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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원제 The Gadfly (1897)
에델 릴리언 보이니치 (지은이), 서대경 (옮긴이) | 아모르문디

출간일 : 2006-04-10 | ISBN(13) : 9788995714010
반양장본 | 414쪽 | 223*152mm (A5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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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 릴리언 보이니치

『등에』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03년 EBS에서 방영해 준 중국문화대혁명 다큐멘터리에서였다.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의 젊은이들은 ‘등에’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인물에 매혹당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젊은이들은 『등에』를 영화와 소설로 접했으며, 『등에』는 그들의 삶 속 깊이 영향을 미쳤다. 냉정하게 평가할 때 문화대혁명의 젊은이들은 마오쩌둥에게 이용당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들의 혁명에 대한 ‘광기’는 순수했다.(문화대혁명을 옹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비록 문화대혁명이 야만적이고 무자비하게 진행되었지만 그 시초는 혁명에 대한 낭만주의적 감성 때문이었다. 중국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러한 순수한 감성을 이용한 것이다. 순수한 마음이야말로 가장 이용하기 쉬운 것이므로.

다큐는 문화대혁명을 참가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등에』라는 소설을 내게 인지시켰다.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중국 정부는 『등에』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 젊은이들은 정부의 감시를 피해 『등에』를 탐독했다. 다큐를 볼 때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소설을 읽고 난 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등에』는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혁명 소설과는 다른 형태의 작품이다. 1980년대 이후 우리는 고리끼의 『어머니』와 같은 혁명소설의 형식에 익숙해져 있다. 『어머니』는 비참한 사회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혁명가와 그의 어머니의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혁명에 무지하고 자신과 자식의 안위만을 걱정하던 어머니가 아들의 영향으로 인해 혁명운동을 이해하고 돕게 된다는 고리끼의 소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기본 형태를 보여준다. 착취당하고 있는 민중을 계몽하고 계도하여 혁명가의 길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혁명 소설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이다.

그러나 『등에』는 『어머니』를 비롯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 낭만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 뚜렷해 보이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아서는 혁명가적 책임감과, 존경하는 신부(神父)이자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존재인 몬타넬리 주교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 아서의 날카롭고 잔인할 정도인 종교 비판은 몬타넬리 주교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감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등에』에는 다른 혁명 소설과는 달리 혁명의 당위성에 대한 내용과 착취 받는 민중의 모습을 묘사하지 않는다. 도리어 아서의 내면적인 방황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혁명가로서 그려지는 아서의 모습조차도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주의 혁명가의 모습이 아니라 좌익모험가로 묘사된다. 『등에』는 혁명을 다루고 있되, 혁명이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배경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도리어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방황하는 인물의 내면의 갈등이 주제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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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毛澤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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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대혁명


『등에』가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 정부로부터 금서가 되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개개인의 고뇌와 방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도 개인적인 방황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은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전(前)단계로서 존재할 뿐이다. 아서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방황은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방해가 될 뿐이라고 여긴다. 도리어 사회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 개인적인 고뇌는 부르주아적 속성의 잔재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부르주아의 잔재는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반동적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인간의 낭만주의적 감수성은 혁명의 시기에 폭발할 수도 있지만, 반동적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당 지도부에 의해 거세당한다.

그러나 당시 『등에』가 금서가 된 것은 이러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도 작용한 것 같다. 문화대혁명 당시 당 지도부는 홍위병과 같은 젊은 운동을 자신들이 통제하려고 했다. 마오쩌뚱은 자신이 물러난 후, 젊은이들의 개혁파 비판으로 인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지만 정권을 잡은 후에는 젊은이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혁명에 대한 낭만주의적 감수성은 통제되어야 했다. 낭만주의적 열정은 당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혁명을 이끌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당의 명령에 복종하고 당이 제시한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 그들만의 ‘사회주의적 인간’이 필요했다. 그런 측면에서 『등에』는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등에』는 도리어 ‘혁명’이라는 단어가 박제화 되어버린 현 시기에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주류로 인정받고 있던 시기의 우리 감수성으로는 『등에』와 같은 소설을 제대로 읽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혁명에 대한 열풍이 한풀 꺽인 지금, 새로운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있는 바로 지금, 『등에』는 우리에게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어 준다.

다음에 '책과 인사하실' 분은 그린비의 멋진 '홍언니'랍니다. 영화와 만화에 매니아틱한 취향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도 하죠.^^ '홍언니'라는 별명처럼 세상을 바로보는 눈이 섬세하고 세밀하십니다. 아마 다음 책을 소개해 주실때에도 섬세함이 잘 드러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원기씨~ 재미있는 책 소개해주세요^^

- 편집부 진승우

2007/09/14 13:15 2007/09/1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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