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고전사상가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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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2000년 이후 『장자』는 서울대를 비롯한 18개 대학 논술고사에서 총 아홉 번 인용되었습니다. 『장자』는 동/서양의 고전 모두를 합쳐 논술고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셈입니다. 논술 전문가들에 의하면 『장자』는 ‘현실비판적인 내용이 많아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묻는 주제로 인용’ 된다고 하는군요. 논술고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는 사실은 장자의 문제의식이 한국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장자 할아버지, 뜬구름 잡듯 옛날 얘기만 들려주시는 신선인 줄 알았는데 은근히 논술의 고수이십니다!

이제 수능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수능이 끝나면 또 논술의 시즌이 시작되겠죠.
그래서 저희 출판사에서는 수험생 여러분들을 위해서 간단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얼마전 출간된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에 대한 이벤트인 셈인데요, 『장자』가 인용된 논술문제를 거쳐서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그 문제를 풀어보게 하는 이벤트입니다.
가장 최근에 문제가 출제됐던 연세대 2007학년도 정시모집 시험 문제를 기준으로 했고, 지금 연세대 07학번으로 재학 중인 학생 두 분에게 원고(? 또는 답안 ^^;)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저자이신 강신주 선생님의 간략한 코멘트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수험생 여러분들께서 재미나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논술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라면, 논술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번 기회에 한 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그럼, 시험 문제 나갑니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과연 이해할 수 있는가? 아래 제시문들을 비교 분석하여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설명하고, 그러한 어려움이 극복될 수 있는지 사회현실의 예를 들어 논하시오.

(가)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濠水)의 징검돌 근처에서 노닐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소. 이게 물고기의 즐거움이오.” 혜자가 말했다. “당신이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오?” 장자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오?” 혜자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물론 당신을 알지 못하오. 당신은 물고기가 아니니까 물고기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오.” 장자가 말했다. “자,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당신은 ‘당신이 어떻게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오?’라고 했지만, 그것은 이미 내가 안다는 것을 알고서 그렇게 물은 것이오. 나도 호수(濠水)가에서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오.” -『장자(莊子)』 추수(秋水)편

(나)
우리는 박쥐들이 주로 음파 반향 탐지를 통해, 즉 미묘하게 변조시킨 초음파를 보내서 대상으로부터 반사되어 오는 것을 탐지함으로써 외부세계를 지각한다고 알고 있다. 박쥐의 두뇌는 송출된 파동을 그 반향과 상관시키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가지고 박쥐는 거리, 크기, 모양, 운동, 표면 조직들을 우리가 시각을 가지고 하는 것에 비견될 만큼 정밀하게 분간해낼 수 있다. 그러나 박쥐의 음파 반향 탐지는 분명히 지각의 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감각과도 비슷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들 인간이 경험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과도 주관적 느낌의 측면에서 유사하리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바로 이러한 점이 박쥐의 입장에서 느낀다는 것이 어떠한지를 알기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
우리 상상의 기본적 재료는 우리 자신의 경험이기에 이러한 상상은 제한되어 있다. 내 팔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저녁과 새벽에 날아다니며 입으로는 벌레를 잡아먹고, 시력은 형편없이 나쁘지만 초음파 신호를 통해 주위 환경을 지각하고, 또 낮에는 다락방에 거꾸로 매달려 지낸다고 상상한들 그것은 박쥐의 느낌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상상을 한다면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상상인데), 이는 단지 내가 한 마리의 박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려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싶은 바는 박쥐가 박쥐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이 어떠할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갖고 있는 정신적 자원들은 제한되어 있고 그 자원들만으로는 이러한 상상을 하기 어렵다. 나는 현재의 내 경험에 무엇을 더 보태거나 빼면서 상상하거나 또는 더하고 빼고 고치기를 여러 번 반복해 보아도 박쥐의 느낌을 알 수 없다.
-토마스 네이글, 「박쥐의 입장에서 느낀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다) 점순네 수탉(은 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적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 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또 푸드득, 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가며 여지없이 닦아놓는다. [...]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나흘 전 감자 쪼간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다. [...]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대인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즈 집께를 할금할금 돌아다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아직도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인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 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랬다. 우리가 이 동리에 들어온 것은 근 삼 년째 되어 오지만 여지껏 가무잡잡한 점순이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바구니를 다시 집어 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더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힝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김유정, 「동백꽃」

(라)
우리는 보통 다른 존재의 행동(언어적 행동까지 포함해서)을 관찰함으로써, 그 존재가 의식을 가지고 있고 생각을 하는 존재라는--즉 또 다른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판정을 내린다. 우리는 신체의 상해와 신음 소리에서 고통을 추론하고, 미소와 웃음에서 기쁨을 추론하며, 날아오는 눈덩이를 피하는 행동에서 지각이 있음을 추론한다. 그리고 환경을 복합적이고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을 보고 욕구와 의도와 믿음이 있음을 추론한다. 또한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행동들과 언어 발화로부터 그 존재의 의식적 지능을 추론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추론들이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면,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특정한 유형의 행동으로부터 특정한 유형의 심리 상태를 추론한다는 것은, A라는 유형의 행동과 B라는 유형의 심리 상태 사이에 일반적인 연결 관계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 심리/행동의 일반화는 “천둥 소리가 들린다면, 근처 어딘가에서 번개가 친 것이다”와 같은 경험적 일반화와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일반화는 현상들 사이의 규칙적 연결 관계에 대한 과거 경험을 통해 정당될 것이다. [...]
그러나 심리/행동을 일반화하는 경우,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연결 관계의 한쪽, 즉 행동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그 일반화가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만약 어떤 존재가 일정한 심리 상태에 있다고 한다면, 그 존재의 심리 상태는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직접적으로 관찰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심리 상태를 관찰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화에 필요한 경험적 증거를 모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심리/행동의 일반화를 믿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다른 존재의 행동을 보고 그가 어떤 심리 상태에 있다고 추론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제외한 어떠한 다른 존재에 대해서도 그 존재가 어떤 심리 상태에 있다는 믿음을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폴 처칠랜드, 『물질과 의식』


█ 연세대 상경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김혜진 씨의 답안입니다.

>> 답안 보기


█ 연세대 경영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원동환 씨의 답안입니다.

>> 답안 보기


█ 저자 강신주 선생님의 코멘트입니다.

>> 코멘트 보기


선뜻 원고 청탁에 응해 주신 김혜진, 원동환씨와 강신주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나저나......
즐거우셨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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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004
강신주 지음 / 도서출판 그린비 / 인문(철학), 고전

출간일 : 2007-08-10 | ISBN(13) : 9788976823045
양장본 | 296쪽 | 205*14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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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9 11:30 2007/09/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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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도서출판 그린비 - 논술의 고수, 장자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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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그린비 - 논술의 고수, 장자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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