 도시계획에 의해 변형되었다. 각 대도시마다 제국의 위용을 뽐내는 의양풍(유사-서양풍) 식민건물들이 세워졌다. 그 건물들마다 다양한 형태로 새겨진 총독부 문장은 일제의 지배의식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 준다. 타자의 시선에 묶인 채 형성된 근대로부터 자기 자신을 늘 추하게 인식하는 추형장애가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식민지배 속에 타자의 시선으로 형성된 우리의 과거를 무조건 부정만 할 것인가. 바로 그 청산의 강박이 ‘재개발이 최고’라는 또 다른 인지장애를 앓게 하는 건 아닌가. 쉽지 않은 문제다. 시각이론가 존 버거(John Berger)는 “우리가 볼 수 있을 때, 우리 또한 보여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주체적 시각이 존재할 때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이 발현된다는 말이다. 한국 도시디자인에서도 근대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봐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 삶의 내용이 담긴, 주체적인 도시공간도 가꿀 수 있을 터이다.

▶장소의 기억이 빚어 낸 도시 정체성을 찾아서
오늘날 개발의 소음과 분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한국의 도시들 역시 저마다 다른 맥락에서 형성되었고, 근대를 거치며 변형되고 성장했다. 6대 광역시들은 어떠한 역사적 문맥과 과정에서 형성되었는가?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 각 도시가 그려 가고 있는 미래 비전 혹은 청사진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앞으로 이 도시들이 가꿔 가야 할 정체성은 무엇인가? ‘상품미학’에서 출발한 한국의 디자인을 좀더 넓은 철학과 인식론의 자장 안에 배치하고자 하는 김민수는 도시디자인 역시 그것을 산출하거나 수용한 현실의 이면을 맥락화하여 읽어 내고자 한다.

멀티플렉스 부산   중심을 따로 표시하기 어려운 ‘부정형 다행 구조의 도시’이다. 세 갈래의 산맥 사이에서 자리했던 여러 행정구역(동래읍성, 부산진, 개운진 등)과 구한말 이후의 조계지(유럽조계지, 청관, 일본조계지)가 통합되어 오늘날 하나의 광역시를 이룬 부산. 관찰 장소와 각도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거대한 주름구조체와 같은 부산은 멀티플렉스처럼 다양한 매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동안의 각종 난개발과 해운대 지역에 조성된 최첨단 신시가지와 구도심의 불균형으로 인해 경관적 다양성과 역동성은 뒤엉키고, 획일적인 복잡성만 남았다. 특히 구도심은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도심활력 저하, 도시공간 구조 왜곡, 건축물의 노후화 등 다양한 도시문제가 발생했다.
이제 부산시는 북항 재개발 사업과 공원 정비 등을 추진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도시 하천환경 개선사업으로 구도심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저자는 구도심 지역의 시간의 켜를 살리는 풍부한 서사적 의미를 발굴하여, 정서적 균형과 도시정체성을 가꿔 나가는 도시디자인을 제안하고 있다.

혼합형 미인 대구   배타적인 분지 지형 못지않게 배타적인 문화로 유명한 대구. 그러나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인 대구에서 다른 정체성을 찾을 수는 없을까? 고대의 달구벌 시대 이래 단핵 구조를 유지해온 대구는 1도심 체제로 도시의 기능을 외곽으로 확장시켜 왔다. 그 결과 도심부는 마치 고립된 섬처럼 사무용 고층건물, 주상복합 건물 등이 뒤섞여 불연속적 풍경을 자아내고, 시가지 외곽은 도심부와 연계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식으로 재개발된 대규모 아파트단지들이 마치 거대한 성냥갑 더미처럼 펼쳐져 있다. 대구시는 ‘시가지 리모델링’에 초점을 맞추어 도심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김민수 교수는 도심 내 녹지·보행축의 조성과 근대건축물과 문화공간을 발굴 및 보전해 가로의 물리적 환경 개선을 통한 장소성의 확보를 제언하고 있다.
남방계와 북방계가 고루 잘 섞인 혼합성이 대구미인의 조건이듯이, 대구의 미래 역시 다핵 도시로의 변신과 함께 잘 소통하고 어울려 ‘조합을 이루는 관계 방식’의 창출, 즉 ‘컬러풀 대구’의 성공에 달려 있다.

진국의 맛을 위하여, 대전   식민 지배의 개시와 함께 한밭 지역에 조성된 신도시이자 한국전쟁 기간 유입된 실향민들에게 새로운 삶터가 되어준 나그네의 도시 대전. 최근에는 둔산 지구 개발에 따른 공공기관 이전과 더불어 대규모 아파트 건립으로 인구와 각종 상권이 구도심권에서 빠져 나갔다. 앞으로 충남도청까지 이전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김민수 교수는 대전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뒤해 구도심 침체현상 해소와 경제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특성화 거리 조성과 도심 하천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김민수 교수는 이 ‘원도심 활성화 계획’에서 조급함 없이 현실을 푹 고는 절차의 힘을 보여 달라고 주문한다. 이렇게 ‘진국의 맛’으로 대전의 정체성이 승화될 때 ‘떠나가는 0시 50분’ 기차(「대전 블루스」)의 급조된 식민도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전의 자랑 ‘한밭설렁탕’처럼 유구한 역사의 너른 땅에서 우러나온 넉넉한 품성으로 도시이미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등정신 광주   단발령에 대한 극심한 반발로 나주에 있던 전남관찰부가 광주로 옮겨지면서 의향 광주의 영광과 상처는 시작되었다. 통일신라 시대 이래 격자형 도로망을 갖추고 있던 오래된 삶터, 광주읍성이 일제의 도시계획에 의해 해체되면서, 성곽은 사라지고, 도심을 풍부하게 하던 하천은 사라졌다. 그렇게 도시의 역사는 잊혀져 갔다. 최근 광주시는 소외와 편견의 역사로부터, 5.18민중항쟁에 따른 산 자의 아픔과 상처의 시대를 딛고 자신의 삶터를 위한 새 판짜기에 진입했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과 함께 구도심을 활성화하고, 예술·문화 시설을 확충해 도시의 특성을 살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속가능한 도시문화보다는 과시적인 시청사 건설이나 산업적 기반이 없는 디자인비엔날레 개최처럼 비현실적인 사업도 시행되고 있다.
의향 광주의 도시정체성과 디자인은 절대평등의 ‘무등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일상 삶의 부조리를 걷어 내 공동체적 가치를 구현하는 삶터의 디자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광주의 역사를 문화적 자산으로 여기고 허위의식이 아닌 진실한 마음을 담아 ‘무등정신의 생활화’를 위한 노력과 실천이다.

선사와 현대 사이 울산   개발독재 시대, 중공업 노동의 도시로만 표백된 울산의 정체성. 해안에 입지한 조건 때문에 일제의 대륙진출을 위한 전진기지가 되고, 이어 70년대 중화학산업 중점도시가 되면서 국가 전체를 위한 희생만 강요받았고, 개별적인 특성을 살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울산은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공룡발자국 같은 선사 시대의 흔적을 품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은 도시이기도 하다. 김민수 교수는 고문헌과 고지도를 통해 울산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짚어 내면서 광역시 울산에 부재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문화의식이라는 날카로운 진단을 내린다.
이제 울산시는 타고난 역사와 문화에 기초해 도시디자인을 총체적으로 펼쳐야 한다. 울산시는 태화강 일대를 정비하고 쾌적한 주거지와 보행자 거리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구도심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공업도시에 몰려든 뜨내기들의 도시가 아니라 공업도시 나름의 도시정체성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21세기 신개항장 인천   소서노의 고대국가 미추홀로부터 19세기 말 개항장까지 뛰어난 지정학적 위치와 관문도시 기능을 가져온 인천. 20세기 말 광역화를 이루면서 서울의 주변도시에서 독자적인 도시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종도 국제공항과 경제자유구역(IFEZ)이라는 개항장의 면모를 되살려 국제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해방 후 일제가 해먹고 빠져나간 빈자리에 다시 한국전쟁의 파괴와 상흔이 포개진 질곡의 땅에서 온 몸으로 전후 경제를 재건해야 했던 격동의 시대, 성장 위주의 개발에 따른 무분별한 도시정책으로 환경과 도시이미지가 악화된 장애는 아직 치유중이다.
인천의 시가지는 신도심이 건설된 다른 광역시들처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오래된 주거 지역과 계획적으로 형성된 신시가지로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은 최근 인천경제자유특구 건설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인천시는 낙후된 구시가지를 주거지의 유형별로 설정하고 양호한 주거환경을 형성하고자 한다. 특히 중구 일대 내항 주변의 구도심 지역을 근대역사문화지구로 구분해 관광여가 기능을 살려 침체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려 하고 있다. 김민수 교수는 최첨단 신도시의 새로움을 기존 구도시의 중층화된 시간의 켜와 연계해 가꿔 나가는 지혜를 요청한다. 예를 들어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보존하고 ‘책의 문화’를 재생시키는 사업 등을 말한다. 새로운 것은 더욱 새롭게, 오래된 것은 오래된 대로 가꿔 나갈 때 도시의 새로움이 빛을 발하게 되리라는 전망, 구도시와 신도시가 공존하는 길이다.


‘우리의 진짜 필요’에 맞추어 가꾸어 나가야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 보통은 탁월한 역사·문화는 단시간에 형성되지 않는다는 은유로 쓰이는 말이지만, 이 경우엔 문자 그대로다. 훌륭한 도시는 하루아침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공들여 가꿔 나가는 것이다. 도시디자인이란 단순히 경관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어떤 방식의 삶을 살 것인지 ‘삶을 약속하는 일’이다. 사람이 자신의 고유한 철학과 비전을 갖고 인생을 완성시켜 나가듯 도시도 마찬가지다.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타고난 자연환경에 기초해 역사·문화적 삶의 조직들이 조화를 이루는 삶터로서 도시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이다. 김민수 교수는 이러한 마음이 이제 막 ‘살기 좋은 도시’에 눈 뜨고 있는 우리의 도시디자인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제대로 된 도시디자인은 단지 현혹하는 멋진 이미지 만들기가 아니라 ‘도시의 본성’, 곧 도시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공동체의 삶을 원활하고 활기차게 약속하는 것이다.


김민수 교수는 외국의 잘 가꿔진 도시문화는 두터운 시간의 복층구조, 즉 시간의 켜로 구축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공장에서 제품 만들어 내듯 이렇듯 무조건 ‘신상’(新商)만 뽑아 낼 수는 없다. 도시는 우리의 몸과 같이 살아 있는 조직들의 섬세한 생태계다. 눈에 보이는 건축과 도시이미지만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삶의 조직’을 봐야 한다. 살기 좋은 도시란 역사·문화 의식이 확실한 도시정체성에 기초해 환경친화적으로 쾌적하며, 경제적으로 먹고 살기에 좋고, 지속가능하게 잘살 수 있는 도시를 일컫는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도시디자인의 화두가 되는 도심 재생의 문제가 꼼꼼하게 제시된다. 뉴욕이나 더블린처럼 도심재생 사업이 성공한 도시를 보면 과거의 시간이 쌓여 현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역동적 구조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때 오로지 현재성만으로 이루어진 얄팍한 도시와 달리 깊이 있는 도시문화가 약속되는 것이다.

이는 도시디자인과 공공디자인이 세련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가꿔 나가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함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김민수 교수는 경제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과학특구와 온천이 공존하는 대전의 유성구를 단기 관광도시가 아니라 실버타운을 중심으로 한 휴양도시로 개발하자는 아이디어, 빛고을 광주에는 첨단 광()소재 산업보다 전통 공예와 현대적 디자인산업의 접목이 효율적이라는 제안, 개항장으로서 인천이 지닌 면모를 볼거리성 관광이 아니라 해안 관광과 역사적 기억의 장소로 재생시키자는 주장 등 지역 주민의 ‘생활’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건축가 정기용은 전북 무주군에 공공시설을 지으면서 면사무소에 목욕탕을 곁들여 짓고, 공설운동장에 등나무 그늘을 설치했다.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은 덕분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제도와 관행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선행했다. “공무원들이 감사원의 눈치를 보고 작업을 하지 주민이나 군민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수정해야 하고 둘째로 공공건축도 전문분야가 되어야 하고 공공건축가제도를 확립할 필요가 있고 세번째로 공공건축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교수들. 전문가들이 수준 높게 자기반성을 하고 체질개선도 해야 한다. 여기에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건축을 부동산으로 보지 않고 우리나라를 새롭게 개선시킬 선진국으로 참여시킬 문화로 건축을 바라보는 습성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2007년, 한국경제TV와의 인터뷰에서)는 그의 말은 도시디자이너뿐 아니라 정책가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그 변화를 이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터가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의 의무인 것과 같이.
2009/02/11 14:43 2009/02/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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