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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
_ 무수히 많은 사이들이 있다. 때와 장소 그 사이 사이마다 사이가 있다. 펜을 쥐고 있는 내 손과 책상 위에 놓인 백지 사이가 있고,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들 사이도 있으며, 그 틈새 너머로 보이는 달과 별 사이도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하이데거의 사이-예술론』은 저자 김동규 선생님의 박사학위 논문(2003)에 5년 사이 더욱 깊어진 선생님의 사유를 더하고, 단행본의 형식에 맞추어 편집한 책입니다. 보통 학위논문은 심사라는 형식을 거치게 되고, 연구자의 학문적 깊이만큼이나 학술 체계의 엄밀성을 심사받기 때문에, 학술적인 글 중에서도 가장 엄밀한 형식성과 복잡한 서지학의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딱딱한 글인 경우가 많습니다. 안 그래도 개념적으로 난해하기로 소문난 하이데거의 철학을, 수많은 하이데거 전집과 2차 문헌 인용 ‘사이’에서 제대로 공부하면서 책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또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학술서 편집이란 뭐, 예쁘장한 표지나 감각적인 제목 등을 뽑아내는 것보다는 편집자가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찬찬히 읽어가면서, 독자들이 좀더 편안하게 내용을 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김동규 선생님께서 새로이 보완하신 원고를 받아 편집계획서를 작성하기에 앞서 찬찬히 읽어 보았습니다. 뜻밖에도 학위논문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시적인 언어들이 글을 편안하게 읽게 했습니다(뭐 하기야, 하이데거의 시짓기에 관한 담론을 담은 책이니까요). 편집에 앞서 김동규 선생님을 뵙고, 유려한 문체가 참 좋았다고 말씀 드렸더니 아주 평이한 교양서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하이데거 전공자들만 읽는 책보다는 이전에 하이데거 철학에 대해 몰랐더라도, 예술이나 현상학에 관심을 가진 입문자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하시더군요. 즉 저와 같은 생각이셨습니다. 후후~

우선 독자들이 책을 대하는 데 부담감을 줄이도록, 논문에 있던 주석들 가운데 본문의 흐름과 직접 영향이 없는 인용문헌 중심의 내용은 후주로 정리하고, 몇몇 주석들은 본문으로 글을 옮겨 논의를 좀더 풍요롭게 하거나, 각주로 두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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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作 <한 켤레의 구두>
_ 하이데거는 고흐의 <한 켤레의 구두>의 존재 방식을 물었습니다. "그곳에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가? 화폭이? 붓의 터치가? 물감 얼룩이?" 그래서 하이데거의 구두라고도 불릴만큼 고흐의 구두 그림은 유명해졌습니다. 한 명의 감상자가 작품을 작품으로 만든 대표적인 사례죠.

그 다음으로 참 어려웠던 것이 본문에 삽입할 그림 선정이었습니다. 단순히 텍스트를 보조하는 그림을 넣는 것이 아니라,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 이해의 경험을 상징해서 전달해 줄 수 있는 그림들이 필요했습니다. 우선 하이데거가 강의와 책을 통해 상찬한 반 고흐, 세잔, 클레 등의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고흐의 <한 켤레의 구두>를 보자면, 그림에서 나오는 이 신발은 그림으로 표현되기 전 농부가 일할 때 신는 가죽으로 된 신발일 뿐입니다. 즉 이 신발 자체는 어떤 쓰임을 위한 도구 그 자체이지요. 시골의 농부에게 이것은 친숙한 것이고 그래서 언제나 자신이 신고자 할 때 거기에 있는, 신뢰할 만한 물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구두가 캔버스에 담겨질 때 (일상생활에서) 농부가 신는 신발이 아닌 화가의 눈에 담겨질 순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신발은 화가 반 고흐에 의해 사물의 용도성을 결핍하고 작품의 도구가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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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作 <생 빅투아르 산>, 클레 <파르나수스 산을 향하여>, 칸딘스키 <반대되는 소리> (왼쪽부터)

세잔의 저 유명한 <생 빅투아르 산> 같은 경우에는 매 순간 하나의 선물처럼 현상하는 대지를 담아낸 것이지요. “차이항의 고유성은 차이나는 것 사이에 의존하며 거기에 속해” 있음을 위해 (하이데거 자신은 추상화를 매우 싫어했다지만) 칸딘스키의 <반대되는 소리>(12쪽)가 삽입되었고, “만물은 상이한 것과 투쟁하고 자신을 주장하는 가운데 자신을 회복함”을 캔버스에 화성악을 옮겨 보여 준 클레의 <파르나수스 산을 향하여>를 통해 예시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와 철학자들 역시 철학의 시원으로 돌아가 사유하려 했던 하이데거의 책과 무관할 수 없는 이미지였지요.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책 가운데 하이데거의 예술철학을 본격으로 다루고 있는 책은 많지 않습니다. 각기 『하이데거의 예술철학』이란 제목을 단 번역서와 논문집이 있지만 지금은 절판되어 누구나 읽을 만한 책은 없습니다. 저 역시 독자들처럼 처음 배운다는 눈높이에서 친절한 편집을 지향해 보았습니다. 여러분께 도움이 되는 또 한 권의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 편집부 박재은
2009/03/06 11:06 2009/03/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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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zydive 2009/03/08 14:47

    이번에 김동규 선생님 강의를 듣게 된 학생입니다. 선생님이 이 책으로 과제를 내주신다고 하면서 소개를 잠깐 해주셨는데 '그린비' 에서 나왔다고해서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어요 ! 사실 하이데거 전공하셨다고하셔서 - 철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더더욱 - 살짝 겁을 집어먹었었는데 '시적인 언어로' 친절하게 집필하셨다니 수업도 책도 기대가 됩니다 :-)

    • 그린비 2009/03/09 09:49

      lazydive님, 안녕하세요.
      믿음을 드릴 수 있었다니, 영광입니다~
      김동규 선생님 강의도 책도 즐겁게 듣고 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

  2. ego2sm 2009/03/08 20:17

    제 오픈캐스트http://opencast.naver.com/EG788에 캐스팅 해갑니다.
    올해 그린비의 무한성장을 빌면서!!

    친절한 철학책, 정말 필요한 기획이에요^^ (지금까지 그린비의 철학처럼...)

    • 그린비 2009/03/09 09:54

      ego2sm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