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달 여러분 앞에 또 한 권의 낯선 책을 내놓았습니다. 모리스 블랑쇼의 『기다림 망각』(책 소개 바로가기)입니다. 오래 전부터 책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기다렸다고 반가워하는 분도 있지만, 정작 책을 만나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 만큼 형식과 내용이 낯설고, 도대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는 분도 계십니다. 틀리지 않은 말씀입니다. 이 책은 이론과 논리로 분석하면서 읽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 망각』을 읽는다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출간 후 한 달이나 지나서 쓰는 이 편집후기를 『기다림 망각』의 한국어판을 제일 먼저 읽은 독자로서 다른 독자들에게 제가 어떻게 이 책을 읽어 가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기회로 삼아 볼까 합니다.

편집자들은 대개 완성된 원고가 들어와서 원고 검토하는 단계와 초벌 교정을 보는 단계에서 책 내용에 대한 핵심적인 파악을 마칩니다.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에게,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면서 읽혀야 한다는 컨셉을 명확하게 세우고 그것이 편집 작업의 세세한 부분까지 구현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르게는 완전 원고 이전에 저자가 원고 보완을 위해 초고를 보여 줄 때 내용 파악이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가을, 『기다림 망각』의 번역 원고를 처음 받은 저는 당황했습니다. 아무리 허구(fiction)의 형태로 쓰인 철학 책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뜬금없는 대화들로 이어지는 책이 있을까 했습니다. ‘아아~ 나의 배움이 많이 부족한 건 인정하지만, 이렇게 내용이 이해가 안 되는데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편집할 수 있을까?’ 난감했습니다. 이런 경우엔 편집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할지 정확하게 상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다림 망각』 교정지
_ 편집자와 필자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교정지(텍스트)

그래서 교정을 볼 때 평소대로라면 읽어서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문장에 붉은색 펜으로 교정을 보았겠지만, 하지만 이번 경우엔 연필로 적었습니다. ‘이렇게 고쳐야 합니다’가 아니라 ‘이곳은 이런 느낌일까요?’와 같은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번역자 박준상 선생님께 보냈습니다. “제가 이해한 원고는 이렇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블랑쇼의] 뜻은 무엇인지요?” 박준상 선생님도 아주 조심스러우셨습니다. 한 문장, 한 문단, 한 페이지에서 내용이 결판나는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블랑쇼의 역자’로서 박준상 선생님은 ‘블랑쇼를 해석하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책을 계속 읽어 가면서 독자가 책 바깥에서 어떤 생각들을 해나가도록, 즉 계속해서 읽어 나가면서 형성되는 단지 단어와 문장이 지시(묘사)하는 그것 자체가 아니라 텍스트 전체가 환기하는 어떤 의미(sens)를 불러일으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확정되기 힘든(혹은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편집자가 [어떤 보편(?) 문법에 따라] 제시한 표현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역자가 제2, 제3의 대안을 다시 탐색하는 방법으로 교정지 위의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런 방식의 대화 자체가 저에게는 낯선 것이었기 때문에, 책을 만드는 과정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처음엔 잘 몰랐는데] 박준상 선생님은 한 번 읽어서는 잘 느끼기 힘든 심리율(국어시간에 배운 시의 내면적 운율, 생각나시죠?)까지 고려해서 번역을 하고 계셨더라구요. 어떤 원음악(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음악적인 경험,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시짓기의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선생님에게 블랑쇼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은 어학이나 철학적 학식과는 상관없는 것, 길을 새로 낼 수도, 넓힐 수도 없이 좁은 길을 계속 걸어가는 고난의 행군 같은, 그런 것이었답니다.

+ 블랑쇼는 『기다림 망각』에서 텍스트를 통해서(혹은 텍스트에 의해서 형성되는), 작가와 독자 양자 외부의 문학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의미의 경험(전달이 아니라)을 위해, [근대 소설의] 전지적인 작가(auteur)로서의 자리를 버리고, 오히려 저자의 사라짐을 구현했습니다. 박준상 선생님은 역자 역시 자신의 사라짐, 혹은 한 발 물러선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블랑쇼적’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르네 마그리트 作 <연인들>

책이 출간된 후, 저는 철학아카데미에서 박준상 선생이 맡으신 ‘모리스 블랑쇼의 『기다림 망각』 읽기’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이 강의는 선생님이 블랑쇼의 사상이란 무엇이다, 하고 정리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매 수업시간, 남자와 여자, 그리고 대화 바깥에 존재하는 내레이터를 세 사람이 맡아 한 문장, 한 문장 책을 잠자코 읽어 갑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두 인물, 즉 어느 호텔에서 우연히 만나 같은 방에서 머물며 이야기를 나누는 남자와 여자가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책에 전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거나 그에 관해 생각하고, 또는 침묵합니다. 그들은 마치 어떠한 순간이, 혹은 결코 오지 않을 어떠한 순간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또한 생각하지 않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면서, 혹은 말하지 않으면서, 유혹하면서 때로는 무시하면서 언어를 통해 서로의 존재로 미끌어져 들어갑니다. 그 가운데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그 시간이 읽는이의 순간적인 해석에 따라 어디에서 쉬고, 어떤 단어에 강세를 두어야 할지, 말하는 사람이 남자일지, 여자일지, 제3의 누구일지…… 텍스트는 다르게 현전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선생님이 보시기에 의미심장한 부분을 다시 읽고, 그에 연관이 있는 철학사적인 개념들에 관한 배경지식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게 『기다림 망각』을 읽다 보니,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기다림 망각’(의미가 내게 올 때까지, 또한 의미를 무한히 지워가는 존재 경험)을 체험하는 순간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출간 후에 시작된 이상한 후기’라는 다소 어설픈 부연이 붙게 되었답니다- -;;). 이 책은 “한마디로 이런 책이야!”라고 정리해 놓고, 거기에 맞추어 만드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블랑쇼가 원했던 것은 아마도 읽는 사람마다 자신의 삶과 울리는, 예를 들어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의 망설임과 끌림의 순간을 되살려내 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공동의 무언가를 찾게 하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연애하기로 했지만, 아직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연인들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헛돌면서도, 또한 점차 친해지듯이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상대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는 것이 아니라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인 것이지요. 그런 내밀한 친밀성을 『기다림 망각』은 요청하고 있습니다.

- 편집부 박재은
알라딘 링크
2009/02/19 16:31 2009/02/19 16:31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53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레몬에이드 2009/02/21 14:26

    참 특이한 수업방식이군요
    하지만 생각 나는 것도 많고
    유익할 것같아요 ^^
    재미도 있고

    • 그린비 2009/02/23 10:52

      레몬에이드님, 안녕하세요.
      블랑쇼의 <기다림 망각> 추천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