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린비출판사입니다.
그린비가 드디어 홈페이지를 오픈하게 됐습니다~! 아, 지금 당장은 아니구요 ^^; 3월 오픈 예정이라서 그린비 구성원들이 자기 소개를 준비했답니다. 홈페이지 오픈 전에 블로그 독자분들께 그린비 구성원 소개를 살짝 보여드릴게요. ^^*

글쎄요... 제가 출판사에서 일하게 될 줄이야.
대학이란 델 다녔습니다. 전자공학과였습니다. 그게 사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란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쾌하고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큰 비결이 있어 호시절을 누린 건 아닙니다. 그저 공부 하나 포기했을 뿐... 우찌우찌 우여곡절 끝에 우스운 성적으로 졸업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 갔습니다.
그게, 사춘기를 넘긴 후 첫번째 효도였던 것 같습니다. 자식을 멀리 서울까지 보내놨는데, 졸업장이라도 안겨 드려야 된다는 의무감이 강했습니다. 실제로 졸업식 날, 뭔가 효도 한 번 하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대학을 다니다 중간에 군대를 가게 되면, 학교를 끝까지 다닐 자신이 없었습니다. 복학생, 왠지 '간지' 안 나잖아요. 어쨌든 덕분에 그 유명한 IMF를 군대에서 호의호식하며 보냈습니다. 스물여덟에 제대를 했더니 집이 이사를 갔더군요. 다행히 전화번호는 그대로였고, 스타크래프트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했습니다.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러나 배틀넷 래더 승률이 60%쯤 되어갈 때 그만 취직이란 걸 하고 말았습니다. 같이 자취를 하던 형이 주말에 사무실의 랜케이블 설치하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따라갔다가 그리 되었습니다. 슬펐지만, '월급'이란 게 꽤나 신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뒤로 7년 동안 이런저런 직장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한곳에서 오래 일하질 못 했습니다. 게다가 직장을 옮길 때마다 매번 직종까지 바뀌는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제가 뭐든 금방 싫증을 느끼나 봅니다. 에잇, 이제 차라리 내가 사장을 할래, 라고 마음먹은 순간 우연한 인연으로 그린비와 만났습니다.
네, 출판사 사장을 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코미디입니다. 30년이 넘도록 책이랑 담을 쌓고 지내던 놈이 출판사 사장은 개뿔... 사실은 '담론'을 직접 다루는 일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언뜻 떠오르는 게 출판사밖에 없어서 그리 호기를 부렸나 봅니다. 물론, 머리를 좀더 굴렸으면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수도 있겠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라 신경쓰지 않으렵니다.
지금은 출판사의 일이 제 몸에 딱 맞는 삼각빤스처럼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매력적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해 가는 느낌입니다. 일도 좋지만 사람들이 더 좋습니다. 특별히 잘나고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부끄러움'이 뭔지를 알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최소한의 '부끄러움'마저 상실하고 타인의 등 뒤에 칼을 꽂는 것만이 생존의 비기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동료를 믿고 의지하며 생활하는, 어디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치'를 누리고 있습니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으로 먼저 행동하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만) 힘을 내세우는 자들을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우찌 되겄지" "아님 말고" "조또", 세 단어를 신념 삼아 살아왔고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렇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TV를 보다가 서점 장면이 나오면 ‘저기 어떤 서점이다!’를 외치는 그린비 마케터. 개인 업무 특성상 서점으로의 외근이 많기 때문에 오후엔 주로 사무실에 잘 없고 전화하면 주로 이동중이거나 상담중이다. 지방 출신답지 않게 서울 시내 뒷길을 요리조리 잘 다니는데 그것도 거점이 서점들이다. 남들이 말하길 첫인상이 성격 시원하겠다 하는데 나름 소심증 있어 주로 마주하는 서점 언니들을 무서워하며 진땀 꽤나 흘리는 인물.
음주가무를 엄청 좋아했으나 그린비 입사 이후 급삼가하는 중. 음주가무로 채워져 있던 그 빈자리를 뜀박질과 모자란 공부로 채우려 하나, 몸에 익숙치 않아 고분분투하는 중.
그린비 마케팅팀 이부장님의 영도에 따라 새로운 마케팅관을 정립하고 있고 있음.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다. 우연히 만난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한 덕에 어릴 때부터 좋은 오디오로 수많은 LP와 CD를 들을 수 있었다. 내 유년기는 ROCK!, ROCK! only ROCK!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버는 돈의 10%는 음반사는 데 쓰는 것 같다. 물론 요즘은 클래식도 듣고, 재즈도 듣고, 원더걸스도 듣는다.
음악과 친해진 것이 첫번째 복이었다면, 대학생활 속에서 배웠던 것들은 두번째 복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던 선배가 극렬 운동권이었던 관계로 '조직화'되는 줄도 모르고 조직원이 되어버렸고, 한국좌익학생운동의 찌질한 21세기를 고스란히 받아안고 달렸다. 거기서 맑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 후에 했던 공부는 말짱 황이었으리라.
워낙에 공부하는 걸 좋아했던 관계로 말리는 선배들 후배들을 뒤로하고 강의실로 갔다. 그때는 어찌나 찌질했는지 온몸을 패배의식으로 휘감고, 읽히지도 않는 책들을 꾸역꾸역 읽어댔다. 공부는 힘들어도 참고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던 때였다. 여하튼 그렇게 공부한 것이 세번째 복이다.
군대에서 나와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고 싶었던 때에 경훈형을 만났다. 생판 듣도보도 못한 직업 '웹기획자'가 되자고 하는데,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아 덥썩 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인터넷 서비스 회사 1~2년 동안 밥벌이하는 데 필요한 기술은 대략 익힌 것 같다. 서쪽에서 나타난 귀인 덕에 철학과 4년 중퇴 주제에, '불안과 위기의 시대', '청년 백수 100만 시대'에 초멀쩡한 회사의 정규직이다. 이런 복이 또 있을까?
29년 짧은 인생 동안 최고의 복을 꼽자면 그린비와 접속한 것이다. 하고싶은 공부를 하고, 하고싶은 일을 하면 뭐든지 잘풀리는 곳, 신나게 노는 것과 신나게 일하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 곳. 세상에 이런 회사가 또 있나 싶다. 이제 고작 1년 3개월 지났다. 앞으로 마주할 날이 마주쳤던 날 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아 마지막으로 싫어하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그냥 잊고살려고 노력 중이다.

1년 하고도 5개월 전, 출판을 하고 싶어요-라며 무작정 출판학교 예비출판마케터 과정의 문을 두드렸다. 출판(혹은 출판마케팅)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꽃'이라고 대답했던 아이는 지금 그린'비'(꿀벌)로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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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이부장님과 친절 이과장님과 까칠(?) 정군선배의 영도 아래 무럭무럭(?) 크고 있는 그린비 마케팅부 막내.
그린비 블로그 방문자수와 이런↓ 댓글에 울고 웃는 블로그 운영자.
"정군님 서현아님 ㅎㅎ 그린비 블로그는 책 소개와 더불어 적혀 있는 내용들이 좋아서 자주오게 된답니다 ㅎ 잘부탁드려요 ^^"손엽서 쓰기와 송장 쓰기, 책 포장이 특기인 배송 전문 마케터.
그린비 건강은 내가 지킨다! 요가의 달인, 호모 요기스를 꿈꾸는 그린비 요가 반장.
핑크색 키높이 슬리퍼를 신고 그린비에서 (소심하게) 핑크비를 외치는 그린비 최단신 핑크홀릭, 불량공주 모모코.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그린비에서 나를 바꾸고 있는 (자칭) 그린비 마스코트, 그린비 유망주(!)
그녀의 변태가 기대되는 2009년이다. 후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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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 댓글 왠지 낮설지가 않군요 ㅇㅅㅇ
제가 적었던것 같기도 하고... (디지털 치매로 기억력이 저하되어 기억을 못해요)
그런데 항상 궁금했던 것이 있어요!!!
왜 '정군'이죠???
설마 진짜 이름이신가요? 전 지금까지 정君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억력 저하, 절대 아니신듯!
레몬에이드님 댓글 맞고요~ ^^
정군은 레몬에이드님이 생각하시는 그 정군 맞습니다. 다만, 이제 그것이 이름으로 고착화되어...하하
이경훈 부장님은 무지 패션감각이 있어요..
제 감이 맞지요?
띠보님, 안녕하세요. ^^
저희 부장님은 '멋' 그 자체랄까요 므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