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힘들다. 그러나 그토록 연약한 언동은 삼가라!
― 충사 ‘이슬을 마시는 군락’


권은영 (연구공간 수유+너머)


오늘도 해가 뜨고 저문다.
아침에 핀 꽃이 힘없이 꺾인다.
오늘도 해가 저물고, 또 떠오른다.
사방에 꽃이 핀다.
그러나 어제와는 다른 꽃
하지만 오늘도 아름다운 꽃

 ― 충사 中

해야 할 일은 많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어느 저녁. 나는 ‘오다기리 조’가 나오는 영화를 검색하고 있었다. 가끔 이렇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답답하기만 할 때, 나는 현실 도피 목적으로 영화를 본다. 유독 ‘오다기리 조’가 나오는 영화를 고집한 것은 ‘눈을 즐겁게 해서 마음을 달래보자’는 의도에서였다. 그렇게 선택한 영화는「충사」(무시시). 영화 스틸 사진이 풍기는 오묘한 분위기와 만화 원작이 재밌다는 댓글에 한 번 ‘낚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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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충사」에서의 ‘오다기리 조’

하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기이한 분위기와 여러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만화의 내용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영화의 구성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주인공 ‘킹코’ 역을 한 ‘오다기리 조’가 흰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절반이나 가리고 나왔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보는 재미도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영화였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분위기에 끌려, 나는 다음 날 자연스럽게 만화책 『충사』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만화를 한 글자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읽은 것은 ‘마스터 키튼’ 이후로 처음이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습속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형(異形)의 존재들, 즉 ‘벌레’(무시)와 인간이 공존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만화 속 ‘벌레’는 생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존재한다. 그 종류가 무수하며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들은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이다. 어떤 ‘벌레’와 언제 어떻게 마주치게 될지, 또 그로 인해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화 속 인간들은 ‘벌레’와의 만남으로 인해 때로는 목숨을 잃고, 때로는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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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사』
_ 벌레의 인생을 살게 만드는 꽃, 무지개 벌레, 소리를 먹는 벌레, 기억을 먹는 벌레, 안개 벌레, 가짜 봄을 만드는 벌레, 꿈에 나오는 것을 현실로 실현시키는 벌레 등 벌레와 벌레와 함께 사는 인간들의 이야기.
만화 속 충사는 일종의 ‘벌레’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벌레’로 인해 발생한 기이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벌레’로부터 인간을 구할 수도, ‘벌레’를 죽일 수도, ‘벌레’를 이용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주인공 킹코 역시 충사이다. 그리고 만화는 킹코가 경험한 일들과 찾아간 마을들, 그 와중에 만난 사람들과 ‘벌레’들에 대한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하나씩 풀어놓는다.  

이 만화는 소재의 참신함과 독특한 캐릭터 그리고 다양한 에피소드만으로도 충분히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 만화의 전부는 아니다. ‘벌레’와 함께 사는 인간들의 이야기, 이 이상한 이야기들이 끝난 후에도 쉽게 여운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이 기이한 이야기가 실은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만화 속 기이한 이야기가 만화 밖 현실을 사는 내게,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내게, 삶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현실 도피 용으로 만화책을 집어든 나는, 어느 샌가 ‘산다는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 사방에 꽃이 핀다. 그러나 어제와는 다른 꽃

만화 충사의 여러 에피소드들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이슬을 마시는 군락’을 꼽을 것이다. ‘이슬을 마시는 군락’에 나오는 섬의 환경은 매우 척박하다. 농지도 부족하고, 어업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파도가 심해 배를 띄울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딱 한 번뿐이다. 주민들은 섬에서 나는 농작물과 해산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간다. 그런 힘든 환경 속에서 주민들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존재는 살아있는 신(神), 생신(生神)이다. 주민들은 가족의 안녕과 병의 쾌유를 위해 신비한 존재인 생신을 찾아가 기도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마다, 대대로 생신을 모시는 집안에는 농산물이 넘쳐난다. 그러나 멍하니 있다가 밤이 되면 늙어서 쓰러지고, 다시 아침이 되면 생생하게 살아나는 생신은, 사실 인간 몸에 ‘벌레’가 기생해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하루를 충만하게 살고 다음날 다시 태어나는 신비한 생신의 존재는, 단지 하루를 사는 벌레의 삶/죽음/번식 주기를 이용해 대대로 잇속을 챙겨온 집안의 사기극이었다.

킹코가 이 섬에 들어가게 된 것은 섬에 사는 소년인 ‘나기’의 부탁 때문이었다. 평소에 함께 뛰놀던 소녀가 하루아침에 생신이 되자, ‘나기’는 소녀를 되돌려 줄 사람을 찾아 섬 밖으로 나갔다 킹코와 함께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킹코는 주인공답게 곧바로 생신의 정체를 알아내고 소녀에게서 벌레를 빼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섬 전체에 생신의 정체가 밝혀진다. 결국 그 동안 소녀의 집안에 농산물을 바쳐왔던 주민들은 분노하여 소녀의 아버지를 죽이게 되고, 소녀는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다시 벌레를 들이 마시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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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꽃 속에 있는 벌레를 흡입하고 생신이 되는 장면(좌)과 벌레를 흡입하고 의식을 치룰 때 갑자기 늙는 장면(우). (그렇다, 이 둘은 동일인물이다!) 생신일 때 가장 충만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소녀는, 다시 벌레가 기생하는 생신의 삶을 선택하고 만다.

섬에 머무는 동안 킹코는 소녀 이외에도 섬 변두리에서 생신으로 사는 사람들에게서 벌레를 빼냈다. 하지만 결국 몇몇 주민들은 소녀처럼 다시 생신의 삶을 선택했다. 과거의 고통, 현재의 공허함, 미래의 불안감이 없는 생신의 삶은, 현재가 괴로운 주민들에게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척박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 보다 벌레를 들이마시는 편이 훨씬 쉬웠다. 벌레가 빠져나갔을 때,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소녀는 킹코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요. 눈앞에 펼쳐진 끝도 없는 방대한 시간 앞에…….’

# 어제와는 다른 꽃 하지만 오늘도 아름다운 꽃

스스로 생신을 선택하든 생신을 숭배하든, 생신이라는 환상은 분명 주민들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맨 정신으로 ‘눈앞에 펼쳐진 끝도 없는 방대한 시간’과 척박한 자신의 환경 앞에 설 수 없었다. 그것이 주는 적막함과 공허함이 얼마나 큰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섬 주민들 중 일부는 생신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을, 생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에피소드의 끝날 무렵 생신인 소녀를 바라보며, ‘나기’ 역시 킹코에게 ‘앞으로 뭘 의지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자신 역시 소녀와 마찬가지로 끝도 없이 방대한 시간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두렵다고. 그의 말에 킹코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평범하게 살면 돼.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되면 좀 편해지겠지. 언제든 배를 띄울 수 있게 동굴을 함께 깎아 나가면 돼. 쉬운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자네 눈앞엔 끝도 없이 방대한 시간이 펼쳐져 있지 않나.’

그렇다. 소녀와 ‘나기’ 그리고 주민들을 두렵게 한 ‘끝도 없이 펼쳐진 방대한 시간’은, 한편으로는 현실을 척박하게 만드는 동굴을 깎아 나가기 위해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를 두렵게 하는 현실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의 출발점이듯이. 벽에 부딪히지 않는 이상, 벽을 넘어 가거나 벽을 뚫을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나기’와 마을 주민들은 함께 천천히 동굴을 깎아 나가는 것을 선택한다. 훌쩍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천천히 그 벽을 뚫어 나가기로 한 것이다. 섬 주민들은 그렇게 조금씩 고통과 두려움의 기억을 척박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힘으로 바꾸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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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물론 동굴을 깎는 주민들 모습 한 켠, 섬 절벽 끝에는 생신인 소녀 역시 서 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띤 ‘나기’가 그녀를 쳐다본다. ‘끝도 없이 방대한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정말 한 끝 차이인지도 모른다.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 환상을 부여잡을 것인가, 더디고 힘들더라도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한 걸음을 내딛을 것인가. 킹코는 부정적 현실을 긍정적 힘으로 전환하는 사고를, ‘나기’는 환상을 선택한 소녀까지 보듬는 삶에 대한 애정을 나에게 보여줬다.

우리에겐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그때 무한하고 두렵기만 한 시간은 미래를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전환된다. 문득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너희들은 말한다.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고. 그런 것이 아니라면 너희들은 어찌하여 오전에 긍지를 갖다가도 저녁에 이르러서는 체념하는가?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 그러나 그토록 연약한 언동을 삼가라! 우리 모두는 짐깨나 질 수 있는 귀여운 암수 나귀가 아닌가.’

매일 해가 뜨고 지고, 아침에 핀 꽃은 저녁이면 힘없이 꺾이지만, 오늘도 꽃은 핀다. 같은 꽃인 듯 보여도, 저녁에 힘없이 꺾일지라도, 그 꽃은 어제와는 다른 꽃이다. 그리고 또 아름다운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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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1 10:29 2009/03/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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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ZiRACi 2009/03/11 15:11

    헛! 갑자기 충사를 다시 읽고 싶은 욕망이...

    • 그린비 2009/03/11 16:15

      ZZiRACi님, 안녕하세요~^^
      저도 이 글보고 충사 만화책을 사러갈 뻔..했습니다. 아마도 조만간 사지 않을까..싶어요.ㅎㅎ

  2. 저도.. 2009/03/11 15:43

    충사 다시 읽고 싶어집니드앗!

    • 그린비 2009/03/11 16:15

      넷. 저도!!