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 사태가 남긴 덫

만세 (연구공간 수유+너머)

1. 사이코패스의 등장

2009년 벽두부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인간이 어떻게……’ 라고 절로 경악할 만큼, 흉악범죄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상한 사람’이 언론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강호순이다. 후회나 반성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태도에 ‘대뇌 감정중추’, 강호순에게는 없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걸로 여겨진 사람들의 대뇌 감정중추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의 의식을 넘어 대뇌에까지 상처를 입힌 이 사회학적/생물학적 ‘폭탄’은 기존의 모든 사회적 이슈를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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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1」
_  표정도, 감정도 갖고 있지 않은
반사회성 성격 장애 '사이코패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덩그러니 파편이 남았으니, 바로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다. 사이코패스는 죄책감을 수반하지 않는 반사회적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강호순이나 유영철 같은 연쇄 살인범이 대표적인데, 이 사람들은 살인 등의 범죄에서 통상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후회 혹은 공포를 가지지 않는다. 이들은 「공공의 적1」의 악당처럼 능청스럽게 묻는다. “사람이 사람 죽이는 데 이유가 있냐?”

이들의 심리상태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를 접하고선 크게 분노함과 동시에 ‘혹시 내가?’라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조잡한 수준의 ‘사이코패스’ 판별법이 인터넷에 횡행하더니, 질문은 이내 ‘혹시 내 아이가?’라는 데까지 확대되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조잡한 자기 검진은 문제가 있다고 준엄하게 충고하며 전문기관과 상담할 것을 종용했다. 사이코패스와 같은 심리는 좀더 섬세하고 꾸준한 시선이 없으면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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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순 폰(?)'이라고 불리는 '호신용 휴대폰'

자기 검열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상한 공공의 적들로부터 나와 내 아이를 지켜야 한다. 호신용 전기충격기와 스프레이 등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해맑게 웃는 아름다운 모델이 들고 있는 저 휴대폰은 유사시 반경 70m에 울려 퍼지는 어마무지한 소리를 내고, 전원이 꺼졌을 때 자동으로 위치추적을 해주는 ‘호신용 휴대폰’이다. 이 상품들은 불황을 간단히 무시한 채 경기 최고점을 통과하고 있다.

지난 두 달간 사이코패스는 강호순 사태의 궁극적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사이코패스는 사회에 1~3%밖에 존재하지 않는 ‘예외적’이며 ‘비정상’적인 ‘소수’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나와 내 아이가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내 곁에 사이코 패스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나나 내 친구도 얼마든지 이런 비정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라서 무시할 수 있는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더 꾸준하고 섬세하게 주목하고 검열해야 하는 예외인 셈이다.

2. 사이코패스의 함정

강호순 사태는 분명 끔찍한, 다시는 반복되어서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문제에 분노하고 슬퍼함과 동시에,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점검해야 한다. 그 시선에 따라 어떤 문제의 원인을 보다 잘 볼 수도, 혹은 중요한 점을 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이코패스인가?’보다 좀더 중요한 질문은 ‘사이코패스라는 틀로 강호순 사태를 보는 것이 적절한가?’일지도 모른다.

사실 심리적인 비정상성이 범죄의 주요 원인으로 여겨지고 처벌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푸코(Michel Foucault)는 『감시와 처벌』에서 이런 시선이 18세기 말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그 이전에 존재했던 형벌과 사법의 관념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18세기 들어 갑자기 범죄자나 비행자 내면의 문제가 지각되기 시작했다. 범죄자의 전기적 사실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그가 어릴 때 어떤 외상이나 경험을 겪었는지 분석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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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링
_ 범죄의 처벌보다 범죄자의 내면, 심리, 그를 둘러싼 상황들을 파악하려 함으로써 그를 교정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의 작동은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 있게 한다.

이런 변화를 통해 권력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로 권력은 개인에게 보다 깊숙이 개입하여 의도하는 방향으로 키워낼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 이전 처벌에 대한 관념이 다소 표면적인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 권력은 개개인의 과거와 기억을 장악하고 현재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교정하려 한다. 표면적 행동 이면에 있는 심리적 비정상을 문제 삼으면서 개인들에 더 깊숙하고 자의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했던 것이다. 예컨대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 절도를 저질렀을 때, 과거의 경우 피해를 갚아주면 끝날 일이지만, 이제 그는 정신병원이나 감옥에 갇혀 총체적인 인간개조프로그램을 통과해야 한다. 문제는 표면적 행동보다 그것을 낳는 ‘비정상성’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권력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의 사회적 맥락을 탈각시킨 채, 그것을 개인의 심리적 일탈이나 사회의 사소한 이면으로 여길 수 있게 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8세기 후반은 전국적이고 대중적인 저항이 급속히 늘어나던 시대였다. 권력은 이런 사회 문제들을 계급/이념 대립처럼 구조적인 사회 모순으로 보기보다, 단순한 일탈 현상으로 여기려 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제압하고 현 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즉 문제는 사회적 모순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 ‘또라이’들 때문에, 일부 ‘사회부적응자’들 때문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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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_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되도 좋으니 제발 CCTV를 설치해 달라는 우리의 모습에서,
중앙의 감시탑에서 모든 것을 감시하고 이 감시망의 작동으로 인해 또 자기 자신을 감시하게 되는 이상적(?)인 감시망인 '판옵티콘'의 실현을 보고 있는 듯하다.

‘사이코패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이라기보다 권력이 작동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우리 삶은 좀더 쉽게 공적 시선에 노출된다. 전 국토에 깔리기 시작한 CCTV와 폭발적으로 보급되는 위치추적 핸드폰을 보라. 나아가 권력은 직접 지켜보는 것을 넘어, 바로 우리 자신이 권력의 시선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자기검열이 그것이다. 부모들은 스스로 경찰이 되고 의사가 되어 내 자신과 내 자식이 반사회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감시한다. 사이코패스는 돈 한 푼 쓰지 않고 온 국민을 경찰이자 의사로 만들어 버렸다.

더 중요한 것은 사이코패스를 통해 사이코패스보다 더한 사회의 야만성을 망각하는 일이다. 온 국민이 자신의 사이코패스 기질을 걱정하는 동안, 내 아이가 강호순과 닮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심사숙고하는 동안, 용산참사는 어느새 우리의 ‘감정중추’에서, 강호순과 달리 건강하다 여겨진 그 잘난 ‘감정중추’에서 잊혀졌다. 백주대낮에 공정하다 여겨지는 공권력이 투입되어 사람이 수없이 희생된 끔찍한 사건이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정체조차 불명확한 그 무언가를 찾느라 머릿속을 헤집는 동안, 사회의 야만성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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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_ 우리 사회의 사이코패스성은 강호순 사태 뒤로 숨어 버린 게 아닐까? 우리는 강호순 사태가 남긴 덫에서 빠져 나와 사회의 야만성을 파헤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이코패스는 일종의 덫일지도 모른다. 내가 미치지 않았는지 계속 의심하게 만들어 정말 미쳐서 돌아가는 사회를 잊게 만드는 그런 덫 말이다. 사는 게 정말이지 힘들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싶다. 슬픈 일이다. 하지만 더 가슴 아픈 건 그때마다 정신줄 놓지 말자고 자신을 채찍질하고, 내 옆의 사람은 미치지 않았는지 감시하는 우리의 외롭고 처절한 사투다. 차라리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나를 광기의 경계에까지 몰아가는지 물어야 한다. 범죄자들에게서 무한경쟁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비정상인을 목격한 후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기 전에, 그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전기 충격기를 구입하기 전에, 정말 미친 건 이 무한경쟁사회가 아닌지 한번쯤 의심해 보아야 한다.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저것(놈)들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MB 1년을 맞고 보니, 솔직히 말해 저것(놈)들이 정신을 차리는 게 빠를지 우리가 정신을 놓는 게 빠를지 조금은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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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4 11:03 2009/03/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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