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복무하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그 속에 대중은 없다!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난민화를 겪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가장 솔직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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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 민주화 속의 난민화, 그 현장을 가다(유재현 온더로드 04)
유재현 지음 | 그린비출판사|갈래 : 정치·사회
발행일 : 2009년 2월 27일 | ISBN : 9788976827210
신국판 변형(152*210mm)|328쪽

세계를 거칠게 나누는 방식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사용했던 때는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앞에 그 둘은 세계를 명명하는 하나의 이름이 된다. 민주주의는 대중이 아닌 자본에 복무하고, 대중을 대의한 정치에는 대중이 사라진 지 오래며, 공산당마저 일당독재를 일삼으면서 자본의 비역한 악취를 내뿜는다. 국가라는 이름을 내세워 아시아는, 아시아 인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통제하고, 그 삶의 내용까지 결정지어 버렸다. 그 결과 아시아는 현재진행형으로 난민을 양산하고 대중을 삶에서 추방하며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발을 맞추고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네팔 등 아시아 10개국을 돌아다니며 아시아 인민의 삶과 정치의 현장을 발로 뛰며 쓴 저자 유재현은 이 책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를 통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재의 자리를 대신한 민주주의와 선거함은 결국 아시아의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음을, 그리고 아시아 인민들은 그 민주화의 이름 속에 그저 난민화되고 있을 뿐임을 고발하고 있다.


지은이 소개

지은이_유재현 |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그 후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에서 활동했다. 1992년 『창작과비평』(봄호)에 중편소설 「구르는 돌」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인도차이나 3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을 여행한 기록을 모은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열대과일로 남아시아의 문화사를 풀어낸 『달콤한 열대』,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난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늦게 온 것일까』, 쿠바를 여행하며 만난 인간적인 사회의 가능성과 희망을 담아낸 『느린 희망』, 아시아 각국의 잊혀진 역사를 되돌아본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캄보디아 훈센 개발독재에서 박정희의 부활을 목격한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현장을 기록한 『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 등이 있다.


∎ 목 차

머리말

1_ 독재를 넘어서 인도네시아_ 말레이시아_
왕이 되고 싶었던 독재자
수카르노와 반둥의 꿈, 아시아의 꿈
노동과 섹스의 섬
인종학살의 그늘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와 부미푸트라의 말레이시아

2_ 부서진 약속의 땅 필리핀_
약속의 땅 그리고 혁명
테러의 필리핀
인터뷰: 중부 루손 신인민군 최고정치위원
대사관과 코코넛 사이
태평양을 사이에 둔 세부와 쿠바

3_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똑같다면 베트남_ 캄보디아_
두 도시 이야기: 사이공과 프놈펜
후일담과 전쟁을 뛰어넘어: 남한과 베트남문학의 오늘과 내일
당렉산의 우울한 총성

4_ 왕과 군부는 절대 웃지 않는다 태국_ 미얀마_
왕과 군부 그리고 자본
왕과 쿠데타의 방콕
양곤 강변에서

5_ 문제는 민주주의야 네팔_ 티베트_ 홍콩_
21세기 최초의 실험
샹그리라의 신권과 시장사회주의
팍섹과 까울링씽차이씽 그리고 오늘의 홍콩


∎ 책 소개

자본에 복무하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그 속에 대중은 없다!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난민화를 겪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가장 솔직한 보고서!


세계를 거칠게 나누는 방식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사용했던 때는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앞에 그 둘은 세계를 명명하는 하나의 이름이 된다. 민주주의는 대중이 아닌 자본에 복무하고, 대중을 대의한 정치에는 대중이 사라진 지 오래며, 공산당마저 일당독재를 일삼으면서 자본의 비역한 악취를 내뿜는다. 국가라는 이름을 내세워 아시아는, 아시아 인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통제하고, 그 삶의 내용까지 결정지어 버렸다. 그 결과 아시아는 현재진행형으로 난민을 양산하고 대중을 삶에서 추방하며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발을 맞추고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네팔 등 아시아 10개국을 돌아다니며 아시아 인민의 삶과 정치의 현장을 발로 뛰며 쓴 저자 유재현은 이 책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를 통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재의 자리를 대신한 민주주의와 선거함은 결국 아시아의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음을, 그리고 아시아 인민들은 그 민주화의 이름 속에 그저 난민화되고 있을 뿐임을 고발하고 있다.


아시아의 오늘, 무엇이 바뀌었나?

• 민주화를 독재로 착각한 아시아의 모순적 현실
32년 동안 인도네시아를 철권통치로 일관했던 독재자이자, 100만 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인을 죽인 도륙자인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전(前) 대통령의 ‘죽음’으로 아시아의 ‘오늘’을 시작하고 있는 이 책은 민주화를 독재로 착각한 아시아의 모순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포착하고 있다. 살인자에 다름 아닌 수하르토의 죽음 앞에 슬퍼하며 조기게양까지 실시한 인도네시아 현 대통령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는, 그렇지 않아도 살기 팍팍한 인도네시아인들을 수하르토라는 죽은 개에게까지 물려뜯기게 하고 있다. 1998년 민주화시위로 내쫓긴 수하르토가 그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금 ‘과보다 공이 컸던’ 인물로 부각되는 오늘 인도네시아의 현실은, 한국의 지난 죄 많았던 대통령들이 사면을 받고 다시 멀쩡한 삶을 살아가는 것과, 그리고 그의 자식들이 조금의 부족함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한국이거나 인도네시아거나, 혹은 필리핀이거나 태국이거나, 이 같은 사실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현실’이며, 이로써 보건대 대중에 대한 조롱마저도 ‘세계화’되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아시아의 오늘’인 셈이다. 그리고 조롱당한 대중은 죽은 개에게 물리면서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1998년 인도네시아인들은 32년의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할 한 번의 기회를 가졌다. 32년 만의 기회였다. 그 뒤 10년이 지났지만 무엇이 청산되었는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수하르토의 족벌은 여전히 천문학적인 부를 움켜쥐고 있고, 수하르토 시대에 권력을 향유했던 정치, 관료와 자본은 같은 이름이거나 다른 이름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모든 인도네시아인들의 목을 조르는 빈곤과 부정, 부패 또한 별일 없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말하자면 수하르토의 신질서는 여전히 살아 있고 인도네시아인들의 숨통을 조르고 있다.”(본문 26쪽)

• 독립 이후, 신 식민지적으로 재편된 아시아의 현재
1957년, 아시아에서 가장 늦게 독립한 나라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는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한 말라야공산당의 투쟁을 통해 마침내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은 이미 영국이 말라야연방을 통해서 공산당을 포함한 좌익을 배제하는 반공 기틀을 확고히 다진 후의 일이었다. 독립 후 반공 우익정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 암노(UMNO)가 영국의 지원 아래 정권을 장악했고, 그 가운데 소수계(중국계, 이슬람계) 우대정책은 무시되며 자본가 계급의 이익만이 보존되고 널리 부흥되었다. 최근의 미미한 선거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암노의 장기집권 피로현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암노는 오랫동안 인종적 갈등을 분할통치의 기제로 활용하며 독재 권력을 유지․강화시켜 왔다. 그렇게 암노의 뒤를 지키고 있던 영국의 신 식민지적 재편은 간편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와 부미푸트라의 말레이시아」, 73쪽).

식민지 시대의 새로운 막이 열린 것은 비단 말레이시아뿐이 아니다. 필리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역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대통령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 작은 체구의 여성 대통령, 아로요(Gloria Macapagal-Arroyo)는 부정선거 의혹으로 광범위한 퇴진요구를 받게 되자 미국과 군부의 의존도를 한껏 끌어올려 잔혹한 공포정치를 실시하고 있다. 2006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편승한 아로요는 암살과 납치, 불법체포, 고문 등의 군사독재 스타일의 테러정치를 통해 ‘킬링머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필리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입에 담기조차 꺼려했다(「테러의 필리핀」, 107쪽).

인구의 80%인 6천 9백만 명이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해야 하는 빈곤층에 속하며 그 중 60%가 1달러 이하로 살아야 하는 절대빈곤층인 필리핀의 오늘을 극악한 봉건적 지배체제의 온존 탓으로 돌리고 있는 저자는, 역시나 필리핀의 봉건적 대지주 계급에게 식민종주국인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명백하게 뒷받침하는 것은, 미국의 필리핀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마닐라 만 최고의 해변부지에 자리 잡고 있는 미국대사관이다. 이렇게 아시아를 말하는 데에 미국과 유럽을 빼고서는 이야기가 불가능한 현실, 그것이 바로 아시아의 오늘이다. 식민지 시대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삶’의 반대말, ‘자본’과 ‘국가’

• 필리핀의 빈민촌은 서울과 다른가
확대

필리핀 파야타 빈민촌 사람들
_ 케손시 파야타의 쓰레기 하치장의 청년, 파야타 쓰레기 산 아래의 판잣집, 쓰레기를 벗 삼아 일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 "…
걸핏하면 철거하겠다는 것만 빼면 그럭저럭 살 만하오."라는 필리핀 빈민촌 사람들의 말에서 우리의 모습이 비친다.

이름조차 낯선 아시아 지역들에서 벌어진 일들을 따라가다 보면, 뜻하지 않았던 익숙함과 조우하게 된다. 아시아에서 급속히 현재진행중인 대중의 추방과 난민화, 그것은 바로 한국의 모습이었고, 세계화의 수순이었다. 농사를 하며 살아가다가 갑자기 나타난 개발업체 때문에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고 또 일해야 하는 처지가 된 필리핀 파야타 빈민촌의 사람들은(「약속의 땅 그리고 혁명」, 본문 95쪽) 개발과 자본의 논리에 밀려 집을 빼앗기는 용산 철거촌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돈 몇 푼 쥐어주고 살던 곳에서 떠나라는 통보를 받은 빈민촌 사람들은 평택 대추리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삶과, 삶의 태도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돈을 뿌리친다. “매립 후에 개발한다더군요. 주택단지나 골프장 따위를 짓겠지요. 그 작자들은 또 돈을 벌겠지요. 하지만 우린 1만 9천 페소로는 어디에도 갈 수 없어요. 그리고 여긴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오던 곳입니다. 어디로 갑니까?” 쓰레기 산 아래, 판잣집에서 살아가던 이는 이렇게 되물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이냐고. 이건 대가를 지불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임을 자본가는 모르고 있다. 한국에서 대추리의 농민들에게 보상금을 쥐어주었던 정부와 자본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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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5 10:53 2009/03/0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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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 과객에겐 항상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

    Tracked from 세상을 보는 검은 눈, Skyjet 2010/01/14 02:38  삭제

    아시아는 그렇게 구성원들에게 가까운 과거나 미래가 됨으로써 거울이 되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교훈이나 영감, 반성 또는 그 모두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더 나은 미래가 지금처럼 위축되고 왜곡된 때가 없었던 만큼 이런 자각은 어느 때보다 귀중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10년 또는 20년이란 시간은 찰나일지도 모른다. 100년이나 200년도 긴 시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천 년이 걸릴지도 모를 기약 없는 길을 떠날지라도 과객의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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