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인가, 새로운 미국의 세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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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

백승욱 편저|도서출판 그린비|갈래 : 인문사회
발행일 : 2005년 4월 25일 | ISBN : 9788976829498
신국판(152*223mm)|312쪽

1941년, 『라이프』의 발행인 헨리 루스는 곧 ‘미국의 세기’가 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머지 않아 “미국적 국제주의가 비행기나 라디오처럼 우리 시대의 아주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리라는 주장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포부’일 뿐이라고 여겨졌던 이 주장은 10년도 채 안 되어 현실이 됐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이제는 거꾸로 ‘미국의 몰락’이 선언되고 있다. 미국의 몰락을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1997년 미국 신보수파와 강경 보수파가 연합해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단체를 조직한 일이 다분히 상징적인 일로 비쳐질 것이다. ‘새로운 미국의 세기’란 표현은 (적어도 루스가 말한) ‘미국의 세기’가 끝났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표현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미국의 몰락’이 찾아오게 된 것일까?
무엇인가의 몰락을 예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것은 마치 정색한 채 “저 소녀는 자라서 여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흥한 것은 결국에는 멸하고 만다. 로마제국에서 대영제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상의 모든 패권국가가 그래왔다. 그러므로 정작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몰락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몰락을 주장할 수 있을 만한 (몰락의) 원인이 존재하는가이다.

편저자 소개

백승욱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학의 <페르낭브로델센터> 객원연구원,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안정옥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 미국에서 시간을 둘러싼 투쟁과 소비적 현대성 : 노동, 시간과 일상생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사회발전 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비버리 실버·조반니 아리기 | 실버와 아리기는 둘 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이다.

제라르 뒤메닐·도미니크 레비 | 뒤메닐은 프랑스 파리 10대학 경제학과 교수이며, 레비는 프랑스 <국립수리경제계획 응용센터>(CEPREMAP) 소장이다.

피터 J. 테일러 | 테일러는 영국 러프보로 대학의 지리학과 교수이다.


∎ 목 차

프롤로그

제1부 근대세게체계와 세계헤게모니
1. 역사적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 : 세계체계 분석을 중심으로 | 백승욱
2. 헤게모니 순환으로서의 '미국의 세기' | 피터 J. 테일러

제2부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
3. 소비적 근대성과 사회적 권리 : 미국 헤게모니의 사회적 기원과 한계 | 안정옥
4. 미국 신보수파 주도 아래의 새로운 세계질서 | 백승욱
5. '제국'과 미국 헤게모니, 세계화 : 세계체계 분석을 통한 『제국』읽기 | 백승욱

제3부 최근의 위기와 전망
6. 21세기 전환기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학 | 제라르 뒤메닐·도미니크 레비
7. 남과 북의 노동자 | 비버리 J. 실버·조반니 아리기

에필로그 : 미국 헤게모니와 이라크 파병, 그리고 전쟁 | 백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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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인가, 새로운 미국의 세기인가?


1941년, 『라이프』의 발행인 헨리 루스는 곧 ‘미국의 세기’가 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머지 않아 “미국적 국제주의가 비행기나 라디오처럼 우리 시대의 아주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리라는 주장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포부’일 뿐이라고 여겨졌던 이 주장은 10년도 채 안 되어 현실이 됐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이제는 거꾸로 ‘미국의 몰락’이 선언되고 있다. 미국의 몰락을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1997년 미국 신보수파와 강경 보수파가 연합해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단체를 조직한 일이 다분히 상징적인 일로 비쳐질 것이다. ‘새로운 미국의 세기’란 표현은 (적어도 루스가 말한) ‘미국의 세기’가 끝났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표현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미국의 몰락’이 찾아오게 된 것일까?

무엇인가의 몰락을 예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것은 마치 정색한 채 “저 소녀는 자라서 여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흥한 것은 결국에는 멸하고 만다. 로마제국에서 대영제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상의 모든 패권국가가 그래왔다. 그러므로 정작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몰락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몰락을 주장할 수 있을 만한 (몰락의) 원인이 존재하는가이다.

왜 세계체계 분석인가?

이 책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의 지은이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지은이는 서둘러 미국의 몰락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세기’를 가능케 했던 애초의 요인들이 무엇이었는지, 그 요인들이 아직까지도 유효한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 것인지 등을 긴 호흡으로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 지은이는 ‘세계체계 분석’의 틀을 빌려온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계체계 분석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1976년 뉴욕주립대학에 설립한 연구소 <페르낭브로델센터>만의 독특한 연구방법론이다(월러스틴은 ‘세계체계론’이라는 표현이 하나의 이론화 양식을 연상시킨다고 보기 때문에 세계체계 분석이라는 용어를 고집한다). 세계체계 분석은 개별 민족국가가 아니라 단일 세계체계, 즉 국가간체계를 분석단위로 삼는다. 따라서 세계체계 분석의 시각에서 ‘미국의 몰락’이라는 쟁점을 살펴본다는 것은 미국이 중심이 된 현재의 세계적 변화를 “미국이라는 한 국가가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살펴”보는 동시에 “좀더 장기적인 틀 속에서 살펴”본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세계체계 분석의 시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세계체계 분석의 문제설정을 때로는 수용하고, 때로는 비판하며 자신의 문제의식을 차분히 넓혀나간다. 이런 접근방식은 <페르낭브로델센터>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세계체계 분석의 장단점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지은이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기도 한 지은이는 ‘미국의 몰락’이라는 쟁점을 철저히 ‘한국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몰락’이라는 쟁점을 다뤘던 기존의 책들이 대부분 부시 정권과 경쟁관계에 있는 친()민주당계 인사들이나 미국 헤게모니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유럽인들에 의해 (다분히 ‘정략적 의도’ 아래) 집필된 것과는 달리,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미국의 몰락’이라는 쟁점을 다루고 있다.

미국은 어떻게 헤게모니 국가가 됐는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세계체계를 형성한 이후 세 번의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했다. 첫번째는 네덜란드 헤게모니로 그 정점은 1625~72년이었고, 두번째는 영국 헤게모니로 그 정점은 1815~73년이었으며, 세번째는 미국 헤게모니로 그 정점은 1945~67년이었다.” 지은이의 설명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역사를 한 국가 내에서 형성된 요소들과 발전의 길만으로 설명하지 않는 세계체계 분석은 각 시기 자본주의의 형태별 차이를 ‘헤게모니의 교체’ 속에서 설명한다. 세계체계 분석에서 말하는 헤게모니란 “단순한 지배가 아니라 강제와 합의의 동원을 통해 주권국가체계에 지도력과 통치의 기능을 행사하는 한 국가의 권력”으로서, “모든 갈등적 쟁점을 보편적 수준으로 옮겨놓을 수 있는 도덕적·지적 능력”이자 해당 국가에게 “정치적인 권력뿐만 아니라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권력까지” 부여해 주는 “이례적이고 특별한” 권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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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정말 놀라운 훈련의 성과군. 왜냐고?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저 사람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줄 알았거든." 미국의 팽창정책을 꼬집은 '존 불' 아버스노트의 풍자만화. '엉클샘'이 야만인으로 묘사된 푸에르토리코, 하와이, 쿠바, 필리핀, 마리아나 제도를 정복해 몸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문 38쪽)
그런데 한 국가가 헤게모니 국가로 등장하려면 무엇보다도 그만의 고유한 ‘축적체제’(물적 토대)와 ‘국가간체계’(국가들간의 질서)를 형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을 헤게모니 국가로 만들어준 축적체제와 국가간체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먼저 축적체제를 살펴보자. 헤게모니의 상승국면(물질적 팽창기)에 미국 자본주의는 “원료조달에서 생산과 마케팅까지 한 기업 내에 수직적으로 통합”시킴으로써 거래비용을 절감(‘거래비용의 내부화’)할 수 있게 해준 법인기업을 새로운 기업조직 형식으로 삼아 발전했다. 여기에 대륙적 크기를 지닌 국내 시장, 반독점법 같은 정부의 제도적 지원, 전장(戰場)에서 분리된 지정학적 요소, 고도금융의 투기적 행위를 공적으로 규제하려고 했던 뉴딜정책과 브레턴우즈체제의 확립, 마샬플랜을 통한 전지구적 시장의 창출 등이 더해져 미국은 그 이전의 헤게모니 국가인 영국과는 상이한 축적체제를 만들 수 있었다(영국의 축적체제는 ‘식민지를 토대로 한 전지구적 상업망’이었다).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하던 시기(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영국 헤게모니가 해체되면서 민족국가의 수가 전례 없이 늘어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은 이 신생 민족국가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해 새로운 국가간체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미국이 광범위하게 활용한 것이 바로 ‘발전주의의 신화’와 ‘냉전’이었다. 발전주의의 신화란 미국이 제시하고 주도하는 발전 프로그램을 추진하면 모든 개별 국가의 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리라는 환상이었다. 특히 이 신화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던 미국은 민족자립(윌슨주의와 전후 식민지 독립), 그 미래상인 소비사회에 대한 접근 등을 약속해 모든 국가가 따라야 할 모델이 됐다. 더군다나 소련과 미국의 양극체제 아래 세력균형과 자유주의적 무역질서를 유지했던 냉전(군사적 케인즈주의)은 신생 민족국가들의 선택지를 상당히 좁혀놓는 상황을 빚어내고야 말았다. 이런 점에서 발전주의의 신화는 ‘합의’의 측면으로서 일종의 당근이었으며, 냉전은 ‘강제’의 측면으로서 채찍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미국 헤게모니는 어떻게 흔들리게 됐는가?

세계체계 분석의 시각에서 보자면, 기존의 축적체제와 국가간체계에 극심한 위기가 찾아와 또 다른 축적체제와 국가간체계가 성립되면 헤게모니가 다른 국가로 넘어가는 상황, 즉 ‘체계의 카오스’가 발생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은이는 미국이 중심이 된 오늘날의 세계적 변화(이른바 미국의 몰락이라고 불리는 변화)를 체계의 카오스가 발생할 징후로 본다.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미국이 지금 위기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몰락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세기를 가능케 했던 미국 헤게모니 아래에서의 축적체제와 국가간체계는 오늘날 어떤 위기에 처해 있을까?

우선 미국 주도의 축적체제는 달러의 위기로부터 흔들리기 시작됐다. 미국 경제는 과잉축적으로 유동화폐가 증가해 환율과 이자율의 큰 변동폭을 겪게 됐다. 게다가 금융시장이 팽창하면서 자본의 수익성이 더욱 감소됐고, 독일과 일본 같은 경쟁국가들의 추격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커졌으며, 베트남전쟁 개입으로 재정수지 적자도 늘어났다. 결국 달러에 대한 신뢰성이 하락하면서 금태환 요구가 늘어난 나머지 미국은 금창구를 폐쇄하고(1971년), 자본에 대한 통제도 포기(1974년)할 수밖에 없었다. 브레턴우즈체제의 종결로 상징되는 이 달러의 위기는 곧 ‘사적 고도금융에 대한 공적 통제’의 종결이기도 했다. 즉, 비로소 자본의 자유로운 전지구적 이동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 경제는 국가의 지원 아래 금융적 팽창을 주도하게 된다. 이른바 ‘탈규제’라는 명목 아래 과거 축적체제의 핵심 제도들을 변화시킨 탓에 세계의 과잉자본은 미국으로 집중됐고, 이렇게 집중된 자본은 미국 내의 과잉자본과 맞물려 거대한 금융적 팽창을 일으켰다. 회사형 투자신탁(뮤추얼펀드)이 등장하고, 상이한 금융 영역들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형태의 증권과 단기적 투기자본(헤지펀드)이 등장한 것 등이 바로 이런 금융화 국면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미국 헤게모니의 이런 금융적 팽창은 국가간체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레이건 정권은 미국으로 재집중되는 자본력에 힘입어 ‘제2차 냉전’을 개시했다. 그런데 무한군비경쟁(‘별들의 전쟁’)으로 상징되는 이 제2차 냉전은 ‘역설적으로’ 국가간체계를 지탱해 왔던 냉전의 틀을 무너뜨렸다. 냉전체제의 한 축인 소련이 미국과의 무한군비경쟁에 따른 경제적·체제내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냉전체제의 해체는 미국의 주둔과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에 대한 세계의 반발이 커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 냉전체제 아래에서 가정된 ‘적’, 즉 공산주의 세력이 사라졌는데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더 이상 인정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발전주의 신화의 가면도 벗겨졌다. 발전주의의 신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신생 독립국가들이 공산주의 세력에 편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국이 제시한 일종의 ‘양보’였다. 미국이 제3세계 국가들에게 저리의 자본을 장기로 대부해 각종 기간시설 건설에 투자할 수 있게 해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냉전의 부담이 걷히자 자본활동에 대한 굴레는 사라졌다. 정치적 고려가 우선시되지 않자 자본축적의 논리에 따라 더 많은 부가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고, 세계적으로 배제되는 지역이 점점 더 늘어났다. 선별적으로 포섭된 지역들은 자본투자의 혜택을 받긴 했지만, 이에서 배제된 지역은 생존의 갈림길에 놓일 만큼 피폐해져갔다. 요컨대 축적체제에서 배제되는 국가들이 나타나게 되면서 기존의 국가간체계 자체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확실히 미국 헤게모니를 가능케 했던 축적체제와 국가간체계는 위기에 빠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미국의 몰락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지은이는 아니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미국 헤게모니가 맞이한 위기는 한 세기 전의 영국 헤게모니가 맞이했던 위기와 그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영국 헤게모니와 미국 헤게모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면서 이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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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본의 중심, 월가
_ 1980년년대 이후 세계의 자본은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으로 집중되고 1990년대에는 미국의 금융화를 촉진시켰다. 이 책이 출간된 2005년에는 세계경제가 이미 미국 우위 아래 통합되어 있었다.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첫째, (축적체제에 관련해)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 아래에서 세계의 자본이 유례 없을 만큼 미국에 집중되고 있다. 영국 헤게모니의 경우에는 금융적 팽창국면이 발생하자 새로운 투자처를 향해 자유롭게 이동하려는 자본의 경향과 헤게모니 국가의 영토적 토대 사이에 모순이 발생해, 헤게모니 국가의 금융화된 자본이 새로운 헤게모니 경합국의 성장 토대를 형성해 주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미국 헤게모니의 경우에는 거꾸로 자본이 쇠퇴하는 헤게모니 국가로 재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중심성( ‘강한 달러’ 정책), 월가()를 중심으로 한 공격적인 주식시장 부양책, 세계 여타 지역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전지구적 자본을 자국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 막강한 정치적·군사적 우위가 이를 가능케 했다.

둘째, 세계의 군사력이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 한 세기 전의 영국 헤게모니에서는 영국의 과잉자본이 새로운 헤게모니를 놓고 경쟁하는 유럽의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원동력이 되어, 국가간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그러나 미국 헤게모니에서는 그 어떤 나라도 미국에 직접적인 군사적 대응을 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미국은 1990년대에 국방비가 삭감되지 않고 증가한 예외적 국가이자 전세계 군사무기 판매액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재래식 무기 생산국가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할 만한 세력이 나타나지 못할 것인데, 이 사실은 향후 체계의 위기발생이 과거와 다른 형태를 띨 것임을 시사해 준다. 즉, 쇠퇴하는 헤게모니를 계승하려는 중심부 국가들간의 충돌(북-북 충돌)보다는 북-남, 또는 남-남의 갈등이 더욱 중요해지게 될 것임을 예견케 해준다.

셋째, 근대 자본주의체계에 도전해 왔던 전통적 사회운동의 힘이 쇠퇴한 반면 새로운 형태의 저항들은 집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영국 헤게모니의 경우에는 거세게 불어닥친 사회주의운동, 노동운동, 식민지해방운동 등의 물결이 체계 자체를 조직적으로 파괴하는 역량을 보여준 바 있다. 물론 오늘날에도 생태운동, 여성운동, 탈식민주의운동, 반세계화운동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운동들간의 통일과 연대의 조건은 오히려 어느 때보다 부족해 보인다. 게다가 낡은 형태와 새로운 형태가 혼합된 잡종적 형태를 띠는 동시에 고립·분산된 형태로 분출되는 이 다양한 운동들은 낡은 정체성에 사로잡힐 가능성도 높다. 종교 근본주의, 네트워크 형태의 테러조직, 각종 분리주의 등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 헤게모니는 기존의 헤게모니 국가들과는 달리 체계의 카오스에 반작용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지은이의 주장에 따르면 위기의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는 있을지언정 서둘러 ‘미국의 몰락’을 주장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는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점이긴 하지만, 사회운동의 위기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서 “미래를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이라크 파병결정이나 주한미군 재편과정에서 이른바 ‘한미동맹관계의 위기’가 운위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미국의 몰락’이라는 쟁점을 좀더 냉철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제국적’ 시도가 쉽게 성공하지는 못할” 테지만 “세계에 좀더 안정적인 질서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어려운” 오늘날의 상황을 세계체계 분석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이 책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는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발견해 새로운 길을 열어” 가려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 2005년 출간된 도서의 책 소개입니다.)

2009/02/12 16:06 2009/02/1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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